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북한, 미국에 납치문제 거론 요청한 일본 비난 본문
제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부터 최초로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이 인정되어 조총련이 진출하였다[대의원 조총련(한덕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의장) 7석]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자 지면에서, 지난달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논평을 게재했습니다.
이 논평 속에서, 아베 수상과 고노 외상에 대해 "미국 측에 번갈아 전화를 걸어, 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 로비활동에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했다"고 말해 아베 수상을 지명하며 비난했습니다.
또 "자신들이 상대를 하기에는 지금까지 일본이 범한 죄가 너무나도 크며, 일본이 과거의 죄악에 대해 배상하지 않는 한 자신들과 만날 꿈도 꿔서는 안 된다"면서 거듭 과거의 청산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정상회담이 결렬돼 합의문서가 교환되지 않은 것에 대해 "국내외로부터 미국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면서 제재 해제에 응하지 않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습니다.
일본정부, 북한 공작선 자료관에 납치 코너 신설
해상보안자료관 요코하마관 전시하고 있는 2001년 아마미오시마 근해의 동중국해에서 순시선과 총격전 끝에 자폭해 침몰한 북한의 공작선과 압수한 무기 등 약 100점(사진)
북한의 납치문제를 국내외에 더욱 알리고자 일본 해상보안청은 북한 공작선을 전시하고 있는 요코하마항의 자료관을 보수해 납치피해자 가족의 영상편지 등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 광장에 인접한 '해상보안자료관 요코하마관'은 2001년 아마미오시마 근해의 동중국해에서 순시선과 총격전 끝에 자폭해 침몰한 북한의 공작선과 압수한 무기 등 약 100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자료관에는 연간 20만 명이 견학하고 있는데 학생과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도 많기 때문에 해상보안청은 북한 납치문제를 국내외에 더욱 폭넓은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간판을 '공작선 자료관'에서 '북한 공작선 전시'로 변경하고, 자료관 내부를 보수해 납치문제 코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납치피해자 가족의 영상편지가 방영되고 있으며, 문제의 개요와 경위가 적인 안내문도 배포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일부에만 있었던 전시물의 영어 표기도 모든 전시물에 부착하기로 했습니다.
해상보안청은 "향후 전시물 표기의 다언어화 등을 검토하고,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작선과 납치 문제를 설명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코타 메구미 씨 등 모든 납치 피해자에게 바치는 "메구미 씨에게 편지" 청소년들은 학교 수업 등을 통해 포악한 현실을 알고 납치 문제 해결의 길에 생각을 짜낼 수있다. 전달된 편지의 일부를 새롭게 소개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또 "내 가족이라면 무엇을 했을까 "- 당시 아직 13살이던 당신을 덮친 무서운 사건을 알았을 때 내가 먼저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
나 뿐만 아니라 일본에 사는 많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대학생도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메구미씨, 지금은 어머니보다 나이가 되어 버린 당신을 이렇게 부르고 양해 바랍니다. 사실 어머니의 이름도 "메구미"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 시절 매우 인기 있는 이름였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당신의 신상에 일어난 것을 나도 내 가족도 너무 남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대학 1 학년에서 경영에 관하여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이들을 살려 금융 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구미 씨, 당신은 너무 밝고 활발한 여자였다는 반면 어린 쌍둥이 동생들이 골칫거리를 기꺼이 보면 부드러운 여자 였다고 하네요. 그것은 당신의 엄마가 이야기 해 주었기 때문에 일본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분명히 당신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계셨다고 틀림 없다는 것이 문득 그런 기분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를 꿈꾸며 비록 수줍게도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일본인을 어느 날 갑자기 사람 겉치레 처럼 옮기는 건 매우 현대의 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 공작원이 실행했다고 하는 이 사건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범죄를 실행 한 사람도 일본에 있다고 말하는 그 공범도 우리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메구미 씨는 북한의 독재자와 그 가족에 관한 비밀을 알아 버린 위해 일본에 돌려 줄 수 없다는 취지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뭐라고 손전등(手前勝手,
메구미씨, 지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부는 "납치 해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북한과 협상 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파탄을 구할 수있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일반 사람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작용, 일본이 북한을 지원하는 대신에, 불법으로 납치 된 일본인의 전원을 즉시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인내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본의 손길이 닿는 것을 기다려주세요.
메구미 씨,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단순한 학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을 구출 위해서라면 어떤 협력도 아끼지 않을 결심입니다. 내 친구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라디오 방송을들을 수 있으면 들어주세요. 신문을 읽을 수 있다면 꼭 읽어주세요. 일본 정부의 구원의 손은 당신 근처까지 뻗어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부모님이나 일본 정부, 일본 국민을 믿으십시오.
위도(緯度)는 일본의 동북 지방과 같아도 대륙의 겨울은 아무리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듦이 될 것입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건강하고 보내십시오. 안녕. 어머니가 당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딸입니다
대학 1 년 岩瀬姫佳(이와세 히메카)
-구원의 손, 당신 근처에 히로시마시 이와세 히메카 씨 19세-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자격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자격은 다음과 같다
"선거에 참여할 정당과 개인은 선거연합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입하며 해당 선거연합은 모든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다"
후보를 내는 곳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뿐이기에 모든 지역구에서 단독 후보가 출마하게 되고 홍보나 선전 활동 등 선거 유세도 없다.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를 지지할 경우에 기표소에 들리지 않아도 된다고 보장하였으니 기표소에 들리는 것 자체가 해당 후보자를 반대한다는 표시가 되는 '공개투표'가 된다. 선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개표가 끝난 뒤가 아니고 투표가 끝난 뒤에 한다는 점도 선거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는 공식적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없으며 조선로동당이 후보 등록에서 투표, 개표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선거를 통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할 정당이 선거 자체를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선거부정이고, 이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나마 투표함을 하나 만 둔 것도 1990년대에 이르러 변한 것이며, 그 이전에는 찬성하면 흰색 투표함, 반대하면 검은색 투표함에 넣는 흑백 투표제였다. 국제 사회의 비난 속에 지금처럼 바꾸었지만 사실상의 공개투표라는 점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사실상 북한의 선거는 정당이 국민의 심판을 받고 동의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이 정권에 충성함을 보여주는 도구인 것이다.
- 100% 찬성이라는 희안한 지지율은 북한의 선거제도에서 기인한다. 북한 법률에 따르면 유권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선거구마다 단독으로 등록된 후보에 대해 찬반 투표만 실시한다. 찬성자는 투표지에 아무 표시를 하지 않고 투표함에 넣으면 되지만 반대자는 후보 이름 옆에 가로로 선을 긋게 돼 있다. 이를 타인들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개 투표’라는 지적을 국제사회로 부터 받고 있다.
북한 선거의 특징은 선거관리위원회도 없고 조선노동당이 후보를 등록에서 투표, 개표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감시한다. 또 중앙당에서 선거가 시작되기 수개월 전에 후보자로 미리 뽑아 놓은 인물이 ’단일 후보’로 나선다. 홍보나 선전 활동 등 선거 유세활동도 없다. 투표장 안의 감시와 통제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北朝鮮の投票率がほぼ100%の理由は…
Q 北朝鮮で最高人民会議代議員選挙(さいこうじんみんかいぎだいぎいんせんきょ)が行われたんだって?
A 日本の国会議員選挙に当たり、だいたい5年に1回行われている。投票する権利がある17歳以上はみな投票に行き、投票率は毎回ほぼ100%なんだ。
Q 日本では投票率が低いって嘆(なげ)いているからうらやましいね
A 無理(むり)やり行かされるもので、そうともいえないよ。それに六百数十ある選挙区ごとに1人しか立候補しないから「この人に賛成か反対か」決めるだけなんだ。
Q 公正(こうせい)ではないの?
A 賛成なら紙に何も書かず、反対のときだけ、鉛筆(えんぴつ)で候補者名に線を引くから、誰(だれ)が反対したか周(まわ)りにすぐ分かる。後でひどい目に遭(あ)うと思って誰も反対せず、賛成した人の割合がほぼ毎回100%なんだ。
Q 選挙の意味があるのかな?
A 外国にちゃんと選挙しているとアピールする意味しかないみたいだね
[북한의 투표율이 거의 100 %의 이유는 ...
Q 북한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선거가 이루어졌다 고요?
A 일본 민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대의원 선거로 대략 5 년에 1 회 실시되고 있다. 투표권이 있는 17 세 이상은 모두 투표에 가고 투표율은 매번 거의 100 % 이다
Q 일본에서는 투표율이 낮은라고 한탄 나게 있고 있기 때문 부럽다
A 무리(無理) 하여 가도록 강요당하는 것으로 ,. 게다가 육백 수십있는 선거구마다 1 명 밖에 출마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 또는 반대"결정 뿐이야.
Q 공정 하는냐?
A 찬성이라면 종이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반대의 경우에만 연필 후보자 이름에 선을 긋는 때문에, 누구가 반대했는지 금방 알 수있다. 나중에 낭패를 당할까봐 생각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찬성 한 사람의 비율이 거의 매번 100 % 뭐야.
Q 선거의 의미가있는 것일까?
A 외국에 제대로 선거하고 있다고 어필하는 의미 밖에 없는 것 같다]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2014년 3월 9일에 열린 북한의 13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게된다.
선출의석: 687
과반의석: 344
노동당(김정은) 607의석
조선 사회민주당(김영대) 50의석
천도교 청우당(류미영) 22의석
조총련 5의석
기타 3의석
통일전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선로동당 (여당) ·
조선사회민주당 ·
천도교청우당
실제로는 조선로동당의 일당 독재 체제로, 조선로동당을 제외한 두 정당은 형식적인 정당에 불과함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은 북한의 정치 단체이다. 흔히 조국전선으로 약칭한다.
1.개요
1949년 6월에 평양에서 남한의 민주주의민족전선과 북한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통합하여 창립되었다. 북한 노동당을 포함하여 북한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단체의 목적은 북한 노동당의 정책, 특히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정책을 지지하며 옹호,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남한에 대한 대남 활동을 펼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지만, 현재는 정당 및 사회단체의 연합체로서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배경
민전의 통합은 남조선로동당과 북조선로동당의 합당으로 조선로동당이 탄생한 것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2월에 박헌영과 여운형, 허헌 등이 만든 단체이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소군정 영역에서 김일성과 김두봉, 최용건 등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사회주의 계열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해 창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불법 단체로 규정되었다. 이에 1949년 6월 25일부터 평양에서 회의가 열려 두 단체는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으로 통합했다.
3.기능
북한에서는 이 단체를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묶어 세운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로 규정한다. 북한 노동당의 통일전선 전술의 전위를 맡고 있었으며, 대한민국 내의 북한 노동당 지지 세력을 단합시켜 북한 노동당과 연계 활동을 펼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요 활동은 대한민국에 대한 성명과 담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 제의와 선전 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한국 전쟁 전의 대표적인 제의로는 1950년 5월의 총선거 실시 제의가 있다. 남북한의 통일된 입법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총선거를 함께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최고 기구는 중앙위원회이며 산하에 하부조직과 단체를 두고 있다.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김용순과, 여운형의 딸 여원구, 남한 출신인 류미영 등이 공동 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61년 창설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유사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현재는 각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여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연합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 선거에는 후보자가 한명밖에 입후보하지 않는다.
일본 조총련이나 남한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한국민족민전선 서울대표부] 그리고 해외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들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통일전선] 하부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1.제1공화국 헌법[인민회의정부론-인민민주주의 노선]
(1)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수반 김일성 수상]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48년 8월 25일에 열린 북한의 최초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572명을 선출하였다.
1948년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는 먼저 1차 협상의 성과를 재확인했다. 그에 따라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남북조선 대표자들로 조선 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북에서는 총선거를 통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에서는 공개선거가 불가능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중 비밀 지하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ㄱ.선거
(ㄱ)이북 선거
북쪽에서는 8월 25일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오전 6시에 시작한 투표는 여섯시간만인 오후 12시에 마감되었다. 투표율은 99.97%였다. 선거구 212개에 후보는 모두 1217명이었다. 그중 227명이 북한 노동당을 비롯한 주요정당들의 연합체인 북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의 공동후보였다. 단일 후보로 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15개 지역에서 복수 후보가 출마했다. 투표는 흑백함에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지는 찬반 투표였다. 유권자들은 212명의 공동 후보에게 98.49%의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이북지역의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12명이 당선되었다
(ㄴ)이남 선거
이남에서는 공개선거가 불가능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중 비밀 지하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해 7월 중순부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할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예비선거'에 돌입했다. 선거관리는 남쪽의 남한 노동당과 중도파 정당들이 연합하여 만든 '조선최고인민회의 남조선대의원선거지도위원회'에서 담당했다. 선거방식은 선거운동원들이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다니며 찬성하는 사람들의 도장이나 손도장을 받는 것이었다. 선거가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공정성이나 대표성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남조선 대표자' 1080명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해주에 모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위한 남조선 인민 대표자대회' 본회의를 개최했다. 대회 마지막날 북측의 8.25 총선에 맞춰 대표자들은 대의원 360명을 선출했다. 남과 북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572명이 선출된 것이다[
ㄴ.선거결과
선출의석: 572
과반의석: 287
북한 노동당(김일성 노동당 비서) 157석
북한 민주당(최용건 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35석
북한 천도교청우당(김달현 천도교청우당 당수) 35석
인민공화당 20석
근로인민당 20석
인민공화당 20석
기타 정당 171석
무소속 114석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는 다음과 같다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소련 육군 극동사령부]은 스탈린 부대(일국 사회주의노선, 자국사회주의 성향 사회주의(민주사회주의) 그룹]이며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은 모택동부대[신민주주의 노선, 인민민주주의 그룹],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은 레닌부대[공산주의 노선, 마스-레닌주의 공산당 그룹]이다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조선공산당 출신이 과반수 이상 의석을 획득했다
(2)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수반 김일성 수상]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57년 8월 27일에 열린 북한의 2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215명을 선출하였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한국 전쟁으로 실시되지 못했던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치뤄졌다. 전쟁으로 인해 휴전선 이남에 대한 선거가 완전히 불가능해짐에 따라 휴전선 이남 지역구에 대한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
선거 결과
선출의석: 215
과반의석: 108
북한 노동당 (김일성 노동당 비서) 178석
북한 민주당(최용건 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1석
천도교청우당(김달현 천도교청우당 당수) 11석
근로인민당 3석
인민공화당 3석
불교연합 2석
건민인민연합 1석
민주독립당 1석
기타 5석
한국전쟁 이후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북한 군부를 장악한 북한 노동당이 크게 압승했다
(3)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수반 김일성 수상]
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62년 10월 8일에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383명을 선출하였다
선거결과
선출의석: 383
과반의석: 192
북한 노동당 (김일성 중앙위원장) 371석
북한 민주당(최용건 중앙위원장) 4석
천도교청우당(박신덕 중앙위원장) 4석
근로인민당 1석
불교연합 1석
건민인민연합 1석
민주독립당 1석
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북한 군부를 장악한 북한 노동당이 크게 압승했다
(4)제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수반 김일성 수상]
제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67년 11월 25일에 열린 북한의 4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457명을 선출하였다. 최초로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이 인정되어 조총련이 진출하였다
선거결과
선출의석: 457
과반의석:229
노동당(김일성 노동당 총비서) 288석
조총련(한덕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의장) 7석
천도교청우당(박신덕 중앙위원장) 4석
북한 민주당 1석
불교연합 1석
기타 156석
김일성 수상의 장기집권에 대한 거부감과 중공의 대미, 대일수교 정책으로 반미전선이 위축되어 북한 군부세력 기반이 위축 되었다.
2.제2공화국 헌법[사회주의 공화국-자국 사회주의 주체사상]
(1) 제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 수반 겸 행정부 수반 김일성 주석]
제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72년 12월 12일에 열린 북한의 5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541명을 선출하였다
선거결과
선출의석: 541
과반의석: 271
노동당(김일성 노동당 총비서) 127석
조총련(한덕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의장) 7석
천도교청우당(박신덕 중앙위원장) 4석
북한 민주당 1석
불교연합 1석
기타 401석
제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노동당이 크게 패배하고 인민민주주의 노선 인민회의정부론 인민공화국을 포기하고 자국 사회주의 국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여 북한 제2공화국을 선포했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닉슨 독트린 정책으로 베트남 전쟁의 포기와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의 관계개선, 주한 미군의 부분적 철수및 동아시아에서 냉전기류의 해체경향의 영향을 받아 남북간의 관계를 모색하고 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여 '선건설 후통일' 정책에서 평화통일 3원칙을 통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남북간 경직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선평화 후통일' 정책으로 바꾸어 현재까지 통일정책의 기본원칙이 되고 있다.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간 합의문서를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적인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곧 박정희 정부는 10월 유신을 선포하여 장기 집권을 꾀하였고, 북한도 주체사상 헌법을 개정하여 유일 지도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제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친미 친서방 친남한 평화공존세력보다는 반박정희, 반미세력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주체사상) 성향 인사들이 대거 당선 되었다
(2)제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 수반 겸 행정부 수반 김일성 주석]
제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77년 11월 11일에 열린 북한의 6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579명을 선출하였다.
(3)제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 수반 겸 행정부 수반 김일성 주석]
제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82년 2월 28일에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7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15명을 선출하였다
(4))제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 수반 겸 행정부 수반 김일성 주석]
제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86년 11월 2일에 열린 북한의 8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55명을 선출하였다
(5)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 수반 겸 행정부 수반 김일성 주석]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90년 4월 22일에 열린 북한의 9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였다.
선출의석: 687
과반의석: 344
북한 노동당(김정일 총비서) 601석
북한 사회민주당(이계백 중앙위원장) 51석
천도교청우당(류미영 중앙위원장) 22석
조총련 13석
3.제3공화국 헌법[세습제 좌익군정-주체연호와 선군정치]
(1)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군 통수권자 최고사령관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98년 7월 26일에 열린 북한의 10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였다.
유훈통치가 끝나면서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연기되었던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결과
선출의석: 687
과반의석: 344
노동당(김정일 총비서) 594석
북한 사회민주당(이계백 중앙위원장) 53석
천도교청우당(류미영 중앙위원장) 23석
조총련 7석
기타 10석
(2)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군 통수권자 최고사령관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2003년 8월 3일에 열린 북한의 11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였다.
(3)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군 통수권자 최고사령관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2009년 3월 8일에 열린 북한의 12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였다.
선거결과
선출의석: 687
과반의석: 344
북한 노동당(김정일 총비서) 606석
북한 사회민주당(김영대 중앙위원장) 50석
천도교청우당(류미영 중앙위원장) 22석
조총련 6석
기타 3석
4.제4공화국 헌법[주체연호와 선군정치 세습제 좌익군정-김일성 ,김정일 헌법]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2014년 3월 9일에 열린 북한의 13대 최고인민회의 선거다. 대의원 687명을 선출하게된다.
선출의석: 687
과반의석: 344
노동당(김정은) 607의석
북한 사회민주당(김영대) 50의석
천도교 청우당(류미영) 22의석
조총련 5의석
기타 3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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