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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으로 떠난 시간여행『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대학부 최우수상 본문

대한민국 전직대통령 자료

25년 전으로 떠난 시간여행『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대학부 최우수상

CIA bear 허관(許灌) 2012. 7. 9. 18:04

6.10민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해 청소년들에게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개최되었던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두 시간씩 세 번의 독서, 그렇게 여섯 시간을 꼼꼼히도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 25년 전의 육 개월 간의 투쟁을 나는 뜬눈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유령처럼 대공분실 조사실 한켠에 서서 복부가 팽만한 채 쓰러진 박종철을 보았고, 어느 새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무표정으로 고인의 추모식에 서 있었다. 또 책장 몇 장을 넘기면 나는 명동성당 맨 뒤에 기대어 성수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떨어뜨리며 김수환 추기경님의 강론을 듣기도 하였다. 뙤약볕에 목이 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87년의 6개월을 여행하다가 머리가 뜨거워져서야 비로소 책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깊은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살아온 이십여 년의 세월은 이미 민주주의가 이룩된 후로, 태어났을 때부터 국민의 의사선택에 따른 선거를 치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누가 누군지도 몰랐겠지만 초등학교 때는 벽에 붙은 대통령 후보들의 벽보를 보고 누가 뽑혔으면 좋겠다느니, 누가 잘할 것 같다느니 친구들과 하루 종일 벽보에 대해 얘기하였고, 지금은 선거권이 나온 지 2년째로 집에 내 이름이 적힌 투표안내문이 날아오는 것은 아직도 조금은 신기하지만 내게 투표권이 있고, 그것을 선거에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박종철 열사가, 이한열 열사가, 그리고 그들과 뜻을 함께 했던 모든 시위대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오늘을 살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오늘을 나는 쉽게 살았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기에 25년 전 폭풍전야와 같은 반년을 여행하며 나는 모든 것을 우두커니 관망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저히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에 대한 물음표만이 공허한 나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하고자 같은 책을 세 번씩이나 읽었나보다. 세 번을 정독하면서 나는 이 책이 내게 주는 세 개의 각기 다른 의미를 고찰하였고, 끊임없이 머릿속에 느낌표를 던지고자 했다.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그 당시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자 믿기 힘든 사실임과 동시에 나에게도 큰 돌덩이가 가슴에 낀 듯 무거움을 주는 사건이었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고찰과 물음,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자꾸 코를 자극한다. 책 전반에 걸쳐서 ‘박종철’ 이름이 나오는데, 그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자꾸 비리면서도 알싸한 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인의 나이 당시 스물한 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더욱 그의 죽음이 믿기 힘들다. 대체 정부가 그리고 경찰이 스물한 살의 청년에게 무엇을 밝혀보고자 한 것인지, 그 본질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거짓과 변명으로 묻으면서 무엇을 얻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분명 민주주의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민주주의는 그의 죽음이 꽃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누군가의 아버지로써, 누군가의 멘토로써, 우리 시대 리더로써 정의를 울부짖으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은 참으로 크다.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처음 읽었을 때 들어오지 않던 ‘최루탄’이라는 단어가 자꾸 가슴을 저몄다. 특히 무표정을 하고 방패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전경들에게 꽃을 꽂아주는 여성의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사진이 하도 인상 깊어 영상도 찾아보았다. 사실 영상 속의 전경들은 책에 수록된 사진만큼 시민들이 꽂아주는 꽃을 순순히 받지는 않았다.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안아주고, 따듯한 말을 건네며 꽃을 꽂아주는 시민에 거칠게 저항하고 있었다. 꽃 달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자의든 타의든 최루탄 발사의 뜻을 완강히 했던 전경들 또한 지금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식들에게 전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최루탄에 민주주의를 장착하고 사정없이 쏘던 그들에게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굉장히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두 번째 독서를 통해 ‘최루탄’이란 단어를 도네이며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을 통해 비록 나는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도, 파편의 위력도 모르지만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세 번째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명동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명동거리를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다. 그런데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의 좋음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책을 읽기 전 나는 그저 명동의 활기가 좋았고, 사람 냄새가 좋았고, 풍부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눈과 입이 즐거워서 좋았다. 크리스마스 때는 사람에 떠밀리는 재미로 명동을 찾곤 했다. 마침 명동을 찾은 날이 현충일이어서 사람들 사이로 간간히 태극기가 보였다. 수많은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곳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라고 소리치듯이 펄럭이는 태극기는 나를 또 25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으로 이끌었다. 명동성당 주변을 빼곡히 채운 시위대들,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편지들과 성금들, 신부님의 탄식 섞인 목소리, 계성여고 학생들의 도시락 등 책의 퍼즐조각들이 내가 서있는 명동거리를 순식간에 퍼즐을 맞추듯 87년 6월을 그려내고 있었다. 명동이라는 집합소가 있었기에 87년 6월은 더욱 치열했고, 명동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면서 내가 서있는 명동이 새삼 고마웠다. 지금의 명동은 25년 전에 비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책을 읽기 전의 나도 그저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나는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명동 한 가운데서 외치고 싶었다. 이 곳 명동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궈낸 민주주의의 터전이라고.

나는 비록 세 번의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실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아픔을 감히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상상하는 열기보다도 절망보다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시간여행을 통해 내가 사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절실히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의 민주주의는 25년 전 국민 모두가 절실히 갈망하던 결과일 것이다. 또한 오늘이라는 날은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들이 바친 추모시에서의 ‘마침내 모두가 해방 춤을 추게 될 그날’일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한 결과인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요즘에 “선거율 70%가 넘으면...”하며 이색 공약을 거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민주주의의 산고를 알지 못하고 있다. 87년 그 6개월간의 역경의 시기를 바라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는 이제는 투표용지 한 장이 그저 진보와 보수를 편 가름하는 한 표가 아니라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강렬히 외쳤던 결과임을 외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무심코 지나다녔던 서울 곳곳에 서린 피와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박종철, 이한열을 비롯한 희생자들이 절실히 갈망했던 오늘을 나는 결코 빼앗길 수 없다[김 진-숭실대학교 2학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책. 이 책은 6월 민주항쟁의 배경과 원인, 각종 양상 등을 자세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6·10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범국민대회, 명동성당 농성투쟁 등 민주화 대행진을 위한 수많은 사건들을 생생히 설명한다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1월 14일, 11시 20분
박종철, 그는 누구인가?
카인아! 아벨은 어디 있느냐
적반하장 - 4·13호헌조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
6·10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범국민대회
명동성당 농성투쟁
이한열과 '최루탄 추방의 날'
민주화 대행진 그리고 장엄한 승리
눈물뿐인 이 나라의 꽃이 되었다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게『시대의 불꽃 이한열』-고등부 최우수상

초등학생이던 어느 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이한열기념관’ 을 가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열심히 다녔던 나지만 처음 듣는 사람의 기념관이라 가는 도중 계속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지만 가서 직접 보고 말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신촌의 어느 뒷골목으로 기억이 되는데 찾기가 힘들어 그곳에 전화를 걸기 위해 어머니가 114로 문의를 했다. 그런데 그 안내원이 자꾸만 ‘이한열요? 이한영?“ 이렇게 되묻자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시며 ”세상에 어떻게 이한열을 모를 수 있지! “ 라며 분노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당시 나는 초등학생이라 기념관을 둘러보고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후에도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음을 맞았던 것만 기억하고 돌아왔던 것 같다.

그 후 ‘이한열’ 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다가 중1이던 2008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행렬에 부모님과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많은 엄마 아빠 또래의 시민들을 보면서 1987년 6월에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참으로 궁금해졌다. 광화문 광장에 뿌려진 전단지들을 집에 가서 읽어보려고 모두 모아오는데 엄마는 그 엄청난 군중속에서 친구를 만나 너무 감격해 하셨고 나 또한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나온 친구를 보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내게 기특하다시며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셨다. 도대체 뭐가 기특한 거지? 왜 엄마는 광장서 만난 오랜 친구에게 고마워하시고 친구 아버지는 내가 기특하다고 하신 걸까?

 

‘이한열’의 삶과 6.10민주항쟁을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지나치게 고대, 중세, 근세 그것도 구한말까지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지금 우리의 삶과 직접 연결이 되는 현대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 미 군정기부터의 역사는 기말 진도에 맞추기 위해 대충 배우게 되어 정말 그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박정희의 오랜 독재가 10.26 사태로 종말을 고했지만 곧이어 전두환 군사정권이 1979년 12.12 쿠데타로 들어서고 5.18 광주학살을 저지른 집단이 마침내 장기집권을 꾀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모두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어머니, 공군조종사셨던 아버지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이한열 열사’ 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6월 민주항쟁때 외할머니의 눈을 피해 매일 거리에 나가 친구들과 데모를 하셨는데 (어머니는 당신이 결코 과격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데모에 참가하는 민주학생이 대부분이었다고 증언 ) 6월9일에 이한열학생이 최루탄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듣고 학생시위대가 엄청나게 분노해 마침내 6월10일에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커졌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같은 시절의 젊은이로서 아버지가 그때 행동하지 않은 시민이었다며 가끔 구박을 하신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공군조종사로 근무 중이셨기에 군인신분으로서 그 대열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민주시민들을 응원하셨다고 항변하시곤 한다. 이한열 열사의 시신이 군용기를 통해 광주로 이송될 때를 대비해 아버지께서는 근무대기중이셨는데 누구보다 가슴아프셨다고 증언하신다. 시대의 아픔을 각자의 위치에서 경험하신 자랑스러운 부모님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린 시절 사진으로 본 이한열열사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겨우 세 살정도 많은 형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 살아계신다면 우리 부모님과 같은 연배이리라. 민주시민으로서 한발 앞선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부모님 덕분에 내가 이한열 열사의 삶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알게 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을 믿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당시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와서 일기장에 유치하나마 나의 생각을 적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6.10민주항쟁 25주년을 맞아 제대로 이한열 열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입시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현충일에 시간을 내어 < 이한열/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 >을 작정하고 읽게 되었다. 서성란이라는 작가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친구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그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를 기억하기 위해 쓴 책으로 문체상으로는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정확한 근거와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자서전 느낌을 주었다. 술술 읽어 내려가긴 했지만 시대에 대한 고민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지녔던 이 진지한 청년의 삶은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비록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어도 수년전 비슷하게나마 광장에 모여 6.10민주항쟁을 기리던 민주시민들의 모습을 본 나로서는 자꾸만 그 6월 항쟁 현장의 함성들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후 장례에 이르기까지 급박한 하루하루 상황에서는 숨이 막혔다.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대학생 형의 모습 중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분의 얼굴도 보여 더욱 가슴아팠다.

이한열 열사의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한발 나아갔고 학생운동을 했던 청년이 현실 정치인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시들은 그가 지은 시들인데 겨우 나보다 세 살밖에 많지 않은 분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이런 치열한 고민들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내용들이었다.

교수가 되고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이한열 열사! 아마 살아계셨더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었겠지만 그는 죽어서 영원히 우리들의 꿈을 지켜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이 책속에 나오는 환경은 25년 전의 일이라 지금 나로서는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당시의 대학생들과 지금의 대학생들을 비교해보면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이기적으로 바뀐 것 같다. 자기 자신의 출세에만 다들 신경을 쓰지 사회문제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너무들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학생도 아닌 주제에 사정도 모르면서 건방진 소리 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고등학생인 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젊은이라면 당연히 뜨거운 가슴을 안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일 개인의 힘은 나쁜 권력이나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기 힘들지만 그런 개인의 힘들이 모이면 나쁜 권력도 잘못된 정치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역사를 바로 잡는 힘이 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한열 열사 같은 분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물려준 고귀한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나가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이한열 열사가 남긴 일기, 시, 편지글 등을 통해서 보면 시골의 부모님은 서울로 유학간 아들이 행여나 데모대에 휩쓸릴까봐 노심초사했고 그는 정말 착하고 성실한 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좋은 동생이자 형이었던 지극히 평범한 그 시절의 대학생이었다. 그가 국토순례대행진 중에 동학혁명 전적지에서 직접 두발과 심장으로 역사상 최대의 민중항쟁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부분에서 나는 실로 전율을 느꼈다. 그저 내가 국사책에서 달달 외우기만 했던 동학 혁명의 의미를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몸소 깨닫다니..역사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살 청년 이한열의 삶과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몸소 저항을 실천하게 되는 과정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 ‘5.18 백양로에서’에 나오는 ‘최루탄,’찌라시,‘파쇼타도’ 이런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단어들속에서 그의 분노가 짐작되기도 했다.

그의 장례식날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백한 문익환 목사님(내게는 ‘통일할아버지 문익환’으로 익숙하다)의 추도사가 그의 삶을 온전히 대변해주는 듯하다. ‘순결한 그 이름 이한열 열사! 온갖 거짓과 타락과 폭력으로 가득찬 시대에 그는 너무나 착한 양심이었고 너무나 숭고한 용기였으며 너무나 강렬한 우리의 희망’이었다고.

 

아들이 데모할까봐 걱정하던 그 평범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살인마 정권을 향해 울부짖던 모습을 뒤로 하며 이젠 그 아들 덕분에 투사가 되셨다고 한다. 5.18 광주 묘역에서 만난 그의 어머니는 “아들덕분에 엄마는 투사가 되어부럿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니 대신 싸울란다. 그러니까 걱정말고 편히 쉬어” 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는 여전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우리 한열이가 죽어서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앞당겼을런가”

살아있는 우리가 평생토록 안고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에 묵직한 책임감이 밀려오지만 즐겁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걱정 말고 편히 잠드소서! 이한열 열사여![한진규-서울강서고등학교 2학년]

 

민주주의를 위한 제단에 자신의 한 몸을 바친 열사들과 억압에 스러져간 희생자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죽음을 복원하고자 엮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대의 불꽃" 15번째 작품.

이 책은 열사가 아닌 개인의 꿈과 사회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던 21살 청년, 시위에 참여한 뒤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의 삶을 담은 평전이다.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 시와 독서 감상문을 통해 온순하고 성실하며 낭만적이면서도 책임강 강했던 평범한 모습의 청년을 보여주고 있다.

4월의 진달래
나쁜 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신입생
겨울여행

그 자리 위에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나의 고운 이름이여
여명회
만화사랑

피로 얼룩진 땅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
5.18-백양로에 서서
축제


별이 되러 가는구나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
파랑새가 되어
네 죽음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