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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영미 등 서방국의 지지는 얼마나 유지될까 본문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조금씩 장악해가고 있으며 이번 전쟁을 두고 전문가들이 장기적 소모전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향한 서방 세계의 지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아닐지 살펴본다.
번쩍거리는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개전 명령을 내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의 최선책은 어떤 것인지, 과연 어디까지 러시아를 제재해야 하는지를 놓고 서방 세계 내 요동치는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먼저 영국, 폴란드, 발트 3국은 러시아의 명백한 패배를 바라고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지난주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낼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해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외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초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휴전을 촉구하며 서방이 "러시아에 굴욕감을 안겨주고 싶다거나 복수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또한 그다음 날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자리에서 유럽인들은 "휴전 가능성과 받아들일 만한 협상의 재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4일 마크롱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80분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재개 방안을 논의하자 아르티스 파브릭스 라트비아 부총리는 자신의 SNS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파브릭스 부총리는 트위터에서 프랑스와 독일 정상을 겨냥해 "정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채 자기 비하의 필요성에 사로잡힌 이른바 서방 지도자들이 여럿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혼재된 신호
물론 러시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신호는 그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다.
3월 초엔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라 부르며 러시아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듯 보였으나, 이번 주에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가 사정권에 들어가는" 장거리 로켓 시스템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일 미국이 첨단 로켓 시스템 등 우크라이나에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하자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를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라며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보통 미 행정부의 조율된 견해를 전달하는 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몫이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 회의에서 블링컨 장관은 미국과 파트너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과 주권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도록 전쟁터를 비롯한 그 어떤 협상 테이블에서도 가능한 한 강력히 돕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발언했다.
"가능한 한 강력한 도움"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을 "완전히" 방어한다는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향한 서방 세계의 의견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일까.
유럽의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CER)의 이안 본드 외교정책국장은 결국 이번 주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부분적인 제재를 발표했지만, 합의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EU)이 수 주간 겪었던 진통을 두고 "합의하기까지 겪은 난관에 집중해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 EU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또한 신속히 제재하리라는 생각은 이미 불식됐다.
발트 3국과 폴란드는 천연가스에도 신속히 금수 조치가 내려지길 희망하지만, 카자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이번 주 "다음번 제재안 합의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다.
카를 네함메르 오스트리아 총리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금수 조치는 "다음 제재안에서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 많이 필요한 무기
한편 우크라이나는 서방 세계가 많은 걸 약속했지만, 실제 이행된 것 적다고 주장한다.
이번 주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다연장 로켓포와 방공 및 레이더 시스템 등 첨단 무기를 추가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의 다급한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전 약속 이행에 대해 독일이 망설이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미국이 지원한 무기는 러시아 본토가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만 사용될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러시아는 그 어떠한 제한도 준수하지 않는 가운데 왜 서방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제한을 두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한다.
이를 두고 본드 국장은 "일종의 교정 과정"이라면서 "마치 '우크라이나가 이기길 바라지만 너무 많이 이기길 바라진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서방세계가 선뜻 맞서지 못하리라고 확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굴욕스러운 철수를 막 끝낸 NATO 회원국이 새로운 국제적인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러시아군이 전투에서 조금씩 성공을 거두면서 서서히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고 보도가 있었으며, 러시아 독립 인터넷매체인 '메두자'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곧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지칠 것"이라는 믿음 또한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영국에서만 무려 600만 가구에 올겨울 전력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영국 정부의 이번 주 경고에 크렘린궁이 자신감을 얻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방 세계 여론의 분노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들 정부의 지지가 약화할 수 있을까.
실제로 에이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달 의회에서 이와 관련한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헤인스 국장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그(푸틴 대통령)는 식량 부족, 인플레이션,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미국과 EU의 결의가 약해지리라고 믿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위기를 자초한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향한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합의는 매우 탄탄한 상태다.
그러나 이미 균열이 존재하는 곳에선 견해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만약 어느 한쪽이 결정적으로 우세해지기 시작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게 본드 국장의 설명이다.
"만약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을 완전히 장악한 뒤, 다시 우크라이나 중심을 관통하는 드네프르강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휴전 협정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많은 영토를 포기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앞당겨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몰아내기 시작하면 "서방 세계에서는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장악한 돈바스 일부 지역을 탈환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게 본드 국장의 설명이다.
아직까진 매우 시기적절한 듯한 내용은 아니지만, 지난달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베테랑 미국 외교관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에 영토 할양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등은 아주 강하게 반발했다.
절대 쉽지 않을 논쟁이 여전히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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