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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새 총재에 프랑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 선출 본문

Guide Ear&Bird's Eye2/합리적 금욕과 소비는 플러스 투자삶

IMF 새 총재에 프랑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 선출

CIA Bear 허관(許灌) 2011. 6. 30. 09:34

 

                                                          Sarkozy France President: Lagarde's nomination as IMF head "victory for France"

국제통화기금, IMF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여성 총재가 탄생했습니다. IMF는 28일 워싱턴 본부에서 집행이사회를 열고 새 총재로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을 선출했습니다.
IMF는 성명을 통해 라가르드 후보가 집행이사국들의 만장일치로 총재로 선출됐다고 밝혔습니다.

라가르드 신임 총재는 성추문으로 지난달 사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총재의 뒤를 이어 다음달 5일부터 임기 5년의 총재로 활동하게 됩니다. 라가르드 신임 총재는 선출 직후, ‘회원국들의 광범위한 지지에 감사하며 집행이사회가 보여준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회원국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IMF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라가르드 신임 총재는 IMF 최초의 여성 총재인 동시에 법률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IMF 총재직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French Minister of Economy, Finance and Industry Christine Lagarde (C) leaves Elysee Palace after the cabinet meeting in Paris, capital of France, June 29, 2011. Lagarde's nomination as the first female head of the IMF is "a victory for France," said President Nicolas Sarkozy's office.

 

IMF도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 입장에서 금융정책을 추진해주어서면 합니다 평민출신이 대부분 세계 부호로 등장해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민출신이 개인의 자유권과 사회권(생존권)을 존중해주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 경제발전과 문화창조는 노동자나 농민등 근로자들입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1956년 1월 1일, 파리 9구에서 교육자인 아버지 로베르 라루에트(Robert Lallouette)와 어머니 니콜 카르(Nicole Carre)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녀의 출생時 이름은 크리스틴 마들렌느 오데트 라루에트 (Christine Madeleine Odette Lallouette)이다. 그녀는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15세에는 싱크로나이즈드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로 프랑스 챔피언쉽에서 동메달을 따낸다. 17세 때 부친이 사망, 그의 어머니가 4자녀를 홀로 키운다. 라가르드는 1974년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액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정치연구소(Institut d'études politiques)에서 학위를 마친 후, 국립행정학교(ENA)에 입학하려 하지만 두 번이나 실패하게 된다. 그녀는 파리 10대학에서 영어와 법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1981년, 미국의 로펌인 베이컨앤드매킨지(Baker & McKenzie)의 파리지사에 변호사로 취직하여, 25년간 일한다. 그녀는 이 회사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고, 이어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되며, 그녀가 회장직에 있는 동안, 베이컨앤드매킨지의 매출을 50%까지 신장시킨다. 2002년 그녀는 유럽 월스트리트 져널(Wall Street Journal Europe)에 5번째의 여성사업가로 랭킹된다.
2004년 쟈크 시라크 대통령이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을 수여하고, 2005년6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그녀를 통상 장관(ministre déléguée au Commerce extérieur, 2005년 6월-2007년 5월)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정치세계에 첫 발을 디딘다. 장관에 기용된지 불과 48시간 만에, 그녀는 프랑스의 노동법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들며, 고용을 막고 있다고 비난하는 용감함( ?)을 보였다.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하고 2007년 5월부터 6월까지 농수산부 장관(ministre de l'Agriculture et de la Pêche)으로 기용되며, 이어 2007년 6월 19일 하원의원 선거로 인한 내각변동을 가지면서, 그녀는 졍 루이 보를로 장관에 이어 5 공화국의 42번째 재무장관 (경제 . 산업 . 고용부 장관 Ministre de l'Économie, de l'Industrie et de l'Emploi)으로 취임된다. 이로써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동시에 G8에서도 처음으로 여성재무장관이 탄생한다.
2007년, 미국의 TOP 10에 드는 초대형 모기지 대부업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미국발 재정위기는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일으킨다. 다음해인 2008년에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에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치게 되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프랑스 경제를 잘 이끌어 다른 나라에 비해 타격이 작았다.
라가르드 장관은 '노동, 일자리 및 구매력에 관한 법' (loi TEPA)과 '경제 현대화에 대한 법'(LME)을 국회에 표결하게 했으며, 또한 국립직업안내소(ANPE)와 실업기금관리공단(Unedic)의 업무통합을 통한 고용창구단일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고용서비스 개혁관련 계획안 (projet de loi relatif à la réforme du service public de l'emploi)'을 제출하였다. 이런 단일화를 통해, 더욱 직접적이고 신속한 취업-보상관계를 형성하여 현정부가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실업률을 5%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녀의 사생활
라가르드 장관은 첫 결혼에서 두 아들을 두었으며, 현재는 마르세이유 기업가 크자비에 지오캉티(Xavier Giocanti)와 동거, 파리와 마르세이유를 오가며 살고 있다. 2007년 재혼할 예정이었으나, 재무장관으로써 부딪혀야 할 세계경제위기로 결혼식을 미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결혼할 시간도 없이 바쁜 그녀지만, 그녀의 소득은 현격히 줄어들어, 그녀가 미국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40 000유로를 벌었으나, 현재는 10 000유로를 벌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30분 가량 요가와 스트레칭을 하며, 술은 마시지 않고 소식을 한다고 하나, 그러나 "가끔은 몰래 숨어서 초콜릿을 먹는 '귀여운 범죄'(péchés mignons)를 저지른다"고 고백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현재까지는 어떠한 스캔들 없이 프랑스와 유럽에 좋은 인식을 주고 있으며, 타임지에 의하면, 프랑스 국내에서 활동하는 정치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