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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총리, 12년 만에 물러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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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총리, 12년 만에 물러나

CIA bear 허관(許灌) 2021. 6. 14. 21:49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왕"이자 "위대한 생존자"로 불렸다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시대가 12년여 만에 막을 내린다.

이스라엘 의회는 13일 극우 정당 야미나당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를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연립정부안을 승인했다.

‘무지개 연정'으로 알려진 새 연립정부는 중도 성향의 예시 아티드, 좌파와 우파, 아랍계 등 8개 야권 정당이 동참한다.

차기 정부 임기 전반기인 2023년 8월까지는 극우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가, 임기 후반기에는 연정 구성을 이끈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가 총리를 맡는다.

15년 넘게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네타냐후는 야당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자신이) 야당이 되는 것이 숙명이라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이 위험한 정부(무지개 연정)를 뒤집고 나라를 우리의 길로 이끌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네타냐후의 지난 15년을 돌아봤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왕"이자 "위대한 생존자"로 불렸다. ‘비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 그는 한 세대동안 이스라엘 정치를 지배했다.

전투적인 스타일로 잘 알려진 최장기 집권 지도자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보다 우익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국제 무대에서 유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그의 작은 나라에 무게를 실어주는 등 이스라엘의 상징이 돼왔다.

네타냐후를 다룬 책 ‘비비: 벤자민 네타냐후의 파란만장한 삶과 시대’의 저자 안셀 페페르는 네타냐후가 남긴 유산의 핵심을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분쟁으로만 해석하는 패러다임을 전적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이 중동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페페르는 네타냐후가 갈등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했음에도 “아랍 국가들과 4번의 외교 협정을 맺고, 세계와 좋은 관계를 구축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10년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최연소 지도자

네타냐후 총리는 25년 전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시몬 페레스에게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면서 이스라엘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됐다.

당시 선거는 팔레스타인과의 획기적인 평화협정인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치러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평화회담에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요르단의 후세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그리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996년 10월 백악관에서 만났다

그러나 집권 후, 그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과 평화 협정에 서명하라는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에 굴복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첫 우파 정부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그는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지만 여전한 리쿠드당 내 영향력을 기반으로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이스라엘 점령 반대 봉기) 폭력 사태가 격화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외무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아리엘 샤론 당시 총리가 발표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와 요르단 강 서안(웨스트뱅크)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을 포함한 온건 정책을 비난하며 장관직을 사퇴했다.

평화 협상 중단...강경대책

2009년 총선으로 총리직에 복귀한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을 조건부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식 유대인 국가로 인정하고 비무장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이 같은 조건을 거부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웨스트뱅크 내 이스라엘의 존재감을 더 늘리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정은 대부분 뒷전으로 밀렸다.

네타냐후는 평화적 해결책이 아닌 안보적 해결책을 구상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평화에 있어 파트너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강경대책이 세워졌고,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무장세력 사이 치명적 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2014년,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국민이 사망하자 국제적 비판이 일었다.

이는 이란 정책으로 갈등을 빚고 있던 오바마 당시 미 행정부와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네타냐후는 2015년 초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협상 관련 대처를 비판하는 미 상원 연설로 오바마 행정부와 등을 진 상태였다.

그는 연설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앞으로의 협상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의 동반자

네타냐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고, 네타냐후는 2020년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구상과 이란 핵합의 탈퇴를 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에서 무력 충돌이 잦아지면서 네타냐후는 위기에 봉착했다.

네타냐후 집권기에 가자지구에서 총 3차례 무력충돌이 발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발생한 충돌은 네타냐후의 반대 세력 집결의 핵심적인 사건이 됐다.

부패 스캔들

네타냐후는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도 오랜 기간 서왔다.

그는 2016년 처음으로 뇌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는데, 작년 5월 금품 수수 혐의로 이스라엘 역대 총리로는 최초로 재판정에 섰다.

다만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지난 세 차례의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네 번째 총선에서 우파 성향을 비롯한 야당들이 힘을 합세해 그의 퇴진을 촉구했고, 결국 장기 집권의 막을 내리게 됐다.

올해 71세의 네타냐후는 리쿠르당의 당수로 남아있겠다고 선언했다.

거물급 정치 전략가인 네타냐후는 앞으로 야당 대표로서 집권 연정을 노릴 것이다.

이미 그는 한때 비서실장이었던 베넷을 이스라엘을 위태롭게 할 좌파 정부를 만든 "세기의 사기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왕위를 되찾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총리, 12년 만에 물러나 - BBC News 코리아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총리 네타냐후는 누구인가 - BBC News 코리아

15년 넘게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네타냐후는 야당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