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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감시가 끊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최전선 본문

흑해 주변국/우크라이나

러시아의 감시가 끊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최전선

CIA bear 허관(許灌) 2023. 3. 26. 03:47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 벨리카 노보실카 외곽에서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구불구불 이어졌던 가로수가 이제는 앙상한 조각만 남았다.

우크라이나 육군 제1분리전차여단의 보병 디마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길에 난 봄 클로버에는 이미 군화 자국이 즐비했다. 눈앞에 놓인 제로라인(마지막 참호) 뒤로 러시아군이 불과 700m 거리에 있다.

바흐무트보다 더 북쪽에 배치됐던 우크라이나 군대는 점점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이곳 도네츠크 지방 남부에는 아직 우크라이나 전차와 보병이 굳건히 서 있다.

몇 달에 걸쳐 러시아군의 악랄한 공격이 이어졌지만, 디마는 여단이 잃은 영토가 10m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고 말했다.

참호를 파놓은 황량한 땅은 러시아 초소와 감시 드론에 노출되어 있다. 최전선의 러시아군이 항상 주시하며 공격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보병 참호를 지나면 클로버 대신 진흙과 폭탄 분화구가 보인다. 아직 폭발하지 않은 포탄과 지뢰가 땅을 뒤덮고 있다. 겨울부터 잎이 다 떨어진 나무 꼭대기는 이제 가늘게 쪼개지고 산산조각 났다. 디마는 "최근 여기에서 탱크 전투가 있었다"며 "우리가 러시아군을 몰아냈다"고 말했다.

참호 속에서는 한 군인이 부드럽고 붉은 흙을 아주 조용히 파내고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바람결을 타고 자동화기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디마(22)는 전쟁 전에 석유화학공장에서 일했다

디마는 "마을에서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때로는 마을 전체가 불타버리기도 했다. 인(화학물질)이나 뭔지 모를 것을 던졌다"고 말했다. 키가 193cm가 넘는 디마의 하늘색 눈은 눈 밑의 다크서클과 대조돼 더 밝게 보였다. 어깨에는 AK-47을 걸쳤고 방탄복에는 숟가락, 깡통 따개, 작은 펜치가 걸려 있었다.

참호 밖은 위험하다. 담배를 피우다가도 잠시 방심하면 근처에 박격포나 수류탄이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디마는 러시아 진지를 가리키며 "거의 매일 포격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사상자가 나왔지만, 바흐무트에서 근접전을 벌인 우크라이나군의 손실에 비하면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나더니 포탄이 우리 왼쪽에 떨어졌다. 여섯 명이 엄폐물로 달려가 바닥에 엎드렸다. 내 쪽에서는 디마가 안 보였지만, 누군가 러시아 탱크가 발포 중이라고 외쳤다.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 흙을 뒤집어썼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3m 거리로 느껴졌다. 나는 엄폐물로 향했고 디마가 참호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내부에는 나무로 덮은 대피소가 있었는데, 우리 네 명이 그 안을 꽉 채웠다. 디마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근처에서 또 다른 폭발이 있었다.

디마는 "러시아가 가진 포탄은 무제한"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창고 전체를 [포탄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하루 종일 쏴도 포탄이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 포탄이 바닥날 겁니다. 그래서 다양한 돌격 여단을 꾸리고 있습니다. 탱크를 받았고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카자크 민족이니까요. 용감하죠. 이길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공격이 떨어질 때는 참호에서 엄폐하고 병사 한 명이 적 보병과 드론을 찾기 위해 감시를 선다고 설명했다. 디마는 대처법을 익혔다고 한다.

"처음 몇 번은 무서웠어요. 처음 배치됐을 때요. 이제는 어떻게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바위처럼 단단해졌죠. 뭐, 약간의 두려움은 모두 갖고 있지만요."

또 다른 포탄이 디마를 넘어뜨릴 만큼 가까이 떨어졌다. 디마가 머리를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며 "잘 쏘는데" 하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연결된 참호를 파고 있다

22세인 디마는 중부 산업도시 크레멘추크 출신이다. 전쟁 전에는 석유화학 공장에서 일했다. 여기서 싸우는 다른 많은 군인처럼 성인이 된 디마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가족들에게 무슨 연락을 하는지 묻자 "아직 가족을 꾸리지 못했다. 엄마만 있다"고 말했다. 디마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집에 전화한다. "엄마는 잘 모르세요. 엄마한테 다 말하진 않아요"라고 말하는 디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군이 무엇을 발사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탱크 사격, 박격포, 우크라이나 진지에서 터지는 수류탄, 또는 3가지가 조합된 것일 수 있다. 턱수염을 기른 한 병사가 군복 앞을 더럽힌 채 참호로 들어오면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러시아 드론이 머리 위에 있었다. 하지만 무장 드론인지 정찰 드론인지는 모른다. 포격이 끝나거나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일몰 직후에 이 군인들을 떠났다. 여단 전차가 러시아군을 향해 반격 중이었다. 내가 돌아오자 새로운 병사들이 참호를 따라 자리를 잡았다. 길 곳곳의 대인 지뢰를 기억하며 희미해지는 빛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단에 배치된 우크라이나산 T64 불랏 탱크와 포병이 이 지역을 지배한다. 탱크 사령관 세르히는 "탱커는 보병의 형 같은 존재"라며 "보병이 다치면 탱크가 온다. 문제는, 항상 올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1분리전차여단은 육군에서 가장 훈장을 많이 받은 부대로 꼽힌다. 사령관 레오니드 코다 대령은 영국 '챌린저2'를 비롯한 서방 전차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독일의 레오파드 전차 훈련을 위해 병력을 보냈다.

그는 적군의 "목표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조국, 영토, 가족을 지키려는 겁니다. 동기가 다르죠. 러시아군에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러시아 지도부는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후퇴는 징역형과 처형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도살장으로 향하는 양 떼처럼 전진하는 겁니다."

2월 러시아군은 30km 거리의 최전선을 돌파하려 시도했다. 이는 아직 점령되지 않은 도네츠크의 나머지 지역을 위험에 빠뜨리는 대담한 공격이었다. 이 진격은 러시아군 수백 명이 사망하고 탱크가 수십 대가 손실되고 기갑 여단이 거의 전멸하는 재앙으로 끝났다.

레오니드 코다 대령은 2월 어느 날 13km 떨어진 브릴이더 마을 주변에서 펼쳐진 공격을 회상하며 "절망에 찬 공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적군 여단이 사실상 전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술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탱크 사령관 세르히

돈바스 지역 대부분은 산업시대의 투지가 할퀴고 간 거친 풍경이 남아있다. 주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폐공장과 광석 찌꺼기 더미다. 하지만, 코다 대령의 부하들이 특별히 보호 중인 벨리카 노보실카의 시장 마을은 다르다.

전쟁 전에는 현대식 학교, 깔끔한 소방서, 3층짜리 유치원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 황량한 폐허로 남았다.

기자를 마을로 데려다주던 군 운전병이 도로에 박힌 로켓을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또 다른 러시아 포탄이 인근 지역에 떨어져 회색 하늘에 길게 휜 먼지를 남겼다. 마을의 작은 집들이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은 부서졌지만 전쟁 전에는 북적거렸을 모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1만 명가량의 인구는 이제 200명 미만으로 줄었다. 차에 탄 군인 중 한 명이 "지금 여기는 쥐, 고양이, 개만 가득하고 이런 동물들도 포격을 피해 숨는다"고 말했다.

대피소 중 한 곳에서 피아노 교사 이리나 밥키나를 만났다. 그는 마을에 남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타오르듯 붉은 머리를 가진 이리나는 마을에 머물기로 조용히 결심했다. 주민 수십 명이 춥고 축축한 대피소에 살고, 이리나는 노인들을 돌본다.

1만 명가량이 살던 벨리카 노보실카 마을에 200명도 안 되는 주민이 남았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이리나 밥키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리나는 마을에 일어난 일이 "슬픔"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예전에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며 "지금 풍경은 슬픔에 가깝다. 예전 모습이 사라진 슬픔, 지금 모습을 겪어야 하는 슬픔"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폭탄이 그 슬픔의 산을 더 키우곤 한다. 지하 대피소에서는 나무를 때는 난로가 희미한 빛과 온기를 전한다. 그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아 바실리브나(74)가 혼자 침대에 앉아있었다.

이리나는 우리를 소개하기 전에 "할머니는 말씀하시는 게 힘드세요. 최근 남편분이 파편에 맞아 세상을 떠나셨어요"라고 속삭였다.

마리아가 기자의 손을 잡고 "손이 차다"며 본인의 두 손으로 녹여주려 했다.

마리아의 남편 세르지(74)는 병이 깊어 대피소에 올 수 없었고 러시아 폭탄이 이웃집에 떨어져도 원래 살던 집에 남아 있었다.

"남편이 밤새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나는 여기 있었고 그이는 집에 있었죠"

마리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밤새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나는 여기 있었고 그이는 집에 있었죠. 아침에 가봤더니 이미 세상을 떠나있었어요. 그리고 남편을 묻었습니다. 그렇게 끝이었어요."

두 부부의 결혼 후 54년이 흐른 어느 날의 일이었다.

마리아 바실리브나는 남편의 병이 깊어 대피소에 갈 수 없었고 러시아군의 폭탄 공격 후 피를 흘리며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리나는 마을 학교를 안내했다. 라일락색 복도에는 잔해가 흩어져 있었고 창문은 러시아제 폭탄으로 날아간지 오래였다. 아동용 재킷이 여전히 옷걸이에 걸려 있었고,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은 그대로 선반에 남아 있었다.

하늘색 라디에이터 위에는 승리를 축하하는 어린이 축구팀의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창밖에는 자주 보던 구덩이가 있었고, 근처 정글짐은 포격으로 망가졌다. 폭발하지 않은 러시아 로켓의 꼬리 부분이 운동장 아스팔트 위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1만 명가량이 살던 벨리카 노보실카 마을에 200명도 안 되는 주민이 남았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이리나 밥키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리나는 복도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연주했다. 하지만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너무 손상된 것이다. 이제는 연주할 음악도 없고 가르칠 아이들도 없다. 아이들 중 마지막 1명은 경찰이 지난달 마을에서 강제 대피시켜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 그중에는 이리나의 딸도 있었다.

이리나는 "들리는 것은 포탄 소리뿐"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무너지고 악기가 망가졌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재건하면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함께 음악 소리도 다시 울려 퍼질 겁니다."

이 마음이 민간인 군인을 막론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을 굳게 이어주고 있다. 저항하겠다는 결심은 우크라이나 무기고의 닳지 않는 무기이며, 그 어떤 기갑 탱크나 보병 참호 못지않게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다.

러시아의 감시가 끊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최전선 - BBC News 코리아

 

러시아의 감시가 끊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최전선 - BBC News 코리아

쿠엔틴 섬머빌 특파원과 대런 콘웨이가 러시아군의 공격이 쏟아지는 최전선을 취재했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