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스리랑카, 타밀족 반군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시신 공개 본문

Guide Ear&Bird's Eye/스리랑카

스리랑카, 타밀족 반군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시신 공개

CIA bear 허관(許灌) 2009. 5. 20. 19:03

 

                                                            스리랑카, 타밀족 반군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시신 공개

 

스리랑카 정부군의 공세에 끝까지 저항하다 18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54)은 세계 최대 반군조직인 타밀반군(LTTE)을 세우고 이끌어온 인물이다. 스리랑카 북부 벨베티투라이에서 소수인 타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그는 싱할리족의 타밀족 차별과 탄압을 지켜보며 일찌감치 무장투쟁 전선에 뛰어들었다.

특히 그는 18세 때인 1972년 타밀족 군소 무장단체를 통합한 '타밀 뉴 타이거(TNT)'라는 새로운 무장조직을 결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3년뒤 자프나 시장 암살사건을 배후조종하면서 타밀족 무장단체의 거물로 발돋움했다.

또 그는 1976년에는 북부지역에 타밀족 독립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TNT를 현재의 타밀반군으로 개편한다.

 

                                        스리랑카 반정부무장인 타밀엘람맹호해방조직의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과 아들, 부인 사진
프라바카란은 특히 타밀족 민간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반군을 육군과 해군, 공군력을 모두 갖춘 막강한 군대로 육성했으며 북부와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사실상 거대한 타밀족의 영역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1991년 인도 타밀나두주에서 발생한 라지브 간디 전총리 암살사건과 1996년 90여명의 사망자를 낸 스리랑카 중앙은행(CBS) 폭파사건을 포함, 잇따른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이런 일련의 테러 배후조종 혐의로 인터폴의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궐석재판에서 2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20년 이상 반군을 이끌어왔지만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지난 2002년 반군의 정치 수도인 킬리노치치에서 열린 대규모 기자회견장에 타밀 독립국가의 대통령겸 총리 자격으로 등장한 그는 이후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반군의 쇠퇴와 함께 그가 해외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결국 그는 밀림에서 저항하다 최후를 맞았다.

                                      스리랑카정부군의 타밀족 반군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시신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내전승리 함성)

 

                                                                                      스리랑카 정부 난민 보호 

*타밀엘람해방호랑이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EET

영문약자로 LTTE로 표기하며,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의 줄임말이다.

타밀엘람해방호랑이는 스리랑카의 소수민족인 타밀족의 완전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해온 반군단체로 지난 83년 결성됐으며 스리랑카 북부에 이람국(State of Eelam) 창설을 목표로 출현하였다.

스리랑카는 독립이후 인구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계 싱할리족(74%)과 소수 힌두교계 타밀족(18%)간의 뿌리깊은 종족·종교간 갈등과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독립 직후부터 집권 싱할리족 정부는 싱할리어를 유일 공용어로 채택하고 불교 우대정책을 펴는 등 힌두교도인 타밀족의 반발을 샀다. 타밀족 역시 독립 당시부터 주요 거주지인 북부와 동부지역에 대한 자치권 확대를 주장해왔다.

1965년부터 분리독립운동을 추진해온 타밀족은 1972년 5월 싱할리족 정부가 국명을 「스리랑카(싱할리어로 '큰 성취'라는 뜻) 민주사회주의공화국」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헌법에 따라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심화시킨 것을 계기로 무장조직을 결성하여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타밀족의 분리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7월 이후. 타밀족 본거지인 자프나(Jaffna)반도에서 몇명의 정부군이 사망하였는데, 이로 인해 싱할리족의 타밀족 대학살(약 1천명)이 전국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때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결성되었다. '엘람'은 타밀어로 스리랑카를 뜻하며 '호랑이'는 타밀족 옛 왕조의 상징이다. 반군 지도자는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으로 인도 타밀족 출신으로 18살때인 72년 자프나 시장을 살해하면서 반군 활동에 참여했다.
LTTE는 80년대까지 구소련으로부터 군사고문단과 무기지원을 받았으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현재는 인도 남부의 5,000만 타밀족과 반정부세력,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수십만 동족 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있다.

1987년 6월 정부군과 타밀 반군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때 내전은 소강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일시적인 평화가 끝나고 1991년부터 전투가 재개되었다. 또한 타밀 반군 측의 테러활동이 강화되면서, 1993년 5월 프레마사 대통령이 자살특공대에 의해 암살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LTTE는 스리랑카 북동부를 중심으로 1만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자체 경찰력에 교도소를 갖췄으며 로켓발사기·야포·탱크뿐 아니라 해군력도 갖췄다.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자살특공대 '검은 호랑이'를 앞세워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테러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12월 5일 '내전 종식'을 공약으로 내건 '라닐 위크레메싱게'가 스리랑카 총선에서 총리에 당선되면서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으며 협상 개시 두달여 만에 휴전 합의에 이르게 됐다.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와 반군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의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브하카란이 휴전협정에 서명하여 2002.2.23 0시부터 휴전이 공식 발효됐다.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이 정부군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시인함으로써 25년 넘게 계속돼온 스리랑카 내전이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반군은 더 이상 정부군이 타밀족 주민들을 불필요하게 학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스리랑카 정부군은 타밀 엘람 호랑이 (LTTE) 반군을 격퇴했으며, 전투 지역에 고립돼 있던20만 명의 민간인들을 구출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