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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공화국 위안스카이 황제 사후 중국 분열과 군벌 등장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중화민국 공화국 위안스카이 황제 사후 중국 분열과 군벌 등장

CIA bear 허관(許灌) 2018. 4. 29. 21:45


청나라 말기 이홍장이 실권자로 있을 때 성장한 북양 군벌인 위안스카이 사후 분파 간의 잇달아 벌어진 내분 중 하나인 제1차 봉직(奉直)전투가 발발. 이 전쟁에서 펑톈(奉天)계의 장쭤린(張作霖)군이 대패했으며 장쭤린은 6월 ‘동북보안사령관(東北保安司令官)’이라고 자칭한 뒤 동북지방(즉 만주)의 자치를 선언하였다.

이후 베이징(北京)정부는 완전히 베이징과 그 부근 일대를 근거지로 한 직예(直隸)계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1912년 청나라 멸망 후 사분오열되었던 중국 천하는 일단큰 덩어리로는 3분되었다. 손문이 지도하는 국민혁명 세력과 북양군벌 직예파의 베이징 정권 그리고 장쭤린의 만주 등이다. 물론 소 군벌이 중국 각지에서 난립하고 있으나 크게 보아 이들 3 세력이 군벌 시대의 주요 세력이었다.

남방 지역에 근거지를 둔 국민정부의장제스의 북벌에 의해 1928년 통일이 이루어졌으나 군벌 연합의 성격을벗어나지 못했다. 장제스의 국민 정부는 중일 전쟁 등으로 인해 이에서 통일하지 못했고 때문에 새롭게 성장한 공산 세력에 의해 1949년 중국 천하의 패권이 넘어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