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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녀 3인 대남 비밀 공작원 김수임, 김현희, 원정화.. 본문
북한 미녀 3인 대남 비밀 공작원 김수임, 김현희, 원정화..
CIA Bear 허관(許灌) 2009. 4. 21. 01:51북한 미녀 3인 대남 비밀공작원은 김수임과 김현희, 원정화입니다
1.김수임
김수임(金壽任, 1911년 ~ 1950년)은 대한민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여성이다
경기도 개성 출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쳤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능통한 영어 실력을 이용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역 일을 했고, 미군정 시기에 군정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미군 간부 존 베어드와 옥인동에서 동거 생활을 했다.
독일에서 공부한 엘리트 공산주의자 이강국과 연인 사이로서, 존 베어드와의 동거 기간 동안 이강국의 지시에 따라 각종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1950년에 전격 체포되었다. 그해 6월 1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한국 전쟁 발발 무렵에 사형이 집행되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조선에서 역시 간첩 혐의로 처형당한 이강국과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는 극적인 요소가 풍부했고, 반공주의 고취에도 좋은 소재였기 때문에, 영화 《나는 속았다》(1963),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연극 《나, 김수임》(1997), 드라마《서울 1945》(2006) 등으로 여러 창작물에서 그의 삶이 다루어졌다. 논픽션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2002)는 김수임의 이화여전 후배인 전숙희가 쓴 것이다.
AP통신이 2008년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기밀 자료를 토대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등, 당시 발표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北韓戰爭時期,“金秀琳”這個名字是邪惡的代名詞。戰後,南韓政府每次發佈黑名單、“邪惡軸心名錄”,金秀琳都是惟一上榜的女性。她貌美如花,是上層社會有名的交際花,被認為是為北韓情報機構服務的“第一女間諜”。直到今天,南韓和美國都在重復一個故事:金秀琳勾引一個美國軍官,竊取了重要軍事情報給北韓,是挑起北韓戰爭的罪魁禍首。然而,隨著美國國家檔案館的資料一一解密,人們發現,金秀琳並非間諜,她只是一個“時代的犧牲品”甚至是受害者。
1950年7月下旬,北韓軍隊逼近漢城(今首爾),南韓軍方下令處死交際花金秀琳,稱她是“非常惡毒的國際間諜”。此後,金秀琳更加聲名狼藉。美國《皇冠》雜誌評價說,金秀琳是“背叛美國的南韓狐狸精”。後來成為美國總統的羅納德·裏根,當時還在好萊塢打拼,他主持引進了一部電視劇,把金秀琳描述成亞洲版的瑪塔·哈莉——西方世界最著名的十大間諜之一。美國政治家德魯·皮爾森甚至認為,金秀琳“挑起了北韓戰爭”。
半個多世紀過去了,金秀琳和她複雜的感情生活、“間諜生涯”被歷史封存。近日,美國國家檔案館一份標注著“絕密”的文件被打開,金秀琳的名字再次出現在人們面前。這份文件講述了一個完全不同的故事:金秀琳被控從美國一名上校那裏取得了情報,通報給北韓軍方,而事實是,這名美國上校本人都不知道這個情報,金秀琳根本沒有情報可以洩露。
真相來得太晚了,金秀琳的生命被永遠定格在35歲
2.김현희
김현희(金賢姬, 1962년 1월 27일 ~ )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이다. 범행 후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사면조치 되었다.
(1)생애
북조선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고, 공작에 투입되기 전까지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로 추정되는 리은혜(李恩惠)로부터 개인 집중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일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경찰에 잡히기 직전에 하치야 신이치(일본어: 蜂谷 真一)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 공범 김승일(金勝一)과 음독 자살을 도모했지만 김현희는 목숨을 건졌다.
(2)이력
-외교관인 아버지 김원석(金元錫)씨와 교사인 어머니 림명식(林名植)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지나서 아버지의 부임지인 쿠바로 갔다가 4살 때 평양으로 돌아갔다. 여동생 김현옥(金賢玉, 남편은 심장마비로 사망), 남동생 김현수(金賢洙)와 김범수(金範洙, 15세 때 위암으로 사망)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87년 11월 29일 하치야 마유미(일본어: 蜂谷 真由美)라는 일본명으로 가장하여, KAL기 폭파사건의 폭파 범행(수사결과)
-1989년 2월 3일 검찰(서울지검)에 의해 살인, 항공기폭파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1990년 3월 27일 대법원, 김현희 사형 확정 판결.
-1990년 4월 12일 사면
-후에 외교관인 친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것을 알게 됨.
-991년 6월 2일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발간.
-1997년 12월 28일 사면 이후 자신을 경호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
-현재 서울에서 거주.
(3)의혹
그러나 "KAL기 폭파사건" 은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왔으며,(일부집단들은 87년 대선당시 여론의 조작을 위한 야당(민정당)과 안기부에 의한 자작극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최근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가 실시되었다. 재조사 결과 일부 의혹들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의문을 제기한 정치집단들도 김정일의 사주를 받은 김현희의 소행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최근엔 사건에 대한 조작이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문서나 정황증거가 발견되어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를 <무지개 공작>이라고 한다. 2004년 5월22일,23일 <KBS스폐셜 - KAL858기의 미스터리>를 통해, KAL858기의 것이라는 동체조각과 부유물에 폭발흔적 없음과 김현희의 평양 출발이 거짓임이 밝혀졌다는 "KAL기 사건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의 주장도 제기되었다
金賢姬,作為北韓勞動黨的“工作員”的名字是“金玉花”、“金花玉”,1964年1月生於平壤,生就一副美人坯子。其父是北韓外交部官員,曾作為外交官攜眷常駐古巴,妹妹賢玉和弟弟賢洙就出生在哈瓦那。金賢姬上小學時,就曾作為童星演過電影;中學時代,曾作為青少年代表向出席南北和談的南方代表獻過“金達萊”;曾就讀于金日成綜合大學(生物)和平壤外國語大學(日本語);1980年3月,被北韓勞動黨“調查部”選中,遠離家庭,在若干“特殊機構”里長年接受包括外國語能力在內的旨在培養一流“工作員”的各種訓練,可以熟練使用日語和中文(包括廣東話)。
策動了1987年漢城奧運前夕的大韓航空的空難事件,原本想服毒自殺,卻失敗被捕。後來在南韓接受審問時,一直用標準的日本語與南韓溝通,並捏造了可憐的身世,企圖掩蓋她是北北韓人的身分。直到她在電視上看到南韓人的生活,並不如她在北北韓時的水深火熱,得知她以前根本就是被洗腦時,終於突破她的心防,承認了一切。
1990年3月27日,金賢姬被漢城地方法院判處死刑。後蒙盧泰愚總統“特赦”,于一年後被釋放。後在安企部的保護下從事著述和講演。其後來出版的題為《現在,作為女人》的手記,在韓日兩國都成為暢銷書,後又被拍成電影,據說僅版稅一項就高達10 億韓元。1997年12月,與當時曾參與她的調查工作的原安企部官員秘密結婚,現在南韓過著“普通主婦”的生活。
3.원정화
원정화(元正花, 1974년 1월 29일 ~ )는 북조선 여간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중학교 4학년 때는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중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기도 했다. 15세 때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에 의해 발탁돼 공작원 양성학교인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을 받다가, 1992년 머리 부상으로 소속 특수부대에서 의병제대했다.
1998년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귀국 직후인 2008년 7월 15일에 대한민국의 군경합동 사법당국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와 동시에, 계부 김동순과 한국군내의 협력자들도 체포되었다.
그녀는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제1심 재판에서 전향서를 제출하면서, 간첩활동을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고 적었다. 대한민국 수원지방법원은 원정화에게 검찰 구형대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袁正華1974年出生,1989年—1992年間,她在北韓接受對韓間諜訓練,因訓練途中受傷而退役。之後,她因偷盜百貨商店,在6年中輾轉各地。1998年,袁正華在親戚的幫助下了結了盜竊事件,並成為北韓保衛部的成員,然後被派往中國,在吉林等地經商。在1999年—2001年期間,袁正華先後參與了對100多名“脫北者”及南韓商人的綁架活動。2001年10月,袁正華接到“上級”潛入南韓的指令,遂偽裝成北韓族與南韓男子崔某結婚,之後前往南韓定居,並獲得南韓國籍。
袁正華在進入南韓後又偽裝成“脫北者”,並於2001年11月向南韓國家情報院自首。在這一身份的“掩護”下,袁正華往返于中國、南韓、北韓和日本,開展間諜活動。
2002年10月—2006年12月,袁正華先後14次向北韓保衛部報告南韓國內情況並進一步接受指令。2003年,袁正華掌握了南韓對朝情報人員的活動細節,還收買了同南韓情報機關有聯繫的企業家。2004年,袁正華還接到暗殺對朝情報人員李某和金某等的指令,並以毒藥和毒針進行事前準備工作。
韓聯社稱,2006年,袁正華與“脫北者”團體的幹部和軍隊情報人員接觸,搞到了前北韓勞動黨書記黃長燁等人的居所。黃長燁原是北韓勞動黨書記和金日成綜合大學校長,1997年在北京進入南韓領事館要求政治庇護,後來逃亡到南韓。在此過程中,袁正華通過婚介公司接近管理軍事機密和“脫北者”資訊的陸軍大尉黃某等三四名政訓軍官。韓聯社報道稱,袁正華以美色進行引誘,同黃某同居,從中獲取軍事機密。黃某于2007年9月得知袁正華是間諜後,非但沒有舉報,還幫她隱瞞事實,幫助袁正華銷毀了向北韓保衛部報告的傳真文件。2008年5月,黃某向袁正華提供了“脫北者”出身的軍隊安保講師名單。
南韓聯合調查本部27日表示,根據《國家保安法》于2008年7月15日拘捕了袁正華。聯合調查本部還逮捕並拘禁了指使袁正華從事間諜工作和轉送情報至北韓的間諜金某(63歲)。據報道,金某是袁正華的養父,他與北韓保衛部間諜進行緊密接觸,並向袁正華提供間諜活動所需的資金,同時操縱袁正華的間諜工作。
北韓女間諜袁正華2008年10月在首爾被判入獄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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