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독재자 카스트로의 퇴진?
2006.08.08
북한과 마찬가지로 독재국인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장출혈 수술을 받고 건강상의 이유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이양했습니다.
수술을 받기 며칠 전 쿠바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7월 26일 수도인 아바나의 대광장에서 모인 군중들 앞에서 카스트로는 '100세엔 현직을 떠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독재자도 한낱 인간인지라 카스트로와 같은 80세 노인의 앞을 미리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카리브해 섬나라인 쿠바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 스탈린, 중국 모택동, 루마니아 차우체스쿠나 북한 김일성처럼 20세기에 자신의 민족을 탄압하고 굶긴 공산주의 독재자입니다. 카스트로는 중세시대 절대주의적 군주처럼 쿠바의 정권을 47년 동안 잡고 있었습니다. 카스트로는 1959년 게릴라전을 통해서 쿠바의 정권을 잡은 후 자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고 쿠바는 사회주의국가라고 공언했습니다.
카스트로는 국민선거를 폐지하고, 쿠바 사람과 외국인 거주자 사유 재산을 몰수하면서 공업을 국유화시키고, 농업을 집단 농장화했습니다. 카스트로의 비참한 정책에 의해 쿠바의 경제는 심한 위기에 빠졌고, 1백 만명 이상, 즉 인구의 10%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쿠바 사람들은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경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목숨 걸고 파손된 보트를 타고라도 150km의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미국 해안도시 마이애미로 망명해 자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지난 47년 동안 카스트로는 인권을 심하게 유린해 왔습니다. 국제 언론, 민간 단체와 인권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반체제 인사들은 탄압과 고문을 당해왔습니다. 그들 중에서 사형을 당한 사람들은 5만명 가까이 됩니다. 카스트로는 반체제자들뿐만 아니라, 동성연애자와 에이즈, 즉 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들까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왔습니다.
카스트로의 인권 유린은 반인륜범죄가 아닌가 할 정도로 심합니다. 카스트로는 쿠바 사람들을 탄압하고 굶긴 것만으로 만족하진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앙골라나 에티오피아의 공산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스탈린주의를 중남미 니카라과로 수출하기 위해서 카스트로는 쿠바 군인들을 배치했고, 지난 47년 동안 쿠바 군인 약 14,000여명이 해외 복무하다 사망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지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도 소련과 함께 일으켰습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려다 미국과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당시 케네디 미행정부의 위기관리로 제3차 대전, 또한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카스트로 스스로는 자신의 개인 숭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가진 거리, 도시나 학교, 또 카스트로의 초상화가 없어도 쿠바의 지도자는 절대적인 정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국가평의회 의장, 공산당 제1서기, 군 최고사령관 등 쿠바의 모든 핵심 요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정권을 47년 동안 가지고 공산당밖에 정당이 없으며, 자유 선거도 없는 상황 자체는 여느 공산 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카스트로가 인권 유린을 하지 않고 정치 탄압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망명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 권력 이양 소식을 듣고 미국 마이애미의 수천 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자유 쿠바 만세1"를 외치면서 축제를 가지게 됐습니다. 80세인 카스트로의 정권이 오늘내일 무너지지 않더라도 쿠바의 공산주의 독재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쿠바가 자유를 되찾고 개혁과 진보의 길을 선택하면 16년 전에 끝난 냉전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는 북한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