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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운동권 출신 40대 밀입북 혐의로 체포 본문

Guide Ear&Bird's Eye/국가안보 위해사범(NLPDR) 자료

서울대 운동권 출신 40대 밀입북 혐의로 체포

CIA bear 허관(許灌) 2015. 11. 19. 20:46

 

                                                                                    Guide ear[intelligence,Bird's eye& Guide ear]

1986년 부산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에 연루됐던 서울대 학생 운동권 출신 40대 남성이 밀입북했다가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19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백재명 부장검사)와 국가정보원은 이달 17일 오후 이모(48)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판문점을 통해 북측으로부터 이씨의 신병을 넘겨받았다

북측은 이씨의 밀입북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비교적 신속하게 이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밀입북 경위와 북한에서의 행적, 북측 인사 접촉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이씨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6년 다른 학생 20여명과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부산 미국 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뒤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는 1990년대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혁명조직으로 알려진 '구국전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lucho@yna.co.kr

 

*구국전위는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안재구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자생한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을 중심으로 1991년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1994년 적발된 사건이다. 구국전위 가입자들은 안재구 앞에서 “김일성 수령님이 창시하고 김정일 장군님이 심화, 발전시킨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 및 유일지도 밑에서 자신의 생명과 사상, 육신과 재산을 모두 다 바쳐 구국전위 조직의 강령을 실현하는 데 앞장선다”고 다짐했다.

구국전위는 1991년 5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2회에 걸쳐 재일 공작지도부의 지령을 받았는데, 지령 내용에는 조직 결성 방법, 조직의 형태와 위상 등에 관한 것부터 국내 정세 보고와 구체적인 활동지침까지 포함됐다. 또한 1993년 6월 하순경 현대그룹 노동자 파업 현장에 개입해 노동운동을 배후 조종하려 했다. 노동운동 이외에도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하기 위해 전대협동우회에 대한 장악 사업을 진행했다.

북한, 무단입북 한국민 1명 판문점 송환

북한이 한국 국민 1 명을 17일 오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고 한국 통일부가 밝혔습니다.

송환된 한국 국민은 지난 9월30일 북-중 접경지역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48살 이모 씨로, 이 씨는 오늘 오후 4시반쯤 판문점을 거쳐 한국으로 송환됐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오늘 오전 리충복 조선적십자중앙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지난 9월 북측 지역에 불법으로 들어가다 단속된 한국 국민 한 명을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올해 자진입북한 한국 국민을 송환한 사례는 이모 씨 부부와 한국 국적 미국 대학생 주원문 씨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한국 국민을 송환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아직도 북한이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와 김국기, 최춘길 씨도 조속히 석방할 것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VOA 뉴스 김은지 입니다.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1990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설치(반미청년회 등 반미단체 통합)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김일성주의)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새세대(김정일주의=주체사상)로 지하신문 변경

1986년에는 강철서신 등에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영환등 강철서신(반제동맹)-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새세대(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

-1991년 12월 김정일 노동당 군사부위원장이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취임(김정일 북한 권력 장악)

1984년 5월 18일 김정일 직접 쓴 논설《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1984)  발표했다

-김정일  우상화 벽보 사진이 북한 곳곳에 등장

-1992년 11월 미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 정부 등장

-1993년 3월 김영삼정부 출범과 핵무기 보유설, 북폭등장 그리고 남한 한민전 서울대표부 1995년 해방 50주년 남북통일 결정적 시기 공식화 (반미자주정부와 전쟁론)

-1994년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분열[김대중-찬성파, 반미단체-반대파]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 사망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언론들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 주석이 “심장혈관과 동 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 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었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12월 17일 해군이 남해에서 격침시킨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 상륙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 심재춘씨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를 여수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했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출신)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반미 전쟁파 민혁당 와해와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선실 사망)
1998년 9월 5일 북한 제3공화국수립-세습제 좌익군정 헌법(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명목상 국가원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대남 친북무장단체는 대부분 김일성주의 반미단체로 통일혁명당 계열(한국민족민주전선 계열, 반미청년회나 반미여성회 등)이다  범민련이나 범청년 조직이 반미성향 김일성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북한정부는 국영자본체제와 극렬 민족주의 반미성향 세습제 좌익군사독재정부(국방위원회)로 국가사회주의 노선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인민회의정부(순수 내각책임제)가 아닌 관계로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 등 빈부격차가 등장해오고 있다  인민회의정부론 공산주의자는 모택동(마오)계열이고 극렬 민족주의 반미성향 자주정부론 국가사회주의자는 김일성계열이다

 

*‘구국학생연맹’등, 대표적 김일성주의 조직

국무총리실 산하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위원회)’가 관련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결정을 통해 민주화운동단체로 인정한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연세대  구국학생동맹, 고려대 애국학생회, 반미청년회, 반제동맹 등은 80년대 대표적인 민족해방(NL)주사파 조직이다.

이는 당시 정부당국의 수사결과는 물론 최근 주사파전향지식인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주사파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NLPDR) 혁명노선을 추종하는 조직을 가리킨다. 이들은 북한관련서적 등을 통해 학습하던 기존 친북운동단계에서 벗어나, 북한의 대남혁명 전위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구국의 소리’방송 등을 직접 청취, 주체사상과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키 시작했다.

85년 경 태동, 86년 상반기 투쟁을 통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주사파는 구국학생연맹, 구국학생동맹, 애국학생회를 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86년 10월 28일 건국대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결성식, 즉 건대사태를 감행키에 이른다.

민주화위원회는 이 건대사태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의 명예회복·보상결정을 통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건대사태 후 당국의 수사로 주사파 주요지도부가 검거됐고 조직은 와해됐다. 그러나 고려대 중심의 잔존 주사파는 86년 12월 ‘전국학생사상운동추진위원회(전사추위)’를 결성하고, 전사추위는 87년 10월 ‘반미청년회’로 발전됐다.

반미청년회 이외에도 연세대와 서강대, 서울대를 중심으로 각각 ‘조통그룹’,‘관악자주파’가 결성되는데, 이들 단체들은 모두 주체사상과 북한의 대남혁명론으로 무장해 87년 8월 결성된 ‘전대협’을 주도하게 된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희정 씨는 87년 고려대 애국학생회 및 88년 반미청년회 활동으로 각각 구속됐고 이광재 현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연세대 구국학생동맹의 핵심간부로 활동하는 등 NL주사파 출신이다.

 

*“주체사상 무장해 생명과 사상, 육신과 재산 다 바치겠다” (구국전위가입선서)

 ● 뇌관 TNT 확보해 게릴라戰 준비한 남민전
● 민혁당, RO 18개 갖추고 4000명에 영향력
● 北 225국, 왕재산에 유류창고 파괴 준비 지시

통합진보당 의원 이석기가 포함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가 비밀회합을 열어 유사시에 유류저장소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총기와 폭탄을 준비하는 등의 모의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60여 년 동안 한국 현대사에서 존재했던 종북 지하혁명조직을 개괄적으로 정리해보자.

1960년 4·19혁명이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황을 지켜본 김일성은 1961년 조선노동당 4차 대회의 사업 총화에서 “남조선에서 혁명적 당을 내올 것”을 역설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과거 남로당 활동을 했던 좌익 인물 가운데 김종태를 포섭해 월북시킨 후 노동당에 입당시키고 자금 등 활동 내용을 지원했다. 남한으로 귀환한 김종태는 1964년 6월 중순경 조카 김질락과 김진환·이문규 등을 포섭해 월간지 ‘청맥’을 창간,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65년 11월 김질락·이문규 등과 함께 통일혁명당(통혁당)을 창당했다.

 

                                                                                              주체사상탑[자주노선과 김일성주의]

 인민회의정부론 공산주의자는 모택동(마오)계열이고 극렬 민족주의 반미성향 자주정부론 국가사회주의자는 김일성계열이다

 

통혁당 내란예비음모 처벌

1968년 중앙정보부가 이들을 적발했고, 사법부는 김종태·김질락·이문규 등에게 국가보안법·반공법·형법(간첩죄)·내란예비음모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고 관련 피고인들도 중형에 처했다. 통혁당 사건 이후 북한은 관련자들을 영웅으로 대우하면서 대남 공세를 전면적으로 진행했고 이후에도 통혁당이 재건됐다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통혁당은 나중에 ‘한국민족민주전선’, 2005년 이후에는 ‘반제민전’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대남 선전기관 노릇을 했다.

북한이 남파간첩을 통해 통혁당을 준비하던 시점에 일군의 인텔리들은 별도로 박정희 정권 타도를 목표로 하는 지하조직 건설을 준비한다. 김배영, 도예종 등이 발기한 인민혁명당(인혁당)이 그것이다. 세간에서는 이를 ‘1차 인혁당 사건’이라고 불렀다. 일부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북한과 연계를 시도한 정황은 있으나, 이들은 통혁당과 달리 상당한 자생성을 가졌다.

인혁당 사건을 둘러싸고 조작 논란이 있었지만, 훗날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조직은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중한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반국가단체조직 혐의로 중앙상무위원장인 도예종이 징역 3년형을 받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1974년 발표된 이른바 ‘2차 인혁당 사건’인 인혁당재건위원회 관련자들은 대규모 봉기를 준비하고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당시 재판부로부터 중형이 선고됐다.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다음 날 새벽에 사형이 집행됐다. 2007년 이후 이뤄진 재심에서는 원심 재판부가 인정한 국가변란 도모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위험성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관련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통일혁명당은 1965년 결성돼 1968년 적발됐다

 

게릴라식 봉기 준비한 남민전

1976년 2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 3가의 태성장이라는 중국음식점에 모인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민전은 변혁운동을 지도하는 지하당을 자임하고 공개적인 반(反)유신 민주화 투쟁을 위해 산하에 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와 민주구국학생연합(민학련)을 설치했다. 남민전은 광복 전후 남로당 활동에 뿌리가 닿아 있는 구(舊)좌익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청학련 세대가 응집한 지하당이다. 이들은 1978년 8월 28일 서울 시내에 뿌린 유신체제 타도 유인물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면서 본거지가 적발된 1979년 9월까지 3년 넘게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고 활동했다.

남민전은 투쟁자금 조달을 위해 ‘혜성대’라는 이름의 무장행동대를 조직해 종로1가 소재 금은방과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자택 등에 침입해 상해를 가하고 금품을 절취하는 등 강도 행각을 벌였다. 또한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왔을 때를 대비한 무장봉기를 위해 총기와 탄약을 은밀히 탈취해 보관했다. 이외에도 TNT와 뇌관 등을 불법 입수해 보관하는 등 무장 게릴라 방식 봉기를 차근히 준비하고 있었다. 또 남한에서 혁명이 성공할 경우 중앙청에 게시하기 위해 남조선민족해방전선기(旗)를 제작해 보관했다.

치안본부는 1979년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84명을 검거해 79명을 구속했다. 검거 당시부터 치안본부와 검찰은 일관되게 북한과 연계된 간첩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남민전 재판기록에 따르면 조직원을 일본에 보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접선하고 그를 월북시켜 북한과의 구체적인 연계 방안을 도모했으나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이전에 조직이 검거됐다.

 

                                                                       1980년 1월 열린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재판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은 1980년대 이후 대학가에 자생한 이른바 ‘주사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김영환이 북한과 연계된 이후 결성했다. 구(舊)좌익과 단절된 최초의 대규모 신(新)좌익 지하당이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권을 장악했고, 나아가 사회운동에서 주류가 된 NL(민족해방) 계열 운동의 사상·이론·조직적 지도부를 맡았다고 볼 수 있다.

민혁당은 중앙위원회 산하에 도당 격인 수도권위원회, 영남위원회, 전북위원회 등의 지역조직을 두고 당원만 100명에 달하는 대형 조직이었다. 또한 민혁당에는 RO(혁명 조직) 18개 조직, 400명의 조직원이 있었고, 산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관철할 수 있었던 사람만 3000~4000명에 달하는, 말 그대로 정전(停戰) 이후 남한 최대의 지하당이었다.

 

NL 지도부 맡은 민혁당

김영환이 주도한 1980년대 중반의 ‘주사파 운동’은 종북으로 귀결되면서 운동권의 주류가 됐다. 이는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주사파에 영향을 받은 친북좌파 10만 명이 사회에 진출”(구해우, ‘월간NKvison’ 2012년 7월호에서 인용)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민혁당을 주도했던 김영환과 전향 인사 일부는 1990년대 말부터 북한 정권 타도와 북한인민의 해방을 목표로 한 북한 민주화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반면 하영옥, 이석기 등 전향하지 않은 인물들은 김영환이 주도한 1997년 7월의 민혁당 자체 해산 결의를 인정하지 않고 조직을 수습해 지하당을 유지시키려 노력하다 1999년 8월 국가정보원에 적발됐다. 당시 이석기는 경기도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3년 광복절에 가석방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RO는 이석기가 출소 후 과거 민혁당의 경기도 지역 조직을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는 이 조직을 기반으로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 격인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했고, 마침내 지난해 4·11총선을 통해서 스스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국회를 고급 정보 획득과 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으려 한 것처럼 보인다.

 

황인오의 중부지역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의 최고위급 대남공작원 이선실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공작선(線)이 한편으로는 공개적 진보정당인 민중당 지도부에 접근해 당 대표인 김낙중을 포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 사북사태 주동자였던 황인오를 포섭해 함께 월북한 이후 노동당에 입당시키고 남으로 돌려보내 지하당 구축을 시도한 사건이다.

황인오는 주사파 활동가인 최호경을 포섭함으로써 그가 1990년 12월에 학원과 노동계에서 활동하고 있던 주사파 운동가 241명을 묶어 결성한 ‘1995년 위원회’(1995년은 분단된 1945년으로부터 50년째가 되는 해로, 이때까지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의미다)를 장악해 조직망을 확산할 수 있었다. 중부지역당은 산하에 강원, 충북, 충남 등 3개의 도급 당 조직을 두고 학원과 노동계에 조직을 확산시켰다.

이선실이 공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2년 후인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는 이선실과 연계된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던 중 중부지역당 성원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구속자 중에는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의 비서인 이근희라는 인물이 포함돼 있었다. 1992년은 14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선용으로 조작된 간첩단 사건이 아니냐는 비난이 흘러나왔다. 게다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선실과 이선실의 지휘를 받던 직파간첩 중 붙잡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자 논란이 더 커졌다.

그러나 사법부는 중부지역당 관련자들의 진술과 확보된 증거를 통해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또한 1997년 총책임자였던 황인오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란 제목의 옥중 수기를 내고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으면서 사건 조작 논란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구국전위는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안재구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자생한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을 중심으로 1991년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1994년 적발된 사건이다. 구국전위 가입자들은 안재구 앞에서 “김일성 수령님이 창시하고 김정일 장군님이 심화, 발전시킨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 및 유일지도 밑에서 자신의 생명과 사상, 육신과 재산을 모두 다 바쳐 구국전위 조직의 강령을 실현하는 데 앞장선다”고 다짐했다.

구국전위는 1991년 5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2회에 걸쳐 재일 공작지도부의 지령을 받았는데, 지령 내용에는 조직 결성 방법, 조직의 형태와 위상 등에 관한 것부터 국내 정세 보고와 구체적인 활동지침까지 포함됐다. 또한 1993년 6월 하순경 현대그룹 노동자 파업 현장에 개입해 노동운동을 배후 조종하려 했다. 노동운동 이외에도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하기 위해 전대협동우회에 대한 장악 사업을 진행했다.

민노당 정보 北에 넘긴 일심회

2006년 10월 24일 국정원은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회합통신 등)로 재미교포인 마이클 장(장민호), 조직원인 영어교육 사업가 이정훈, 모 학원장 손정목 등을 체포했다. 검찰과 국정원은 마이클 장 등이 2006년 3월 재야인사 2명과 함께 중국으로 출국해 북한 공작원을 만나 국내 정보 동향 및 특정 정당의 정보를 제공하고 각종 지령 및 공작금을 수수했다고 발표했다. 이정훈 전 중앙위원과 최기영 사무부총장이 연루된 민노당 등은 공안 분위기를 만들어 반북·반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국정원의 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일심회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때까지 북한은 통혁당, 민혁당 등 남한 내에서 지하 영도조직 구축에 주안점을 뒀으나, 일심회 사건은 기존 정당의 핵심부서에 침투해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해외에 서버를 둔 e메일을 이용하거나 해외에서 공작원들을 접촉해 국내 정세 동향과 민노당 주요 당직자 신원 및 분석 자료를 넘겼다.

 

               2011년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왕재산 사건 수사 관련 검찰 브리핑’때 검찰이 공개한 왕재산 조직 체계도

2011년 7월 관련자들이 체포돼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 판결이 난 왕재산 사건은 중앙대 82학번 주사파 운동권 출신 김덕용이 주도해 준비한 조직이다. 김덕용은 1993년 조직원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의 접견교시를 받아 조직 활동을 진행하다 2001년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인천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계, 학계, 재야 등에 조직을 구축하려 했다.

특히 왕재산은 북한 대남 지하공작 부서인 225국으로부터 2014년까지 인천 지역의 유류창고, 방송국, 군부대에 조직 성원을 침투시키거나 파괴할 준비를 마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 또한 북한으로부터 2011년 5월 진보대통합정당을 창당하라는 지령을 받고 정치권에도 관련자를 침투시켜 정보를 파악해 보고하는 등의 활동으로 북한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끝)

-신동아 자료-


경남지역 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계열 동향에 대하여

 

오늘 이 시간에는 "경남지역 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계열 동향에 대하여" 논의 하고자 합니다

공산주의 계열은 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모택동(마오)과  반미투쟁노선 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김일성 계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NL(민족해방) 계열 자주대오(자주노선) 반미,친북 김일성주의 옹호세력이 있습니다

요즘 북한 세습제 좌익군정 김정일, 김정은정부 등장 이후 반미성향 세력은 국가사회주의 노선 북한 김정은 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모택동 추종세력은 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허아성:J선생은 과거  반미투쟁노선 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김일성 계열로 파악해왔습니다

수령론이나 전통과 계승 등 입장에서 김정일 승계를 지지했습니다 북한 김일성 헌법 세금없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빈부격차나 도시와 농촌 격차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본인이 중국 자료를 보니 의무교육 중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계층 30%를  북한 상류층 지지층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의무교육 중학교 졸업자 70%를 북한 평민층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07년도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은 780만명으로 북한 전체 주민 중 33%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J선생은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 33% 주민 자료와 각종 사진을 보니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A mother cares for her clinically malnourished child(영양실조로 누워 있는 아동을 간호하는 어머니 모습)

 

Malnourished infants lie on hospital beds in Haeju, capital of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October 1, 2011(함경남도 해주 병원 입원한 영양실조 북한 아동들 모습)

 

J선생:북한이 경제적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북한 평민층 지위와 역할을 파악할 수 있는 인민회의제 정부가 돼야 합니다

세습제 좌익군정(국방위원회와 인민군 총참모부) 김정일헌법은 선군정치(先軍政治) 노선으로 군인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장악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북한 남여 젊은이들이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하며 북한 전지역에 현역 군인 주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 33% 주민이 배부른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선군정치(先軍政治) 노선을 폐지하고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개방 헌법으로 권력변경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군 복무기간을 단축으로 현역 군인 감축을 하여 젊은 세대들이 경제참여 인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허아성:반미노선이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북한 서적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반미노선을 타도 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젠체주의)! 구호로 무장화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서적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 반미철폐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인도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서적을 거의 다 보았습니다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서적 내용은 공산주의 운동과 반일, 반미투쟁노선 등입니다  김일성 前주석을 너무 우상화 신격화 하다보니 각종 자료나 서적이 거짓말이나 과장돼 있습니다

자주대오나 NL계열 애국투쟁노선 등이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서적 내용입니다

L선생은 학생운동이나 자주대오 등을 참여하면서 반미투쟁이 항구적 투쟁이 아닌 대화형(협상용)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헌영도 E선생처럼 행동을 하다가 미국간첩으로 처형되었습니다

L선생은 대화용 반미투쟁을 아직도 지지합니까?

 

 

 

                               1984년 5월 18일 김정일 직접 쓴 논설《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1984)  발표했습니다

 

L선생: 북한 세습제 좌익군정 반미투쟁은 인민회의정부론 공산주의 운동보다는 선군정치노선 국가사회주의 노선입니다

북한 세습제 좌익군정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 도입과 민주정부 수립이 필요합니다

과거 자주대오 그룹은 공산주의 단체보다는 민족주의 성향 민주세력입니다

김일성은 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자입니다

반미투쟁만 요구하는 북한 김일성 각종 자료나 서적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 반미철폐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 1학년 교양과목에 경제학(미시, 거시,국제수지등)과 중국, 러시아, 북한헌법등을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북한 헌법이 얼마나 국가사회주의 성향 헌법인가를 알게 됩니다

 

허아성:자주대오 세대들이 아직도 지역 반미여성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해산하고 요즘  각종 지역여성회등을 결성하여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해 보니 서구사회처럼 극단적민족주의 운동(국가사회주의 운동) 보다도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과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 모델 사회주의 운동 여성회나 자유주의운동 여성회 등을 결성하여 자유권과 사회권(생존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J선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J선생은 북한 여성들처럼 군인 반미운동가를 원합니까?

 

 

 

 

                                                                                          북한 여성들 7년간 군 복무하는 모습

J선생: 경남지역 여성들도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 국가사회주의(반미나 반일 등) 보다는 자유권과 생존권(사회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은 아동들처럼 국가보호가 필요합니다 군인보다는 가정(가족)을 지키는 여성이 돼야 합니다

북한은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제도  여성 군 입대 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북한정부도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 국가사회주의(반미나 반일 등) 보다는 자유권과 생존권(사회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너무 반미이나 반일 운동으로 선진국 미국이나 일본 등을 깔보는(얍보는) 행동으로 북한 김정은 세습좌익군정이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반미투쟁은 무장활동입니다 반미단체 결성을 차단해야 합니다

 

허아성: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자 김일성 계열은 반미투쟁이 주요 내용이라면 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자 모택동 계열은 신민주주의(진보 민주주의) 노선으로 산악 농촌지역이나  도시 빈민촌 등지에서 세력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모택동(마오)은 공산주의 투쟁이라면 김일성은 반미투쟁입니다

모택동(마오쩌둥)주의는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중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에 기반을 두고 세력을 확장해왔습니다 모택동(마오쩌둥) 노선이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보다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이나 NL(민족해방) 노선이 될 때 인민보다 민족우월이나 해방전쟁으로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노선 지역 패권 전쟁이론이 돼 오고 있습니다[북한이나 기타 제3 세계 좌파민족주의 이론]

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인민군]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 청년공산주의 단체, 인도 마오(모택동)주의[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공산반군],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태국 공산당],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북부 미얀마 공산반군],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등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신봉단체..

 

K선생, 농촌지역에 마오(모택동, 마레모)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오가 무장세력이 될때는 중국 공산당과 당군 인민해방군이 군사작전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도 군비확장과 경제건설을 요구하는 보수파(공산주의 그룹)가 있고 자유화 개방화와 민생경제를 요구하는 개혁파(실용주의 노선 사회주의 그룹)가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의회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등장해오고 있습니다

K선생은 마스-레닌주의 모택동계열이 농촌지역에서 세력화할 수 있다고 봅니까? 

                                                                                    일본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모습(사진)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모습

 

 

K선생: 한국 농촌에서 모택동 세력 등장은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 농촌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과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농촌보다 공업지구 도시 빈민촌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공산당의 지지층이 공업지구 도시 빈민층입니다

한국 전농 등지에서 마오세력이 있지만 세력화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국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으로 군사위원회 원조로 무장군 등장도 어렵다고 봅니다

중국은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 형태로 국가원수(국가대표-외교권과 중앙정부 수반)는  국가주석이고 군 통수권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작은 내각수장은 총리입니다

국가주석의 임기는 임기제한 5년 중임제이며 총리 임기는 의회 의원 임기와 동일합니다 총리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합니다 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습니다

중국이 다당제와 자유선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군제도 군사위원회(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이 군통수권자가 돼야 합니다

 

허아성: 오늘 이 시간에 머리소리함으로 과거 공산주의자 김일성계열 J선생, 모택동 계열 K선생과 자주대오(국가사회주의 성향 학생회) 출신 E선생 의견을 들어 보았습니다

과거 한국민족민주전선(반미청년회) 세력이 공산주의자 김일성계열과 자주대오 국가사회주의(세습제 좌익군정, 김정일 계열) 등입니다

군사적으로는 과거에는 소련과 중국이 북한정부를 통제해왔습니다

공산주의자 모택동계열도 군사적 입장에서는 김일성계열입니다 

반미세력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교육과 자유화, 민주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특히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에 많은 평민층 자녀들이 유혹돼 왔습니다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은 스탈린 일국사회주의 노선 모택동, 김일성 사상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입니다"

본인은 1993년 12월부터 뇌 감청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반미세력 제거와 남북 자유화 민주화, 남북통일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Bird's Eye&Guide Ear-

독일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남북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 반공반독재구국전선-

 

1. 노태우 김영삼정부 때 공안기구

범죄수사 자료실(거짓말탐지기-일명 놔파 분석기): 귀 소리(음향)로 범죄행위 고백 유도.The FBI stores its information on databases like these 30-feet underground.

북한이 세습제 좌익군정으로 북한정부에서 사상범이나 반체제 인사 탄압기구나 대남간첩활동으로 뇌파 분석기를 지금 사용하고 있다[남한 김일성주의 신봉자를 월북이나 대남공작원으로 선발하기 위하여 개인 신상자료를 전산자료화하여 음향(귀 뇌파 분석기)으로 사상검증과 반미투쟁가로 현장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우리정부나 세계 각국정부는 일반 범죄자(형사범) 뇌 분석기 자료 시스템으로 사용하여 범죄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

과거 한국정부 공안부도 범죄수사 자료실(거짓말탐지기-일명 놔파 분석기) 주도로 간첩조작이나 민주인사를 반미, 친북인사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미국등 선진국 수준 검찰 공안부으로 나아가고 있다

 

2.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

우리 나라와 세계 각국 정부가 도입하여 눈으로 범죄행위를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하고 있다

반정부 인사도 과거에는 귀소리(음향)로 통제하지만 요즘 눈으로 범죄행위를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하고 있다

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은 범죄증거물 확보에 주력함으로 사건 조작이 어렵다 간첩이나 테러범 그리고 고위직 부패행위, 국가기밀 취급 부서 동향등은  개인의 신상 파악만 되어도  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은 쉽게 파악하고 있다

 

3.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 

요원이 한국정부냐 유엔이냐 미국정부냐에 따라서 뇌 통제기구가 다르다

한국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는 대북이나 정치분야에 주로 활동하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은 테러나 국가사회주의(북한 반미 세습제 좌익군정), NL계열(극단적 민족주의나 독립운동가-김일성, 모택동계열) 등을 파악하는데 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를 이용하고 있다

 

 

 


 

독일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이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남북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 반공반독재구국전선-

 

Bird's Eye&Guide Ear[Eye, Intelligence] 부패원인 "Guide Ear"

 

 

 

                                                

                                                                Bird's Eye&Guide Ear[Eye, Intelligence] 머리소리함 모습 사진
머리소리함 내부  Guide Ear팀을 폐지하고 Bird's Eye팀을 신설하고 있기 때문에 Guide Ear팀이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허아성 요원 의견이다
Guide Ear팀은 소련 KGB이나 중국, 북한 정보요원들이 이용하고 있는 모델로 남한에서도 반미단체나 친북단체공작용으로 이용해왔다는 것이 미국정부 의견이다
인간은 Bird's Eye이 돼야 Eye- Guide Ear가 될 수 있다
Guide Ear팀이 Bird's Eye팀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 선진국 정보요원 의식수준이 돼야 한다
Guide Ear팀이 부패와 공작원인이다

1. 노태우 김영삼정부 때 공안기구

범죄수사 자료실(거짓말탐지기-일명 놔파 분석기): 귀 소리(음향)로 범죄행위 고백 유도.The FBI stores its information on databases like these 30-feet underground.

북한이 세습제 좌익군정으로 북한정부에서 사상범이나 반체제 인사 탄압기구나 대남간첩활동으로 뇌파 분석기를 지금 사용하고 있다[남한 김일성주의 신봉자를 월북이나 대남공작원으로 선발하기 위하여 개인 신상자료를 전산자료화하여 음향(귀 뇌파 분석기)으로 사상검증과 반미투쟁가로 현장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우리정부나 세계 각국정부는 일반 범죄자(형사범) 뇌 분석기 자료 시스템으로 사용하여 범죄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

과거 한국정부 공안부도 범죄수사 자료실(거짓말탐지기-일명 놔파 분석기) 주도로 간첩조작이나 민주인사를 반미, 친북인사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미국등 선진국 수준 검찰 공안부으로 나아가고 있다

 

2.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

우리 나라와 세계 각국 정부가 도입하여 눈으로 범죄행위를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하고 있다

반정부 인사도 과거에는 귀소리(음향)로 통제하지만 요즘 눈으로 범죄행위를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하고 있다

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은 범죄증거물 확보에 주력함으로 사건 조작이 어렵다 간첩이나 테러범 그리고 고위직 부패행위, 국가기밀 취급 부서 동향등은  개인의 신상 파악만 되어도  눈으로 범죄행위의 확인(일명 놔파 분석기)은 쉽게 파악하고 있다

 

3.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 

요원이 한국정부냐 유엔이냐 미국정부냐에 따라서 뇌 통제기구가 다르다

한국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는 대북이나 정치분야에 주로 활동하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은 테러나 국가사회주의(북한 반미 세습제 좌익군정), NL계열(극단적 민족주의나 독립운동가-김일성, 모택동계열) 등을 파악하는데 정부 요원 뇌 통제기구[국가 위협 범죄나 간첩, 테러단체등을 파악 검거할 수 있는 사람들]를 이용하고 있다

 

 

 


 

독일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이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남북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 반공반독재구국전선-


⊙앵커: 검찰이 최근 범죄수사에 뇌파 분석기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보다 훨씬 쉽고 정확하게 거짓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보도에 박일중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해 2월 허 모씨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음주단속에 걸리자 자신이 운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즉 폴리그래프 검사 결과 친구 심 모씨가 운전한 것으로 드러나 허 씨는 결국 범인을 달아나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여기에 최근 검찰이 훨씬 정밀한 뇌파분석기를 도입하면서 거짓말로 수사망을 피해 갈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용의자의 머리에 전극을 붙인 뒤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들을 보여주자 특정한 흉기에서 독특한 뇌파가 나타납니다.
바로 범행에 사용한 흉기입니다.

 

⊙지형기(대검찰청 심리분석관): 용의자가 사용했던 칼이 자극으로 제시됐을 때 보는 바와 같이 이러한 특별한 형태의 파형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사용한 것이 뇌파분석기법입니다.

⊙기자: 굳이 용의자의 진술이 없이도 사건 정황을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각종 증거물들이 이처럼 반복적으로, 그리고 무작위로 제시되기 때문에 용의자들이 자극을 고의로 피할 수도 없습니다.
또 뇌파분석기의 정확도도 최고 98%로 85%에서 95% 정도인 폴리그래프보다 높습니다.

⊙김종률(대검찰청 과학수사과장): 범죄자가 알고 있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범죄 수사의 초동단계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 검찰은 뇌파분석기를 용의자들의 허위진술이 많은 뇌물이나 마약사건에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KBS뉴스 박일중입니다.

 

 

 

범죄수사 자료실(뇌 분해기-일명 놔파 분석기): 귀 소리로 범죄행위 고백 유도.The FBI stores its information on databases like these 30-feet underground.

 


 뇌 세뇌 자료(1)--국정원에서 인공위성방식으로 사용하는 폴리그래프[일명: 거짓말 탐지기] 피해자 정구현 글

대통령께서는 국정원에서 인공위성 방식으로 사용되는 폴리그래프를 국민들께 투명하게 밝혀야 될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이 국민에게 저지르는 사악한 범죄 행위...
[인공위성방식으로 사용되는 폴리 그래프는 인간의 두뇌와 신체를 악랄하게 괴롭힌다]

인간의 두뇌능력작용[분석력. 창의력. 상상력. 영상력. 시력. 청력. 의지력. 기억력. 동작력. 악력. 선력. 욕정 등] 다양한 두뇌 능력작용을 인공위성식 폴리 그래프 사용자는 원격조종하여 표적으로 삼은 인간의 뇌를 기기에 입력하여 악랄한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인간두뇌 능력작용의 조종이 가능한가 의아스러우실 것입니다 예를들어 말씀드린다면 자외선, 적외선, 전기. 전자파, 뇌파등이 이들의 능력작용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며 강하게 또는 약하게 작용하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핸드폰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연결되어 통화가 가능한 것은 전자파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의견 전자장비 육지 전차 도청기-시위때 볼 수 있는 군용전차]

즉 인공위성식 폴리 그래프는 서울, 지방, 변두리 곳곳까지 원격조종이 가능한 최첨단과학기기이며 전자파를 이용 인간의 뇌파와 같은 주파를 공간에 쏘아 기기 사용자가 목표로 하는 인간의 두뇌에 연결, 인간의 뇌를 기기에 입력하여 조종하는 사특한 기기입니다

즉 악력작용하는 뇌 능력 작용에 맞추어 주파를 살짝 올리면 인간은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과 행동까지 이어지게 하는 엄청난 기기입니다
그러나 피해 당하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즉 감쪽같이 연결되즌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1991년에서 2002년 약 11년 동안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하다보니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일반인이 어떻게 인공위성식 폴리그래프의 작용을 알수가 있겠습니까?

이 사특한 기기는 이 정도의 능력작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은 11년 동안 겪은 바 이 기기는 인간의 눈을 실명시킬 수도 있으며 언어장애 또는 청각 장애도 일으킬 수 있으며 심지어 절명도 가능합니다 [뇌를 압박하기도 하여 고통스러워집니다 즉 강하게 압박하면 절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얼굴의 살을 움직여 뭉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인간을 괴물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뼈을 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튀어 나오게도 합니다 내장을 약하게 하여 말라 비틀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도 합니다 즉 몸을 오그라뜨려 꼼짝 못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생각을 바꾸게도 할 수 있으며 기억을 못하게도 합니다[신체의 어떤 곳이라도 압박을 받으며 고통을 당합니다 즉 뇌. 눈. 입.위. 심장. 간. 식도등]

또한 전기, 전자파를 이용 어느 지역 어느 곳에서도 관찰이 용이하며 [대.소변보는 상태 또는 성생활]도청은 자동으로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뇌에서 음성이 강하게 들리게 하여 뇌가 혹사당하며 미치게도 합니다 또한 척추를 휘어지게 하며 기어다니게도 합니다
성기 내용들은 본인이 11년 동안 피해 당하며 조목조목 알게 된 내용입니다

이 사실은 전실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이 기기를 사용하는 범죄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각처에 호소하며 애원했지만 아무도 이 사악한 무리들을 응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국가정보원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인공위성식 폴리그래프는 국정원에 있습니다
이 첨단 과학기기는 미국에서 도입한 것이 분명합니다 본인은 이들의 음성 중 "우리 국정원"이라는 말을 기억합니다[:)의견 섹스 음향으로 유도 뇌파는 인간을 아무 곳에서 섹스를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에이즈 환자로 둔갑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국정원 말도 유도작업에 의한 북한공작원이나 친북단체,기업들에 의하여 남한정부 비판인사로 만들어 월북을 유도할 수 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강력한 조사 지시를 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만 된다고 고소했으나 서울지검에서는 국정원에 들어가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본인은 굴삭기 포크레인 조종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11년전부터 국정원에서 사용하는 인공위성방식의 폴리그래프에 의해 악랄하게 뇌 작용을 받고 흉악한 범죄자가 되어 사회에서 매장되었으나 다행히 이렇게 사회에 나와 국민들께 고발하고 대통령께 그리고 국회에 계신 의원님들께 고발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전 국민에게 폭로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는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정의와 진실을 위해 그리고 국정원의 사악한 범죄행위 응징을 위해 대통량과 국회의원님께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에서 인공위성으로 사용하는 폴리그래프 [일명: 거짓말 탐지기] 피해자 정구현(46세)
H.P 019-384-7075

-:)의견
*뇌파에도 수사자료로 사용하는 거짓말탐지기와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두뇌 개조작업 뇌파 그리고 테러단체로 활용하는 뇌파단체, 개인의 신격화 우상화 종교단체(예: 주체사상과 이슬람교내 근본주의 지도자등), 기업주의 경영방식으로 활용하거나 산업 스파이로 활용하는 뇌파등으로 다양합니다
미국등지에서는 뇌 개조작업으로 사용하는 뇌파가 있는 것으로 아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전기로 된 음향 힘으로 거짓말탐지기모델 뇌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도 선진국이 정보력을 장악하는 수준으로 전기나 전화 힘으로 된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형태는 한 물간 기구입니다
*뇌파로 조종되는 분이 있을 때는 카톨릭 교구장이나 미국 대사관등지에 면담을 하여 그 과정을 이야기 해주면 즉각 바티칸, 공군으로 통하여 제거되어 질 수 있습니다 뇌파도 공군 정찰기 만큼 정교하지 못합니다
*뇌파에 관한 자료가 1990년대 재야 소설책에도 등장하여 유엔기구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연구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인가 아니면 남한 그리고 일본 기타 국가등으로..
*북한 뇌파는 남한사람을 친북세력으로 개조하는 기구이고 남한 뇌파는 친북인사를 남한 자유민주세력으로 개조하는 기구이다 국정원이나 대한민국 정부 비판 뇌파는 대체로 친북단체나 북한 공작원 기구이다
*제3자의 힘 있는 사인(私人)은 국가나 국가기관보다 더 많은 자금,정보력과 뇌파. 거짓말탐지기 ,잠재적 무기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나 국가기구를 좌지우지도 합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통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국가 정보기구나 수사국등이 제 3자의 힘 있는 사인(私人)의 조종으로 하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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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텔레파시로 이용한 한반도 스파이 활동에 관하여 자료 제출
보낸날짜 |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오전 09시 23분 19초 +0900
보낸이 | CIA bear 허관 <8032816@hanmail.net>
받는이 | president@Whitehouse.GOV
소속기관 | KTF 진대리점

 

 

 

 

뇌 세뇌자료(2)--탄원서 국가정보원에서 초능력자를 연좌제에 이용하고 있습니다[염상호씨의 글]
탄원서

저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 232-111사는 염상호입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초능력자를 연좌제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초능력자들은 15년 동안 24시간 저의 가족을 감시하면서 온갖 박해와 핍박을 가하고 연좌제와 초능력자들을 숨기려고 저를 염력으로 조종하여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정신병자로 몰아 다른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말하여도 믿지 못하도록 조작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초능력자들은 조직적으로 광장히 집요하며 조직적인 노하우로(염력으로 목표물을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예를들어 상황을 조작하여 자괴감과 수치심이 들게 하고 사람의 감정을 분노에 차게 하고서는 다시 조롱하고 협박하기 등 사람을 지치고 괴롭히는 방법을 배워서 괴롭힙니다) 박해와 핍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초능력자들은 상념 생각으로 흔히 염력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 정신, 감정, 육체 신체장기(간이나 뇌, 신장등)을 초능력자들 의도대로 조종이 가능하고 텔레파시로 다른 사람의 정신과 생각을 느낌으로 똑 같이 느끼며 텔레파시로 정신 감응과 원거리 투시로 감시하면서 염력으로 어떤 사실이나 기억을 착각하게 조종해 믿게할 수 있으며 믿지 못하게 할수도 있으며 뇌 세포를 활성화 시켜 기억을 뚜렷하게 하거나 그 반대로 뇌 세포를 둔화시켜 기억을 희미하게 못하게 하거나 생각이나 물체의 인식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국가정보원에서 초능력자들을 연좌제에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위는 1999년 여름 옆집 장위동 232-27호 주인여자와 다른 여자가 둘이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제가 예지력자라는 등 아버지가 전직 안기부직원이었다는 등 연극하면서 감시와 박해 그리고 핍박을 가하는 사실을 말하여도 정신병자로 몰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작이었습니다

국정원 초능력자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화나게 조종 후 생각을 조종해 맹목적으로 한 생각만 하게 하여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북파공작원이나 특수업무 종사자 그리고 남파공작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초능력자들은 다른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거나 사람을 죽여도 증거가 남지 않고 목표물을 범죄자로 만들거나 죽입니다
초능력자들은 주로 다른 사람이 무의식에 가까울수록 조종이 용이합니다
잠결, 최면상태, 술에 취했을때 사람의 정신을 불안하게 하거나 멍하게 하여 심경을 딴 것에 쓰게 하여 염력으로 조종하여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종합니다
그리고 초능력자들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염력으로 환경을 목표물에게 비관적으로 조작하여 감정과 생각을 슬프게 조종하여 자살하고 싶게 하여 투신 추락 자살, 음독자살, 단순행위로 자살시키거나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차나 기차등에 뛰어들게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뛰어드는 순간에는 차나 기차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조종하여-쥐나 물건등을 보고 착각으로 뛰어 듬)

특히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의 육체(신체장기)도 완벽하게 조종이 가능합니다
예를들어 혈액순환이 안되게 하거나 상황을 조작하여 염력으로 감정을 화나게 하여 순간적으로 염력으로 뇌 출혈을 일으키게 하여 죽일 수도 있습니다
초능력자들은 다른 사람을 염력으로 육체(신체장기)나 정신을 활성화시키거나 둔화시키고 통증을 가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종이 가능합니다 지금도 초능력자들은 저의 생각을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조종하고 있습니다 초능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실험한 몇가지를 인용하겠습니다

책은 예예원 출판사의 수정응시와 투시, 염사, 염력입니다
약 세 시간이나 기다린 다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져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화가이며 가수며 초능력자이며 의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명실공히 구소련의 초능력계의 정점에 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용서를 비는 뜻에서 내가 행한 실험 비디오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곧장 비디오 상영회가 열렸다 비디오 내용은 두려울 만한 것이었다
토끼의 시체에서 심장과 폐만을 염력으로 움직인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더욱 놀란 것은 원숭이 심장 같은 것을 고무튜브로 만들어진 혈관모델에 이어 주나여사가 심장하부에 손을 댄 것만으로 쿵쿵 움직여 내는 것이다
"각 장기가 각각 의식을 갖고 상념으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은 어떻게 보면 자연적인 진리와 아직도 먼 곳에 떨어져 잇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물질적인 격동기에 있는 소련권 형상을 생생히 관찰함과 동시에 아직도 우리 자신에겐 정신성이 얼마나 모자란다는 것을 반성할 수 있었다(서울 성북구 장위동 232-111 염상호씨의 탄원서 글)


-:)의견
*예지자나 초능력자는 없습니다
과학자나 발명가 그리고 분야 전문가등의 뇌를 탐지하거나 제3자 국가나 힘 있는 사인(私人)등이 뇌파 거짓말탐지기등의 조종으로 과학자나 발명가, 분야 전문가들의 정보력으로 빼앗가는 경우는 있습니다
복제인간도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형태로 이 분야의 한 부분입니다

*남과 북에서는 알카에다처럼 주사파그룹이나 탈북자그룹을 뇌파에 의하여 짜여진 하나의 범죄단체로 만들수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런게 제기되었고 그런 형태조직을 연합군이 파악하여 제거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에서 뇌파에 의하여 창설된 조직이 대북 납치조직으로 파악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이 대체로 남한정부를 비판하거나 비판세력으로 만들어왔고 김일성 김정일세력을 우상화하거나 동맹세력으로 옹호하는 것이 남한이나 일본지역 뇌파세력들의 특징이었습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호소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재야세력입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가 이들을 친북세력이나 반정부분자로 개조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북한정부 앞잡이 역할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조사에서 볼때 대북 피랍으로 활용할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본인들의 주변에서 조종할 수 있는 친북세력을 알고 있으면 국정원에 가르쳐 주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북한정부가 아닌 한 대한민국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박해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이나 사주에 의해서도 가능합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국민의 뇌를 조종할때 한반도에서 스파이로 규정하여 국가정보원,한미연합사나 미국 대사관, 국방부등에도 연락하면 그 과정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스파이: 전문 지식이나 발명품. 과학, 아디어 그리고 남북고급자료,북한정부 연구자료등을 훔쳐가는 경우)
예:영화--돼지인공배양 유전자 훔치기 위하여 온 북한 공작원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남북관계나 각종 사업을 빙자하여 정치자금 모금 행위 또는 기업 인권개입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간복제 연구가 텔레파시나 뇌파 거짓말탐지기 그리고 손으로 전류가 통하는 손가락 동지 구분, 뇌 개조(공산주의자를 자본주의자로 전환하는 뇌 개조사업), 눈으로 국영방송을 움직이는 기계두뇌 인간(간첩조직을 체포할 당시),간첩판별 판단, 한 인간의 뇌로 한 국가 전체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두뇌인간개발,보디가드 경호원으로 활동과 전(全) 지역 두뇌로 시스템 판단, 한국 국회 영상으로 극비 자료 제안, 군사력 배치와 작전판단보고 그리고 국제회의 영상 참모 참여,백악관에서 영상으로 부시대통령 의견이나 자료 보고 임명, 두뇌 CIA요원 명예직 임명장 수여등을 할 수도 있는 한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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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텔레파시로 이용한 한반도 스파이 활동에 관하여 자료 제출
보낸날짜 |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오전 09시 23분 19초 +0900
보낸이 | CIA bear 허관 <80328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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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자료 “인공위성방식으로 사용되는 폴리그래프(세뇌기 거짓말탐지기)”의혹 규명 필요성 제기

차기 이명박정부는 각종 뇌개조 거짓말탐지기 이용 조직을 파악하여 국내외 테러나 제3자의 힘 있는 자들의 정보력 장악을 차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각종 수집 조사하여 온 뇌 세뇌자료를 첨부합니다

*수집.조사자료 첨부

1.뇌 세뇌자료(1)-국정원에서 인공위성방식으로 사용하는 폴리그래프[일명: 거짓말탐지기] 피해자 정구현씨 글

http://blog.daum.net/007nis/10953837

-:)의견
*뇌파에도 수사자료로 사용하는 거짓말탐지기와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두뇌 개조작업 뇌파 그리고 테러단체로 활용하는 뇌파단체, 개인의 신격화 우상화 종교단체(예: 주체사상과 이슬람교내 근본주의 지도자등), 기업주의 경영방식으로 활용하거나 산업 스파이로 활용하는 뇌파등으로 다양합니다
미국등지에서는 뇌 개조작업으로 사용하는 뇌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전기로 된 음향 힘으로 거짓말탐지기모델 뇌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도 선진국이 정보력을 장악하는 수준으로 전기나 전화 힘으로 된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형태는 한 물간 기구입니다
*뇌파로 조종되는 분이 있을 때는 카톨릭 교구장이나 미국 대사관등지에 면담을 하여 그 과정을 이야기 해주면 즉각 바티칸, 공군으로 통하여 제거되어 질 수 있습니다 뇌파도 공군 정찰기 만큼 정교하지 못합니다
*뇌파에 관한 자료가 1990년대 재야 소설책에도 등장하여 유엔기구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연구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인가 아니면 남한 그리고 일본 기타 국가등으로.. (1980년와 1990년대 학생운동권 분신자살이 뇌파에 의한 유도라는 의혹도 제기 되어 왔습니다. 사상교육-->선동--->음향으로 자살 충동질 유도)
*북한 뇌파는 남한사람을 친북세력으로 개조하는 기구이고 남한 뇌파는 친북인사를 남한 자유민주세력으로 개조하는 기구이다 국정원이나 대한민국 정부 비판 뇌파는 대체로 친북단체나 북한 공작원 기구입니다
*제3자의 힘 있는 사인(私人)은 국가나 국가기관보다 더 많은 자금,정보력과 뇌파. 거짓말탐지기 ,잠재적 무기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나 국가기구를 좌지우지도 합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통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국가 정보기구나 수사국등이 제 3자의 힘 있는 사인(私人)의 조종으로 하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2.뇌 세뇌자료(2)--탄원서 국가정보원에서 초능력자를 연좌제에 이용하고 있습니다[염상호씨의 글]

http://blog.daum.net/007nis/10953849

-:)의견
*예지자나 초능력자는 없습니다
과학자나 발명가 그리고 분야 전문가등의 뇌를 탐지하거나 제3자 국가나 힘 있는 사인(私人)등이 뇌파 거짓말탐지기등의 조종으로 과학자나 발명가, 분야 전문가들의 정보력으로 빼앗가는 경우는 있습니다
복제인간도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형태로 이 분야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복제인간 연구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DNA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조종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과 북에서는 알카에다처럼 주사파그룹이나 탈북자그룹을 뇌파에 의하여 짜여진 하나의 범죄단체로 만들수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런게 제기되었고 그런 형태조직을 연합군이 파악하여 제거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에서 뇌파에 의하여 창설된 조직이 대북 납치조직으로 파악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이 대체로 남한정부를 비판하거나 비판세력으로 만들어왔고 김일성 김정일세력을 우상화하거나 동맹세력으로 옹호하는 것이 남한이나 일본지역 뇌파세력들의 특징이었습니다 (사상교육--->뇌 개조---> 월북이나 간첩활동 유도--->테러활동, 잠수함등으로 대담한 월북연습 )

*뇌파나 거짓말탐지기 호소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재야세력입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가 이들을 친북세력이나 반정부 분자로 개조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북한정부 앞잡이 역할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조사에서 볼때 대북 피랍으로 활용할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본인들의 주변에서 조종할 수 있는 친북세력을 알고 있으면 국정원에 가르쳐 주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북한정부가 아닌 한 대한민국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박해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이나 사주에 의해서도 가능합니다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국민의 뇌를 조종할때 한반도에서 스파이로 규정하여 국가정보원,한미연합사나 미국 대사관, 국방부등에도 연락하면 그 과정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스파이: 전문 지식이나 발명품. 과학, 아디어 그리고 남북고급자료,북한정부 연구자료등을 훔쳐가는 경우)
예:영화--돼지인공배양 유전자 훔치기 위하여 온 북한 공작원

*뇌파나 거짓말탐지기로 남북관계나 각종 사업을 빙자하여 정치자금 모금 행위 또는 기업 이권 개입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간복제 연구가 텔레파시나 뇌파 거짓말탐지기 그리고 손으로 전류가 통하는 손가락 동지 구분, 뇌 개조(공산주의자를 자본주의자로 전환하는 뇌 개조사업), 눈으로 국영방송을 움직이는 기계두뇌 인간(간첩조직을 체포할 당시),간첩판별 판단, 한 인간의 뇌로 한 국가 전체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두뇌인간개발,보디가드 경호원으로 활동과 전(全) 지역 두뇌로 시스템 판단, 한국 국회 영상으로 극비 자료 제안, 군사력 배치와 작전판단보고 그리고 국제회의 영상 참모 참여,백악관에서 영상으로 부시대통령 의견이나 자료 보고 임명, 두뇌 CIA요원 명예직 임명장 수여등을 할 수도 있는 한 분야입니

 

3.여호와의 증인 유귀선씨의 글 “사생활 감정, 온갖 반인륜적인 폭력행위 사회와 고립시키는 행위장비 고발”(시험 컨닝장비로 전자칩 도입)

http://blog.daum.net/007nis/11280825

여호와 증인이 한국사회에서 벙역거부와 집총거부로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으며 북한세력이나 친북 주사파세력이 침투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군대 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조국이 있어야  개인이나 나의 친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상들 묘지에 성묘를 하고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 젊은 남자들도 군 입대가 종교를 위한 것으로 생각해봅시다 모사드 요원은 군인입니다 조국은 총을 들고 지키는 것입니다 "

:)한국정부 당 내부 선거공작부로 뇌파와 염파로 이용하여 전자칩으로 종교단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각 지역구 정치인들이 경찰이나 검찰, 국정원(안기부), 사립 대학교등에서 독립돼야 하며 이런 기구를 사립대학교나 대기업들이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정당 중 어느 정당이 90년이후 시헙 컨닝용 전자칩 도청기를 도입해왔는지 잘 모르지만 선거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자칩으로 도청이나 시험 컨닝용은 스파이 행위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하여 예외적으로 몸이나 머리등의 수술로 특수임무 요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수 앞바다 북한 잠수함 격침과 민혁당 검거하는데 사용한 전자두뇌장치....

 

4.강동구 천호3동, 나는 유아들을 가르키는 선생이다. "냉장고 모터나 형광등 안전기 소리 거짓말탐지기"

http://blog.daum.net/007nis/11284887 

*당신의 뇌가 위치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귓소리가 다르게 들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국가요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요원은 본인 두뇌로 판단하여 행동이나 작전을 하기 때문에 본인의 뇌가 감청과 함께 분석 판단국입니다

아니면 당신 주변에서 형광등소리나 모타소리로 유혹합니까 그것은 그 지역에 감청기나 거짓말탐지기를 설치하였기 때문입니다 몸을 씻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당신은 국가요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고시원 그리고 대학교, 기업등지에 감청기나 거짓말탐지기 전자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5.마음 도청 피해자 김원국씨 "전파 도청 대화장치"

http://blog.daum.net/007nis/11285032 

뇌의 음성에 의한 통제는 국가최고기관이나 대남공작조 활동으로 사용하는 장치입니다

간첩이 검거되었을때 자살을 유도하는 장치가 바로 뇌의 음성에 의한 통제입니다

한국정부 청와대에서 두뇌그룹으로 이런 장치를 사용하지는지 우주국에 알아보거나 감청장치에 알아보아야 하지만 본인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방송국과 최고지도자 안보망--장관이나 주요 기관장 문책)

한국정부는 자유민주정부이고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을 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세력이라면 국가가 간접적으로 통제합니다

특히 김대중 김영삼전대통령을 친북좌익이나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거나 전두환 노태우전대통령을 국가사회주의 독재자로 규정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가공무원(요원)이 될 수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과 다른 체제입니다

북한은 세습제 좌익군정 국가사회주의 정부입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평양방문이나 박근혜전대표의 평양방문은 남북한 자유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자유민주정부 지도자들의 노력입니다 이분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본주의자들입니다

 

-선진국 최고지도자들은 대부분 안전장치를 착용합니다

그러니 내가 독일대통령이라도 영어를 빠르게 이해합니다

6.뇌파와 염파를 이용한 텔레파시 통신 그리고 알파(I) 의견

http://blog.daum.net/007nis/8147087

7.테러나 간첩 수사 할때...........

http://blog.daum.net/007nis/13804222

The FBI wants to use eye scans, combined with other data, to help identify suspects. (CNN 자료)

http://edition.cnn.com/2008/TECH/02/04/fbi.biometrics/index.html

 FBI wants palm prints, eye scans, tattoo mapping

테러범죄나 간첩등을 수사할 때 지문과 같이 에이컨이나 형광등등의 안전피으로 개인의 뇌기억이나 눈시각 효과로 범죄를 체포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보기관은 눈(目)이고 북한  정보기관은 귀(耳)이다

과거 김영삼정부 대북개방이전 남한 정보기관도 귀이었다 그러니 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했고 북한 상류층 생활모습도 신고하는 무고한 모함이 많았다 아직도 경찰이나 군출신 중 연령 50대 이후 세대  의식수준이 눈이 아닌 귀이기 때문에 유엔이나 미국정부 자료에 의하면 인권침해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의무교육 중학교 졸업자 중 30%이내 개인능력과 유상교육 대학을 진학하고 있다

북한 상류층(안정세력) 30%이내이며 평민층 70%이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007년도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은 780만명으로 북한 전체 주민 중 33%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중학교 졸업 후 17세때 군 입대하여 남자 10년, 여자 7년간 군 복무를 해오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1950년 7월 1일 북한 전지역에 동원령을 선포했다  동원 대상은 만 18세부터 36세까지의 남녀가 해당 되었다 이때부터 각 지역군사위원회 주도로 북한 인민군(지역 군부)이 권력을 장악해오고 있다

남한 정보기관 눈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모습(上)과 북한 정보기관 귀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 모습(下)

북한정부 대남정보기관은 귀(말, 노동자 등 사회주의 의식대상.Guide Ear)이고 남한정부 대북정보기관은 눈(해독, 지적능력-자유화 개방화 사회.Bird's Eye)이다

 

소련정보기관의 특징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과 다른 점
1.노동자. 농민. 진보적지식인. 학생등 공산주의 운동가 위주로 창설한 체카(Cheka)
체카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 사회주의자들 중에 소련공산당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로 구성된 소련공산당 전위대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공장 파업이나 사보타주의 그리고 선전전, 무장봉기등을 주도했으며 소비에트 권력등장 이후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농민파업이나 노동자 투쟁 을 억압하고 제거하는데 앞장서서며 그리고 지주나 외세들과 투쟁을 했다
2.소련정보기관은 사회주의 진영의 최후 보루이다
소련정보기관은 세계 각국 공산주의자나 민족주의 사회주의자를 지원했으며 세계각국 정보나 자료등을 수집하여 판단한 후 그 토대로 사회주의 국가 수립에 이용하였다
3.소련정보기관 요원은 대부분 공산주의자(레닌계열)와 민족주의 사회주의자(스탈린 계열,일국사회주의=자국사회주의) 그룹이다
그리고 소련정보기관을 도와주는 단체는 세계 각국 공산당, 좌익 노동단체.농민단체이나 민족주의 사회주의자 그룹이었다
4.소련공산당이 장기집권을 함으로 소련정보기관도 부패와 비리등으로 전철되었고 소련공산당 권력유지 도구화 되었다
5.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공존(존중) 사회인 서구나 미국등 정보기관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자유, 평화등을 위하여 헌신할때 소련정보기관은 공산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수립에 주력했고 냉전체제 보존에 노력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유엔이나 국가를 위하여 헌신할때 소련정보기관은 공산당 서기장이나 최고지도자 개인을 위하여 충성을 함으로 정보기관이 통수권자 사조직화 되었다
6.냉전시대에는 북한정보기관도 소련정보기관 통제를 받았다
반미단체 통일혁명당이나 한국민족민주전선도 소련공산당 전초병이었다 1991년도 소련군부쿠데타때에도 반미인민전쟁론자 북한정보기관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원들은 소련군부 쿠데타를 지지했다
7. 공산주의 국가 정보기관은 귀(말,명령이나 복종=노동자)을 존중하고 통제하는 정보기구이며 미국등 선진국 자유사회 정보기관은 눈(해독, 지식=전문능력그룹)을 존중하고 통제하는 정보기구이다

 

                                   북한 정보기관은 소련  KGB모델[Guide Ear-지도자의 교시(노동자, 농민, 빈민층등 의식대상)]
2000년대 중도우파 푸틴대통령과 변화하는 러시아 정보기관 FSB
국가정보기관은 개인의 사조직이나 국제테러단체 그리고 극단적 이념을 표방하는 단체가 아닌다 국가정보기관은 유엔헌장 준수와 국가안보, 세계시민들의 행복추구권과 자유. 생존권등을 우선하는 역사적 각종 자료들 수집. 판단. 분석하여 미래 사회에 도움을 주는 지적행위(知積行爲)기관이다
intelligence is love(지적행위는 사랑이다)
러시아 푸틴정부도 과거 소련공산당정부 때 자유.인권 탄압 주구나 세계공산주의 혁명선봉대 지위와 역할을 한 KGB가 아닌 유엔헌장준수와 사랑. 개인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존중하는 지적행위 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다

*남한 정보기관은 눈(目, Bird's Eye=자유)

"독일정부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공화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경제학 학습:미시와 거시경제학, 국제수지]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민주연합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정부 수립(통일정부)"[정치학 학습: 민주주의 공부]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각종 자료나 서적을 탐독하고 각종 자료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서독정부를 옹호하고 동독정부를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지적능력

-역대 중국정부 지도자 자료를 보고 실용주의적 민주주의 입장에서 잘 파악하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생애 자료를 보고 나쁜 점과 좋은 점을 파악해라

-북한 상류층 말보다 평민층 말을 잘 파악하여 북한 사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라 북한 상류층 말은 거짓말이 대부분이다

 

*북한  정보기관은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

"김일성 교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노선 말 따라 움직이면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구국전선

1단계 반미전선

민족해방(NL, 반미투쟁)=좌우익연합전선 구축(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반미전선은 친미, 친서방세력 제거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좌파연합전선 구축으로 우파세력 제거

3단계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 선군정치노선으로 반김일성 세력 제거"

-김일성 책자를 배우고 학습해라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각종 자료나 책자를 버려라 그들은 자본주의 세력(친미세력)이다

-눈(目, Bird's Eye=자유)이 아닌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가 되어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학생들이 찍은 사진으로 비교 남북한 모습

                     

 

 

 

 

 

 

 

 

 

 

 

 

 

 

 

 

 

 

 

 

 

 

 

 

 

 

 

 

 

 개인의 자유, 생존권보다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자주노선 반미국가 북한과 개인의 자유, 생존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 남한

 

 

 

남북한 수도 공공장소 비교(사진으로 본 서울과 평양 모습)

                                      서울 지하철 승객들 모습(上)과 평양 지하철 승객들 모습(下)  

 

                                                       서울 길거리(上)와 평양 길거리(下)

 

 

                                                 서울 시내버스 정류장(上)과 평양 시내버스 정류장(下)

 

 

                           남한 대림대학(大林大学) 건축학과 수업 모습(上)과 북한 평양대학(平壤大学) 언어학과 수업 모습(下)

 

 

 

남한 서울 남녀 두 젊은 사람들이 지붕(옥상)에서 흡연하는 모습(上)과 북한 평양 교차로에서 이야기하는 두 여자, 흡연하는 남자모습(下)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다리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한 가족이 한강을 바라보는 모습(上)과 북한 평양 대동강 옆 레스토랑에서 한 가족 모습(下)

 

 

       서울 길거리에서 인기 상품 모자 판매 행상인 모습(上)과 평양 길거리에서 교통 여자경찰(현역군인) 모습(下)

 

 

 서울 길거리에서 신문등 폐기물 수집하는 손수레(上)와 평양 다리목 길거리에서 인력이나 화물 운반으로 사용하고 있는 손수레 모습(下)

 

 

                  서울 근교(田野間) 고속도로 모습(上)과 평양 근교(밭과 들 사이,田野間) 고속도로(公路) 모습(下)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모습(上)과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 모습(下)

 

 

       서울 세종로 거리에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주변 이순신장군 동상 모습(上)과 평양에 있는 김일성 묘소(下)

 외신 4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독일 사진 작가 디터 레이스 토너(Dieter Leistner)씨는 2006년과 2012 남한 서울과 북한 평양  공공장소 비교 사진 촬영하고 남북한 다양한 사진 그의 "Korea-Korea"에 수록했다

북한은 지금도 외부인이 촬영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레이스 토너씨는 평양 건물 촬영 허가를 받아 북한 공공장소 촬영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건축 사진작가의 독특한 관점에서 평양과 서울을 비교하는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엄격히 비교 사진은 아니지만 남북한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북한정부의 김일성 유일사상(김일성 이외 학습인물이 없음)으로 북한에는 김일성이나 직계가족이외 동상이나 기념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 전체 주민 33%기아위기와 식량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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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민층들의 식량난이 심각합니다

굶주림과 배고픔 그리고 기아등으로 신음하는 북한 평민층들의 모습입니다

 북한 평민층에게는 핵무기도 아닌 굶주림과 배고픔 해결할 수 있는 빵과 경제활동 생활 터전입니다

북한 식량난(영양실조) 주민은 90년대 초 420만명, 90년대 중반 700만명, 북한 경제 만성적 경제위기로 10년 후 2007년도 전체 국민 33% 780만명이 영양실조(영양부족) 상태입니다

북한정부는 과거 700 그램(gram) 식량을 배급하다가 요즘에는 200 그램(gram) 식량을 배급하고 있습니다 북한 군인들도 식량난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입대조건 신체 신장이 작아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 주민 금년 식량부족량은 414만톤입니다

북한 평민층은 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경험을 하고 있지만 북한 상류층은 사치 호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평민층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정책과 핵무기 포기 조건으로 북미수교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북한 상류층 환락가(歡樂街)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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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환락가(歡樂街) 모습들 사진입니다

북한 주민은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남한 종북세력이나 친북세력은 북한 상류층 생활 모습을 보고 의식화 돼 있으며 남한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은 북한 평민층 생활 모습을 보고 의식화 돼 있습니다

그러니 남한 종북세력이나 친북세력은 세습제 좌익군정을 인정하는 입장이며 남한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은 북한 평민층 입장을 지지함으로 세습제 좌익군정을 타도하고 개혁개방화 정책과 민주화 정부수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평양 양각도호텔 외국인 상대로 안마, 마사지영업

 

 

 

 

 

 

                                                                 

 

 

                              평양 양각도호텔 외국인 상대로 안마, 마사지 영업하는 접대부들 모습

북한은 양각도(羊角島) 호텔을  중국인 특구로 개척하여 중국인등 외국인 상대로 각종 유흥가 접대를 하고 있으며 음란물업 존재를 허락하고, 중국인등 외국인 상대로 성매매도 인정하고 있다 평양시내에서 중국인이 모여 있는 곳이 양각도 호텔입니다 북한과 평양시내에서  유일한 유흥가이다[북한 유흥가 양각도(羊角島) 호텔 모습 사진]

양각도(羊角島) 국제호텔은 북한에서 가장 큰 1개의 호텔이자 호화스러운 호텔에 속한다. 평양직할시 중구역 양각도에 위치해 있다. 1980년대프랑스 회사와 공동으로 지었고, 1995년에 개관되었다. 평양시의 중심지에서 남동쪽으로 4 km에 위치해 있다 양각도 호텔은 47층 1,001객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중국 CCTV, 영국 BBC, 일본 NHK등 각국 주요 언론을 인터넷이나 TV로 시청할 수 있다

북한 평양 양각도 호텔은 외국인과 중국인 접대 특별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평양 시내 "홍등가(紅燈街, 창녀촌)"허용하는 포르노 산업이 존재한다

 

 

 

 

 

 

 

 2014 년 북한은 "패션의 전환기 '를 맞았다

 

 

 

 

 

 

 

 

 

 

 

 

 

 

 

 

 

 

 

 

 

 

 

 

 

 

 

2014 년 북한은 "패션의 전환기 '를 맞았다. 또한 세계(유엔,서방)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향한 외부의 농담에도 견뎌낸다. 신비 닫힌 이 나라는 서서히 베일을 벗고 다른 일면을 보였다.

 

인체실험과 머리소리함(뇌의 사진 영상과 귀의 사람  목소리)

머리소리함이 한국사회에서 인체실험(생체실험)에 의한 적국의 스파이 활동 공작기구로 활용해왔습니다  머리소리함은 뇌 분해기구로 한 사람의 뇌를 분해하여 태어날때부터 현 생존당시까지 모든 기억을 회상하여 자료화하여 국가고급정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머리소리함 목소리는 각종 전기음향으로 추진하여 남한 반미단체 인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친북단체 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에 가담하여 자살하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부때 머리소리함 목소리는 각 대학교 부설 연구단체(통일이나 지역문제연구소)로 활동하면서 정보기관 하위단체었다고 합니다

 경남지역 어느 머리소리함 목소리는 극우에서 극좌로 활동하는 웃음거리가 돼 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 남북정상회담에 참가하여 노태우 김영삼정부에서는 극우세력이었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머리소리함 요원들에게 북한사회처럼 이상하게 김정일 장군님, 김정일 장군님 하는 목소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김대중 노무현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에 참가한 단체나 인사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김정일 옹호세력이었다)

 

북한은 전체 수출이  47%가 남한이며 남한 교역 3위가 북한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때 돈 벌이도 인정하고 음지행위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유엔이나 선진국 입장도 존중돼야 합니다

 

국가정보기관이 권력에 독립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입니다

대한민국의 적은 극좌와 극우입니다 극좌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세력이며 극우는 병정분리주의 국가사회주의 세력 군사정부입니다

 

*미국정부 머리소리함은 사진영상과 목소리로 분리 돼 있습니다

목소리는 범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며 민간인이나 연구하는 대학생등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세뇌행위이며 자살을 유도하는 행위입니다

뇌 사진이나 영상으로 뇌 분해하여 기억자료화도 가능합니다

 

*인체 실험(人體實驗) 또는 생체 실험(生體實驗)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말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나치 독일이 생체 실험을 가한 바 있다.

 

*Eye[Reading]

머리소리함에서 해독분야입니다

아무 소리없이 한 요원의 뇌를 그대로 분해하여 각종 자료로 활용합니다

요원의 지적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초능력자 지적능력단 요원으로 교육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Ear[Language]

머리소리함에서 안내원[언어분야]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뇌 소리를 반복하여 각종 자료를 판단하고 머리소리함 요원이 활동하는 경우입니다

한 요원 뇌 판단 지적능력단이 무능력하거나 지식이 부족할때는 한 요원이 저능아(정신병자나 무능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내원은 대부분 초능력자이며 세계 각국 지적능력단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 그룹입니다

 

 

동아시아 평화유지군 차원으로 일본과 한국 등에 미군이 주둔해오고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에도 미국 주도로 대서양 유럽군사기구 나토모델 다국적 군사기구 등장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중국 동북3성(만주)와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영향력에 있다

김일성은 만주공산당 참여한 소련군 극동연방관구 부대출신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연단출신)으로 소련과 중국 공산당 인물이다

러시아는 소련공산당 정부를 붕괴시키고 등장한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정부(자유민주정부)이고 중국 등소평정부는 모택동주의 1인 장기집권을 청산하고 등장한 5년 중임제 주석제 실용주의 정부이다  중국은 아직도 모택동주의 무장단체 좌익군정 잔재 군정분리주의로 국가주석은 국가원수이며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다

북한은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으로 세습제 좌익군정(국방위원회와 인민군 총참모부)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 이외 모든 사상을 부정한다

 

 

 

 

Northeast China [traditional Chinese: 中國東北=滿州(만주)] Ruler

Gojoseon[B.C 2333-B.C 108, Korea People:고조선]->Han[B.C 108-A.D 313, Han China People:漢(한)-한나라의 청천강 이북지역 점령과 한사군 설치 그리고 청천강 이남 고조선 유민으로 진국등장]->Goguryea[A.D 313-668, Korea People:고구려]->Tang[A.D 668-698, Han China People:唐(당)나라]->Balhae[A.D 698-926, Korea People:조선족과 여진족 연합정부]->Liao[A.D916-1125, Khitan China People:遼(요)나라-거란족:(다우르족:達斡爾族(달알이족))]->Jin[A.D 1115-1234,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金(금)나라-여진족 또는 만주족]->Mongol[A.D1234-1368, Mongol People:蒙古(몽고)나라-몽고족]->Ming[A.D 1368-1644, Han China People:明(명)나라]->Qing[A.D 1616-1912,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淸(청)나라-만주족]->Republic of China[A.D 1912-1932, Han China People:중화민국-중국 국민당]->Manchukuo[A.D 1932-1945,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滿州國(만주국)-만주족=여진족]->소련 극동군 만주국 점령[1945년 8월 18일,8월 폭풍작전]->중국연합군 반환[1945년 11월, 소련극동군과 인민해방군이 점령 이후 소련군이 중국 연합군 동북3성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임표에게 넘겨 줌]->People's Republic of China[1949년 10월 1일~ Han China People: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임표는 동북항일연군이 개편된 동북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맡아 1948년 11월 만주지역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국민당군을 격파하였다. 임표의 승리를 기점으로 전세는 공산당쪽으로 기울었고, 임표는 제4야전군으로 개편된 자신의 부대(총병력 백만)를 이끌고 계속 남하하여 1949년 2월에는 베이징을 함락시켰고, 창 강을 도하하여

1950년까지 중국의 최남단인 광시 성까지 도달하였다.

-동북3성(東北三省)은 중국의 6대 중국영토지역의 하나로서 동북부 지역을 말하며 과거에는 만주(滿洲)로 불렸던 지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랴오닝 성(遼寧省, 요녕성), 지린 성(길림省(성), 길림성),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흑룡강성)의 3개 성(省)이 포함된다. 이 지역 최대의 도시는 선양(瀋陽)이며, 그 외에 하얼빈(哈爾濱), 창춘(長春), 다롄(大連), 치치하얼(齊齊哈爾), 지린(吉林) 등의 도시가 있다.

동북 3성(만주지역)은 200만 명 이상의 조선족(한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한민족(조선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북 3성(만주지역) 역사적 지배세력은 조선족(한민족)과 만주족(여진족), 거란족, 몽골족 그리고 한족(漢族, 한나라 후손)이다

-동북 3성(만주지역)의 인구는 현재 약 1억 명으로, 이는 중국 전체 인구의 8%에 해당한다.

동북 3성(만주지역) 지방의 민족 구성은 한족(漢族)이 92.4%를 차지하는데, 그 대부분은 청조(淸朝) 300년 간, 특히 19세기 말 이후에 이주하여 왔다. 19세기 말의 동북 3성 인구는 300만 미만이었으나, 그 후 1년에 50∼100만의 인구가 주로 산둥성[山東省] ·허베이성으로부터 유입하였다. 소수민족은 787만인데, 그 중 210만이 만주족(滿洲族)으로 주로 랴오닝성(요녕성)에 살고, 113만이 한족(韓族)으로 지린성(길림성) 동부 국경지대에 옌볜[延邊] 한족(조선족)자치주를 형성하고 있다. 또 몽골족 32만은 네이멍구 지역에 살고, 후이족[回族] 23만은 대도시에 분산거주하며, 그 밖에 퉁구스계(系)의 다구르족 ·오로촌족 ·시보족 ·오웽크족 및 러시아인 등이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약 100만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으나, 종전 후 거의 전부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는 9개 자치주로 구성 돼 있다

1.아무르 주 2. 유대인 자치주 3.캄차카 지방 4.하바롭스크 지방 5.마가단 주 5a.축치 자치구 6.사하 공화국 7.사할린 주 8.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는 9개 자치주 중 하바롭스크 지방,  사할린 주(사할린 섬),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등지가 한민족 고구려나 발해 영토였고 아직도 한국인(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지역  한중일 구역(한자문화권, 한자어를 사용하는 나라 중국, 한국, 일본등 삼국)"

 

 

 

                                                                                         동아시아 지도

중국은 동북아시아지역과 동남아시아지역,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분포 돼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 다수민족 한족은 한반도, 일본 남부지역 민족과 문화적으로 공유해왔다. 만주, 극동지역에서는 조선족(한국), 만주족, 거란족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본 북부지역에서도 문화적으로 공유해왔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고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중국은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 형태로 국가원수(국가대표-외교권과 중앙정부 수반)는  국가주석이고 군 통수권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이다. 작은 내각수장은 총리이다

국가주석의 임기는 임기제한 5년 중임제이며 총리 임기는 의회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총리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다

중국이 다당제와 자유선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군제도 군사위원회(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이 군통수권자가 돼야 한다"

*인민(人民)--개개인의 국민--기본권 향유자로서의 국민--권리장전 사람을 지칭할때는 인민으로 사용해야 정확하다(루소 사상:회의제 정부론)
*국민(國民)--주권자로써의 국민--이념적 통일체로써 국민--대한민국 사람을 지칭할때는 국민로서 사용해야 한다(로크 사상: 국민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사회민주주의) 공존(존중) 민주공화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

 

"The Chinese government can advance as position and role to national military establishment and U.N. Forces which people's liberation army is not political party army though become power change atServiceman integration attention(Gunjeongtonghapju's)  Civilian government( people's government )[President and Cabinet]  inMilitary administration separation(Gunjeongbunriju's) leftist military administration[the Armed Service Committee]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중국정부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정[군사위원회]에서 군정통합주의 문민정부(인민정부, 민간정부)[주석과 내각]로 권력변경이 돼야 인민해방군이 당군이 아닌 국군과 유엔군으로 지위와 역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만주국 지도(지금 중국 동북 3성)

 

만주국은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이념으로 미국을 모델로 건설된 아시아의 다민족 공생의 실험국가였다. 공화제 국가인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황제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오족협화란 만주족과 몽고족·한족·일본인·조선인의 다섯 민족이 협력해서 평화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왕도낙토란 서양의 패도에 반대되는 아시아의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왕도라고 해서 만주국 황제를 중심으로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2년 1월에 장쉐량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진저우를 점령한 후 만주국 구상을 계획했다. 국제연맹에서는 중화민국에 리튼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리튼 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창춘인 신징을, 연호는 대동이라 했으며, 황제는 이전 청나라의 황제였던 푸이로 옹립했다. 1932년 9월에 일만의정서를 조인해 일본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등 8개국이 정식으로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4년 9월 제정 수립으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에는 군대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 등에서 소련군에게 패하는 등 무능력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지역을 공격(8월 폭풍작전)함으로써 8월 18일 망하였고, 만주 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같은 해 11월 해당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다

임표는 동북항일연군이 개편된 동북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맡아 소련 붉은군대와 함께 만주국을 점령하고 동북 3성 통치권을 인겨받은 후 1948년 11월 만주지역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국민당군을 격파하였다. 임표의 승리를 기점으로 전세는 공산당쪽으로 기울었고, 임표는 제4야전군으로 개편된 자신의 부대(총병력 백만)를 이끌고 계속 남하하여 1949년 2월에는 베이징을 함락시켰고, 창 강을 도하하여 1950년까지 중국의 최남단인 광시 성까지 도달하였다

 

-1차 세계대전(레닌, 전쟁 중립선언과 공산주의 세력 전쟁 불개입선언)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은 독일-소련 불가침조약과 동서유럽(동서폴란드) 군사적 점령

[국가사회주의와 군국주의 이론: 독일 노동자의 당 히틀러의 나찌즘, 소련 공산당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이론]

-1940년 9월, 독일, 이탈리아, 일본간에 삼국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 소련침공

-1941년 7월 소련과 영국, 반독일전선 구축 그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반독일전쟁 참여(중국인등 아시아 출신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대독전쟁 참여)

-일본의 소련과 외몽골 침공

1938년 7월 29일, 일본의 소련 침공으로 하산 호 전투가 발생하였다. 전투는 거의 소련군의 승리였으나, 일본군은 무승부로 판단하고 1939년 5월 11일에는 강제로 할힌골 전투를 일으키며 몽골 영내로 진군했다. 초기에는 몽골로의 침공이 성공했으나, 붉은 군대에 의해 관동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충돌들은 소련이 중국에 대한 간섭을 막기 위해 소련 정부를 회유하고 대신 남쪽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파벌들이 태평양과 미국 방면으로의 진출을 설득하게 되었다

-1941년 12월 7일(아시아 시간으로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과 영국의 식민지를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4월 12일,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해리 S. 트루먼가 대통령직은 승계받았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4월 28일에 이탈리아 파르타잔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틀 후, 히틀러는 자살하고, 대제독 칼 되니츠가 총리를 승계받았다.

독일군은 이탈리아에서 4월 29일에 항복했다. 독일의 항복문서5월 7일 랭스에서 서명되었고, 5월 8일(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에 베를린에 비준되었다 독일 중앙집단군은 5월 11일 프라하 공세까지 저항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군은 1945년 4월 말까지 필리핀에서 필리핀 전투레이테 만 해전에서 승리한다. 1945년 1월 루존 상륙과 3월에는 마닐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루존에서 계속되었으며, 민다나오 섬을 비롯한 필리핀의 다른 섬들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저항했다.

1945년 5월, 호주군은 보르네오 전투를 시작하며 섬을 점령했다. 영국, 미국, 중국은 북부 버마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5월 23일에는 영국군이 양곤을 점령했다 중국은 1945년 4월 6일부터 6월 7일까지 서후난 전투로 반격을 시작했다. 미군은 일본 본토로의 진격을 시작하여, 3월에는 이오 섬을 점령하고, 6월 말에는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미군의 폭격기는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하고, 미군 잠수함은 봉쇄 조치를 시작했다.

7월 11일에는, 연합군의 지도자가 포츠담 회담을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이전 회담의 협정을 확인하고, 특히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대안은 신속하고 완전한 파괴"라고 발표했다. 이 회담 중에 영국은 선거를 시작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포츠담 협정을 무시하며,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원자 폭탄을 투하한다. 두 폭탄이 터진 사이, 소련군은 얄타 회담의 조건에 따라 8월 폭풍 작전으로 만주로 진격하며 관동군을 항복시킨다. 그리고, 소련군은 만주와 청진 등 한반도 북부를 점령한다. 또한, 소련군은 사할린 섬쿠릴 열도를 점령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며, 일본의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미군 전함 USS 미주리 (BB-63)에 서명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은 끝났다.

 

한국전쟁 남침 지휘부 "군사위원회"

 

                                                                 북한 수상 겸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북한 부수상 겸 외상, 인민군 총정치국장 박헌영 (사진)

한국전쟁 다음 날 6월 26일  남침 지휘부 7인 군사위원회(군사정부)를 구성했다 군사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수상, 인민군 총사령관-조선공산청년회,중국 공산당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출신), 6인 위원은 박헌영(부수상 겸 외상, 인민군 총정치국장-조선공산당과 조선공산당 남조선분국 출신), 홍명희(부수상-근로인민당 당수 출신), 김책(부수상 겸 산업상, 전선총사령관-화요파,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출신 ), 최용건(민족보위상=국방상, 중국 운남군관학교 졸업과 중국 공산당, 조선민주당 당수, 인민군 총사령관 출신), 박일우(내무상,전선사령부 부사령관-조선의용군 부사령관 출신) ,정준택(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과 일제시기 화학공장 기사(技師) 출신) 등이다

 

전쟁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시체제에 부합되는 최고권력기관으로서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는 내용의 정령을 공포했다

군사위원회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비상한 정세와 관련하여 그리고 전쟁에서 전체 인민의 역량을 급속히 동원할 목적에서 조직된 것으로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여 모두 7명으로 구성되었다 나머지 6명은 박헌영, 홍명희, 김책, 최용건, 박일부, 정준택으로, 이 군사위원회는 일체의 주권을 장악하고 모든 기관, 정당, 사회단체, 군사기관들은 군사위원회의 결정과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군사위원회를 조직한 다음날인 6월 27일 상임위원회는 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전시상태가 선포된 지역에서는 지방정권기관을 대신하여 지방군정부(지방군정)라는 것을 조직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령을 공포했다

국가보위와 사회질서 및 국가안전을 위한다는 목적에서 전시상태가 선포됨으로 인해 지방군정부(지방군정)도 도,시에 설치 되었는데, 지방군정부(지방군정)는 지방인민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군 대표 및 내무기관 대표 각각 1명씩으로 구성하여 군사위원회의 지시를 받도록 했다

지방군정부(지방군정)의 임무는 지방인민위원회의 권한을 대부분 대행하는 것으로 되었는데, 주요 시설 및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을 의무노동에 동원하고 군부대 및 군사기관을 위한 건물 제공의무를 지며, 군사상 필요에 의해 자동차와 우마차의 동원의무를 선포하며, 각 기업소와 단체 주민들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수용하며, 전시지역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등의 권한을 부여 받았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조치로 말미암아 북한의 모든 권한은 김일성을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한 군사위원회에 집중 되었다

 

한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950년 7월 1일 북한 전지역에 동원령을 선포했다 이은 위급한 정세에 대하여 원수들을 소탕하고 조국의 통일과 독립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는데, 동원 대상은 만 18세부터 36세까지의 남녀가 해당 되었다

 

1950년 7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김일성을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정령을 채택했으며 인민군이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 일원을 점령하자 남한지역에 토지개혁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정령을 발포했다

  

1950년 4월 초 조선노동당 중앙 정치위원회에서 전쟁에 의한 통일노선..

김일성이 "조국의 통일문제에 관한 건"에 관하여 보고하였다

김일성은 그의 보고 가운데서 현단계에 있어서의 정세를 보고하고, 현단계에 있어서는 무력통일이 단 하나의 옳은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정치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적극적으로 이 방안을 지지해줄 것을 요망하였다

박헌영은 김일성 다음 가는 석차이기 때문에 토론을 하기 위하여 최초로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 동지의 보고를 전적으로 지지하면서 약간의 보충을 하겠습니다" 박헌영은 이렇게 자기 토론을 시작하였다

김일성의 보고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뒤 김일성의 보고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 그리고 자기는 이것을 절대 지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면서 "남한에는 현재 20만명의 남로당원이 지하에 있어 만일 인민군이 남하한다면, 20만의 남로당원들이 내응해서 군사작전을 원호할 것으로 믿습니다"고 끝을 맺었다

 

신민당 김두봉 계열이나 민주당 최용건계열, 근로 인민당 홍명희 계열 등은 남침을 반대했다가 찬성한 사람들이다.

남침은 노동당 계열 내부 대남 강경파 조선공산당(조선공산당 복조선분국 김일성과 조선공산당 남조선분국  박헌영) 계열 주도로 추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전쟁 남침 인민군 지휘부 작전 라인은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연단), 전선총사령관 김책(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연단), 전선부사령관 박일우(조선의용군),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연단)이며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조직 박헌영(인민군총정치국장), 이현상(남부군, 빨치산부대) 등이다

남침은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연단출신 주도로 조선의용군과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 출신이 적극 가담했다

-1949년 3월 김일성 수상과 박헌영, 홍명희 등 부수상등 북한 대표단 소련방문, 스탈린과 회담

-남로당 책임비서 이승엽[박헌영 최측근, 한국전쟁 때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겸 서울시장 역임]

이승엽은 남한에서 이승만정권과 미제국주의들을 분쇄 타도하기 위하여 일어난 빨치산들을 영웅적이며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투사라고 강조했으며 이들을 전심전력 원호하는 것이 참으로 가장 중요한 거족적 파업이라고 주장했다(남조선 정치정세와 인민들의 구국투쟁)

-1950년 5월 김일성, 박헌영등 북경방문, 모택동과 회담 

-최용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전 그는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자 민족보위상을 맡고 있었는데 한국전쟁에 반대 하였다.

6월 한국전쟁 직후 서울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50년 가을 그는 방어총사령관을 맡아 후방의 일을 처리하였는데, 한국전쟁에 최소한의 협력만을 수행하였다. 1950년12월 김규식이 납북도중 사망하자 동료들과 함께 그의 장례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 초기 그는 한국전쟁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전쟁 준비에는 국방부장관격인 민족보위상 최용건은 참여하지 않았고, 차수인 김책이 관여 하였다. 미군이 참전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선사령부를 중심으로 전쟁이 치루어졌다. 미군이 개입하자 1950년 7월 4일 김일성은 최용건 대신에 자신이 최고사령관이 되었고, 전선사령부는 최고사령관 김일성, 전선사령관 김책, 총참모장 강건 라인으로 지휘체계가 작동하였다. 그리고 전선사령부 밑에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1군단과 동부전선을 공격할 2군단을 창설했다. 1군단장에는 김웅(金雄) 중장을, 2군단장에 김광협(金光俠) 중장을 임명했다 그는 서울방어와 인민군 재건을 지휘하였다.

한편 한국전쟁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들어 대륙파나 연안파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그는 긴장하게 된다. 1953년 2월 7일 휴전 무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차수(次帥)에 임명된 뒤, 박헌영리승엽이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재판장으로서 이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등 남로당 계열 숙청에 앞장섰다.

-미군정이 끝나면서 미군과 소련군은 동시철수를 개시했다. 하지만 미군이 한국군에게 애초 약속했던 수준보다도 못한 소화기와 약간의 물자만 넘겨주고 고문관도 500명 미만으로 남긴데 반해, 소련군의 경우 T-34를 비롯한 중화기 일체와 관련 군수물자를 통째로 넘겨주었을 뿐 아니라 고문관도 3,000명 이상 남겨놓았다. 이들 소련의 고문관들은 조선인민군의 훈련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계획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고 소련군 극동지역 군인들이다. 냉전시대 군사개념상 북한과 만주일부 지역이 소련군 극동사령부 통제를 받았다 

실제로 개전당시 인민군 6사단 출신으로 한국군에 투항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한군 장교는 개전 직전에 소련군 군사고문단이 기존의 '훈련전담'고문에서 '작전지휘'고문으로 전부 교체됐음을 증언한바 있다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모습

 

모택동(마오쩌둥)주의는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중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에 기반을 두고 세력을 확장해왔다 모택동(마오쩌둥) 노선이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보다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이나 NL(민족해방) 노선이 될 때 인민보다 민족우월이나 해방전쟁으로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노선 지역 패권 전쟁이론이 돼 오고 있다[북한이나 기타 제3 세계 좌파민족주의 이론]

모택동(마오쩌둥)의 주도하에, 중화인민공화국은 개발도상국들 특히 동남아시아에 공산주의 혁명을 수출하였는데, 그러한 노선에 입각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국제 공산주의운동, 민족민주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오는 공산정권 수립 후 개발도상국에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미얀마,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지에 공산주의노선을 지지하고 무기, 경제, 기술, 식량 지원 등을 하였다. 문화대혁명 때는 《모주석어록》이 대량으로 영어나 스페인어 등으로까지 번역, 유통되어 외국에서 마오식 투쟁노선의 지도서가 되던 때도 있었다

붉은 군대에 가이드(안내)로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은 모택동(마오)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무장활동 수단), 보통 무장 단체를 조직하는 투쟁의 주요 방법으로 도시 주변 농촌 지역에, 행동 지침으로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랍인 모택동(마오) 무장 단체는 광신적인 믿음이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잘 조직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지역 모택동(마오)주의자들과 다르다. 네팔과 인도의 모택동(마오쩌둥) 조직뿐만 아니라 모택동(마오쩌둥) 조직이 무장 이전에는 영적인 연결,하지만 나중에 인해 모택동(마오쩌둥) 거점에, 일부 아시아 국가,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에서 출발하고 NLPDR 독립 투쟁의 길에 착수했다.

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인민군]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 청년공산주의 단체, 인도 마오(모택동)주의[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공산반군],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태국 공산당],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북부 미얀마 공산반군],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등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신봉단체..

 

                                                                                 일본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모습(사진)

세계의 모택동(마오쩌둥) 조직은 여전히 세계의 분산 돼, 11개국에 존재 한다. 그것은 일본 적군 마오(모택동) 조직, 조직의 지도자 시게노부가 2001 년 일본에 의해 체포 된 것을 언급 할 가치가 있다. 조직의 운영 목표는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한 번 제국주의 봉쇄를 중단하는 것이다, 충성의 비밀을 하지 않았다.


 

1.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

                                                                                 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 모습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인민군(약칭 FARC 또는 FARC-EP)는 콜롬비아공산주의 혁명·게릴라 조직이다.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콜롬비아 공산당 산하 무장 단체로 남아 있었으며 지방 정부와 민간의 사회 기반 시설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유럽 연합 등으로부터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중남미에서 규모가 큰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로 40여 년 동안 콜롬비아 정부에 대항해 왔으며 잠깐 동안 국제적인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냉전 시대(1980년대) 이후에는 마약코카인 재배와 정계 요인 납치 등의 범죄를 일삼았으므로 대중들에게 나쁜 인식을 주었다. 콜롬비아 혁명군은 콜롬비아 공산당에서 분리된 단체로, 독립된 정치 기구로 여겨진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회원 수는 7,000-10,000명으로 추산되며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25~30%는 콜롬비아 혁명군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주로 콜롬비아 정글 남동부와 안데스 산맥 평원 지대에서 활약하며 최근에는 대중들의 나쁜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질의 몸값을 제시, 석방하고 있다.

-원래 좌파 FARC 코스타리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상징 게릴라이지만 마약 밀매나 밀수 무역과 몸값의 연속 납치 사건을 포함하기 때문에, 명성은 더 심각되고 있다.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 (FARC)는 원래 독립적인 조직이 될 공산당에서, 때문에 마약 거래에서 지난 세기의 팔십에, 콜롬비아 공산당 군사 기관에 속한, 1964 년에 설립되었다. 그것은 가장 완벽하게 갖춘 최대 규모의 조직 콜롬비아 영토뿐만 아니라, 최고의 전투 게릴라이다

-콜롬비아 내전은 현재까지 40년째 진행중이다.

이 내전은 좌우익의 이념대립, 빈부격차, 불평 등에 기인하였고, 우익을 표방한 정부 및 극우 단체와 이에 대항하는 좌익게릴라와의 싸움으로 번졌다.

 내전을 주도한 3대 게릴라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민족해방군 (ELN) :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1964년에 결성.

2. 콜롬비아 혁명군 (FARC) : 1966년에 결성된 좌파 혁명군.

3. M-19 : 1973년 결성된 자생적 사회주의 무장단체.


FARC는 1964년 콜롬비아 공산당 산하 무력부로 설립된 남미 최대의 좌익 반군조직으로 한때 콜롬비아 영토의 절반을 장악하고  노동자,농민의 해방 반미주의를 표방해 왔다.


이들은 콜롬비아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하며, 천연자원(석유, 커피, 에메랄드광산 등) 사유화 반대, 다국적기업들의 농민 착취 금지, 공권력의 민중 학살 금지 등을 내세워 집권을 위한 무장혁명을 외치며 총을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FARC 반군 약 2만여명이 여전히 콜롬비아 산지와 정글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게릴라들이 순순히 투항하거나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전면전 양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단기간에 내란이 종식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미국에서  콜롬비아에 대한 군사지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2의 베트남전을 피하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없이<엄청난 지원중 이지만 서방시각> 콜롬비아 정부군만으로 반군단체와 마약조직을 소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향후 전쟁세 신설 및 자체  군사력증강, 직업군인 양성 등으로 게릴라들의 투항을 유도하거나 전면전에서의 승리를 <결론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것이 중요> 끌어 내기 전까지는 현 상태에서 내란사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요원하다고  본다.

 

사진은 FARC-EP 반군 조직이 아닌 ELN 소속 반정부군들.어깨패치와 복면에 ELN마크가 붙어 있습니다.ELN 반정부군은 2,500명이나 되는 조직 으로 콜롬비아 반군 조직 중에 두번째로 큰 규모입니다.이외 800명 규모의 EPL,EGP,ERP,CAP 반정부군 조직이 있습니다.소총은 FN-FAL,AK-47소총 입니다.전술 조끼는 LBT사제로 보입니다.(5천명으로 추산)

 

ELN반정부군입니다.완장을 보면 eln은 위에는 적색과 밑에는 검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eln문자가 붙어 있습니다.AUC도 ELN이나 FARC로 위장하기 위해서 ELN,FARC완장을 차는 모습이 목격 되어 습니다.ELN은 대다수가 복면을 쓰는 경우가 많으나 FARC는 복면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2.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 모습

1970년대초 납치·살인·사보타주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의 목적은 이탈리아란 국가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이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으로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 여단의 창설자는 명성이 자자한 레나토 쿠르치오로서, 그는 1967년 트렌토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좌파사상단체를 만들어 카를 마르크스, 마오쩌둥[毛澤東],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들의 사상을 연구했다. 1969년 동료 마르게리타 카골과 결혼한 뒤, 밀라노로 이사하여 열성적인 동료들을 모았다. 그들은 밀라노에 있는 공장과 상점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1970년 11월 붉은 여단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971년의 납치를 시작으로 1974년 토리노의 반(反)테러대 총지휘관 및 대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 이탈리아의 전(前)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하여 살해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열성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고 투옥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살인행위는 계속되었다. 붉은 여단의 총책임자인 쿠르치오는 1974년 체포되었다가 1975년 탈출, 1976년 재생포되었다. 1981년 12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미군 장교인 제임스 도지어 준장이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42일 동안 감금되는 사태도 벌어졌으나, 후에 그는 파도바의 붉은 여단 은신처를 급습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

붉은 여단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는 정회원이 400~500명에 이르렀고, 그밖에 1,000여 명의 회원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수천 명의 후원자들이 자금과 정보전달의 수단 및 은신처를 제공했다. 조심스럽고 체계적인 경찰의 검거작전에 의해 1970년대 중반부터 붉은 여단의 지도자들과 평회원들이 체포·감금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그 조직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1970년 10월 28일는 이탈리아의 테러 조직 '붉은 여단은 "설립되었다.

실업 더 전쟁, 신속하게 이탈리아 경제의 회복과 성장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 후.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 의해 버려진 느낌, 위협으로부터 고통과 경제에 맞았다. 사회 불만 "좌파"조직의 현실을 설정 사람들은, 테러 활동에 종사하는 도로에 착수, "레드 투어"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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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가을"파업을 설정 1969 년 가을, 높은 임금, 더 나은 작업 조건에 대한 이탈리아 노동자. 이 경우, "레드 투어"설립 양조 시작했다. 설립자 및 Siemens 공장 노동자 밀라노의 공업 도시의 초기 멤버 중 일부, 트 렌토 대학의 사회학 토리노학과의 도시에서 일부 학생.

하나는 사회학 학생들의 창시자 레나토  트 렌토 대학학과이다. 점차 도시 게릴라 조직의 아이디어를 생산하면서 이 사람들은, 대중 시위의 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계속한다. 그들은 남미 게바라의 게릴라 모드에서 다음 영향력 있는 도시에서 영감과 격려를 얻을 경험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통적인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얻었다.

1969 년 말에, "레드 투어"가 설립되었다. 그것의 상징은 원으로 둘러싸인 다섯개 별이다. 그것은 Kuqiao,이 알베르토 프란시스 체이스 기니 이외의 사람들을 구축하는 기획이다. 우리가 Kuqiao "레드 투어"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면, 다음, 사회 학자 조지 빌리지 알 메리아는 조직의 원리를 설립되었다. 붉은 여단 조직이 대부분의 기본 단위 기, 5 개 이상의 구성원 수, 상급자와 하나만 접촉가요 매우 타이트하다. 여섯 팀 "핵심"로 구성된 각 여단의 조성 주변의 "핵심"에 의해 다음의 주요 도시에 지점을 설정했다. 따라서 피라미드 시스템과 같은 조직을 형성한다. 통상적 인 활동은 그룹으로, 체포의 그룹의 구성원은 다른 팀에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이탈리아 관리는 붉은 여단 조직이 지렁이 여러 섹션으로 잘라처럼, 각 섹션 어색해 수 보인다고 설명했다.

 

3.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모습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1994년 만들어져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국가주석마오쩌둥의 이념을 추종하는 네팔공산주의 정당을 말한다. 반군(反軍) 활동을 통해 네팔의 왕실을 폐지하여 네팔을 민주화시켰다.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의 의장은 프라찬다가 맡고 있다.

1996년 이후 프라찬다의 지도 아래 마오쩌둥의 노선을 따라 농촌에서 해방구를 만들고, 인민전쟁을 펼쳤으며, 산악지형을 이용해 게릴라전을 펼쳤다. 2001년 채택된 프라찬다 노선에 따라 모택동주의민주사회주의의 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8년 4월, 왕정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전환하기 위한 제헌선거에서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가 제 1당이 되었고, 8월 15일 실시된 제헌의원 투표에서 프라찬다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 의장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가난 해결 못해 민심 등돌려[네팔공산당 5년 만에 실각]
10년간의 인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마오주의 네팔공산당이 지난 19일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를 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화려하게 의회에 입성한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다.

현지 언론 네팔타임스는 두 번째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의 개표 결과 25일 현재 네팔공산당이 부르주아 정당인 네팔의회당과 온건네팔공산당에 큰 격차로 뒤진 세 번째 당으로 밀려났다고 보도했다. 인민전쟁의 영웅 프라찬다 역시 불과 몇 표 차이로 의석을 지키는 수모를 면치 못했다.

1996년 두 자루의 구식 소총으로 시작한 마오주의 반군은 토지개혁 및 카스트 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지구상 마지막 힌두왕조와 전쟁을 벌였다. 농촌을 거점으로 시작한 게릴라 투쟁은 2005년 전 국토의 80%를 해방구로 만들었지만 이들은 수도 카트만두로 진격하는 대신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2006년 왕정폐지가 결정되자 과도의회 구성에 합의했다. ‘프라찬다의 길’로 불리는 네팔공산당의 독특한 행보였다. 혁명의 완성을 눈앞에 둔 공산당이 헌법에 따라 의회에서 다른 정당과 평등하게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 치러진 첫 제헌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제1당이 됐다

하지만 불과 5년 후인 현재 네팔공산당에 지지를 보내던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다. 기첸드라 마호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인민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패닉에 빠진 일부 강경 마오주의자들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들어야 한다”며 프라찬다를 압박하고 있다. 네팔 정치평론가 크리슈나 카날 교수는 “지금은 마오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선택했던 다당제의 경쟁원리(프라찬다의 길)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에 대해 대답해 줘야 할 때”라고 BBC에 말했다.
-1996년 2월, 네팔의 왕정을 전복하기 위해 기본적인 정치적 신념 네팔의 모택동(마오)주의 공산당,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을 주장하는 반군이 산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10 년 내전으로 네팔. 모택동(마오)이스트 게릴라의 개발 과정에서 큰 장착 네팔의 영토의 70 % 이상을 점유. "차별이 없다, 더 착취, 그것은 새로운 네팔하지 않을 것이다!"

1996년 2월, 네팔 공산당 (마오 쩌둥)는 "사람들의 전쟁"을 시작, 첫 번째 총알을 발사 그들이라고 했다 "모택동(마오)주의자를." 그들은 네팔 인민 해방군 무장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래를 원, 힘든 투쟁을 통해 그들에게 "사람들의 전쟁 '의 10 년, 정글 전투기이다.

CPN (마오가) 정부와 포괄적 인 평화 협정을 체결 한 후,이 신비한 힘이 다른 캠프에 넣고, UN 감시 받고있다. 오늘날, 그들은 여전히 정글의 가장 어려운, 그들은 다른 네팔 기대, 사람이 결정된다.

 

4.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자

 

                                                            아프간 공산당 - 마오주의[Communist (Maoist) Party of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자 Sholaye Jawid 모습

아프가니스탄 공산당을 이해하기 위해 (마오 쩌둥 역사는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간단한 검토. 첫 번째 공산주의 단체, 청소년 단체 진행 (Progessive 청소년기구, PYO)가 1965 세계 혁명 시대 .60 년에 설립 되었다고 한다. 운동 서징, 라틴 아메리카에 중국, 미국 유대인과 흑인 사회에서, 노동 대중은 사회를 더 나은 공정 투쟁을 해야 한다.

청소년 협회(청년 공산주의 단체)는 아직 진행 지하 활성 상태이다. 진보적인 지도자의 청소년 협회는 Sholaye Jawid의 제목의 게시를 발표했다. Sholaye Jawid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출판물의 새로운 종류의 주장, 널리 노골적으로 순환하고 있다.11의 출시 후, SHolaye Jawid 폐쇄했고 정부의 문제를 금지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11 기 정치적 상황은 큰 영향을 발생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의해 하늘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나라를 휩쓸고 대규모 전례없는 대중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손상이 분명했다 억제하려 하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또한 Sholaye Jawid 추종자에 대해 정통 무슬림을 사용한다.

80년대 후반은, 우익 마오 쩌둥 그룹 중 하나는 독립적인 아프간 공산주의 혁명가 코어 (아프가니스탄, RCCA의 혁명 공산주의 세포)를 파괴했다. 그것은 다른 조직은 1991 년에 아프가니스탄의 공산당 이름을 변경, 아프간 공산주의 혁명 동맹을 형성했다.

아프간 공산주의는 상속과 발전의 전통적인 마오 청소년 단체를 이월 표시, Sholaye Jawid을 재발행. 사실, 첫 번째 할부 Sholaye Jawid의의 재 릴리스는 분명히 그들이 아크람 야리는 혁신적인 길을 개척 청소년 협회와 지도자에 의해 진행 지속될 것으로 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맹국의 후속 직업에서 함께 통합 마오 파티에 설립 된 모든 마오주의 공산당 조직에 호출한다. 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자들과 또 다른 4 마오 쩌둥 조직 아프가니스탄 맑스 - 레닌주의, 마오 쩌둥 사상, 운동의 공동위원회. 논쟁 3 년 이념적, 정치적 관점 후,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위원회는 공동 회의를 개최했다. 총회는 2004년 5월 1일 아프가 니 스탄 공산당 (마오 쩌둥)가 설립되었다 종료. 아프간 공산당 (마오 쩌둥)의 지하 여전히. 그들의 목표는 외국 점령군에 대한 전국적인 사람들의 전쟁, 새로운 민주 국가의 설립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작하는 것이다.

-1년6개월 전인 1978년 4월27일 아프간에서 일어난 유혈 쿠데타다. 아프간 공산당인 아프가니스탄인민민주당의 지도를 받는 사회주의 성향의 일부 육군 및 공군 장교들은 이날 봉기해, 무하마드 다우드 칸 총리를 리셉션에서 암살하고 정부를 전복했다. 3일 만인 4월30일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 아프간인민민주당 수반이 지도하는 혁명위원회에 권력이 이양됐고, 타라키는 곧 혁명칙령 1호에 서명했다.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이 선포됐다.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소비에트 스타일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한 것이었다. 소련이 20년간 공들인 대아프간 공작과 지원의 결실이었지만, 소련에 최대 재앙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라키 정권은 출범과 함께 내분에 휩싸이며, 통치력이 전무함을 보여줬다.

아프간인민민주당 내에서 타라키가 이끄는 칼크(대중)파와 경쟁자인 바브라크 카르말의 파르참(깃발)파는 정권 출범과 함께 반목과 대립을 보였다. 타라키가 1965년 창당을 주도한 아프간인민민주당은 2년 뒤부터 두 파벌로 나뉘어 반목해왔다. 칼크파는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정부 타도와 소비에트 스타일의 공산정권 수립을 내걸었다. 반면 파르참파는 아프간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할 정도로 산업화되지 않았다며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주장했다.

아프간 공산당 내 두 파벌의 노선과 투쟁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양쪽 모두 교과서로만 배운 얼치기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반년이 안 돼 두 파벌의 대립은 폭력 사태로 치달았다. 이 와중에 더 큰 사태가 시작됐다. 부족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반란이 일어났다.

타라키 정권은 안으로 내분에 휩싸이자, 밖으로 교조적 공산개혁을 더욱 밀어붙였다. 여성문맹타파운동, 징병제, 부족장 토지 몰수, 이슬람식 대부제도 폐지, 신부 지참금 금지, 혼인의 자유 선포 등 많은 개혁은 오히려 기득권을 침해당한 부족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반발만을 불렀다. 타라키 정부는 반대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쳤다. 1979년에 접어들면서, 카불의 공산주의 정부는 종교 지도자 등 약 1만2천 명의 정치범을 수감했다. 조직적인 처형이 수용소의 벽 뒤에서 시작됐다.


1978년 10월, 동부 산악지대의 파슈툰 부족 세력들이 총을 잡고 궐기했다. 군나르주, 힌두쿠시 산맥, 바다흐샨주 등 동부의 몇몇 지역은 반정부 거점으로 변했다. 정부군 내에서도 수천 명의 병사가 탈영했다. 1979년 1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접경한 서쪽 국경지대에서 이슬람 혁명의 여파가 밀려들었다. 2월 수도 카불에서는 아돌프 덥스 미국 대사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납치돼 결국 피살됐다. 3월 들어 이란과 접경한 헤라트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진압을 명령받은 아프간 정부군 육군 17사단 내에서 오히려 반정부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한 병사들은 소련 고문단과 그 가족의 주검을 막대기에 꽂아서 거리에 전시했다.

타라키 정부는 소련에서 훈련받은 조종사들이 모는 전투기를 출동시켰다. 무자비한 공습으로 헤라트에서만 2만 명이 죽었다. 이 반란을 접하면서 소련은 아프간에서의 상황이 심각하게 잘못돼가고 있고, 아프간에서의 공산혁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헤라트에서 봉기가 들불처럼 번지던 1979년 3월17일,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비밀 비상회동을 했다. 3년 뒤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는 유리 안드로포프 당시 KGB 의장이 주도한 이날 회의에서 정치국원들은 아프간 정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심각한 문제투성이임을 직감하게 됐다. 다음날 정치국 정례회의에서 소련 지도부 내의 보수파인 디미트리 우스티노프 국방장관도 “문제는 아프간 지도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렉세이 코시긴 전 총리가 타라키와 통화했다. 타라키는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소련 내 중앙아시아 자치공화국 출신 소련군 병사들을 민간인으로 위장해 파병해달라고 애걸했다. 기가 막힌 코시긴은 타라키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는 “당신은 지금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고 있다. 아프간의 점증하는 이슬람 봉기는 복잡한 정치적·국제적 문제다”라고 경고했다. 소련 지도부의 인식은 정확했으나 대책은 없었다.

소련 지도부가 상식에 기초한 개혁과 국정 운영을 조언했지만, 타라키는 당내의 같은 파벌인 칼크파 소속 하피줄라 아민 외무장관 겸 혁명위 부의장과도 반목했다. 9월이 되자, 타라키는 소련의 호출로 모스크바로 갔다. 그의 부재 중에 아민의 타라키 축출이 계획됐다. 타라키는 귀국 뒤 체포돼, 몇 주 뒤 카불의 한 병영에서 집중 사격을 받고 최후를 맞는다.

아민의 집권은 소련에는 더 큰 재앙이었다. 소련 KGB의 돈을 받는 관리 대상이던 그는 집권 뒤 거만해졌다. 아민은 아프간 정부의 해외 은행 계좌에 있던 4억달러나 되는 돈을 인출하는 권한을 가지려 했다. 격노한 KGB는 그의 신뢰를 깎아내리려 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경력이 있는 아민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 이 허위 정보는 돌고 돌아 KGB 본부와 소련 내에도 흘러들었다. 정보 계통에서 ‘블로백’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허위 정보를 퍼뜨린 당사국조차 나중에 그 정보에 현혹되는 현상이다.

아민은 집권 뒤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의 대리대사인 브루스 암스튜츠를 5번이나 개인적으로 만났다. KGB는 미국의 의도를 평가하려고 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아민과 암스튜츠의 대화 내용도 알 수 없었다. 아민이 뉴욕에서 유학할 때 CIA와 연관된 아시아재단과 관련이 있다는 문건도 인도에서 나왔다. KGB 요원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퍼뜨린 허위 정보가 사실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KGB 관리들은 CIA가 아민과 협력해 카불의 친소 정부를 조종하기 시작했다고 결론 냈다. KGB는 11월 들어 최고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게 서한을 보내 아민에 대한 단호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안드로포프 KGB 의장은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CIA의 아민 포섭은 “소련 남부의 공화국들을 포함한 ‘뉴 그레이트 오토만제국’을 만들려는” CIA의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라는 상상력까지 동원했다. 이런 상상력이 나올 만도 했다. 만약 아프간이 미국의 손에 떨어진다면, 당시 미국이 유럽에 배치 중이던 중거리 퍼싱미사일도 아프간에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소련으로서는 아프간 공산정부 수립을 지원하지 않으니만 못한 최악의 결과가 어른거리는 상황이었다. 소련 지도부는 아민을 암살하고 아프간에 대한 군사 침공을 개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련이 가장 우려하던 미국의 개입은 아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면적 침공이 있고 나서야 본격화된다. 12월 들어 소련의 움직임은 시작됐다. 12월7일, 권력투쟁에 밀려 망명한 아프간인민민주당 지도자 중 하나였던 카르말이 비밀리에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아민의 뒤를 잇기로 낙점된 그는 KGB 요원과 소련군 특전부대 병력과 함께 입국했다.

12월10일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은 소련군 참모총장에게 1개 공정사단과 수송항공대 5개 부대의 배치를 시작하라는 구두 명령을 내렸다.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참모총장은 무모하다고 반발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12월 중순이 되자, 대규모 소련군이 아프간 접경지대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미국 CIA도 12월19일 소련이 72시간 내에 침공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보고를 했다. CIA가 예측한 시간보다 48시간이 더 지나서 소련군의 전면적인 침공이 시작됐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이었다.

이틀 뒤 카터 행정부 내의 가장 강경한 냉전전사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카터 대통령에게 비밀 정책보고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개입에 대한 대책’을 보냈다. “아프간에서의 저항을 지속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파키스탄을 설득해서 반군을 지원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는 파키스탄에 대한 우리의 정책 재고를 요구하며… 파키스탄에 대한 우리의 안보정책이 핵비확산 정책에 좌우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우리는 중국이 반군을 지원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반군을 지원하는 선전 활동과 비밀 공작에서도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파키스탄의 핵개발도 용인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는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이끌었다.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그 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등 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안보 현안이던 핵확산 문제를 야기한 모델이었다. 따지고 보면, 현재 25년 가까이 계속되는 북한 핵개발 위기도 그 근원의 하나는 아프간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브레진스키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철수다. 설사 이것이 달성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소련이 가능한 한 최대의 비용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79년 12월25일. 기독교 문명 세계의 최대 성일인 크리스마스 새벽에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소련 접경 지역인 테르메스 인근의 아무다리야강에는 성탄의 고요함에 어울리지 않는 굉음이 울렸다. 소련군 40군이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탱크를 앞세워 국경을 넘어 전면적 침공을 개시했다. 소련군 40군은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부대다. 파시즘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한 ‘위대한 붉은 군대’의 주력군 중 하나인 40군이 주변 약소국의 침략군으로 나섰다. 하루 전 크리스마브이브, 어둠이 깔리는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는 소련 안토노프 수송기가 속속 착륙해 공정부대 병력을 풀어놓았다. 이미 아프간 땅에 발을 디뎠던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투요원 700여 명은 아프간 정부군복으로 위장하고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의 수반 하피줄라 아민 총리는 사살됐다.

 

5.인도 마오(모택동)주의자

 

                                                                                                         인도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인도공산당(CPI,Communism Party of India), 인도 마르크스 공산당(CPI-M,Communism Party of India Marx), 인도 마오주의 공산당(CPI-M,Communism Party of India Maoism, 낙살라이트Naxalite)은 인디아사회주의 정당들이다. 1925년 12월 북인도의 신흥공업도시 칸푸르에서 결성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따르고 있으며, 야당이기는 하지만 국민회의당과 함께 연립정권(UPA)을 구성하고 있다. 1967년 있었던 소작인 봉기 사건을 계기로 마르크스파(CPI-M)와 막스-레닌주의 인도공산당(CPI-ML,1969년 결성)로 분열되었다. 그외 인디아의 공산당으로는 인도 마오주의 공산당(CPM)이 있으며 마오주의자들과 연계된 반군 낙살라이트가 있다

-인도, 마오주의자 무장투쟁에 몸살

세계 최대 인구의 민주국가 인도가 극좌파 무장 세력인 마오주의자(Maoist)의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구 기업들이 인도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농지를 잃은 농민들이 합류하면서 중국 마오쩌둥의 사상과 노선을 따르는 인도 마오주의 운동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 안보의 최대 위협=만모한 싱 총리는 최근 마오주의자들은 국가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다. 이들의 공격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토로했다.

인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마오주의자의 공격이 본격화된 2004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598명의 군인과 경찰, 1894명의 민간인이 살해됐다.

지난달 15일 500여 명의 마오주의자가 인도 중부 오리사 주 나야가르의 경찰서 5곳을 동시에 습격해 14명의 경찰관을 살해하고 무기 1000여 점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이 보도했다.

지난해 3월에는 마오주의자들이 차티스가르 주 라니보들리의 경찰서를 공격해 경찰관 55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6년 7월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차티스가르 주 단테와다의 구호소를 덮쳐 29명이 숨졌다.

현재 마오주의자들은 인도 동부의 서벵골 주와 서부의 마하라슈트라 주,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등 전국에 세력을 뻗치고 있다.


일간 인디언 프레스는 마오주의 무장 단체인 인도마오주의공산당(CPI-M)이 인도 28개 주 중 17개 주에 지부를 두고 활동 중이며, 지난해와 올해 2년간 예산이 6억 루피(약 141억 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인도 싱크탱크 국방분석연구소(IDSA)는 CPI-M이 AK소총과 로켓포, 대인지뢰 등으로 무장한 최대 1만5000명의 대원을 두고 있다고 추정했다.


세계화와 빈곤이 원인=마오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이 계급동맹을 맺어 농촌을 근거지로 장기간의 유격전을 통해 혁명을 완성하자는 주장을 핵심으로 한다.


인도의 마오주의 운동은 1967년 5월 서벵골 주 낙살바리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인 낙살라이트(Naxalite)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인도 마오주의자들은 낙살(Naxal)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인도 마오주의는 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가 이끌어 왔다. 두 단체는 2004년 9월 CPI-M으로 통합되면서 조직을 정비했고, 본격적으로 관공서 등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 인도 공산당 운동가들이 8일 콜카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문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3일 CPI-M의 핵심 간부인 소멘(본명 히마드리 센 로이)을 검거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약 1만5000명의 경찰과 군 병력이 마오주의자를 전담하고 있지만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에서 이른바 특별경제구역(SEZ)이 확대되면서 다국적 기업에 땅을 내주고 쫓겨난 농민들이 CPI-M에 합류하고 있다는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말을 보도했다. 세계화가 인도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창궐하게 된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인도 사회발전연구센터(CSDS) 벨라 바티아 박사는 달리트(인도의 최하층 신분)와 빈민들은 마오주의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 때문에 마오주의자들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인도의 케랄라주에선 세계 최초로 자유선거에 의해 공산당이 집권했다. 또 호치민을 영웅으로 대접하며, 레닌의 동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 또한 인도다.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도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인도의 모택동(마오쩌둥)의 혁명은 정말 1967 년, 웨스트 벵갈 사르 베리에서의 반란, 이것은 인도의 사람들이 전쟁의 전환점으로 간주되었다 봉기의 시작했다. 봉기 후, 중국 "인민 일보" 사설은 "봄의 천둥(a peal of spring thunder)"으로 표현 발표했다.

1969 년, 인도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수단을 위한 투쟁에서 무장 봉기가 설립 되었으며,  2년 분열로보 정당이 분리 되었다. 사무 총장 메리 숨어 문다 위치가 도전을 받았다.

1972 년,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1970 년대 전반에 걸쳐, 인도 모택동(마오)주의자 조각난,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계급 투쟁과 국민의 전쟁 모택동(마오)의 이론을 주장했다.

1971 방글라데시 전쟁은 또한 모택동(마오) 주의자에 큰 타격이다. 때문에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좋은 관계의 따라서, 파키스탄 전쟁 파티에 서있는 사람들의 인도 모택동(마오)주의자, 이러한 움직임은 감정적으로 인도에있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하기 어려운,하지만 더 모택동(마오)주의자의 힘을 약화되었다
흥미롭게도, 전체 부서의 과정에서, 메리 숨어 문다 마오 주의자는 임표(린뱌오)와 반대 세력에 70 년대 시대의 분할을 지원하는 프로.

지도자가 믿는 인도 마오 주의자, 마르크스 - 레닌주의와 마오 쩌둥 사상의 발전, 그리고 그들의 이론은 더 이상 변경하지 않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 모든 힘 플레이를 지출하지만, 자신의 베이스, 마오를 통합하면서, 공격 전술을 복용하는 동안 자신의 게릴라 전쟁 깊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짧은 시간, 인도의 동부에 네팔 국경에서 빨간색 복도는 이미 모양을 이루고있다. 이 빨간색 복도에서 같은 비하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곳, 가파른 산, 정글 언덕, 여러 곳에서 게릴라로 모여 인도 주민 35 %, 인도 경찰 및 이전 버전으로 직원의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무기.

많은 지역에서, 마오 쩌둥 게릴라 관리 및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에 의존하는 지방 정부에 의해 대체 되었다. 예를 들어, 풍부한 차 티스 가르 정글 대나무, 마오주의자 대나무 사업가 부과 세금의 정글의 갈망, 그리고 지역 도로 건설 회사도이 작업을 수행 할 필요하다. 정부가 마오 주의자를 억제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산에 왔을 때, 그들은 항상 지역 농민에 의해 보호. 인도 마오 주의자의 성공은 군대와 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경찰 어려운 지역 상황에 익숙하게 꽉 지하 조직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인도의 경제 발전과 함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극단적 인 마오 쩌둥 조직을 받아 들일 수 없다, 농촌 지역에 국한, 인도 (마르크스 주의자)의 공산당이 아니라, 시민의 자신의 효율적 지원에 의존 할 수있다 웨스트 벵갈, 케 랄라, 포함을 포함하여, 지방 자치 권한을 얻을 수 있다.

 

6.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자

 

                                                                                               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공산계 반군인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은 1968년 12월 설립된 비합법 정당인 필리핀공산당(CPP)과 관련이 있다.

 구 공산당(PKP)에서 추방당한 시손(Jose M. Sison) 등이 창설한 CPP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 중국공산당을 모델로 삼아 마르코스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NPA는 CPP의 군사조직으로 출발하였으나 1969년 3월 분리 결성되었다.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의 군사조직으로 노동자 및 농민 혁명을 통해 집권정부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게릴라전의 전단계로 테러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무자비한 테러리즘을 통해 정부의 과도한 대응정책을 유발시키고, 정부의 무능을 증폭시켜 보다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노동자 및 농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NPA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과 부패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NPA 지원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창설초기에 NPA의 대원 수는 2,000여명 이였으나 현재는 약 20,0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점차 세력이 성장하자 NPA는 공산당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방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시도는 물론 보안군, 경찰간부, NPA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에 대한 살해 및 협박 등을 통해 도시지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지난 30여년간 NPA는 점령지역을 중심으로 폭동·테러 및 게릴라전을 지속하였는데,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희생된 양측 및 민간인 사망자는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NPA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것은 필리핀의 열악한 경제여건과 관련이 깊다.

전반적인 경제적 낙후 상황에서 지방간 소득격차가 심화된 것이 NPA의 투쟁 공간을 확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마르코스 정부 당시의 계엄통치 기간(1972-1981) 동안 각종 사회적 비리를 틈타 세력을 확장하였다.

1986년 2월에 출범한 아키노 정부는 그 동안 구금되었던 시손 전 CPP의장과 전 NPA사령관을 비롯한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NPA와의 휴전을 모색하였으나  2달 동안의 임시휴전 이후 정부군과 NPA간의 전투가 재개되었다.

 

1992년 7월 라모스 정부의 출범을 전후한 시기부터 반군세력이 약화되었는데, 이는 냉전 종식 이래 국제공산주의의 쇠퇴와 중국 등 공산권의 지원 감소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필리핀 남부서 공산 반군·지역 부족 충돌…18명 사망

필리핀의 공산 반군이 남부 지역의 한 부족을 공격, 반군 12명을 포함해 모두 18명이 사망했다.

필리핀 언론과 외신은 15일 정부군 소식통을 인용, 신인민군(NPA)이 이날 새벽(현지시간) 남부 아구산 델수르 주의 마노보 부족을 습격, 양측간에 교전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NPA 반군의 공세로 불과 하루 만에 이처럼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군 소식통은 이날 2시간가량 벌어진 교전으로 NPA 반군 12명과 마노보 부족 4명이 각각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군이 교전 현장에 출동, NPA 측과 충돌하면서 양측에서 각각 1명이 추가 사망했다.

반군은 무장 헬기의 엄호 아래 작전을 개시한 정부군의 공세에 밀려 인근 산악지대로 퇴각했다.

마노보 족의 인명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NPA의 움직임을 사전 파악한 정부군이 관련 정보를 알려줘 미리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969년 무장투쟁에 나선 NPA는 최근 정부군의 잇따른 소탕작전으로 세력이 급속히 약화하자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마노보 부족을 기습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결 후 1969년 중국 - 소련 충성 모택동(마오) 진영이 공식적으로 현대 신(新) 인민군 설립, 필리핀 색의 최대한의 혁명 운동에서 CPP 전에 차 세계 대전에서 유래 "새 인민군"(NPA), 항일 전쟁의 상승이다 프로토 타입은, 독립적인 무장 세력이 된다.신(新) 인민군의 대통령 가르침을 따라, 반동 싸우는 필리핀 정부군과 무장 투쟁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필리핀 정부도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그들을 파괴되지 않았다.
외국 원조 끈기 싸움 하드 상황의 부재 필리핀 신인민군은 그 자체가 기적 40년 동안 지속. 그것은 필리핀의 인민군도 적극적으로 국제 공산주의의 정신을 이월 것을 말한다 사람들, 수천, 위원은 지난 세기에! 인도 마오 주의자에게 무장 투쟁을 안내하는 신인민군을 보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지금, 거의 30,000 군인과 8.90 년이었다 여전히. 필리핀은 보수적인 인민군, 동성 결혼의 구성원 허용!이 미국인보다 더 "인간의 본성."

 

7.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말레이시아 사라왁 비밀정당의 칼리만탄섬 공산당. 사라왁에서 1971년 9월 19일는 사바 브루나이 조직은 공산당을 형성하기 위해 합병했다. 회장 웬 밍 권한.이반 (어 자크) 사람들이 중국과 몇 회원. 지지자들은 무장 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했다.군대는 칼리만탄 인민군과 1969년 7월 13일 칼리만탄섬 게릴라의 설립을 확립  1965년 10월 26일을 주도했다. 원자바오 명나라 권리는 막내 마오 쩌둥 지도자, 종종 비밀 방문했다. 1978년 4월 3일 칼리만탄 공산당 비서 웬 밍 전원 선 4인 Dazhai 여단을 방문했다.

 

8.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타이 공산당(타이어: พรรคคอมมิวนิสต์แห่งประเทศไทย 팍코미우닛 행 쁘라텟타이, พคท.(PKT), -公産黨, Communist Party of Thailand, CPT)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타이공산주의 비합법 정당이었다. 타이에서 공산주의 활동은 1927년 이래로 이어져 왔으나 이 당이 공식적으로 창당된 것은 1942년 12월이었다. 애초의 명칭은 시암 공산당이었다. 정부의 반공 정책에 의하여 비합법화되었고, 대부분의 활동기 동안 선거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이 당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린 것은 1960년대부터였으며, 1970년 초 무렵에는 베트남 공산당에 이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공산주의 정당이 되었다. 어느 정도 내부 분열을 겪기는 하였으나, 활동의 절정기에는 사실상의 국가 내 국가로 활동하였다. 이 당의 지지 기반은 농민들이었는데, 실제로 농민 지지자는 적어도 4백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산하의 사병 조직은 1만에서 1만 4천 명 가량의 무장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당의 영향력은 타이 동북부의 낙후된 이산 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이 당은 타이의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는데, 주된 이유는 냉전의 종식이었다. 이 밖에도 내부 불화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 상황의 변화, 정부의 성공적인 반폭동 정책 등이 원인이 되었다.

타이 공산당의 당기(黨旗). 중국 공산당 당기와 동일하다

-2 년 전, 태국 사람들은 혁명 무장 투쟁의 첫 번째 샷을 발사, 화재의 혁명적 잠재력은 열려있는 모든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오늘날, 국립 일흔한 후추는 불길 스물 아홉 하우스에게 혁명 무장 투쟁을 점화했다. 태국 사람들이 점점 더 자주 무장 이니셔티브, 거의 팔백 시대의 총의 일반적인 적을 싸우고 2 년 이상은 거의 이천명 적을 파괴.

태국의 공산당의 지도력하에 태국 사람들의 무장 투쟁은 승리이다. 파키스탄 - 혁신적인 여행에 태국 사람들이 아무리 만남 어려움과 좌절 심각한, 단지 높은 맑스 - 레닌주의를 개최하지, 마오 쩌둥 사상, 붉은 물결, 장기화 사람들의 전쟁에 종사, 우리는 미제와 그 하수인 Inthanon에서 패배 할 수있을 것이다고 보는 반역 그룹. 최종 승리로 인해 1983년에 개최 총 과학적 사회주의 진영의 타이어 캠프 (무장 투쟁 파의 분파)에, 그러나! 싸우는 영웅 태국 사람들을 준수 속할 "5대"는 민주주의 투쟁 노선이 달려 무장 투쟁을 발표 "다음, 멸망하지 않지만, 총을 잃었지만,하지 부드러운 끓어 오르기 직전의 상태를, 및 붙여 넣기를 요리."총을 정권에 "전혀 틀림이 없는 것이다.

 

9.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원래 미얀마 북부의 마오주의자 공산당 반군을 지원하던 중국은 1990년대 들어 방침을 바꿔 미얀마 정부와 손을 잡았다. 유엔에서 미얀마 제재안이 나올 때 등 사사건건 미얀마 정부의 편을 들어줬다. 2008년에만 공식집계로 2억3250만달러, 비공식적으로는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차관 및 투자로 집행했다.

-소위 마오 주의자, 기사와 모택동, 마오의 이상주의, 애국심, 국가의 독립과 그 깊고 진지한 감정의 사람들의 기본 정신의 회장의 생각을 작성하는 것이다.

 

10.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모습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바탕으로 유격전과 테러 활동을 전개해왔다. 페루 공산당이 여러 분파로 분열된 1970년 조직되었으며 명칭은 페루 공산당의 창설자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가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혁명의 빛나는 길을 열 것이다"에서 유래했다.

빛나는 길의 창설자이자 지도자는 아비마엘 구스만 레이노소였다. '곤살로 동지'로도 알려졌던 그는 1934년 아레키파 근처 몰렌도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했고, 안데스 산맥의 고산도시 아야쿠초의 우아망가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1962~78). '센데리스타스'라고 불렸던 그와 추종세력은 소련·쿠바·중국에서의 '수정주의'가 순수 마오쩌둥 사상을 변질시켜왔다고 생각하고 그 복원을 모색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을 본보기로 삼았던 센데리스타스는 농민층에 기반을 두고, 장기간의 군사공세를 통하여 도시지역과 그밖의 부르주아 의회민주주의적 경향들을 분쇄함으로써 혁명을 달성하고자 했다. 최초의 무력행동은 1980년 5월 17일 아야쿠초 근처에서 일어났다. 초기에는 주로 안데스 산맥의 외곽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나 집중적인 폭격을 받게 되자 리마와 칼라오를 포함한 도시 중심지역에서 다양한 테러 활동을 벌였다

-페루의 공산 반군 '빛나는 길'의 지도자 3명이 뉴욕 법정에서 테러와 마약 및 무기류 밀거래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미 관리들이 말했다.
이 기소 사실은 2일(현지시간) 맨해튼의 연방법원에서 궐석 재판 후 공지되었다.
미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플로린도 플로레스-하라, 빅토르 키스페 팔로미노, 호르헤 키스페 말로미노 세 사람으로 반군 지원 자금 마련을 위해 국제 마약밀매 조직과 공조한 혐의, 외국의 테러 조직에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플로레스-하라는 현재 페루 사법기관에 구금되어 있고 다른 두 명은 잡히지 않았다.
'빛나는 길'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가장 격렬한 반군 집단의 저항을 기록했으며 총수 아비마엘 구스만이 체포된 1992년 이후로는 대부분 소탕되었다.
-문화 혁명 기간 동안 1967년에서 1968년까지 동안, 페루에서 공산주의 반군 설립자 구즈 베이징에서 훈련을 "경로가 빛나는"가장 존경 마오와 그의 아이디어. 위로 페루 페루 공산당 후, 구즈을 분할 마오 쩌둥 사상의지도와 "Sendero Luminoso"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11.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모습

일본 적군(日本赤軍,영어: Japanese Red Army, JRA)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1969년 조직된 일본공산주의 무장단체였다.

1969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일본적군은 경찰에 의해 대부분의 멤버들이 검거되었으며, 설립자인 시노미 다카야1970년 검거되었다. 적군파는 200명의 조직원을 잃었으며, 극소수는 1971년 7월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의 사상을 표방하며 연합 적군을 결성하였다

 

적군은 1972년 겨울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유명해졌는데, 사건 당시 수백 명의 경찰이 일주일간 포위하였다. 사건이 해결된 후 경찰에 의해 아사마 산장 사건 시 대치상황 가운데 사상단결을 목적으로 29명의 적군파 대원중 14명의 적군파 대원을 잔혹하게 살인한 것이 드러나면서 일본 내의 광범위하게 걸쳐있었던 적군파 일원들은 회의감에 사로잡혀 대부분 전향하거나 적군파 관련 작업을 그만 두었으며 일본 적군파가 해산된 제일 큰 원인이 되었다. 그 후 시게노부 후사코가 열성적인 멤버들만을 데리고 일본을 떠났다. 그녀는 40여 명의 지도부와 로드 공항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이는 세계적인 과격 좌파 집단의 무장중 하나로 가장 유명하다. 1971년부터 일본 적군파는 팔레스타인 자유 민중 전선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으며, 연합 적군은 1972년 사라졌다. 시게노부 그룹은 팔레스타인 전선(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의 지원을 받았다.

 

일본적군파의 공산주의 이념은 각 대원에 따라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랐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입헌군주제인 일본 정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 체제의 공화제 정부를 세운다는 세계적인 혁명을 실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제국 국제 동맹, 성전 동맹, 반전쟁 민주 전선 으로도 알려져있다. 2001년 4월, 시게노부는 검거 상태에서 적군파의 해산을 선언함으로 이슈화되었었다

 

-일본은 빨간색 1960 년대 일본, 중국은 파도가 아시아, 일본 청소년의 시간이 좌회전 선택해  아프리카 독립 운동, 베트남에 군사 행동에 미국에 없는 외국인에 급증, 적조의 라운드를 출발했다.

의식의 일본 마스터 스트림 - 오에 겐자부로 많은 소설, 다음 일본어 좌파 운동 설명의 전면과 측면이 있다. 그들이 수집 할 때 손을 어깨에 손을 옆 어깨, 사람, 그리고 흥분 도쿄, 교토, 오사카, 오키나와 거리에서 걷고, 반미 구호를 외치는 모습.

그 당시 텔레비전, 라디오, 자주 중국으로 중국의 문화 혁명 운동에 보고 된 신문, 이 보고서는 반복적으로 혁명적 열정 일본 청소년의 그 20 년 된 충동과 열정, 그리고 자기 희생을 자극했다. 일본의 공산당 "모택동(마오)" 많은 수의 "최상위"과 문화 혁명의 다른 문학, 촉매이 열정을 인쇄 할 수있는 기회를 했다, 중국이 젊은 사람들의 흥분은 일본에서 그 꿈을 스포츠로 복사된다. 물론, 또한 일본 당국이 또 다시 충돌을 생성한다. 청소년의 불만은 점차 힌트를 구입하는 미래에, 충돌시 더 과감한 행동을 증가했다. 붉은 군대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

1960 년대의 학생 운동이 점차 퇴조로 이동 한 후, 1960 년대 후반과 1970 년대 초반은 일본 적군은 역사의 무대를 시작했다. 붉은 군대의 구성원은 학생 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회원이었다. 억압 당국, 그리고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장 극단의 길을 갔다하기 때문에, 적군 파 조직과 태어났다 "항일 무장 동쪽 전면을."

  후자의 일본 기획 폭발, "興亞觀音像"(일본군에 의한 난징 대학살 난징 명령 사령관 마쓰이가 내장 점유하는 경우) 및 "7 명 순교 기념비"를 포함하여 일련의 폭발에 구현 (동부 도조 등 A 급 전범 영적인 편안함 기념물), MHI 폭탄 테러의 구현 (그들은 큰 사업 군인의 선발대의 제국 주의적 약탈의 구현 생각), 쇼와 천황 열차 폭발 (실패)의 암살을 계획. 붉은 군대는 국내 억압의 경우, 해외에 의존 된 세계에서 혁명 기본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북한에 1970 년에 납치되어, 1971 년 어떤 사람들은 지역의 게릴라 전투와 함께, 중동에 갔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고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중국은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 형태로 국가원수(국가대표-외교권과 중앙정부 수반)는  국가주석이고 군 통수권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이다. 작은 내각수장은 총리이다

국가주석의 임기는 임기제한 5년 중임제이며 총리 임기는 의회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총리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다

중국이 다당제와 자유선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군제도 군사위원회(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이 군통수권자가 돼야 한다"

*인민(人民)--개개인의 국민--기본권 향유자로서의 국민--권리장전 사람을 지칭할때는 인민으로 사용해야 정확하다(루소 사상:회의제 정부론)
*국민(國民)--주권자로써의 국민--이념적 통일체로써 국민--대한민국 사람을 지칭할때는 국민로서 사용해야 한다(로크 사상: 국민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사회민주주의) 공존(존중) 입헌군주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

 

"The Chinese government can advance as position and role to national military establishment and U.N. Forces which people's liberation army is not political party army though become power change atServiceman integration attention(Gunjeongtonghapju's)  Civilian government( people's government )[President and Cabinet]  inMilitary administration separation(Gunjeongbunriju's) leftist military administration[the Armed Service Committee]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중국정부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정[군사위원회]에서 군정통합주의 문민정부(인민정부, 민간정부)[주석과 내각]로 권력변경이 돼야 인민해방군이 당군이 아닌 국군과 유엔군으로 지위와 역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북한정부 "반미, 반일활동가를 애국자"로 우대[북한 대남정책 실행조, 예:과거 반미청년회와 반미여성회 등]

 

 

 

 

 

 

 

 

북한은 반미국가로 초등학교 운동회나 중학교 야유회등 각종 놀이에서도 미군 죽이기 놀이 게임을 실시해오고 있으며 각종 교과서에서도 반미사상 교육이 대부분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은 국제 반미투쟁가로 묘사하여 선전해오고 있다

중국, 러시아정부에서는 북미수교는 김일성 김정일노선 반미사상과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포기를 의미하며 수평적 권력교체나 수직혁명으로  김정은 제거를 의미하고 있다

북한정부 "NLPDR노선 반미, 반일활동가를 통일운동가 또는 애국자"로 우대하고 있다. 미국정부 인사나 미국 군인 등을 살인하는 것도 애국으로 학습화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반미나라 북한=북한 상류층 이데올로기 반미노선)

남한 사람 중에 NLPDR 노선 반미, 반일활동가 의식수준 사람이라면 북한정부 지적인력 요원(북한 대남정책 실행조, 예:과거 반미청년회와 반미여성회 등)이다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1990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설치(반미청년회 등 반미단체 통합)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김일성주의)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새세대(김정일주의=주체사상)로 지하신문 변경

1986년에는 강철서신 등에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영환등 강철서신(반제동맹)-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새세대(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

-1991년 12월 김정일 노동당 군사부위원장이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취임(김정일 북한 권력 장악)

1984년 5월 18일 김정일 직접 쓴 논설《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1984)  발표했다

-김정일  우상화 벽보 사진이 북한 곳곳에 등장

-1992년 11월 미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 정부 등장

-1993년 3월 김영삼정부 출범과 핵무기 보유설, 북폭등장 그리고 남한 한민전 서울대표부 1995년 해방 50주년 남북통일 결정적 시기 공식화 (반미자주정부와 전쟁론)

-1994년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분열[김대중-찬성파, 반미단체-반대파]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 사망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언론들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 주석이 “심장혈관과 동 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 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었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12월 17일 해군이 남해에서 격침시킨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 상륙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 심재춘씨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를 여수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했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출신)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반미 전쟁파 민혁당 와해와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선실 사망)
1998년 9월 5일 북한 제3공화국수립-세습제 좌익군정 헌법(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명목상 국가원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테러지정국

테러지원국의 지정은 화학, 생물학,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 해킹 기술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들로 지정한다..

여기에 '국제적 테러'에 가담, 지원, 방조한 나라들도 테러지원국에 포함하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 모든 무기수출 금지

- 테러에 사용될 수도 있는 물품 수출 금지

- 대외적 원조 금지

- 국제 금융기관 이용 불가

- 각종 무역제제 등의 국제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북한의 경우..

마약, 위조지폐, 대량 살상무기 등으로 테러지원국 지정에 많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또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설정이 되면.

국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수도 없으며, 각종 수출입 금지, 각종 대외적 원조 금지 등이 다시 시작된다

 

 

 

지금의 북한 세습제 좌익군정 체제로 볼 때 친북 김정은 세력은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세력 내부 NL(북한군부, 세습제 좌익군정이론-先軍정치와 반미, 국가사회주의)계열 즉 극단적 민족주의 그룹 반미세력입니다

과거 대표적으로 반미청년회나 반미여성회 등 한국민족민주전선(민족민주혁명당, 통일혁명당) 김일성주의 그룹입니다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앞에 나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나 사물, 안내원]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는 자본주의민주주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요원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의 적들은 공산주의자와 독재주의자(전체주의나 국가사회주의 세력)이다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는 북한지역에 파견 되어도 자본주의민주주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다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는 북한정부 대남공작조 방송이나 자료를 보고도 자본주의민주주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다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는 다음과 같은 세력을 적들로 규정한다

1.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세력-공산당 창당 추진세력

김일성과 모택동, 호지명노선 추종과 무장화 세력 등

 

2.친북 김일성주의 국가사회주의 세력이나 공산주의 세력

(1)선군정치(先軍政治)-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이나 군사정부 지지세력[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북한 상류층 입장]

ㄱ.김일성 직계 혈통주의(전주 김씨 왕조국가이론)

북한 최고지도자는 김일성 직계 혈통이 돼야 한다

ㄴ.북한 인민군은 김일성군대이다

ㄷ.새로운 통지이론(북한 상류층 이론)-김일성 직계 왕조(혈통)이론과 군벌이론

남북한에도 왕조국가(전제군주국)가 건설돼야 한다

북한은 토지 이외 모든 물건은 사적소유(사유재산)를 인정하지만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상류층은 외제 고급승용차와 50평이상 아파트, 골프생활, 외국유학 등으로 서구 상류층 만큼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다 북한 상류층은 김일성 직계 혈통 왕조(김일성 왕국)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김일성 직계 혈통을 왕자나 공주로 호칭하고 있다

김일성 직계 혈통주의 왕조이론도 반미이론 민족주의 기반이다 국제 반미투쟁가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추대하고 반미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혈통주의 왕조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공산주의 노선 보다는 세습제 좌익군정 국가사회주의 이론이다

 

(2)반미인사이나 반미단체-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반미 인민전쟁론) 주장하는 세력

ㄱ.북침설-한국전쟁 북침설이나 미국과 남한등이 전쟁세력으로 규장하고 북침설 주장하는 세력

ㄴ.박헌영을 미국간첩으로 북한정부 자료를 학습화하여 선전하는 세력[미국과 이승만, 박헌영등이 공모하여 전쟁을 추진했다]

박헌영은 마스-레닌주의(공산주의)자로 친소인물이다 그리고 박헌영 외상은 한국전쟁에서 대화형(협상용) 반미투쟁 입장을 추구하다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로 미국 간첩과 전쟁패전 책임으로 처형되었다

ㄷ.북한정부 반미정책을 실행조(국제 반미테러단체)로 반미 책자나 자료를 조직적으로 투쟁화 하는 세력[예: 한국민족민주전선-반미청년회나 반미여성회 등]

ㄹ.자주노선과 제2차대전 연합군 공로를 부정하는 세력[김일성 독자 자주노선과 소련군 참전 부정하는 세력-유엔 부정론 입장]

ㅁ.유엔군이나 연합군을 부정하는 입장-자주노선과 국가사회주의 이론

 

(3)사회주의자를 수정자본주의자로 규정하여 비판하는 세력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하지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한다[자본주의이란 개인의 사유재산, 영리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

ㄱ.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등을 수정 자본주의 세력이나 친미세력으로 규정하여 타도대상이나 제거대상으로 학습화하는 세력[공산주의 김일성주의자 그룹] 

ㄴ.중국 개혁개방세력 등소평노선을 부정하는 세력[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세력-마스레닌 공산주의 세력:김일성 학습화 그룹]

ㄷ.우리식 사회주의 건설과 김일성노선(자주경제론)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붕괴시킨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북한의 한 경제잡지가 주장했다
북한의 대표적 경제이론지 <경제연구(2003.1)>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을 비롯해 사회주의 배신자들이 주창한 현대 사회민주주의 경제이론은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당과 국가의 지도를 전면적으로 부인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붕괴시켜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초래한 기회주의적 사조>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전대통령은 지난 88년 소련공산당 제19차 전연맹대표자대회에서 경제에 대한 영도를 포기하고, 1990년 3월에는 <소련공산당은 사회의 지도적 및 향도적 역량이다>는 헌법조항을 삭제했으며, 1991년 8월 성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당을 해산해 경제에 대한 당(黨)적지도를 없앴다는 것이다
앞서 1986년 2월 소련 공산당 제27차 대회에서는 소련의 경제발전 속도가 떨어진 것은 경제의 독자성을 무시한 중앙의 지나치 간섭과 행정명령식 관리체계가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사회주의 경제관리체계를 헐뜯었다고 경제연구는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전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한마디로 걍제에 대한 당적 지도가 경제기관과 기업소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초래해 창발성을 마비시킨다는 이유로 당의 경제지도를 거부하면서 서실상 자본주의 복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이 잡지는 주장했다.
경제연구는 <엣 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국가의 통일적인 계획적 지도가 없어지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복귀한 것은 경제에 대한 당과 국가의 지도를 부인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경제연구 잡지는 <당적 지도를 부인하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의 근본원칙과 그 생명을 거부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대한 노동계급의 당과 국가의 지도를 드팀없이(흔들림없이)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ㄹ.머슴론과 김일성 일대기 봄우뢰 소설책을 탐독하는 공산주의 그룹

ㅁ.일본 천황제(입헌군주국)를 부정하고 공화국 수립을 주장하는 세력[자본주의 일본 입헌군주국을 타도하고 인민공화국이나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론]

 자본주의는 입헌군주국을 인정하지만 공산주의는 입헌군주국(사유재산)을 부정한다

 

3.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공산주의(마스-레닌주의) 세력자본주의 3대 원칙이란 사유재산, 영리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 등

(1)토지 국유화를 주장하는 세력

남한도 북한이나 중국처럼 토지를 국유화해야 한다[중국이나 북한은 토지 이외 모든 물건은 사적소유(사유재산)를 인정하지만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2)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으로 군(군인)이 경제참여를 인정하는 세력-북한 선군정치나 계획경제북한은 남녀징병제 국가로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북한 군인이 경제참여를 인정하고 있다(북한 군부 국방위원회 주도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집단주의 경영론과 거주(집단농장- 일부 기독교등 공산주의 유사종교단체)

"한국 신흥종교가 교주명칭으로 미국 인민사원 사건처럼 집단주의[교회기업 사회주의, 교주(사장)와 신도(직장인)] 세습제 좌익군정 세력(사회주의 추종세력)이 되지 말아야 한다"

 

(3)머슴론과 김일성 일대기 봄우뢰 소설책을 탐독하는 공산주의 그룹

 

4.친북 김정은 세력--반미세력이나 대한민국 부정입장 세력

(1)북한 상류층 이데올로기-선군정치와 김일성 혈통주의(김일성 직계 혈통주의 왕조이론)

김일성 직계 혈통주의 왕조이론도 반미이론 민족주의 기반이다 국제 반미투쟁가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추대하고 반미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혈통주의 왕조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공산주의 노선 보다는 세습제 좌익군정 국가사회주의 이론이다

(2)반미인사이나 반미단체-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반미 인민전쟁론) 주장하는 세력

북한정부 반미정책을 실행조(국제 반미테러단체)로 반미 책자나 자료를 조직적으로 투쟁화 하는 세력[예: 한국민족민주전선-반미청년회나 반미여성회 등]

김일성 교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노선 말 따라 움직이면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구국전선

1단계 반미전선

민족해방(NL, 반미투쟁)=좌우익연합전선 구축(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반미전선은 친미, 친서방세력 제거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좌파연합전선 구축으로 우파세력 제거

3단계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 선군정치노선으로 반김일성 세력 제거"

-김일성 책자를 배우고 학습해라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각종 자료나 책자를 버려라 그들은 자본주의 세력(친미세력)이다

-눈(目, Bird's Eye=자유)이 아닌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가 되어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3)북한정부 대남공작부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4)대한민국 부정론자

극단적으로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거나 한미이간이나 6자회담 파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비판 책자 발간하는 등 반한세력

 

 

 

 

                                                                          반공반독재구국전선 경남지구 Eye-Guide Ear[길잡이]

                                           Night Watch[intelligence] is Bird's Eye[reading] or(and) Guide ear[language]

 

독일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남북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 반공반독재구국전선-

 

 

                                                                                              Night Watch[燈火]

 

경남지역 친북,종북세력이란 반미단체(김일성주의 NLPDR)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 김정일(김정숙)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오늘 이 시간에는 경남지역 친북,종북세력에 대하여 논의 해보고자 합니다

허아성:경남지역 친북, 종북세력을 지칭할때 주사파(김일성-김정일 공산주의자, 전통과 계승) 또는 김일성파(노동당 NLPDR,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인민회의정부론), 선군정치 김정은파(先軍政治, 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왕조론-국가사회주의 이론, 김정일 김정은파)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 입장에서 대북정책이나 북한 자료를 수집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은 친남한 친미세력으로 지칭할 수 있으며 남북협력세력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남북협력세력을 수정 자본주의자나 친미 자본주의 세력으로 지칭하면서 사상범으로 처벌돼 오고 있습니다

세습제 좌익군정 선군정치 김정은 시대 경남지역 친북, 종북세력이 사라지고 수정자본주의자(사회민주주의 세력)나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성장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하면서 진보세력을 연구해온 분들과 경남지역 친북종북세력에 대하여 논의 해보고자 합니다

S선생은 학생운동때 농민단체와 관련하여 각종 연구소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경남지역 종북친북세력 김일성파로 반미투쟁을 김일성 봄우뢰 소설책처럼 머슴론이나 "농촌으로 가자" 현장이론 공산주의 운동을 주장해왔습니다 세습제 좌익군정 선군정치 김정은 시대에서 수정자본주의자(사회민주주의 세력)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노선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과 같은 노선을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S선생은 반미투쟁이 북한 상류층 지배세력노선 김일성 직계왕조이론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김일성 항미론 입장으로 생각합니까?

 

S선생:북한정부 항미론은 미국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혁명사상과 전통계승으로 대를 이어 충성 김정일, 김정은 승계 김일성 혈통노선입니다

미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직계 가족이 열렬한 투쟁 항미론자라는 입장입니다

이런 항미론도 북한 상류층 지배세력 노선으로 김일성 직계왕조이론이며 김일성 사상 봄우뢰나 각종 자료처럼 머슴이나 노동자, 농민 피지배세력 평민층 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는 머슴이나 마름(소작농)을 좋아했습니다[공산주의는 사유재산(자본주의)을 부정함으로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으로 소유로 자작농(개인 소유 농장)을 부정합니다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자본주의)을 인정함으로 토지는 개인이나 국가, 법인 소유로 자작농을 육성합니다]

그도 공산주의자 보다는 주체탑 건설로 공산주의 인민회의제 정부론을 부정하고 자주노선 우리식 사회주의 국가(국가사회주의)를 인정했습니다

우리식 사회주의 국가(국가사회주의)는 대를 이어 충성 주체사상 세습제 좌익군정(김일성 직계왕조)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북미수교는 중국처럼 김일성 직계왕조 세습제 좌익군정 종식을 의미하고 자유화 개방화 개혁개방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도 군정이 종식돼야 외세 러시아나 중국 개입이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군정은 정치불안과 평민층 경제붕괴로 정치적, 경제적 외세 개입이 증가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경남지역 농촌도 극단적 민족주의 운동보다는 친족주의나 가족주의 운동과 함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노선(사회권=생존권 존중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농촌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허아성: 일제시대 머슴론 친북종북이론 보다는 수정자본주의를 해야 경남지역 농촌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죠

각종 전통 우리 농산물이 사라지고 있으며 1대 농민만 있으니 자유주의보다는 사회주의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죠

 

S선생:중국산 값 싼 농산물로 많은 전통 농산물이 사라지고 있으며 자유주의 농업정책으로 1대 농업가구만 있는 것이 한국 농촌의 현실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 입장에서 사회주의(사회권) 농업이 필요합니다 가족주의 농업으로 가계농업과 부농(富農)으로 등장하거나 토지소유 기반으로 기업농장으로 등장돼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맛 좋은 농산물로 일본이나 중국 중산층과 부유층등에 판매하는 농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보다는 수정 자본주의가 좋다는 입장입니다

농촌에서도 2대나 3대 농업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구(가계)라면 한국사회에서 부유층입니다 2대 농업인은 논이 20마지나 30마지 소유주라는 의미입니다

교육도 2대는 대학졸업한 농업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농촌입니다 

경남지역 농업인 2대 자녀들은 경남지역 농대에 다니는 것도 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허아성:본인도 농촌은 자본주의보다는 가족주의나 전통주의(보수주의)를 존중하는 수정자본주의 노선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생존권)노선 입장을 존중합니다

B선생은 아직도 경남지역에서 친북종북(NLPDR)성향 반미여성회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경기도나 대구경북, 광주 전남보다는 활동 조직이 미미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반미여성회등이 남북군사대결을 노림수(유인) 부대라는 보는 분도 있습니다

 

B선생:반미여성회는 해체되었습니다

반미여성회는 북미수교 반대를 하는 북한정부 내부 항미론자 입장입니다

항미론자는 북한 핵무기 보유와 남침을 인정하는 북한 군부세력입니다

항미론자는 남로당내부 이주하, 김삼룡등 대남 간첩이나 박헌영등을 미국간첩으로 규정하는 김일성 추종세력입니다

북한정부 내부에서도 남북협력과 북미수교, 북일수교세력은 개혁개방세력으로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실용주의 그룹이며 친남한 친미성향 인사이고 미국과 전쟁을 추구하면서 남침도 정의 전쟁(전쟁은 정책수단)으로 규정하는 항미론자는 남북 전쟁세력, 남한내부 친북종북세력입니다 

경남지역에서도 반미여성회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 운동은 사라져야 합니다

21세기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경남지역 우수한 공산품이나 농수산물이 미국 시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미국 선진국 기술과 연구자료가 경남지역 농촌이나 공장 그리고 대학등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들어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고유 전통농수산물 분야입니다

그 이외 모든 분야는 남한 것이 좋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허아성: B선생 말로는 반미여성회가 해체되었고 지역여성회에도 반미성향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씀이죠

북한 반미성향 김일성 각종 서적을 버려야 젊은세대들이 반미성향이 되지 않습니다

유엔이나 미국, 일본, 유럽, 러시아, 중국등 각종 서적이나 인터넷을 자유화 개방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B선생:지역 여성회에서도 참고 하겠습니다

지방자치단체도 자유화 개방화 돼야 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역 여성회는 아동이나 노인 보건복지분야에 참여하여 여성들의 일자리 확대와 지방자치단체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허아성:좋은 의견입니다

경남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께서도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전체주의(독재주의)!" 구호로 무장화 해야 자본주의 경제나 수정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M선생, 간첩(북한출신이면서 북한정부 인사), 고정간첩(남한출신이나 북한출신이면서 북한정부 인사 포섭돼 월북과 간첩교육을 마치고 남파), 친북종북세력(김일성주의자 사상범, 반미성향 극단적 민족주의 그룹  반정부인사이나 국가사회주의자 )등이 있습니다

친북종북세력은 세습제 좌익군정 김정은시대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민혁당 그룹 김영환씨 등이 북한 자유화 민주화 운동에 참가 이후  친북종북세력이 사라지고 북미수교나 북일수교, 남북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반미노선 철폐와 북한정부 개혁개방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M선생께서는 과거 북한 공작원이 반미단체 간부를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 그리고 납치나 월북유도해왔습니다

그런시대에서 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한으로 탈북하는 시대가 김정일, 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정입니다

어떻게 봅니까?

 

M선생:북한정부 대남간첩은 북한정부 출신이면서 북한정부 인사(대남공작원)입니다

과거에는 김일성 사상과 선전물로 의식화, 학습화하는 반미성향 단체를 결성한 남한 진보세력 간부를 포섭하여 친북종북 김일성운동을 추진해왔지만 요즘은 돈(경제행위)으로 포섭하여 친북종북인사로 활용해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북한 상류층이나 평민층, 빈곤층 각종 자료나 사진, 영상물을 보고 북한정부를 비판하지 지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 김일성파로 자청하는 사람들에게 북한 상류층이나 평민층, 빈곤층 각종 자료나 사진, 영상물을 보여주니 대부분 사람들이 북한정부 비판세력이 되었습니다

북한정부 계층 구분도 돈(경제행위)입니다

김정은 정부도 과거처럼 대남 포섭인사는 반미세력(김일성주의 NLPDR 세력)입니다

남한출신이 간첩이나 고정간첩이 되기는 어려습니다

 

허아성:북한정부도 중국처럼 토지 이외 모든 물건을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입니다

중국이나 북한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 국가이지만 중국은 국가주석이 5년 중임제, 총리는 의회의원 임기와 동일하며  군 통수권자 군사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이며 임기 제한이 없고 군통수권자이면서 행정, 군사실권자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임기제한이 없습니다

북한정부 현역군인이 대의원이나 장관 겸직이 가능한 선군정치 군사정부입니다 현역군인이 대의원을 1/2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한 젊은이 남녀는 중학교 졸업 후 군 입대하여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친북종북세력(국가안보 위해사범)을 주사파(김일성-김정일 공산주의자, 전통과 계승) 또는 김일성파(노동당 NLPDR,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인민회의정부론), 선군정치 김정은파(先軍政治, 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왕조론-국가사회주의 이론, 김정일 김정은파)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모택동은 미국과 수교이후 친서방 실용주의 등소평 정부 등장이 가능했고 김일성은 핵무기 포기와 북미수교를 추진했지만 북한정부 내부 항미론자들의 저항으로 북미수교와 남북정상회담이 실패했고 북한 헌법 제3공화국은 김정일, 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정(국방위원회와 인민군총참모부) 국가사회주의 노선으로 항미론자 북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제1공화국 인민회의정부 인민민주주의 헌법, 제2공화국 세금없는 사회주의 헌법, 제3공화국 선군정치 세습제 좌익군정 헌법]

북한군부는 북미수교가 항미론자(남침세력) 제거와 등소평 정부처럼 수평적 권력교체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남북분단 유지와 현상유지로 북한 상류층 권력을 유지하는 입장 핵무기 보유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미수교는 항미론자 제거와 김정은정부 붕괴를 가져올 것으로 봅니다

미국정부는 북미수교가 남북통일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정부 지배층은 대부분 중국 의용대출신보다는 극동지역 소련군 출신 집안들입니다 김일성 중국 공산당(만주 공산당) 출신이면 극동지역 소련군 출신입니다 북한 노동당 김일성과 이라크 아랍사회당 후세인이 소련군부 쿠데타를 지지했습니다 소련군부 영향력이 국가사회주의 성향정부에 큽니다

북한정부 내부 항미론자 제거와 중국 동북3성(중국정부), 러시아 극동지역(러시아정부) 주민들이 남북통일을 지지할때 남북 합의 통일이 될 것으로 봅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前대통령 "고르바초프 선생, 베를린 장벽의 파괴를."

1990년 9월 12일  레이건 미국 前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는 동안 베를린 장벽의 사이트에 가서, 레이건 대통령이 망치 끌로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지난 1989년 11월9일, 독일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30년 동안 동서 진영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세계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장벽에 올라가 환호하고 망치로 장벽을 부수는 모습을 TV로 생생하게 지켜봤습니다


독일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남북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 반공반독재구국전선-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지난 1989년 11월9일, 독일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30년 동안 동서 진영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세계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시민들이 장벽에 올라가 환호하고 망치로 장벽을 부수는 모습을 TV로 생생하게 지켜봤습니다

1989년 11월 10일 많은 독일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붕괴, 동독과 서독 국경 개방을 축하하기 위해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에 서 있는 사진이다

 

1989년 11월 10일에 찍은 사진과 2014년 10월 18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철거 이후 새로운 교통 법의 발효로  하루에 수 십만 자동차들이 장벽 없는 하나의 민족으로 동서독으로 달리고 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모습.  윗 사진은 1989년에 찍은 사진이고 아래사진은 2014년 10월 15일에 찍은 사진이다

 

*브란덴부르크 문(독일어: Brandenburger Tor)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개선문이다. 1788년부터 1791년까지 건설되었고, 건축가는 K. G. 랑간스이다. 랑간스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본떠서 지었다. 위에는 샤토가 조각한 "승리의 콰드리가 전차 조각상"이 있다. 19세기 이후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이 개선할때 반드시 통과하는 장소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복원 공사를 했다. 독일의 재통일 전에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인 문이었다.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마라톤과 경보 경기의 출발점과 결승점으로 사용되었다.

 

 

                  베를린 파리 광장 모습. 윗 사진은 1989년 가을에 찍은 파리광장이고 아래 사진은 2014년 10월 22일 찍은 베를린 파리광장 모습 사진이다

 

1986년 7월 21일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윗 사진) 1989년 11월 10일 브란덴부르크 전쟁 베를린 벽의 앞에있는 사람들의 그룹 (가운데 사진) 2014 10월 13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아래 사진)

 

             1961년 8월 14일는 동독 인민군 병사들이 베를린 장벽과 철조망 울타리의 발기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다

 

        1961년 8월 동독 노동자들이 벽돌로  베를린 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다

 

  

               1961년 8월 15일는 Bernauer 거리에 철조망을 구축하는 동독 군인 모습. 서독으로 자유를 찾아 달아날 수 있는 그의 가족들을 가로막는 베를린 장벽.

 

          1987년 6월 12일  미국 로널드 레이건 前대통령께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선언 "고르바초프 선생, 베를린 장벽의 파괴를."

 

1989년 10월 7일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왼쪽), 강경한 공산주의 동독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 (오른쪽) 국가주석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 4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고르바초프는 호네커에게 "시대의 맥박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1989년 10월 18일 호네커 국가의장(국가주석)직에서 사임했고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 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많은 동독 주민들이  쿠르 퓌르 스텐 담 (베를린의 유명한 가로수 길) 등장했고 베를린 장벽 붕괴 시위에 참여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1월 10일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하기 위하여 기차역에서 왕래 표를 구입하는 모습,  11월 11일 동서독 주민 자유왕래를 인정했다

 

1990년 1월, 베를린 장벽을 동독 국경 수비대 경찰 크레인으로 해체하는 모습

 

           1990년 9월 12일  레이건 미국 前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는 동안 베를린 장벽의 사이트에 가서, 레이건 대통령이 망치 끌로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자유화, 민주화는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과 사회주의(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입니다"

 

주택으로 본 평양 시내 빈부격차

 

 

 

 

 

 

평양 시내에 북한 상류층이 거주하고 있는 평양 만수대 고밀도(高密度) 호화 고층 아파트 주택촌, 중산층과 평민층 아파트 주택촌,   평민층과 빈곤층 슬레이트 지붕[판자촌] 등 모습입니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인이나 외국인 투자가들도 상가나 고급 아파트등을 소유하고 있는 분도 많다 북한이 개혁 개방화 될 수록 임대 아파트보다는  개인 소유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현재 평양시 인구는 북한 전체 인구의 약 10%인 2백 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1인당 GDP 583달러(2012년도,채무불이행 국가) 국영자본체제 북한

 

 

 

 

 

 

 

 

 

 

 

 

 

 

 

 

 

 

 

 

 

 

 

 

 

 

 

 

 

1인당 GDP 583달러(2012년도,채무불이행 국가) 국영자본체제 평양 모습

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창설 70 주년을 맞이했는데 북한정부는 일부 외국 기자의 입국을 허용했다. 사진에서 북한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것 같은 모습과 달리 거시적 입장에서 경제가 수렁에 빠진 국가는 아니라 것을 알 수 있다

미시적 입장에서 북한 경제는 국영 자본체제 국가[국영기업]로 사기업 []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 주민 경제는 1인당 GDP 583달러(2012년도,채무불이행 국가) 후진국이다

 

*국영 기업 []

국가 직접 세워 운영하는 기업

*공기업 []

국가 공공 단체 자본으로 설립하여 운영되는 기업

*사기업 []

개인 또는 사인() 같은 민간인 출자하여 경영하는 기업

공산주의 국가에는 원칙적으로 사기업 존재할 수가 없다

사기업 []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업체제이자 현대 고도산업사회의 핵심적인 구성체로 산업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Capitalism  Anti Communism!]

*Three principles of capitalism:Private property, pursuit of profit, Principle of free market competition Etc.

 

*국영자본체제 북한(자료)

1인당 GDP 583달러(2012년도,채무불이행 국가) 국영자본체제 북한

1.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인이나 외국인 투자가들도 상가나 고급 아파트등을 소유하고 있는 분도 많다 북한이 개혁 개방화 될 수록 임대 아파트보다는  개인 소유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북한 주민 계층은 상류층, 평민층, 빈곤층(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북한 상류층 30%이내이며 평민층 70%, 평민층 중 빈곤층 33%이내: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이 1990년대  초반 420만명, 중반 700만명이었고  긴 식량 위기의 10 년 후, 2007 년까지 북한  전체 주민의 33 %, 즉 78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2.북한 남녀징병제 국가로 남자 10년간, 여자 7년간 군 복무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실질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상인 70만명이 많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중국은 직업군인 지원 모병제이지만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북한 인민군 병사의 수는 112만 명으로 이 중 여성 군인은 15% 약 17만명에 달했다. 북한의 인구는 약 2400만명으로 1000명에 7명이 여성 군인, 인민군 군인 100명에 15명이 여성 군인 ​​셈이다

병역 근무 자리 비리가 북한 군부내 가장 큰 비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매관행위는 인민군을  감시하는 총정치국 정치 지도원이라는 유리한 자리에는 5 천 ~ 2 만 달러 (약 50 만 ~ 200 만 원), 지방 관리는 약 5 천 중국 위엔화 (약 8 만원)에 직위를 사고 파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통은 "공직에 붙으면 뇌물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1주일에 의거을 회수 할 수 있다고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