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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루마니아의 교훈과 북한의 선택(자유아시아방송, RFA) 본문

Guide Ear&Bird's Eye/유엔평화유지군(연합군-한국 국방부,NATO)

[스크랩] 루마니아의 교훈과 북한의 선택(자유아시아방송, RFA)

CIA bear 허관(許灌) 2005. 5. 13. 21:21
2004년 12월 5일 기자회견에서 발레리우 아르테니 주한 루마니아 대사가 언급한 내용과 관련 북한은 15년전 있었던 루마니아의 유혈혁명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말고 평화적인 개혁과 개방을 해야 한다는 루마니아 출신 그레그 스칼라티우씨의 수필입니다

지난 2004년 12월 5일 발레리우 아르테니 주한 루마니아 대사는 서울에서 한국언론과 루마니아의 교훈과 북한상황에 관해 회견을 했습니다 주한 루마니아대사의 북한 상황에 대한 의견은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한 루마니아 외교관들은 남북한의 상황을 잘 알면서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의 경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도 북한처럼 공산주의 독재와 개인숭배, 인권유린과 식량부족을 직접 겪은 나라입니다 1989년 12월에 루마니아의 국민이 반독재 반공산주의 유혈혁명을 일으켜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군사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했습니다

발레리우 아르테니 주한 루마니아 대사의 말로는 1989년에 헝가리나 체코와 같은 다른 동유럽 가들은 정치, 경제, 사회개혁을 이끌어나기 시작했지만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고집을 부려 개혁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살기 어렵던 루마니아 사람들은 유혈혁명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한 루마니아 대사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 당한 처참한 말로를 피하기 위해 부분적이나마 근래 경제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는 것으로 풀이 했습니다

주한 루마니아 대서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문제를 해결해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리비아를 예로 들었습니다 리비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 고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옛날 루마니아 공산주의 시대에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는 리비아의 모아메르 가다피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과 각별히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다피는 가까운 친구이던 차우체스쿠의 운명을 보고 배운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비아의 고립주의 정책을 포기할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도 루마니아의 교훈을 보고 리비아처럼 핵 개발을 포기해 고립주의 정책을 버린다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더 없이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경우는 1989년 말에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서 국민이 피 흘리는 혁명을 일으켰고 이에 따라 수천명의 루마니아 젊은들이 숨졌습니다 유혈혁명과 이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붕괴한 루마니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은 이웃나라들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더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루마니아도 미국이 주도하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고 2007년에는 유럽공동체에도 가입할 예정입니다 비록 루마니아의 경제구조 조정은 다른 동유럽 나라들보다는 느린 편이었지만 상당히 높은 수출량과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교훈은 유혈혁명은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때 저와 같은 젊은세대 수천 명이 숨진 것은 너무 큰 희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희생된 그들이 만일 살아서 현재의 루마니아 민주주의 사회 발전에 기여했더라면 루마니아의 미래는 더욱 밝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와서 15년전에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피 흘리며 숨진 그 젊은이들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15년전 비참하게 끝난 차우세스쿠의 독재통치 체제의 고립정책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북한은 그 같은 불행한 유혈혁명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적인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현명한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자료제공: 자유아시아방송(RFA, Radio Free Asia)
http://www.rfa.org/service_home.cgi?service=korean

-니콜라에 차우세스쿠(Nicolae Ceausescu 1918-1989)
차우세스쿠는 루마니아 정치가이다 그는 올테니아 출생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제화공으로 일하였다 1933년 청년공산동맹에 가입하였고 1936년 공산당에 입당 그리고 청년공산동맹의 지방서기가 되었다
그해부터 2년 반 동안 투옥되었다가 출소와 함께 청년공산동맹본부의 서기가 되었고 부쿠레슈티 경제전문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0년 재차 투옥되었으나 1944년의 반추축쿠데타 후 출옥하였고 1948년 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세력 기반은 군(軍)이었는데 1944년부터 준장의 자격으로 군의 정치위원이 되었고 1950년 소장 및 국방차관이 되었다
1953년 I.V 스탈린 사망 후의 정치적 동요과정에서 조직능력을 인정받아 1954년 당서기, 1955년 정치국원이 되었다
1965년 국가평의회의장 G. 게오르규데이가 죽자 당 제1서기가 되어 그가 시작한 자주노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권한을 최대한 집중시켜 당서기장과 대통령 뿐만아니라 통일전선. 국방. 경제. 이데올로기등 주요 기관의 의장직을 겸임하였다
통치기간 중 수만 명의 민중을 학살하는 등 24년간 철권으로 루마니아를 다스리다가 1989년 12월 민중봉기로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같은 달 25일 아내와 함께 처형되었다

-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차우세스쿠는 주체사상과 개인숭배, 그리고 평양의 웅장한 도로를 접한 뒤 크게 감탄한 나머지 귀국 후 수도인 부카레스트를 평양처럼 대중들이 모여서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루마니아식 <주체>를 건설하기 위해서 연필에서 자동차와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외국의 협조 없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려 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외자가 필요했습니다 외채를 갚기 위해 루마니아는 농산물과 식료품을 해외에 수출해야 했고 수입을 줄이기 위해 소비제의 수입을 끊어버렸습니다
정부가 또 전기를 절약한다는 명분 아래 정전을 실시하는 날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인권유린, 식량부족과 전력난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소련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던 1989년말에 마침내 반독재 반공산주의 유혈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독재자 차우세스쿠와 남편의 위세를 등에 엎고 날뛰던 부인 엘레나도 군사재판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존 속으로!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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