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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위기를 통해 김정일의 영향력 증대

CIA Bear 허관(許灌) 2006. 4. 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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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위기를 통해 김정일의 영향력 중대  
김일성은 아들 김정일이 전군을 지휘할 관록과 군 경력이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군의 최고 직위도 주고 계급장도 금박으로 장식하여 부착하여 주었으나 그에 알맞은 무게가 없다. 산전수전의 경험과 무게 있는 군 내부의 장악력이 약하다. 이런저런 궁리 속에 번쩍하고 마음을 스치는 것이 “핵”이었다.

러시아의 북한문제 전문가 나타리야 바사노바 여사가 말한 것 같이 핵무기도 김정일의 주를 오리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핵을 이용하도록 시켰다. 말하자면 간이 얼마나 큰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북한에서 발행된 실록소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 간에 긴장이 높았던 1993년 2월부터 3월경의 어느 날 김일성은 김정일을 포함한 인민군 최고 간부를 집합시킨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이라도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떤가, 제군들은 자신이 있는가?”순간 전 지휘관은 동시에 힘주어 답하였다. “수령님! 자신 있습니다.”

“물론 나는 제군들의 확고한 결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적은 극악무도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된다. 적들이 핵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적들이 미친 듯이 핵무기로 공격하여 우리 조국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침묵, 또 침묵 실내는 개미소리 하나 없었다. 그 때 최고사령관 김정일이 일보 앞으로 나아와 침묵을 깨고 불을 토하듯 말을 하였다. 「수령님! 만일 적들이 핵무기를 사용하여 이 땅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려 한다면 미국도 결코 무사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북한)이 없는 지구는 없습니다.」

이것은 1997년 4월에 출간된 평양의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불멸의 향도」라고 이름한 씨리즈의 「역사의 대하」라는 장편소설의 한 구절이다.(p319-320)이 씨리즈는 김정일 신격화를 위하여 김정일 측근의 어용작가집단에 의하여 쓰인 글이다. 물론 공식문서는 아니다.

소설에 묘사된 시기는 김정일이 인민군의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1991년 12월 전후에서 94년 10월의 쥬네브에서 마·북한간에 핵의 틀 합의의 체결까지의 기간을 보여 진다. 소설로 기록하면서 실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실재의 인물을 취급한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1993년말에 다른 취재 건으로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이 소설에 쓰여 있던 김일성과 김정일 등 군 수뇌들의 회의내용을 한국군의 첩보기관인 육군보안사령부의 어느 인물로부터 들었다. 소설에 나오고 있는 김정일의 「조선(북한)이 없는 지구는 없다.」는 말은 그 뒤에도 김정일이 직접 사용한바 있다.(역자주)

김정일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있을 수 없다. 조선이 없어진다면 지구를 엉망진창으로 부셔버리겠다.」그리고 이 말에 이어서 김일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과연 최고사령관다운 발언이다」.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면서 평양의 최고 수뇌들 회의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고 문의하였다.

그 사람은 한 마디로 「그것은 도청입니다」라고 했다. 이 분의 정보 정확성은 북한 자체의 그 후 발표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2003년 4월 1일자 조선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에는 「조선이 없는 지구란 있을 수 없다. 적들이 감히 핵 공격을 한다면 이 지구를 때려 부셔버리겠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의지다」라고 쓰여 있다.

한 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절도도 이성도 책임감도 없는 부자들이다. 세계 역사에 남겨야 할 부끄러운 위정자이다. 김일성에 의한 김정일에 대한 우둔한 담력시험은 계속된다.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 2개 대국의 호위를 빌려 한국전쟁을 도발한 1950년 6월은 38세였다.

미국의 트루면, 아이젠하워, 케네티, 닉슨 등 역대 대통령 10명과 40여 년간 대결해 왔다. 김일성은 그 나름대로 미국 지도부의 속셈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식 김정일은 믿을 수 없다. 앞으로 냉엄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내가 없더라도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내가 건강할 때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자식을 부추겨서 미국과 핵 대결 게임을 시켰다. 상대는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는 민주당의 젊은 클린턴이다. 이 남자가 배포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는 것도 김정일에게는 공부가 될 것이다. 어차피 내가 공작하고 기회를 봐서 수습하면 될 것으로 김일성은 생각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미·북간에 가장 긴박했던 것은 1994년 5월에서 6월에 걸쳐 원자로의 로심교환 때였다.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흑연감속형 원자로의 사용한 핵 연료봉을 꺼내서 교환(로심교환)하는 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이다. 사용한 핵 연료봉은 정기적으로 꺼내서 새로운 것과 교환하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큰 사고를 낸 것도 그 한 예이다. 그러나 이 교환에 의해 사용한 핵 연료봉에 부착된 우라늄 238을 재처리하면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239를 분리할 수 있다. 따라서 로심교환은 핵폭탄 제조의 입구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IAEA(국제원자력기구)에서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

북한측이 핵개발 의사를 표명하고 그 시설을 일부러 스파이 위성에 찍히게 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도발케 한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로심교환은 다음 단계의 핵폭탄 제조로 가는 중대한 도발 행위이다. 미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대단히 어려운 결단을 촉구하게 된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비롯해서 국방위원 멤버를 소집하였다. 그 자리에서 미국과 전쟁 위험을 안고서라도 로심을 교환할 것인가를 물었다. 김정일이 일어서서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주권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타 국방위원들도 「우리들은 최고사령관동지(김정일을 말함)의 의사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김일성이 태도를 표명할 차례다. 이 인용은 1997년 6월에 평양의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출간된 「역사의 대하」와 같이 김정일의 어용작가집단에 의한 김정일의「위대성」선전을 위한 작품이다.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국방위원들은 지금이야말로 수령님이 최후의 결단을 할 때임을 의식하고 의자에 앉아서 운명의 순간을 긴장된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수령님은 국방위원들 앞에서 아무런 명령이나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김정일 동지를 향하여 서서히 시선을 옮기고 힘주어 말했다.「나도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따르겠다.」

국방위원들의 시선은 일제히 김정일을 향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기는 긴장 속에서 명령을 기다렸다. 김정일 동지가 이 나라 수백 년 굴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듯이 한쪽 손을 높이 쳐들었다 힘차게 내리쳤다.「즉시 로심을 교환하시오.」김정일의 소리가 뇌성처럼 방안에 크게 울리고 서서히 사라졌다.

장편소설의 한 대목이며 사실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비교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핵 대결」이 92년 1월부터 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의 조정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위기를 높였다. 핵을 가지고 장난한다는 말 자체가 김 부자의 모험적 게임이었다.

김정일은 이 “핵 대결”을 통해서 북한의 관제 메스컴에 「비할 데 없는 담력」「제국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단 한번의 양보도 모르는 혁명적 원칙성의 견지자」라고 칭찬을 받게 되고 김일성이 의도한대로 군 내에서도 김정일이 주가를 높이게 되었다. 모두가 치밀하게 계산된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