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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한국 여성들이 다시 숏커트를 하는 이유 본문
안산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로 3관왕을 이뤄냈을 때, 고국에서 그를 반긴 건 찬사만이 아니었다. 그는 거센 비난도 직면해야 했다.
비난의 이유는? 그가 숏커트를 해서였다.
안 선수를 향한 비난 중엔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주로 남성혐오와 연관 지어지는, 정치색 짙은 표현이다.
한 남성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금메달을 딴건 좋지만,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인 것 같다. 만약 페미니스트면 지지를 철회하겠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페미니즘 공격이 이어질수록, 그를 향한 지지 캠페인도 커졌다.
수천 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숏컷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숏컷을 하는 건 자신의 여성성 혹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들은 오랜 기간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항해 싸워왔다. 지난 10년간 미투운동과 낙태법 폐지 등 변화도 만들어왔다.
숏컷 캠페인 등 안산 선수를 향한 지지 움직임은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숏컷하면 페미니스트?
심리 상담·코칭을 하는 신체심리학자 한지영 씨는 지난달 25일 트위터에서 안 선수와 연대하는 의미로 '여성_숏컷_캠페인' 해시태그 운동 참여를 제안했다.
한 씨는 BBC에 "(안 선수를 향한 여성혐오 글이) 한두개가 아니라 거의 모든 남초 커뮤니티에 대량으로 올라왔다"면서 캠페인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러한 여성혐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젊은 남성이지만, 중년 남성이나 심지어 여성들도 있다.
"여성의 신체에 대해 남성 일반이 통제를 가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유포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여성인권 현실이 참혹한 한국에서 이를 지켜보는 여성들이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숨겨야 하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 두가지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다가 다수의 여성들이 숏컷 사진을 올리면서 여성 선수들을 응원하는 해시태그 켐페인을 생각해내게 됐어요."
캠페인을 시작하자 수만 건의 숏컷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들이 머리가 길었을 때와 짧았을 때의 전후 비교 사진을 공유했다. 어떤 여성들은 안 선수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숏컷으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고도 말했다.
돌멩이가 빱! 좋아
@eat_rocks_
긴머리, 화장, 초커 등 코르셋 꽉 조이던 때가 있었지만 잘린 머리카락만큼 내 어깨는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왜 숏컷이 페미니스트와 연관되는 걸까?
미국 출판사와 계약해 한국의 미투운동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정하원 작가는 2018년 탈코르셋 운동 이후 둘 사이의 연관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여성들은 긴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등 오랫동안 이어져온 미의 기준에 도전했다.
정 작가는 "이때부터 젊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선 짧은 머리가 일종의 정치적 선언 같은 것이 됐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자각은 이들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한 일부 남성들로부터 강한 반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논란
이번 숏컷 논란은 몇주 전 페미니스트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 나온 뒤 벌어졌다.
손가락 모양에 관한 논란이었는데, 일부 남성들은 엄지와 검지를 사용한 '집게 손가락' 모양이 급진 여성주의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한국 남성 성기크기를 비하하며 사용한 그림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편의점 체인 GS25와 치킨 체인 BBQ·교촌 등이 이러한 손가락 논란에 따른 불매운동 공격을 받아 광고를 내리기도 했다.
논란에 휩싸였던 회사들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남성들은 이와 조금만 비슷한 손가락 모양만 봐도 기업들을 공격하며 광고를 내리게 하는 "마녀사냥'을 촉발했다.
미국 UCLA 젠더학 교수인 주디 한 박사는 "일부 남성들은 해당 손가락 모양을 자신들을 비하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특정 페미니즘 흐름과 연관시키면서 이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때로는 반발이 너무 거세져 회사들이 사과를 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앞서 GS25 이벤트 포스터에 사용된 '집게 손' 논란에 조윤성 GS리테일 사장은 자신을 포함한 관련자 모두 철저한 경위를 조사하고, 사규에 따라 합당한 조치를 받도록 할 것이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1일 정기 인사를 통해 편의점 사업부장에서 물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업들의 공개적인 사과가 공격을 해온 일부 남성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정 작가는 "이들은 이후 다음 타깃으로 넘어갔다"며 "숏컷을 하고, 여대를 다니고, 이들이 분명치 않은 이유로 '남혐 용어'로 규정한 표현을 썼다는 등의 이유로 이 온라인 무리가 싫어하는 많은 것을 표상한 젊은 올림픽 대표 안 선수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
젊은 남성들이 중심이 된 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이는 분노의 근원은 주로 여성들의 성공이 남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한지영 씨는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자신들이 받고 있는 억압이 모두 여성들 때문이라고 어린 남성들에게 세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대학과 직장을 향한 경쟁은 치열하다. 그리고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 때문에 자신들이 불공정하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한국의 모든 성인 남성은 18개월간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이들은 군복무 기간이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기회를 늦추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국에는 10여 개의 여대가 있어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남성들에겐 이와 같은 혜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한국의 여성들이 남성 임금의 63%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 중 남녀 간 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선진국 대열의 국가 중 여성들이 일하기 최악의 환경인 국가로 꼽혔다.
한국 여성들의 앞날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이번 숏컷 캠페인으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 작가는 "최근 몇년간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고 기존의 특정한 여성상에 맞춰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고 있다"면서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선택할 자유를 외치는 것은 작은 변화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안산: 한국 여성들이 다시 숏커트를 하는 이유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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