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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미사일 공격 후 전투 태세 갖춘 이스라엘군 본문

Guide Ear&Bird's Eye/이스라엘과 모사드(Mossad)

헤즈볼라 미사일 공격 후 전투 태세 갖춘 이스라엘군

CIA bear 허관(許灌) 2015. 2. 22. 18:01

 

 

 

 

이스라엘 군인이 2015년 1월 28일 이스라엘-레바논 접경 인근에서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 후 장갑차에 올라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후 레바논 접경에서 헤즈볼라 미사일 공격에 군인 2명이 숨졌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레바논 국민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발발 우려 확산

이스라엘군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간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 인터넷판이 2015년 1월 28일 보도했다.

이는 이날 레바논 헤즈볼라가 발사한 미사일에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한데 따라 이스라엘이 즉각 대응에 나서 레바논을 향해 수십 발의 포격을 가한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레바논에서 유엔 평화유지군(UNIFL) 소속 스페인 병사 1명이 사망했다.

헤즈볼라는 열흘 전인 지난 18일 이스라엘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로 헤즈볼라 대원 6명과 이란군 장성 1명이 사망한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날 충돌은 지난 2006년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 간에 약 한 달에 걸쳐 전쟁이 벌어진 이후 가장 격렬한 충돌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늘 공격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누가 됐던 완전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고 다짐했다. 네타냐후는 또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레바논과 시리아 정부도 자신들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공격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으며 이란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새 전선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외무장관 역시 "이스라엘은 매우 강력하고 불균형한 방법으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도 추가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18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에 이미 복수를 다짐한 바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3국의 국경이 접하고 있는 이 지역은 지난 수 년 간 비교적 평온을 유지해 왔었지만 4년이 다 돼 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점점 이곳으로까지 번지면서 최근 긴장이 고조돼 왔다.

이스라엘군이 이날 셰바 팜스 지역의 민간인들을 소개시키면서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사망한 만큼 강력한 대응이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헤즈볼라는 셰바 팜스가 레바논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영토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베이루트에 소재한 아메리칸 대학의 히랄 카샨 교수는 "28일 이스라엘의 포격이 강력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스라엘이 대규모 전투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레바논의 한 정치관측통은 이스라엘군에 대한 공격은 "헤즈볼라가 놓은 덫"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측통은 헤즈볼라가 추가 공격에 나설 것임을 알리면서 "1호 성명"이라고 밝힌 것은 앞으로 공격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에서 도발을 하는 자들은 가자에서 일어난 일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여름 약 50일에 걸쳐 펼쳐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21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가자 지구가 황폐화됐었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헤즈볼라(신의 당)는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이슬람 무장조직이다. 정식 명칭은 레바논 이슬람 저항을 위한 신의 당(히즈발라 알모콰와마 알이슬라미야흐 피 루브난, Hizb Allah Al-moqawama Al-Islamiyah fi Lubnan)이다. 시아파이며 시리아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레바논 정규 군대보다 더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헤즈볼라의 행동에 대하여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국내적으로는 학교 설립등의 공익사업을 벌이면서도, 국제적인 테러와 무장공격에 연루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미국과 더불어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연합등 세계 각국은 헤즈볼라 전체 혹은 일부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당시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한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하여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이 차지했던 레바논 지역에서 저항 활동을 하였다. 헤즈볼라의 지도자들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군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조직하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헤즈볼라의 강령에는 세 가지 주요 목표로 레바논에서 "식민주의자를 물리치며", 레바논의 우파 무장집단인 카테브 당에 대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심판하며, 레바논에 이슬람 정권을 세우겠다고 제시하였다.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파괴를 주장하는 언설을 수차례 쏟아내며,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은 민병대로 출범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라디오와 위성 텔레비전 방송국을 갖추고 사회 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레바논의 시아파 사람들은 헤즈볼라를 열렬히 지지하며, 이들은 2006년 레바논 전쟁 직후 레바논의 타종교 신자(순니파, 기독교 신자, 드루즈파)의 지지도 얻었으며, 시위에서 수십만 명을 끌어모았다. 헤즈볼라와 여러 단체들은 2006년에서 2008년 사이 레바논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의 정부에 반대하여 시위 운동을 개시하였다. 헤즈볼라가 주도하는 전사들이 시니오라에 충성하는 미래 운동 민병대를 물리치고 서부 베이루트 인근 지역을 점령했다가, 이 지역을 레바논 군대에 넘기기도 하였다. 결국 도하 협정을 근거로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에서 거부권을 얻었다. 또 레바논 연립 정부가 구성되어, 헤즈볼라 출신 장관 한 명이 입각하였으며, 의회내 30석 중 11석을 확보하였다.

헤즈볼라는 이란시리아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과 여타 시아파 교도의 기부를 받고 있다. 레바논은 지난 몇 년 동안 군사력을 크게 증강하였다. 2008년 6월 유엔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보장하였지만, 그해 8월 레바논의 새 내각은 만장일치로 헤즈볼라를 무장 단체로 인정하며 "점령지을 회복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안에 승인하였다. 1992년 이래 헤즈볼라는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이 이끌고 있다.

 

1.역사

-1992년 하산 나스랄라를 사무총장으로 선출하였다.

-2005년 레바논 총선에서 헤즈볼라-아말 연합이 총 128석 중 35석을 차지하였다.

-2006년 7월 이스라엘레바논을 침략함에 따라 이스라엘선전 포고하였다.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한 것이 원인이 되어 발발하였다.

-2008년 5월 9일: 헤즈볼라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하였다

 

2.레바논에서 이란식 시아파 이슬람공화국 건설

이란으로부터 활동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시리아로부터 무기를 지원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창설 초기 헤즈볼라의 투쟁목표는 다(多)종교 국가인 레바논에서 이란식 시아파 이슬람공화국 건설과 중동지역에서 비(非)이슬람 서구세력을 추방하는 것이다. 특히 레바논을 이스라엘 점령상황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투쟁의 1차 목표로 내세워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헤즈볼라를 테러조직으로 분류해놨다. 반면 아랍권 전역과 유럽 일부 나라는 헤즈볼라를 합법적인 시아파 정치 단체로 보고 있다.

-전 세계적 이슬람 성금 네트워크를 구축해 성금을 받고 있으며 이란시리아의 자금 지원 및 무기 밀수, 이스라엘인 납치 몸값 등 다양한 자금줄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헤즈볼라는 그 어느 테러 조직도 시도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슬람과격파조직 이슬람국가(IS)가 "8명 이라크정부 정보요원(비밀요원) 공개 처형"하는 비디오를 공개했다 이슬람과격파조직 이슬람국가(IS)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일삼고 있다

2월 5일 프랑스 AFP 비디오 소셜 미디어 게시에 따르면, 이미지 데이터에 각 행에 무릎을 꿇고 손을 묶여 있는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8명 피해자들의 총살 준비 실행 장면 그리고 피해자 뒤에는 몸 검은 드레스 마스크 무장 세력이 서 있었다.

그 후, 피해자의 눈을 가리고 이슬람과격파조직원이 피해자 목을 잡고, 강을 따라 그들을 호위 "실행의 장소를" 이동하는 장면이 나왔다

8명 피해자 도착, 처형장소에서 8명 피해자를 권총 총격으로 처형했다

권총 총격살해 한 후 뒤에, 처음 8명 피해자 사람들은 여전히 상체를 세우고, 사진 디스플레이 일곱 사람들은 혈액 머리에서 버블 링, 죽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총격 살해실행, 또한 이슬람 국가 집단이 사형 집행 후 "사진을  비디오 공개했다"

동시에 비디오 및 사진을 게시, "소셜 미디어 텍스트를 첨부입니다  우리는 반군의 '사파 정부'작품으로 8명 비밀요원 처형을 실행했다"고 구호화 했다

1501-1736년 지배 사파비 왕조는 이란의 페르시아를 설립했다.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국가이며, 따라서 그것의 다른 시아파 정권과 그 이데올로기를 대신 사파 정부에 수니파 이데올로기이다

사파비 왕조는 사파비 가의 이스마일 1세를 시조로 하는 이란의 왕조(1501~1736)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왕조들이 수니파를 믿은 것과는 달리 사파비 왕조는 파티마 왕조와 함께 대표적인 시아파 이슬람 왕조이다.(시파비왕조는 수니파 기반으로 시아파 왕조이다 IS도 이란 시리아정부 원조 헤즈볼라처럼 IS 지도부는 시아파가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비디오 데이터 아래에 캡션에 따르면 여덟 피해자가 위장 잠입에, 그들이 "이슬람 국가"로 혼합 한 경찰이었있음을 보여준다

*사파비 왕조(페르시아어: صفویه)는 사파비 가(家)의 이스마일 1세를 시조로 하는 이란왕조(1501년~1736년)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왕조들이 수니파를 믿은 것과는 달리 사파비 왕조는 파티마 왕조와 함께 대표적인 시아파 이슬람 왕조이다.

이스마일은 시아파 제7대 이맘의 자손으로서 1502년 아제르바이잔의 아크 코윤루(Ak Koyunlu:白羊) 왕조를 꺾고, 타브리즈에서 독립했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했다. 그는 아라비아어풍의 술탄 칭호를 배척하고 페르시아어의 존칭 ''를 사용하였으며, 또 12이맘파(派)를 국교로 정하는 등 이민족 지배에서 벗어난 이란 민족주의를 강조하였다.

시아파를 지도 정신으로 하는 이 왕조는 무굴 왕조우즈베크계의 칸국들과도 원정을 하기도 했었고 또는 수니파(派)의 오스만 제국과 대항하게 되어 투르크의 침입을 받아 천도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대제가 나오자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영국인의 지도로 군제(軍制) 개혁을 단행하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광대한 실지(失地)를 탈환하였다 또 내정에도 빛나는 치적(治績)을 올려 수도 이스파한의 장려함은 유럽 세계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아바스 대제의 사후 사파비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다시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을때마다 영토를 잃게 된다 또 1722년에는 아프간족에게 수도를 점령당함으로써 사실상 쇠퇴하였으나 왕통(王統)은 11대 1736년까지 존속되었다. 이후 이란 지방은 18세기 말 카자르 왕조에 의해 재통일되었다.

사파비 왕조 시대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여러 나라가 페르시아의 비단을 얻고 오스만 제국에 대하여 공동 전선을 펴기 위하여 친분 관계를 맺었다. 또한 인도 동쪽의 식민지와의 연락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투어 우호 관계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