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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 Ear&Bird's Eye/일본

한국정부, 북일합의 이해하면서도 경계감

CIA Bear 허관(許灌) 2014. 5. 30. 17:39

 

                                                                         북한정부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나 실종자 모습(사진)

일본과 북한의 정부간 협의에서 북한이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일본인 실종자의 전면적인 조사를 약속해, 재조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일본측이 제재조치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합의한데 대해, 한국정부는 일본의 입장에 이해를 나타내는 한편, 일미한 3개국의 공조가 흐트러지는데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습니다.

한국 외무부는 30일 새벽, 한국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일본정부의 공식발표 직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고 밝히고, "인도적인 견지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한편으로, "일미한 3개국은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통인식을 가지고 있어,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 북일협의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해, 일미한의 공조가 흐트러지는 데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계속하는 가운데 북일협의가 진전되는데 대한 경계도 강해, 앞으로의 향방을 신중하게 지켜본다는 자세입니다.

 

 

아베 수상, 북한의 전면 조사 이행 촉구하겠다고

아베 일본수상은 수상 관저에서 기자단에 대해, 북한이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일본인 실종자의 전면적인 조사를 약속한데 대해 성과를 강조하고,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북한에 강력히 촉구해 갈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아베 수상은 "이번 합의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납치 피해자 뿐만 아니라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특정 실종자를 포함한 모든 일본인의 조사를 약속하고 일본인이 발견되면 귀국할 수 있도록 북한이 힘을 쏟겠다는 것도 문서로 남겼다"며 성과를 강조했습니다.

아베 수상은 또,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를 실행하도록 강력히 촉구할 것이며, 앞으로도 북한이 이 약속을 실행하도록 강력히 촉구해 가겠다"고 말해, 납치 피해자 등의 귀국으로 이어질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북한에 강력히 촉구해 갈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일본 스가 관방장관, 북한은 1년 이내에 조사결과 내야 한다

스가 일본 관방장관은 각료회의 후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약속한 납치피해자를 포함한 일본인 실종자의 전면 조사에 대해 북한이 1년 이내에 조사결과를 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스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측이 강한 권한을 가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조직과 구성, 책임자 등을 일본에 통지하겠다고 명확히 언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가 관방장관은 북한 측이 조사결과를 순차적으로 통보하겠다는 것과 관련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겠다는 생각을 강조했습니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어 조사기간에 대해 "아무리 길어도 1년 이내로 해야 하며 장기간에 걸친 조사여서는 안된다"고 해, 북한은 1년 이내에 조사결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자단이 "북한 대응에서 미국과 보조를 취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데 대해 스가 관방장관은 "사전에 조정해 보고했으므로 일미간 보조는 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일일이 허가를 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후루야 납치문제담당상, 북한의 행동 주시하면서 해제 내용 검토

후루야 납치문제담당상은 각료회의 후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납치피해자를 포함한 일본인 실종자의 전면적인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관련해 제재조치 해제는 북한의 향후 행동을 주시하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후루야 납치문제담당상은 "협의에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할 수 있었다"며 "드디어 진정한 의미에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된다는 인식 하에 진지하게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후루야 납치문제담당상은 또, 제재조치의 일부해제에 대해 "어떤 제재부터 해제할지는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을 주시하면서 대응하겠다"고 말해 북한의 향후 행동을 주시하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의 아버지 시게루 씨와 어머니 사키에 씨가 지난 3월 도쿄의 외신기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녀 상봉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납치피해자 가족, 실종자 귀국으로 이어지도록 요구 방침

북한이 납치피해자 등의 전면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에 이번 조사가 피해자 귀국으로 이어지도록 강력히 요구해 간다는 방침입니다.

북한의 납치피해자 재조사는 10년 전인 2004년 두번째 북일정상회담 후에 실시됐으나, 조사 자체의 신빙성에 의심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북한이 납치피해자 등의 전면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데 대해 피해자 가족들로부터는 "한걸음 전진한 것"이라고 한 한편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지 불안시하는 의견과 북한이 조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재조사가 끝나버리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 가족은 정부에 이번 재조사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가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직을 구축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요코타 메구미 씨 등 8명의 피해자는 사망했다"는 등의 북한의 기존 설명을 번복시켜 피해자들의 귀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한다는 방침입니다.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전면 재조사 하기로 한 북-일간 합의를 환영했습니다. 재조사를 통해 모든 납치 피해자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북한과 일본이 전격 합의한 납치 문제 전면 재조사에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납북 일본인의 상징적 인물인 요코타 메구미 씨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 씨는 이번 합의를 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조사를 통해 모든 납치 피해자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요코타 시게루 씨는 피해자 가족들이 노령화해 시간이 별로 없는 만큼 재조사 결과를 가능하면 빨리 알 수 있도록 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의 이즈카 시게오 대표는 이번 합의가 납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의 과정을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에 납치됐다 지난 2002년 일본으로 돌아온 하수이케 카오루 씨 부부는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납치 피해자들이 귀국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지난 1998년 한국으로 출국한 후 행방불명된 특정실종자 나카무라 미나코 씨의 어머니는 12년 전 납치 피해자들이 귀국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조사 결과를 기대하며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납북된 다구치 야에코 씨의 장남인 이즈카 고이치로 씨는 이번 합의는 교착상태에 있던 납치 문제에서 하나의 진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어떤 식으로 조사가 이뤄질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현 단계에서는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일본인 13 명 납치를 인정하고, 하수이케 카오루 씨 부부 등 5 명을 일본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하지만 요코타 메구미 씨 등 8 명은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들 중 일부가 생존해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또 17 명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북한이 다른 일본인 실종 사건에도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북-일, 납치 문제 재조사 합의

진행자) 북한과 일본이 납치자 문제 등 두 나라 간 핵심 현안들에 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자) 두 나라의 합의는 북-일 간 동시발표 형식으로 공개됐는데요,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합의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에 합의했다고 밝혔고요,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납치 문제에 대한 포괄적 조사를 위해 북한 측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특별조사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기자)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입니다. 아울러 일본인 행방불명자, 1945년 이전 사망한 일본인 유골과 묘지,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게 됩니다. 일본 정부는 조사위원회 설치에 3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며, 조사 기간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고요, 북한은 조사를 신속히 진행하며,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일본 측과 계속 협의해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북한은 그동안 납치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나요?

기자) 맞습니다. 더 이상 일본인 납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일본은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대북 제재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는데요, 어떤 조치들이 포함됐나요?

기자) 일본은 인적 왕래 규제를 해제하고, 송금과 휴대 금액과 관련한 규제 조치도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또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측은 특히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습니다.

 

 

북-일 “납북자 전면 재조사...제재 해제” 합의

 

                                                5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일 국장급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이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고, 일본은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를 해제하고 인도주의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북한과 일본이 29일 납치자 문제와 일본인 유골 반환 등 두 나라간 핵심 현안들에 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나라의 합의는 북-일 간 동시발표 형식으로 공개됐으며,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합의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북 국장급 회담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에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합의 내용을 상세히 전하면서, 납치 문제에 대한 포괄적 조사를 위해 북한 측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납치자 문제 뿐아니라 일본인 행방불명자, 1945년 이전 사망한 일본인 유골과 묘지,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게 됩니다.

통신은 북한이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하는 시점에 일본 측은 “인적 왕래 규제를 해제하고, 송금과 휴대 금액과 관련한 대북 규제 조치도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본이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측은 특히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통신은 전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북한 측 발표 내용을 확인하면서, 조사위원회 설치에 3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며, 조사 기간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측은 그러나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는 신속히 진행하며, 그 과정에 제기되는 문제들은 일본 측과 계속 협의해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일본 측이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며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의사를 다시 밝히고, 북-일 두 나라 사이의 신뢰 조성과 관계 개선을 위한 문제 해결에 성실히 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납치 문제의 전면 해결은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며 “모든 납치 피해자와 가족이 자신의 손으로 자녀를 얼싸안는 날이 올 때까지 일본 정부의 사명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두 나라 국장급 회담에는 북한 측에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 일본 측에서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양측은 회담이 끝난 직후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아 언론들은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것으로 보도했었습니다.

VOA 뉴스 윤국한 입니다.

 

 

미 전문가들 “북-일 관계 진전 가능성 열려” 

 

북한과 일본이 지난 26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정부간 공식 협상을 재개했다. 스톡홀름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송일호(왼쪽) 북한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와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나란히 회담 장소를 향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를 계기로 북-일 관계가 크게 진전될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조심스런 반응입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과 일본의 이번 합의에 큰 의미를 뒀습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한 재조사는 그동안 북-일 관계 진전의 척도로 여겨져 왔는데, 두 나라가 전격적으로 재조사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 소장입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소장] “This is an encouraging…”

인권 차원에서 고무적일 뿐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대북 협상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쇼프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그동안 북-일 회담에서 재조사 문제에 관한 논의를 거부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으로서도 이번에 상당히 큰 양보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The fact that Abe…”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북-일 합의를 발표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도 이번 합의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시점에서 납치 문제 재조사에 전격 합의 한 배경에는 다목적의 포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앨런 롬버그 전 국무부 부대변인입니다.

[녹취: 앨런 롬버그, 전 국무부 부대변인] “Unilateral sanctions which Japan…”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가 북한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고, 북한이 이를 단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북 송금과 휴대금액에 관한 규제가 풀릴 경우 북한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챙길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적절한 시기에 대북 인도적 지원도 검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롬버그 전 부대변인은 이와 함께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북핵 6자회담 재개를 모색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까지 설치해서 납치 문제를 재조사하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재조사 후에도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과거와 똑 같은 입장을 반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일본 내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북-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 소장은 북한의 도발 역시 큰 변수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소장] “One of the real challenges will be…”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군사도발을 한다면 북-일 간 합의 이행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누지 소장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대화 통로를 계속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북-일 협상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번 북-일 합의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국과 한국, 일본의 대북 공조체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자누지 소장은 일본이 납북자 문제에 관해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 왔고, 미국도 이 문제를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사안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쇼프 선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대북 외교가 더 복잡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Maybe they turn up…”

북한이 재조사 결과 추가 정보를 일본에 넘기고 일본인 납북자를 한두 명 더 귀국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쇼프 연구원은 만약 일본이 북한의 재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조치를 받아들인다면 미국과의 대북 공조체제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연호입니다.

 

미 국무부 ‘일본의 납북자 문제 해결 노력 지지’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건물 (자료사진)

미 국무부는 납북자 문제를 투명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We continue to support Japanese efforts to resolve the abduction issue in a transparent manner…”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재조사에 전격 합의한 데 대해 이 같은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미국은 이번 합의에 관해 일본으로부터 사전에 통보 받았으며, 일본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키 대변인은 일본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하기로 합의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고 답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일 회담 마지막날인 28일 일본 측 수석대표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조총련 조선대학교 개요

조총련 조선대학교가 1956년 6월 8일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조총련계 인사들에 의하여 2년제 대학교로 설립하여 지금까지 13,000명졸업생을 배출하여 운영 되어오고 있다
전(全) 학생이 기숙사제로 조선연극부등 총 8학부로 1,000명 정도의 학생이 현재 수학하고 있었으며 졸업생들은 주로 조선학교의 교원 및 총련신보나 잡지의 기자로 취직하며 총련 동포가 경영하는 금융기관에도 취직하고 있다

1.조선대학교의 창립과 건학정신---김일성주의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주체사상
-1996년 6월 23일 한덕수 조총련의장 말
조선대학교 창립 40주 기념보고 축사 통해 조선대학생의 "김정일의 전사화" 다짐
-반미 반일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논리
-2005년 5월 24일 조총련 결성 50주년을 기념하는 "조총련 중앙대회"가 조총련 간부들과 조선대학교 학생등 2천여명이 모여 도쿄의 조선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조선대학교는 조총련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다 서만술의장은 "조총련은 민족차별과 멸시 속에서 재일동포 사회의 민족성을 지켜왔다"며 "김정일장군을 받들어 새로운 전진과 비약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2.입학자격--조총련계 중고급학교 졸업생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는 도쿄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급부 3년, 고급부 3년제로 운영되고 있다 각 학년은 5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반에는 약 25-3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중급부와 고급부 수업은 일본어 수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교복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하교 한다

3.조선대학교 학장
(1)1957년 4월 한덕수 조선대학교 학장
(2)현재--장병태 학장

4.조총련 조선대학교 활동 자료
(1)각종 반미(反美) 반한(反韓) 집회주도--조선대학교는 대한민국 부정하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정하는 재일동포 자녀들이다
(2)김일성 김정일주 노선 활동이나 문화행사. 집회등 주도
1998년 2월 13일-2월 14일 경애하는 장군님 탄생 56돐 기념 재일조선학생 중앙구연대회 조선대학교에서 진행
(3)평양방문과 반미 자주학교 참여와 활동
입북 <한총련> 대표들과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상봉의 기쁨을 안고 노래도 부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에 앞서 <한총련> 대표들은 사회주의 조국에 체류하고 있는 총련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들, 재일조선학생 조국방문단 성원들과도 상봉하였다

5.21세기 조총련 조선대학교가 나아갈 방향
(1)21세기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 고도소비사회이다 일본사회에서 자본주의 3대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 영리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을 부정하는 김일성 김정일주의 주체사상 건학(建學)으로 학교를 운영할때는 부도로 운영될 수 있으며 우수한 한국인(조선인) 2세들이 후진국 정신으로 낙후될 우려가 많으며 일본시민들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총련 조선대학교도 21세기 고도소비사회에서 대학의 자율권이 인정되는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다
(2)주체사상은 국가사회주의 이념으로 일본 군국주의 이론과 일맥상통하여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세계 각국 공산주의 운동의 혁명전사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전사로 육성할 수 있다 대학과 학생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된 열린사회 교육장이 돼야 한다
(3)조총련 조선대학교가 북한정부 도움보다는 김일성 김정일 사조직으로 육성되어 북한정부 정치.경제. 사회.문화등의 연구가 아닌 김일성 김정일 연구로 타락하여 한민족의 문화단절을 시도할 우려가 많고 남북분단 획책의 도구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조총련 조선대학은 있는 그대로 한민족(조선민족)의 우수성과 일본 교류협력의 구심점이 돼야 할 시기이다
(4)조총련 조선대학교 학생이나 졸업생이 조총련내부 "학습조" 주도세력이 되어 남북전쟁을 획책하는 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민전 일본대표부로 활동하거나 전(全)아시아와 태평양지역 공산화도구로 되지 말아야 한다
조선대학교 학생이나 졸업생은 한국인(조선인) 핏줄이지만 일본 거주지로 일본 국민이다 일본 국왕제를 부정하고 NLPDR노선을 견지하는 조총련 "학습조"가 되지 말아야 한다
조총련 학습조는 "위대한 김일성원수가 조직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가 지도하는 재일조선인 김일성 김정일주의자의 혁명조직"이며 활동임무는 조국을 엄호방위하고 일본에서 주체혁명을 위업을 이루는데 적극적으로 이바지 한다는 것이다
(5)조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도 남북국가를 동시에 인정하거나 공산국가 북한보다는 자유민주국가 남한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다

한국인 2세들도 일본지역에서 한국인 2세 일본사람과 국적으로 노력하여 일반 공무원이나 경찰. 검찰이나 법관 공무원, 사업가. 교육자.연예인. 경영인.국회의원등이 될 수 있으며 일본 수상도 될 수 있다 그런 분들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된 열린사회에서 가능하다

 

 


*조총련(朝總聯)과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총련 학습조 주요 자료

1.조총련(朝總聯,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은 재일본 한국인 가운데 북한을 지지하는 친북 재일교포단체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NLPDR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단체 조총련을 결성하여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운동으로 궁극적으로 대남적화통일과 일본 국왕제도를 부정하고 일본 공산화에 주력하고 있다

 

해방 이후인 1945년 10월 15일 재일본조선인연맹(在日本朝鮮人聯盟, 약칭:朝聯)이 결성되었으나 김천해(金天海)를 중심으로 친북단체로 기울어졌다 조련(朝聯)이 김천해의 공산주의 노선에 따라 일본 공산당의 지도 아래 과격한 불법투쟁을 벌이자 일본정부는 폭력단체라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내렸다

1950년 4월 2일 잔류조직이 모여 조선인단체협의회를 결성했는데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조국통일전선실행위원회로 고쳤다

1951년 1월 9일 이를 토대로 재일조선민주전선(在日朝鮮民主戰線, 약창:民戰)을 결성, 폭력투쟁노선을 이어갔다

1954년 8월 30일 북한의 남일(南日)이 한덕수(韓德銖)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 1955년 5월 25일 한덕수를 의장으로  북한 직속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조총련은 명목상 최고의결기관으로 전체대회가 3년마다 소집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한덕수 1인 체제로 운영되어 오다가 2001년 2월 21일 한덕수 의장 사망이후 현재 의장은 서만술, 책임부의장은 허종만, 부의장은 박재로. 권순희. 오형진. 남승우. 양수종. 이기석. 고덕우등 7명이다 북한이 해외 공민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조총련의 역할은 통일 운동이라는 대남공작과 애국사업으로 불리는 대북경제지원 사업으로 나뉜다 여기서 대남공작을 총괄하고 있는 인물은 현직 조총련 의장 서만술이며 애국사업 책임자는 허종만이다 

행동강령에는 제일동포의 거주. 재산. 직업. 언론출판등의 권익을 옹호하고 자유를 옹호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북한노동당 일본지부나 다름없다 기본활동 목적은 일본의 좌익세력과 연계하여 일본에 남한 침략기지를 구축하는 것이고 한반도는 물론 전(全)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국 공산화 와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의 혁명)을 위한 혁명 전초기지의 역할도 맡고 있다 특히 조총련내부 북한정부 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학습조(學習組)를 설치하여 충성심을 강화하고 김일성 주체사상 강좌와 통일전선 사업에 집중하여 대남적화통일을 꾀하고 있으며 1974년 4월 1일  통일사업부를 설치하고 대남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통일사업부의 임무는 민단조직의 와해. 대남적화공작 수행.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 인민민주주의 혁명 투쟁(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위장평화공세에 의한 통일전선전략의 효과적 수행등에 있다

 

과거의 조총련은 중앙위 산하에 48개 지방본부와 200개 지부, 18개 산하단체와 23개 사업체를 거느린 거대한 조직이었고 조총련계 학교는 한때 유치원, 초.중등학교, 대학교등 300여곳이나 되었으며 북한정부의 유혹적인 정책 말에 따라 1959년 재일 조선인 동포 10만명이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남한)의 경제성장과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그리고 국제적 지위 향상으로  조총련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다

일본 전체국민의 0.6%, 50만명이상이 재일 한국인으로 그 중에서 대한민국 국적 민단(民團) 동포가 40만명이고  10만명이 조선의 국적이다 2005년 5월 25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조총련의 모습은 초라했다 4만 6,000여명에 이르던 조선학교 학생 수는 1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굵직한 자금줄인 조선은행의 각 지역 조합은 파산하거나 강제합병 되고 있다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이들이 매년 1만여명에 이른다 한때 일본사회에서 민족혼의 상징하던 조총련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는 김정일의 일본인 납치 시인 이후 일본인들에게 찢기고 오물을 뒤집어쓰는 등 폭력의 대상이 돼버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조총련 50주년을 맞아 보낸 메시지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북일(北日) 국교 정상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때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교포는 총련도 결국 조국인 북한체제의 운명과 같은 길을 걷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조총련도 21세기 고도소비사회에서 변화돼야 할 시기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에서 진보진영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다 반미. 반일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NLPDR)노선 국가사회주의 침략이론을 버리고  일본 국왕제를 인정한 후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통합 사회로 나아가는 재일 한국인 동포들이 되기를 바란다 

*대학-- 조선대학교:1956년 6월 8일 설립과 운영

*신문(기관자)--조선신보:1945년 10월 26일 창간

 *방송(통신사)--조선통신사 

*가극단--금강산 가극단

(1)한덕수(韓德銖)

ㄱ.출생-1907년생(生)

ㄴ.출신-경북 경산(慶山)

ㄷ.학력--일본대(日本大) 전문부 중퇴

ㄹ.경력

1927년 7월 도일(度日-일본으로 이주) 

1945년 일본공산당 가입

1945년 가나가와현(懸) 본부 공산당 위원장

1949년 9월 조국전선 중앙위원

1951년 1월 재일조선민주전선(民戰) 중앙위원

1955년 5월 조총련 수석의장

1957년 4월 조선대학 학장

1958년 조총련 중앙상임위 의장

1959년 재일 조선인 10만명 북송 주도

1967년 11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4기 대의원

1972년 12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

1976년 4월 노력영웅칭호

1977년 12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6기 대의원

1982년 4월 김일성훈장 서훈

1986년 11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

1989년 9월 조총련 의장 유임

1990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

1990년 8월 조국통일상 수상

1992년 5월 조총련 의장 8선(8選) 유임   

1994년 4월 26일 신병 치료차 입북(入北- 북한 방문)

1994년 4월 28일 김일성과 함께 회견

1994년 6월 7일 김일성과 면담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조문

1994년 7월 20일 김일성 중앙추도대회 참석

1994년 10월 10일 일본 귀국 앞서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편지와 <김정일 장군님께 드리는 노래>등 2곡의 노랫말 전달

1994년 10월 16일 김일성 사망 1백일에 즈음 만수대 김일성 동상에 헌화

1994년 10월 19일 단군릉 참관

1994년 10월 22일 박성철 부주석. 김용순 당 대남 비서  전송 속에 일본으로 귀환

1994년 11월 15일 일본 사회당 서기장 구보 와타루와 일본 정치인들의 방북 문제 논의

1995년 2월 조총련 중앙위 제16기 4차회의서 김정일의 연내 당중앙 총비서 및 국가 주석직 취임시사

1995년 4월 15일 김일성 83회 생일 기념 중앙대회서 김정일에의 충성다짐(조선문화 회관)

1995년 5월 24일 조총련 결성 40주 기념 중앙대회 참석

1995년 6월 15일 조총련 제16기 5차회의 확대회의 개최 <김일성충성세력화> 다짐

1995년 7월 5일 김일성 사망 1주기행사 참석차 북한 방문

1995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주기 중앙 추모대회 진행

1995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1주기 추모연회 참석

1995년 7월 14일 김일성 사망 1주기 조총련 추모단 인솔 <한덕수경공업대학> 참관

1995년 9월 8일 북한정권 수립 47주 중앙보고대회 참석

1995년 9월 17일 제17차 조총련 전체대회서 의장에 재선

1995년 9월 25일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李珍珪) 장례식 참석

1995년 10월 26일 조선신보 창간 50주 기념식서 대김정일(對金正日) 충성보도활동 촉구

1995년 12월 27일 김정일 새해선물 전달식 참석

1996년 1월 30일 <문예.체육일꾼모임> 개최  그리고 에술,체육 통한 조직확대 역설

1996년 2월 15일 김정일 54회 생일 맞아 대김정일(對金正日) 충성 다짐하는 "글" 전달 

1996년 2월 15일  김정일 54회 생일 기념 재일본조선인 중앙대회 개최 대(對) 김정일 충성 및 대북지원 사업 강화 다짐

1996년 6월 8일 조선대학교 창립 40주 기념보고 축사 통해 조선대학생의 <김정일의 전사화> 다짐  

1996년 6월 18일 조총련발간 대중잡지 <이어>창간축하모임 참석  

1996년 6월 23일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각계각층 대표자회의 진행

1996년 10월 5일 증등교육실시 50주 중앙대회 참석 

1997년 1월 22일 90회 생일 맞아 김일성 훈장 서훈

1997년 5월 8일 김일성. 김정일의 교육원조비 송금 40주기념 중앙감사대회 참석

1997년 5월 17일 조총련 금강산 가극단 새회관 준공식 참석

1997년 5월 29일 김정일장군의 노래보급을 위한 총련 일꾼들의 모임 참석

1997년 6월 27일 진행된 <조선신보> 복간 45주년 기념 모임 참석 연설

1997년 7월 6일 김일성 3주기 재일 조총련 추모대표단 한덕수단장 인솔, 평양도착

1997년 7월 8일 김정일 예방과 환담 그리고 김일성 3주기 맞아 조의(弔意)

1999년 1월 1일 김정일에 신년축하문 보냄

2001년 2월 21일 오후 8시 20분 94세 나이로 사망

 

 

(2)허종만

ㄱ.출신--경남 고성

ㄴ.경력

1959년 조총련 도쿄도(東京都) 본부위원장

1986년 9월 조총련 중앙위원회 부의장

1993년  7월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책임부의장(신설)

1994년 2월 28일 평양서 김정일과 친선담화

1994년 7월 17일 김일성 조문, 김정일에 충성다짐

1995년 3월 20일 김정일이 조총련 예술단에 베푼 목란관연회에 당비서 김기남 김용순과 함께 참석

1995년 5월 24일 조총련 결성 40주 기념 제일 조선사회과학자 <학술보도회> 연설 통해 학자들이 김정일 사상 실현 기여 강조

1995년 12월 27일 김정일 새해선물 전달식서 대(對) 김정일 충성 및 <95년의 조직강화의 해> 강조

1996년 6월 27일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 지지 일본위원회" 결성 20주 기념 모임 참석

1996년 10월 조총련 청년상공회 중앙간사회 제1기 2차 확대회의 연설 통해 대북 합영. 합작 사업 주력 강조(대북투자회)

1997년 7월 8일 김일성 3주기 재일 조총련 중앙추모대회 참석(동경 조선문화회관)

2005년  조총련 결성 50주 기념 행사때 김영남  축하 메세지 낭독

-->허종만은 대북 투자와 대북 경제송금을 주도했으며 조총련 학습조 실질적 책임자로 알려지고 있다

 -http://zine.media.daum.net/mega/h21/200506/03/hani21/v9251826.html

 

 

2001년부터 조총련을 이끌고 있는 서만술의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조총련 조직국장과 사무총국장등 핵심라인을 거친 한덕수의 직계, 한덕수 의장 사망 후 조총련 안팎에선 대북 송금 사업을주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허종만 책임부의장의 승인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서만술의장의 낙점이었다

위축된 조총련의 조직을 추스르려면 성품이 부드럽고 인화에 강점이 있는 서만술의장이 적임이라고 북당국이 판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총련 학습조(學習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지난 2002년 북일정상회담 직전에 해산했던 비공식 조직 "힉습조"를 부활시켜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조총련이 이번에 학습조를 부활시켜는 것은 자금조달과 조직강화, 그리고 대일(對日), 태평양연안 공작을 강화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총련 학습조(學習朝)란

ㄱ.일본 재판부에 제출된 조총련 내부 자료에 따르면 학습조는 "위대한 김일성 원수가 조직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가 지도하는 재일조선인 김일성 김정일주의자의 혁명조직"이며 활동임무는 조국을 엄호방위하고 일본에서 주체혁명 위업을 이루는데 적극적으로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ㄴ.조총련은 학습조를 설치하여 충성심을 강화하고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 강좌와 통일전선사업에 집중하여 대남적화통일을 꾀하고 있으며 1974년 4월 1일 학습조 조직 기반으로 통일사업부를 설치하고 대남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통일사업부(학습조-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의 임무는 민단조직의 와해, 대남적화공작 수행, 위장평화공세에 의한 통일전선 저력의 효과적 수행, 동북아지역의 북한정부 연락선 구축(잠수함 기지구축), 무기구입과 밀매 추진, 반합법적 또는 비합법적. 합법적 기업등을 운영하면서 자금확보등에 주도하고 있다

(2)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총련 학습조 활동 자료

ㄱ.조총련 학습조는 동북아 지역 북한정부 간첩망과 반미구국전선 조직  

ㄴ.조총련 학습조는 북한 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직

조총련 소속 공작요원 소위 "학습조" 3,000명 및 재일(在日) "한통련", 재미(在美) "한청련", 해외 "범민련"등  친북전위 조직 16,500명등 대남공작에 활용

ㄷ.북한 불법 수출에는 총련의 비공개조직인 "학습조"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다고 공안당국의 조사를 인용해 보도 또한 16일 다산케이(産經)신문은 세이신기업이 미사일 추진 연료완성에 필요한 제트 밀을 판매한 곳은 사실상 북한 인민무력부라고 보도했다

ㄹ. 조총련 학습조는 북한과 북한 노동당에 충성을 맹세하는 재일 조선인계의 신용조합에 강한 영향력 행사

반합법적 비합법적 합법적 기업 운영과 자금확보

ㅁ.1998년 한 재일동표가 조긴 아이치(朝銀 愛知)를 상대로 이 지점 부의장이 횡령한 자신의 예금 약 17억 5천만엔을 반환해달라고 청구 재판 자료

-재판 과정에 원고측은 "학습조"라는 조직이 조긴 아이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이 재판 판결문을 보면 "피고(조긴 아이치)의 간부는 전부 학습조원에서 등용되었다 조긴 아이치는 금융기관으로서 본래의 업무 이외에 조총련의 활동자금이나 북한에 돈을 보내는 특수임무를 행하고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 재판에서 원고인 재일동포 기업가는 "나의 예금은 북한에 대한 송금이나 한국의 유학생 조직, 일본내 친북계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에 쓰였다"고 말했다 

ㅂ.1999년 여름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공안관계자는 학습조에 관하여 "전국에 약 1000개 조직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ㅅ.전(前)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 제2부장 스가누마 고코(管沼光弘)씨는 2001년 11월 15일자 슈칸 분(週刊 文春)에 북한이 그 동안 은밀히 제3세계에 무기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라는 돈세탁 장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ㅇ.김정일은 1999년 4월 20일 조총련 제1 부의장 서만술에게 "외유내강(外柔內剛) 방식으로 조총련을 재건하라"라고 지시했다

"외유(外柔)" 는 조총련이  우경화하지 않았느냐는 오해를 살정도로 취직센터와 노인 복지정책등 다양한 정책을 펴서 동포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라는 것이었다 "내강(內剛)"은 학습조(조선노동당 일본조직-북한정부 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에서 철저하게 김정일 숭배사상을 고취하라는 것이었다

ㅈ.일본근해 괴선박 격침사건--테러요원 침투를 위한 대일(對日) 한민전 공작선과 필로폰을 밀무역하는 북한 선박이었을 가능성 제기

마약과 현금등 막대한 규모의 현물을 싣고 있었다

ㅎ.북한은 2001년 7월 일본으로부터 중고어선 49척을 밀수입한 사실이 있다 

 

조총련도 대한민국과 일본 국왕제도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노선과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 김일성 김정일주의를 버리고 서구사회 진보진영처럼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