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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영남씨 납치했던 김광현씨 단독 인터뷰 "난 배만 몰았디.. 그래도 미안하다. 공작조가 다 했어.. 몇명납치했는지 몰라 남한 사람 다 됐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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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영남씨 납치했던 김광현씨 단독 인터뷰 "난 배만 몰았디.. 그래도 미안하다. 공작조가 다 했어.. 몇명납치했는지 몰라 남한 사람 다 됐어"

CIA Bear 허관(許灌) 2006. 4. 15. 22:54

"난 배만 몰았디… 그래도 미안하디…"
김영남씨 납치했던 김광현씨 단독인터뷰
“김영남씨 어머니 눈물 봤나” 에 말문열어
“공작組가 다 했어… 몇명납치했는지 몰라
남한사람 다 됐어, 이젠 날좀 내버려둬”

“미안하디…. 하지만 내가 공작해서 납치한 것은 아니야. 난 배에서 일했고, 납치는 공작조(組)가 하는 일이야. 난 김영남씨 얼굴도 몰라. 그래도 결과적으로 김영남씨를 납치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니 자식 잃은 부모에게 참 미안하디.” 1978년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군산기계공고 1학년이던 김영남(金英男)씨를 납치한 것으로 알려진 김광현(金光賢)씨가 입을 열었다. 14일 오전 7시10분쯤 서울 광진구 A아파트의 문이 열리자 깔끔한 남색 양복 차림에 노란 넥타이를 맨 노신사(老紳士)가 얼굴을 드러냈다. 1970~1980년대 서해안에서 납북 공작선을 타고 서해안을 수십번 넘나들었던 김광현씨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던 26년 동안 간첩으로 생포됐을 당시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대부분 빠져 버렸다. 그나마 남은 머리카락도 흰 서리를 맞았다. 이마와 눈 주위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1980년 6월 간첩선을 타고 왔다가 생포됐던 그는 현재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한에 정착한 그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샐러리맨 생활을 했고,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대학 출신의 아내가 있고, 대학에 다니는 23세 된 아들이 있다.

기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사진촬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무조건 모른다고만 했다. 그러나 “김영남씨 어머니 최계월씨가 아들을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것 보셨냐”고 물어 보자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 1980년 6월 충남 서산 앞바다에 침투하려다 생포된 김광현씨. /조선일보DB
“내가 김영남씨 어머니 입장이라도 자식 생사가 궁금하지 안 카서. 나도 자식 둔 부모 입장에서 도와주고 싶지. 하지만 김영남씨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이북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몰라. 내가 아는 것이 있으면 다 알려줘야지. 하지만 나도 이제 남한 사람이 다 돼서 아는 게 없어. 의심하지 말라.”

그는 간첩생활 당시의 일을 떠올리기 싫어했다. 김씨는 “30년이 지난 옛날 일을 왜 자꾸 들추어 내려고 하냐. 이제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해. 나를 제발 그냥 내버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뇨병을 앓고 있어 밤마다 치료를 받기 때문에 몸이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30여년 전 간첩선을 탔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북한의 간첩을 남한으로 침투시키거나 공작원을 북한으로 복귀시키던 일을 담당하던 ‘301 해상연락소’에서 근무했다. 우리나라 정보당국은 김씨가 선장이었다고 파악하고 있지만, 김씨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간첩선에서 갑판일만 담당했다고 했다. “대남 납치 지시가 떨어지면 공작선이 떠. 공작선을 타고 남쪽 공해상으로 내려오면 침투요원들이 소형선으로 갈아 타고, 또 여기에 있는 추진기를 이용해 해안선으로 접근을 했어. 난 갑판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누구를, 몇 명이나 납치를 해 왔는지 알 길은 없어.”

김씨는 끝까지 김영남씨를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서해안 일대에서 고등학생 4명이 연달아 납치된 사실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13일 “김광현씨를 직접 조사하면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김씨의 증언이 북한에 납치됐다가 김영남씨와 결혼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橫田惠)씨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하철 매표소에 이르자 김씨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흰색 무료통행증을 받았다.

“보라. 나도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야. 김영남 어머니께서 꼭 아들을 봤으면 좋겠어.”

전현석기자 winwin@chosun.com
입력 : 2006.04.14 23:43 53' / 수정 : 2006.04.15 14: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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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납북자단체 “김영남 북서 가택연금 됐다”

2006.04.14

지난 1978년 북한에 의해 납치된 남한인 김영남 씨가 현재 북한에서 가택연금 즉 집안에 갇혀 있는 상태에 있다고 남한의 납북자단체가 주장했습니다. 한편 김 씨는 북한이 남한으로 보낸 간첩에 의해 납치됐으며 김 씨를 납치한 간첩은 지금은 전향해 남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 이현주 기자를 연결해 알아봅니다.

김영남 씨가 현재 북한에서 가택연금 돼 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소개해 주시죠.

남한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가 14일 밝힌 내용인데요, 최 대표는 이 사실을 2004년 9월 자신에게 김영남이 요코다의 남편일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줬던 북한 인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최 대표는 김영남 씨가 현재 가족과 함께 평양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자택에서 외부와 접촉을 통제당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대표는 또 김영남 씨의 가택연금이 이뤄진 시점이 자신이 남한과 일본 정부에 납북 고교생의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던 시가와 맞아 떨어진다면서 북한이 김영남에 대한 정보가 외부에 흘러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한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김영남 씨는 북한이 남파한 간첩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지요?

남한 조선일보는 14일 ‘납치된 고교생은 북 공작교관, 납치한 간첩은 남 자영업’이라는 제목으로 납치된 뒤 북한에서 남파간첩을 육성하는 교관으로 살고 있는 김영남 씨와 김영남 씨를 납치한 남파간첩이었으나 남한에 자수한 뒤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광현 씨의 인연을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신문은 김영남 씨와 김광현 씨의 사연을 분단국의 기막힌 상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납치될 당시 김영남 씨의 나이 17살이었고 김광현 씨는 40세였습니다. 김광현 씨는 현재 서울에 살면서 경기도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으며 결혼을 해서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두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김광현 씨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시죠.

1938년 평안 출생인 김광현은 1974년부터 301 해안공작소에 근무하면서 북한의 간첩을 남파시키고 남쪽의 간첩을 북한으로 귀환시키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1980년 남한 서해안쪽으로 침투 중에 충남 보령 해안에서 남한군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체포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지난 기간의 죄를 사죄하고 속죄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남한에 전향했습니다. 남한 언론에 공개됐던 김광현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김광현: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김일성에게 이런 충성을 다해온 지난 기간을 생각할 때 어리석었다는 것을 매우 후회하게 되고.

김 씨는 당시 남한 당국에 밝힌 진술서에서 체포되기 2년 전인, 1978년 8월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김영남 씨를 납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당국이 김광현 씨를 직접 조사할 뜻을 밝혔다면서요?

일본 경찰청의 우루마 이와오 장관은 14일 기자회견에서 납치사건 해명에 남한 경찰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며 김광현에 대한 직접 조사를 남한 경찰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루마 장관은 또 1991년 항공기 폭파범 김현희를 직접 만나 김 씨의 일본어 선생을 했다는 다구치 야에코 납치 사실을 확인한 적이 있다면서 김 씨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번 사건 해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한의 귀환 납북자들이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납북된 뒤 탈북, 남한으로 귀환한 이재근, 진정팔, 고명섭, 김병도 씨가 14일 남한 미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이들의 비자는 문제없이 접수됐고 오는 20일 남한 납북자단체의 관계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이번 미국 방문은 워싱턴에서 열리는 납북자송환 촉구행사와 ‘북한 자유의 날’ 행사 참석을 위해선 데요. 이들은 미국 방문 중에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항의 방문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북한 자유의 날’ 행사 기간에는 일본의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남한 단체들은 이번 행사를 통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의 말입니다.

도희윤: 이슈화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있으리라고 보고 납치 행위에 대한 북한의 범죄 행위가 구체적인 사례로 기억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22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 위치한 라파예트 공원에서 열리는 납북자송환촉구 행사는 올해 3번째 열리는 ‘북한 자유의 날’ 첫 행사로 시민단체 ‘피랍인구출 희망센터’와 일본의 납북자 가족들, 남한의 납북자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서울-이현주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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