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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간첩수사 결과 국가정보원 자료 본문

Guide Ear&Bird's Eye/테러단체,간첩등 수집.조사연구

주요 간첩수사 결과 국가정보원 자료

CIA bear 허관(許灌) 2006. 5. 12. 09:43

국가정보원 자료 http://www.nis.go.kr/docs/security/spy_01.html

 

1.


1995년 4월부터 충남 부여지역에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간첩 행적과 은거지를 추적해 오던중

1995년 10월초 충남 부여군 석성면에 있는 "정각사"에서 간첩 접선 징후를 포착하여 안기부 및 경찰 대공요원등 10여명이 정각사 인근에서 잠복 감시

1995년 10월 24일 14:00경 정각사에 거동수상자 2명이 출현,불심검문 하던 수사관과 교전하며 30여분간 대치하다가

동일 14:00경 안기부 수사관이 군경에 신속히 상황을 전파하여 병력을 요청, 퇴로를 차단후 16:00 출동한 군·경에 의하여 "정각사"인근 국도상에서 1명(김동식)은 생포하고 1명(박광남)이 도주하여

군·경·예비군 등 2만여명을 동원,도주간첩 은거 예상지역을 4선으로 봉쇄, 수색과 매복작전을 전개하여, 10.27 11:00경 부여군 거평 마을 인근에서 도주간첩 박광남을 발견, 사격을 가해 검거하였으나 서울경찰병원으로 후송치료중 사망한 사건입니다.



생포된 무장간첩 김동식을 당부 조사실에 수용하여 면밀 수사한결과
김동식은 90.5.30 제주도 보목동 해안을 통해 1차 침투한후 기남파되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는 지하공작지도부를 구축하고 있던 북한 권력서열 22위의 최고위급간첩 이선실과 함께 약 5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동년 10.17 이선실 및 간첩 황인오를 대동, 강화도를 통해 복귀한 사실이 있고

김동식 1차 침투시 이선실, 황인오 복귀 루트
김동식 1차 침투시 복귀한 강화도 건평리 해안

95년 4월의 2차 남파는 국내에 암약중인 고정간첩에게 간첩장비전달 및 지도 검열, 15년전 남파되어 활동중인 공작원 대동복귀 등의 지령을 받고 김동식을 조장으로, 박광남을 조원으로 한 공작조를 편성하여

김동식 2차 침투시 제주도 침투 요도
95년 8월 29일 어선으로 위장한 공작선편으로 북한 남포항을 출발, 9.2 24:00경 제주도 온평리 해안으로 침투하였으며


김동식 2차 침투 제주 온평리 해안 전경


권총 3정, 실탄 44발 독총2개, 독약앰플 3개, 무전기 15대. 위조주민등록증2매, 난수표 18종등 간첩장비 총 199종 1,404점 미화 61,100불 환화 748,900원 등 노획
경기도 성남 및 대전에 있는 여인숙을 활동거점으로 확보, 자신들을 삼풍백화점 희생자 유가족으로 위장 행세하고
특히 북한에서 남한의 실존인물 명의로 정교하게 위조한 주민등록증 4매를 소지하고 지역 및 여건에 따라 바꿔 사용하면서 서울·대구·광주·경기·강원·충남일원을 활보, 공작임무를 수행하였으며 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지에서 지령 수신용 중파라디오·의류·시계 등 공작장비를 구입하였고
북한의 지령대로 자신들을 "북한에서 온 당 연락원"이라고 밝히면서 "함께 통일운동을 하자"고 제의하는등 노골적이고 대담하게 정치권 및 재야운동권 포섭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또다른 고첩망 및 운동권 인물 포섭시 제공할 목적으로 대전·이천·남양주 등 7개소에 무인포스트를 설치하여 거액의 공작금과 권총·독총·무전기·난수표 등 간첩장비를 매몰하였고
무성권총, 독총, 독약앰플 등 고성능 인명살상용 장비를 휴대, 활동해온 무장간첩임이 밝혀졌습니다.




북한 대남 공작조직에서 혁명 2세대 출신들을 엄선하여 철저한 이남화 교육을 시켜 이북 사투리를 쓰지 않고 남한 환경에 익숙하게 훈련시킨 이른바 「새세대 공작원」으로 양성한후
국내운동권 내에서 주체사상등이 만연되어 있는 점 등을 이용하여 운동권 인물들에게 접근, 북에서온 공작원이라고 노골적으로 신분을 밝히는 대담하고 과감한 공작전술을 구사하였고
남한의 실존인물 명의로 된 주민등록증을 사용하면서 과거 분실도난 주민등록증을 입수하여 사진만 붙여 사용한 것과는 달리 남파간첩들의 무인을 직접 찍고 컴퓨터조회에서도 걸리지 않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고

남파간첩들의 공작 장비면에서도
7~8미터 내에서 인명 살상이 가능한 고성능 독총과 단시간내 대북송신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메모리식 무전기등 최신 공작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의 침투임무는 2개월간의 비교적 단기 대남공작임에도 미화 6만1천불, 한화 400만원 등 거액의 공작금을 소지하고
국내 전역에 설치된 7개소의 무인포스트를 통해 무전기, 권총과 공작금 등 간첩장비를 매몰하여 고정간첩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점 등

북한에서는 그동안 국내운동권을 중심으로한 주체사상의 만연과 전반적인 대공 경각심 해이현상에 고무되어 우리나라 전역을 활동 용이지역으로 하여 대담하고 거칠것 없는 대남공작을 자행하여 온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2.


96.7.3 플라자 호텔 비즈니스 센타에서 북경소재 북한 공작거점으로 FAX를 송부하던 필리핀 국적의 단국대 교수 무함마드 깐수를 검거하여 그가 84.4 북한 공작조직에서 필리핀인으로 위장침투시킨 북한출신의 남파간첩 정수일(당시 나이 62세)임이 밝혀진 사건입니다.

출     생 : 중국 연변
원     적 : 함북 명천
위장국적 : 필리핀
주     소 : 평양시 모란봉 구역
직     책 :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
이     름 : 정수일(깐수)



정수일은 국내에서 위장결혼 후 계속 필리핀인으로 행세하면서 정계·학계·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와 교류하면서 고급정보를 탐지·수집,암호 및 은서를 사용한 국제우편과 FAX등을 이용, 80여회에 걸쳐 중국 공작거점을 통해 북한에 고급 정치·군사정보를 보고한 바 있으며

특히 남파이후 87.7 - 95.2간 4회에 걸쳐 중국·오스트리아 등을 경유 입북하여 대남공작 공로로 조국통일상을 수상, 국내 정세를 종합 보고하고 김부자에 대한 충성맹세문 작성과 혁명유적지등을 답사한후 단파라디오, 암호표, 독약앰플 등 간첩 장비 교체 및 공작금(19,000불)을 수수, 국내에 다시 잠입하여 활동하는 등 간첩 정수일은 전문성과 지적능력을 구비하고 외국인 신분을 이용하여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장기 매복, 고급 정보 수집을 주임무로 해온 전형적인 인텔리 간첩임이 밝혀졌습니다.

외국국적취득, 국내침투경로

각종신분증명서

핀리핀여권

깐수사건 노획장비



이번 사건은 북한이 끊임없이 간첩 남파 등 대남공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건으로 우리 사회 일부에 퍼져있는 안일한 안보의식과는 달리 아직도 "사회 각 분야에 간첩이 은밀히 침투,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3.


동 사건은 96.9.18 00:55경 택시기사가 강릉시 강동면 소재 동해고속도로를 지나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 2명과 인근 안인진리 대포동 해안가에 좌초된 검은색 잠수함 선박 1척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거양된 간첩침투 사건입니다.
동 신고를 받은 군·경·예비군은 합동으로 도주로 주변을 전면 봉쇄하고 철저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서 잠수함 조타수 이광수(65생,상위)를 생포하고 청학산에서 도주하다 집단 살해당한 도주공비11명 사체를 발견한데 이어
9.19 이후 침투지역 주변의 단경골·칠성산 등지에서 우리군의 투항권유에도 저항하던 정찰조장·잠수함장 등 무장공비 13명을 발견, 사살하였으며
좌초된 잠수함 및 RPG-7대전차로켓, M-16·AK소총등 무기류, 정찰지도, 망원카메라등 유류품 총 327종 4,012점을 노획하는 성과를 거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장공비 소탕작전 과정에서 아군 9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3명이 피살되는 인명손실을 입었습니다.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 조사결과
동 잠수함은 함남 낙원(퇴조)잠수함기지에서 9.14 05:00경 대남공작부서인 인민무력부의 정찰국 해상처장(대좌, 우리의 대령급에 해당),정찰요원3명, 간첩 호송안내원 등 26명을 태워 출항하여
9.15 20:00경 강릉시 안인진리 인근 해상에 도착, 정찰조 3명을 육지로 침투시킨후 해상정찰을 하며 정찰조의 복귀를 기다리다

9.17 21:00경 정찰조 안내조장의 "파도가 세니 해안가까이 접안하라"는 무전지시에 후진하여 해안에 접근하던중 파도에 휩쓸리면서 좌초되어
23:50 잠수함내 주요 기물을 소각·파손시킨후 해안에 상륙, 인근 야산으로 도주하였습니다.

잠수함이 침투한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
침투 잠수함 사진
-94.12 함남 신포[봉대보이라공장](잠수함 건조기지)건조
-전장 35m, 높이 6.7m(타워포함, 350톤)
-수중 최대속력 7.5노트, 수중 경제속력 6노트
-승무원 20명, 최대 승선인원 30여명

주요 노획장비 사진(총 327종 4,012점)
- 무기류 : RPG-7대 전차로켓등 18종 1,977점
- 통신장비 : 타건식 전건, 난수표 등 13종 54점
- 정찰장비 : 비디오, 카메라 등 15종 47점
- 침투장비 : 잠수복, 산소통, 오리발 등30종 111점
- 기타 : 아군복, 남한제 의류 등 251종 1,823점



침투공비들은 청학산 정상에서 동료 11명을 AK소총, T/T권총으로 2-3발씩 총격을 가해 집단 살해하였고

도주실패에 대비, 각자 자결용 실탄 1발씩을 상의 호주머니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저항능력이 전혀 없는 60대 할머니를 비롯하여 민간이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잔학상을 여실히 드러 내었습니다.



사건발생후 북한은 "잠수함이 정상훈련중 기관고장으로 좌초되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북한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북한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침투 공비 복장이 전원 민간복장 또는 아군 전투복을 착용한 점
아군 개인화기인 M-16소총과 수류탄, RPG-7 대전차 로켓포등으로 중무장한 점
영동 발전소·강릉비행장 활주로등 국가주요 시설물을 촬영한 필름과 강릉·명주일대 지도 등을 휴대한 점
기관고장시 수면위로 부상하는 것이 필수적이나 수중으로 남하한점
잠수함 좌초지점 주변에 추진기 작동에 의한 바위마모 등 엔진가동 흔적이 산재한점
좌초당시 해류가 0.5~1 노트로 북상하여 북쪽으로 표류해야 함에도 군사분계선 이남 60여마일 지점에서 좌초한 점 등
  이루헤아릴수 없이 많습니다.




이 사건은 공격용 잠수함을 이용하여 아군복 및 민간복으로 위장하고 RPG-7 대전차로켓, 대전차 수류탄, AK소총 등으로 무장한 특수요원을 침투시킨 것은 명백한 무력 도발행위입니다.

또한 공비휴대 지도에 강릉비행장 활주로, 동해고속도로 등이 표시되어 있고 영동 화력발전소, 강릉해안 일대를 정밀 촬영한 필름이 있던 것으로 보아 정찰행위임이 분명합니다.

한편 이 사건은 68.1 청와대 기습(31명),68.10 울진·삼척침투(120명)사건 이후 최대 규모로 전원 정예군인인 인민무력부정찰국장교임에도 죄없는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은 북한이 여전히 적화통일 전략을 포기하지 않은채 노골적인 대남도발을 자행하고 있음이 입증된 사건입니다.

4.


97.10 재야단체인 「울산연합」간부 정모씨가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다. 북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며 신고, 수사기관에서 남파공작원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출현가능지역등 잠복감시 및 예상도주로 차단등 용의자를 추적하던중

97.10.27 울산 모커피숍에서 정모씨를 재차 접촉하려던 거동수상자 남녀 2명을 현장에서 검거, 수사결과 이들이 북한에서 직파한 사회문화부 소속 최정남·강연정 부부공작조임을 밝혀내고

서울지하철 동작설비 분소장 심정웅 일가족이 기포섭되어 암약중인 고첩망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사건입니다.



간첩 최정남은 84.4 사리원대 4년 재학중, 강연정은 86.9 고교 졸업직후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교육중 90.11 결혼한 실제 부부공작조로

이들은 남파시 공작지도부로부터 심정웅을 접선, 활동사항을 점검·독려하고 유사시 서울지하철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보고토록 하라는 기본임무와 대선동향 등 남한정세자료 수집,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종자 입수 등 부차적 임무를 지시받고

97.7.30 권총 2정, 공작금 3,000여만원 등을 소지하고 남포항을 출발하여 8.2 23:30경 경남 거제시 갈곶리 해안으로 침투하였습니다.

침투후 이들은 20여일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현지적응 훈련을 한후 8.23 서울 구로동에 은신거점을 마련하고

서울 지하철공사 심정웅을 6회에 걸쳐 접선하며 「조국통일상」수여사실과 암호해독 및 신형무전기 사용방법등을 교육시키고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보고하도록 하고 김정일 취임축하용「충성의 편지」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는등 장기잠복 고첩망을 지도검열한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한편 관악산, 경주 민속공예촌 야산, 봉천동 장군봉 체육공원 등 6개소의 「드보크」에서 체코제 권총3정, 실탄 170발, 독총, 독침, 독약앰플등 인명 살상용 장비 10종 205점과 무전기·난수표 등 총 54종 284점의 간첩장비를 발굴하였습니다.

 
* 귀순자 이한영 피격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장군봉제 2드보크 발굴장비



최정남에게 전달한 충성맹세본
   및 각종 문건
서울 지하철 동작설비 분소장 심정웅은
  58.9 간첩으로 남파된 당숙 심웅섭에게 포섭되어 입북, 간첩교육을 받고 "교통고에 진학, 졸업후 철도분야에 취업하라"는 지령과 함께 「철마산 66호」라는 공작부호를 받고 귀환한후 66.4 2차 입북, "철도의 핵심시설을 요해하고 유사시 활용할 수 있도록 동조자를 포섭하라"는 지령과 함께 무전기등 통신장비와 공작금 미화 1,000달러 수수, 84년 서울지하철 공사로 전직근무하면서 89.5-11월간 남파간첩 윤택림을 11회에 걸쳐 접선하는등 국가 기간시설에 침투, 39년간 암약해 왔음이 드러났습니다.

심정웅의 6촌 동생 심OO은
  67.6 남파된 숙부 심웅섭을 따라 입북하여 간첩교육을 받고 귀환한 후 서울로 이주, 암약하면서 89.10 남파간첩 윤택림으로부터 활동사항을 검열받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또한 심정웅의 숙모 김OO은
  조카 심정웅 등의 공작문건전달 및 간첩장비은닉등 연락책으로 활동해왔습니다.
북한직파 부부간첩 및 연계고첩망 사건 노획장비 : 총 212종 2,040점
- 인명살상 장비 : 10종 205점
- 공작금 : 2천 3백여만원
- 위조신분증 : 2종 5매
- 통신장비 : 16종 94점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는 30대 젊은층의 이른 바 「새세대 지도핵심공작원」들을 엄선, 철저한 이남화 교육과 해외적응훈련을 거쳐 우리 사회에 침투시키고 이들은 재야인사들이 무조건 자기들 편이라는 확신아래 만나자마자 대남공작원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월북할 것을 권유할 정도로 대담성을 보이고

남한내 엘리트 계층을 대거 포섭하여 이들을 조직화하는데 주력해 왔으며

전쟁개시 초기단계에서 국가기간 시설을 마비시키기 위해 국내 주요시설에 지하망 구축활동을 강화하고

통상적인 간첩행위외에 귀순자 이한영을 살해하는 보복테러를 자행하였는가 하면

공작원들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교생까지 납치하고 사리분별력이 부족한 16세의 소년 심정웅을 혁명도구로 포섭하는등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해 왔음이 이번수사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5.


국가정보원은 지하조직「반제청년동맹」관련 혐의 및 97.10 검거한 최정남 부부간첩사건 연루의혹과 관련 김영환을 내사해 오던 중

98.12.18 남해에서 북한으로 복귀하다가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김영환 등의 전화번호가 암호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 증거 확보에 주력해 오던 차에 97.10부터 중국에서 체류중이던 김영환이 정부당국에 입국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후 7.29 김영환이 자진 귀국함에 따라 자연스러운 분위기하에 4회에 걸쳐 심사를 실시, "89.7 북한 직파간첩에게 포섭되어 입북·귀환후 북한지령에 따라 지하당을 결성하였다"는 등의 자백을 받아내고, 자수자에 준한 선처방침을 검토하고 있던 중

8.16 김영환이 돌연「말」誌를 찾아가 "국정원이 간첩단사건을 조작하려 한다"는 등 거짓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잠적하였다가 8.18 18:35발 대한항공편을 이용,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김영환을 공항에서 긴급체포하고 관련자 조유식·하영옥·심재춘·김경환 등을 차례로 연행,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북한이 80년대 학원가의 친북투쟁을 주도해온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 조선노동당에 가입시킨 뒤
북한의 직접 지도를 받는「민족민주혁명당」을 구축하여 이른바 '남조선 혁명운동'을 사주해온 전형적인 지하당 사건으로

북한은 남한내 주사파를 대남적화혁명의 전위대로 삼기위해

학생운동권에 영향력과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던 김영환을 포섭, 입북시킨 후 남한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지하 혁명지도부를 구축토록 지령하였고

김영환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주사파 지하조직「반제청년동맹」의 핵심세력들을 하부망으로 포섭,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켜「관악산」등의 암호명을 부여하고
북한의 공작금으로 전국적인 조직기반을 갖춘「민족민주혁명당」(약칭:민혁당)을 결성, 암약해 왔으며

북한은 총책인 김영환이 사상적 변화를 일으켜 「민족민주혁명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주체사상이 투철한 「민혁당」중앙위원 하영옥을 접촉한 후 그를 통해「민혁당」을 재결속시키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첫째,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한 주사파 조직이 북한에 포섭되어 북한 노동당의 직접 지령을 받는 혁명전위조직으로 탈바꿈한 최초의 사례이고

둘째, 북한이 80년대 주사파 태동기부터 주사파 핵심인물을 포섭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셋째, 북한이 그동안 당장 이용하기 쉬운 기성세대를 포섭해오던 것과는 달리 잠재적 성장가능성을 지닌 엘리트 학생층을 포섭, 장기적으로 언론·법조인 등 여론지도층으로 육성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고

넷째, 필리핀인 위장간첩「깐수」에 이어 북한의 부부공작원이 국적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한 후 국내에 잠입, 장기간 암약하면서 공작활동을 벌이는 대담성을 보였으며

다섯째,「민혁당」은 북한의 지하당 조직전술에 따라 철저히 점조직으로 운영, 총책이나 조직책이 아니면 규모를 알 수 없고 상명하복이 엄격한 집단이라는 것으로 밝혀졌고

여섯째, 인터넷 통신망을 대북연락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사이버간첩」임이 최초로 확인된 사건입니다.


김영환 반성문 조유식 반성문


*한민전 추적과 이선실등 대남 공작원 생포과정
1990년 10월경  한국민족민주전선 창립 지하신문 첫발행 "새세대"신문이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요원에게 발견되어 한민전 추적 과정에 이선실과 대남 공작원 그리고 한민전 지도부, 잠수함 일방타진 되었음...
추적 열쇠고리<한민전 90년 최초 1월호 새세대 지하신문 자료 발견>
반제동맹(강철서신: 김영환씨 편지 글)--->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 새세대1호 발간--여명--아리랑--백두산등)

-남조선노동당이나 민족민주혁명당등 모든 남한 주요 간첩사건이 한국민족민주전선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청취받고 추적하니 한민전이 반미청년회와 동일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