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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악화 계기는 후계자 옹립 문제 본문

同一介中華(中國)/북경정부-中華人民共和國(中國)

북중 관계 악화 계기는 후계자 옹립 문제

CIA Bear 허관(許灌) 2018. 2. 15. 11:18


과거 긴밀했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된 것은 북한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씨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형인 김정남 씨를 최고지도자에 앉히려고 획책하다 중국 측의 밀고로 숙청된 사실이 발단이 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국 정부 관계자가 NHK에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 김정일 총비서의 사망 8개월 후인 지난 2012년 8월, 당시 북한 2인자로 불렸던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씨가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을 때 "김정일 씨의 후계자로 김정남 씨를 앉히고 싶다"는 뜻을 비밀리에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최고지도부 인사였던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이 밀담의 내용을 2013년 초에 김정은 씨에게 밀고했고, 김정은 씨의 노여움을 산 장성택 씨는 2013년 12월 국가반역죄 등의 혐의로 처형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측은 중국 지도부가 북한 국내에 정권 전복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저지하려 하지 않은 중국 측을 불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북한이 중국과의 파이프 역할을 했던 장성택 씨를 숙청한 뒤 중국 측의 조언을 무시하는 형태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데 대해 중국 측도 불신감이 고조됐습니다.

과거 긴밀했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김정은 씨의 최고지도자 취임 이후 한 번도 정상회담을 갖지 않고 지금처럼 악화된 것은, 북한의 후계자 문제와 관련된 장성택 씨의 획책이 계기가 돼 양측의 불신이 고조된 데 따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胡錦濤會見中朝兩個經濟區聯合指導委員會朝方代表團

新華網北京8月17日電(記者劉東凱)中共中央總書記、國家主席胡錦濤17日上午在人民大會堂會見了由北韓勞動黨中央政治局委員、行政部部長、國防委員會副委員長張成澤率領的中朝兩個經濟區開發合作聯合指導委員會朝方代表團。

胡錦濤説,中朝兩國是山水相連的友好鄰邦,兩國人民有著深厚的傳統友誼。中國黨和政府始終從戰略高度和長遠角度看待和發展中朝關係。中方願與朝方一道,認真落實雙方達成的一系列重要共識,保持高層交往,加強交流合作,密切在國際和地區問題上的溝通協調,努力把中朝傳統友好合作關係提高到新水準。胡錦濤表示,近年來,中朝經貿合作發展迅速,雙方在貿易、投資等領域的合作取得了顯著成果。希望雙方充分利用和發揮各自優勢,積極探討新的合作方式,紮實推進兩個經濟區開發合作等重點項目,不斷培育新的增長點,更好地為兩國人民謀福祉。

張成澤説,由兩黨兩國老一輩領導人親自締造和精心培育的朝中傳統友誼經受了時代風雨的考驗。世代傳承和發展牢不可破的朝中友誼,是北韓黨和政府堅定不移的意志。朝方願與中方一道,共同推動兩個經濟區開發合作取得更大成果,進一步鞏固和發展兩黨兩國傳統友好合作關係。

中聯部部長王家瑞、國家發展和改革委員會主任張平、財政部部長謝旭人、商務部部長陳德銘、中共遼寧省委書記王、中共吉林省委書記孫政才、外交部副部長張志軍等參加會見。

호금도주석, 중조 고위층 내왕유지 의향 표시

중국 국가주석인 호금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17일 베이징에서 중국측은 조선측과 함께 양측이 달성한 일련의 중요한 공통인식을 참답게 이행하고 고위층 내왕을 유지하며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와 지역문제에서의 소통과 조율을 밀접히하여 중조 전통친선협력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제고시킬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호금도 주석은 이날 조선로동당 중앙정치국 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 행정부장이 인솔한 중조 양국 경제구 개발협력 공동지도위원회 조선측 대표단을 회견했습니다.

 

호금도 주석은 중조 양국은 산과 물이 잇닿은 친선인방이며 양국 국민들간 전통친선은 두텁다고 표시했습니다.

그는 중국 당과 정부는 시종 전략적이고 장원한 견지에서 중조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최근년래 중조 경제무역협력은 발전이 빠르며 무역, 투자 등 분야에서 양국간 협력은 뚜렷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표시했습니다.

호금도 주석은 쌍방이 각자의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고 발휘하며 새로운 협력방식을 적극 모색하고 두개 경제구 개발협력 등 중점 프로젝트를 참답게 추진해 새로운 성장점을 육성하고 양국 국민들에게 복을 더 많이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장성택 부장은 양당과 양국 전 세대 지도자들이 친히 맺어주고 열심히 키워준 조중 전통친선은 시대의 시련을 이겨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중친선을 세세대대로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조선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선측은 중국측과 함께 두개 경제구 개발협력이 더욱 큰 성과를 이룩하도록 공동으로 추동하며 양당과 양국 전통친선협력관계를 한층 공고히하고 발전시킬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온가보 중국 총리도 17일 오전 장성택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 부장을 회견했습니다

 

 

Chinese President Hu Jintao (R) shakes hands with Jang Song Thaek, head of a delegat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and chief of the central administrative department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WPK), in Beijing, capital of China, Aug. 17, 2012. Jang, also a member of the WPK Political Bureau and vice-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ssion, is in Beijing to attend a meeting of the joint steering committee for developing and managing the Rason Economic and Trade Zone and the Hwanggumphyong and Wihwa Islands Economic Zone in the DPRK.

온가보총리, 中 조선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 지지

온가보 중국 총리는 17일 베이징에서 중조친선은 양국의 보귀한 재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국정부는 시종일관하게 양국관계를 추진하고 조선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는 것을 확고하게 지지할 것이며 조선이 국가건설의 제반 사업에서 새로운 성과를 이룩할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온가보총리는 이날 조선로동당 중앙정치국 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 행정부장이 인솔한 중조 두개 경제구 개발협력 공동지도위원회 조선측 대표단을 회견했습니다.

온가보총리는 최근년래 중조 경제무역협력은 긍정적인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다음단계 쌍방은 나선경제무역구와 황금평, 위화도 경제구 개발협력을 중점으로 공동지도위원회가 달성한 공통인식을 이행하고 제반 사업을 참답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온가보총리는 첫째로 협력에 대한 양국정부의 지도와 계획을 강화하고 법률 법규를 보완해야 하며 둘째로 해당지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밀접히 연계하고 조율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셋째로 양국은 시장체제의 역할을 발휘해 토지와 세수 등 분야에서 양호한 조건을 마련해야 하며 넷째로 기업투자를 권장해 그들의 실제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그는 다섯째로 세관과 품질검험검역 등 봉사를 개선해 협력에 편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온가보총리는 중국측은 조선측과 공동으로 노력해 두개 경제구를 잘 건설하고 관리해 중조 경제무역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추동할 의향이 있다고 표시했습니다.

장성택 행정부장은 김정은 동지가 조중친선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기에 양국간 두터운 친선이 세대로 전승되고 계속 빛을 발할 것이라고 표시했습니다.

그는 두개 경제구의 개발과 협력이 이미 실질적인 단계에 진입했다면서 조선측은 중국측과 밀접히 협조해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협력이 더욱 큰 진전을 이룩하게 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Chinese Premier Wen Jiabao (R, front) meets with a delegat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headed by Jang Song Thaek (L, front), chief of the central administrative department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WPK), in Beijing, capital of China, Aug. 17, 2012. Jang, also a member of the WPK Political Bureau and vice-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ssion, is in Beijing to attend a meeting of the joint steering committee for developing and managing the Rason Economic and Trade Zone and the Hwanggumphyong and Wihwa Islands Economic Zone in the DPRK.

 

북한의 장성택 씨, 중국 지도부와 회담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의 고모부로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씨가 17일 중국의 호금도 국가주석 등과 회담하고, 경제특구의 공동개발 등, 중국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경제 재건을 서두르겠다는 자세를 부각시켰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의 고모부로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씨는 중국 방문 닷새째인 17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호금도 국가주석과 회담했습니다.

회담에서 장성택 씨는 "북중 양국의 우호를 세대를 초월해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북한의 흔들림없는 의지"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양국이 북한 북부에서 공동 개발하고 있는 2개 경제특구에 대해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중국과 함께 추진해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해, 중국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경제 재건을 서두르겠다는 자세를 부각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호금도 주석은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협력방식을 적극 모색하고, 경제특구의 개발 등 중점 프로젝트를 착실히 추진해 가겠다"며 향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어 장성택 씨와 회담한 온가보 총리는 북한의 경제특구에 대해 "시장 메커니즘의 기능을 발휘한다면 양호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해, 북한을 완만한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겠다는 중국 측의 의향을 나타냈습니다.





중국정부의 밀고로 북한의 장성택 숙청 보도 "엉터리"라고 중국 외교부

북한의 실세인 장성택 前 국방부위원장이 숙청 된 것은 중국측에서 밀고가 원인이었다 등과의 일부 보도에 대해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부대변인은 14일 기자 회견에서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 뉴스 사이트가 2015년에 보도한 일부 언론이 최근 같은 내용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씨는 2012년 후진타오(당시 국가주석)과 회담했을 때 고(故)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아니라 이복형 김정남 씨 (2017 년 2 월 살해 되어 사망)를 앉혔다 싶다는 의향을 전달. 중국 최고 지도부 일원이었던 주영강(수뢰죄 등으로 무기 징역)이 회담 내용을 김정은측에 전달했고 20 13년 장씨 숙청을 주도했다고 한다 (공동)



북한 장성택 처형은 실각한 중국 주영강 전 정치국 상무 위원 "밀고"?

 "북한 실세 장성택 씨가 2013년 말에 처형 된 원인은 중국 공산당의 주영강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의한 북한에 "밀고 "였다"-.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 정보 사이트, 보쉰(博訊)이 최근 북중 양국에서 잇달아 몰락한 2 명의 거물 정치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기사를 싣고 중국 국내에서 큰 파문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사실이라면 북중 관계의 복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22 일에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2012년 8월 17일 방중 한 장씨는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 주석(당시)과 밀담했을 때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씨를 내려 김정은의 형 마카오 등에 사는 김정남 씨를 옹립 할 가능성 등에 대해 약 1 시간 말했지만 후진타오는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알고 당시 중국 최고 지도부 회원 주영강 씨가 자초지종을 북한 측에 밀고했기 때문에 김정은이 격노 장씨는 처형돼 북한의 친중파도 전멸했다. "피로 다져진 우의(友誼)"라고 한 북중 양국의 관계는 그때 "몰교섭(没交渉)"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주영강은 2014년 여름, 중국의 반부패 일소 캠페인에서 축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주영강은 북한에 망명을 일시 기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의 규율 부문이 발표한 주영강의 6 가지 혐의에 "당과 국가의 기밀을 누설했다"고 항목이 있었다. 장씨와 후진타오의 회담 내용을 북한에 누설한 것을 가리키는 것 일 수 있다.

보쉰(博訊)은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단체가 운영하는 사이트이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가 많은 중국 당국 고위 관계자의 누출, 부패 정보와 새로운 정책 등 당내의 비밀을 폭로 할 수있다. (2015 년 2 월 25 일 산케이 신문 조간 신문 게재)



장성택 처형 진상

김정일이 아들에게 남긴 후계 체제는 "수호역(守護役)"의 일각을 담당한 이영호의 몰락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영호가 체포되어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해임 된 것은 2012년 7월 "종파 (파벌) 형성"이나 '부화타락(浮華堕落)"이 죄목으로 꼽혔다. 마약 거래에 관련 뇌물 수수 발각은 김정은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러나 진상은 김정은의 고모부 노동당 행정부장 장성택이가 추진한 외화 벌이 부문의 구조 조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노동당 간부의 윤영순(尹容淳, 가명)에 따르면 "장성택은 끊임없이 군 외화 벌이 회사를 내각에 건네 압력을 가했다. 가장 먼저 저항한 것이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김영춘 과 인민군 총참모장 이영호들이었다. "

이영호는 군 경력이없는 장성택 대장(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견장을 착용 군부의 재원에 손을 뻗으려고 하고 있는 것에 반감을 노출하고 있었다. "내가 붙인 (견장) 별은 그의 빌어 먹을 색 별과는 다르다"고 주위에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장성택 이영호 제거하는 동안 경제 살리기에 전력 기울인다. 기업 농민들이 생산물 일부 자유롭게 취급 할 수 있도록 한 "6 .28 조치" 민간 축적한 외화를 토출하기 위해 주택매매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장성택은 8에는 50명이 넘는 대표단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경제특구 공동 개발에 관한 회의 참석한다는 명목과는 별도로 10 달러( 1100억원) 긴급 대출 투자 확대를 중국에 간절히 부탁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 극진히 대접으로 김일성, 김정일 묵은 "댜오위 타이 국빈관(釣魚台国賓館)" 18호관(号楼) 장성택에게 제공했다. 국가 주석 후진타오, 총리 원자바오와의 개별 면담 마련했다. 17 만남에서 원자바오 "차관 문제는 문제 진전 된 단계에서 논의 하겠다" 투자 확대에 대해서도 "법 정비 먼저 다"고 주문했다.

통역만을 통해 1시간 이상 진행된 밀담(密談)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기다린다"에서 장성택은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포기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대신 이복형 김정남 옹립 할 가능성도 언급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언론 공개한 회담 내용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주영강의 국가기밀 누설  등으로 무기 징역이 구형 되었다(중국 지도부와 북한 장성택 밀담 내용  누설했다는 죄)

장성택의 언동 김정은 자극하기 충분했다. 당시 상황 파악한 호위총국 전 간부 "2012 가을 무렵부터 김정은 중요한 사안 고무부와 상담 없게 됐다"고 증언한다.

장성택의 언동 상쇄으로 12 사실상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했고 이듬해 2에는 3차 핵 실험을 단행했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핵 실험하면 중국까지 외면 '이라는 장성택 호소 김정은은 "우리의 살길 밖에 없다 "고 일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2013 6에는 결정적인 균열 낳는 소동이 일어난다.

비서실 보고서를 읽어 김정은 자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비서실 자금이 크게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적은 거야. 김정일 경우 어땠어?" 기다렸다는 듯이 담당자 대답했다. "장군님 39 호실 자금 모아 장군님 혁명 사업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행정부 관리하고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성택 양질 석탄을 중국에 수출하여 큰 수익금 획득해 군(軍) 산하 54 사업 행정부 관할하에 옮겼다. 게다가 수익 39호실에는 올리지 않고 행정부 산하 회사 관리했던 것이다.
격앙 김정은 "이제 행정부 사업 모두 취소 하라"고 지시했다. 직속 호위사령부 (호위총국) 요원 54 사업장 하나에 접수 갔는데 현장 책임자 "1 동지 승인 설치해 와라"고 내쫒려고 했다.
"1호 동지는 누구의 것"이라고 대꾸하면 "장 부장 동지이다. 그분의 지시가 없으면 안된다"고 퇴짜한다.
'1호'는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가리킨다. 김정은이 아닌 인물을 '절대자'로 바라 보는 세력이 형성되어 있던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당원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당의 유일 령도체계 확립의 10 대원칙'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기도 했다.
10 대원칙은 이 시기 당 조직 지도부에 의해 개정 된 개별 임원의 우상화와 분파 활동의 배제를 담은 조문 문구이다.

당의 핵심을 차지하는 조직 지도부 간부들은 원래 재정부의 한 부서에 불과했다

행정부가 최고 지도자의 고모부이라고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전횡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곤 했다. 10대 원칙의 개정은 장성택 일파를 숙청하기 위해 그들이 건 "올가미"이라고도 했다

 




김정은 특별 지시로 9에는 조직 지도부가 주도하고 비밀경찰 국가안전보위부 호위사령부로 검찰을 인선했다 "상무 ' 출범과 장성택 검열이 시작 되었다.

조직 지도부는 장성택 오른팔되는 행정부 제1부부장 이용하와 부부장 장수길에 대한 조사 3월부터 물밑에서 진행, 당기위반(党紀違反, 노동당 기율 위반) 물을 수있는 재료 잡고 있었다. 11 체포 두 사람은 고문 견디지 못하고 "장성택 죄상" "자백"하고 처형 되었다.

 

장성택 자신도 연금 상태 놓여 당(黨), 정(政), 군(軍) 간부들과 함께 처형 참석하게 된다. 기관총 난사하는 광경 목격하고 실신 한 것으로 전해진다.

12 8에는 김정은이 주최 한 정치국 확대회의 끌려 하게 된다. 이전 동료였던 조직 지도부 제 1 부부장조용준 장성택이 발탁 내각 총리 박봉주, 친교가 있던 부총리 강석주들이 비판에 섰다.

동지들의 비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장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볼펜 노트 찌르는 강하게 내리 접어서 버린다. 4일 후에 특별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된다.


사형은 당일 집행 수백 발의 기관 총탄 퍼 부어졌다. 무참히 부서진 시체 화염 방사기로 구워진. "지구상에서 흔적 없애라"라는정은 지시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장성택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아내를 만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아내  김경희(김정은 고모) 조직 담당 당 비서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 정말 실권을 쥐고 있었다면 열애 끝에 맺어진 남편 목숨 만 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3대 세습 걷기 시작한 북한 명의 권력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아버지(김정일) 후견인(장성택)을 내세워 김정은을 도와주었지만  국제적으로 서로 인맥과 세력으로 싸우다가 무참하게 처형 되었다

龍谷大教授 李相哲

 

 

                                                         Kim Jong-un will have the backing and guidance of his uncle, Chang Song-taek

 

 


 


장성택은 남한 간첩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최룡해의 권한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김동연, 리학철, 박병서, 리찬등이 외국충장 중 남한 안전기획부에 포섭되어 제주도를 여행하며 활동자금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보위부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들이 귀국한 후 외화를 물 쓰는 듯 함부로 쓰고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문란한 사생활에 탐닉해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조사결과 이들의 혐의가 인정되어 모두 처형을 당하게 됐다.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장성택과 함께 일하고 그가 키워낸 인물들이었다

장성택은 직접 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때 숙청된 사람들은 최룡해를 포함해 비서급들 거의 전부로 이들 중 리학철, 박병서 등은 1980년대 장성택이 당 청년사업부장을 맡고 있을 때 '노력영웅'으로 키웠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장성택과의 인맥을 기반으로 평양시 건설과 외화벌이 부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다가 '황색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됐다

이들이 안전기획부에 포섭되어 제주도를 방문하고 공작금까지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죄목에는 북한으로 귀환해서 안전기획부 지시와 관련된 공작이나 활동을 했다는 내용은 별로 없다. 단지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안전기획부로부터 받아서 군을 포함한 고위간부들을 매수해 입지를 강화하라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다"(나종일, 장성택의 길 책 자료)

 

"장성택은 8에는 50명이 넘는 대표단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경제특구 공동 개발에 관한 회의 참석한다는 명목과는 별도로 10 달러( 1100억원) 긴급 대출 투자 확대를 중국에 간절히 부탁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 극진히 대접으로 김일성, 김정일 묵은 "댜오위 타이 국빈관(釣魚台国賓館)" 18호관(号楼) 장성택에게 제공했다. 국가 주석 후진타오, 총리 원자바오와의 개별 면담 마련했다. 17 만남에서 원자바오 "차관 문제는 문제 진전 된 단계에서 논의 하겠다" 투자 확대에 대해서도 "법 정비 먼저 다"고 주문했다.
통역만을 통해 1시간 이상 진행된 밀담(密談)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기다린다"에서 장성택은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포기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대신 이복형 김정남 옹립 할 가능성도 언급 것으로 알려졌다."(龍谷大教授 李相哲)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겠는가?"

 

 "2002년에는 남북경제실무접촉회담 때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라면서 가라오케(노래방=룸싸롱) 등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 이때 북한경제시찰단의 명목상 단장은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었지만, 실권자는 장성택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박남기는 후에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역임했으나, 2009년에 실시되었던 화폐개혁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공개처형되었다. 장성택의 죽음 이후엔 이 북한의 화폐개혁도 장성택의 책임이 되었다.)

장성택은 방한하여 삼성전자 및 한국의 여러 공장들을 둘러보고 갔는데, 한국 접대요원들이 밤마다 장성택을 강남 룸살롱에 데려가서 놀았다는 후문이 있다"

 

"장성택이 10여년 전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남한을 방문했을 때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때 남한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황장엽은 가까이 지내던 탈북 망명 인사를 급히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밀봉된 봉투 둘을 주면서 중요한 문제이니 집에 가서 혼자만 열어보라는 말을 했다

첫 번째 봉투에는 장성택이 시내를 방문하는 기회가 생길 때 다른 쪽 봉투에 들어 있는 쪽지를 그에게 접근해 몰래 전해주라는 지시가 적힌 쪽지가 나왔다 두번째 봉투에서는 나온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장성택, 지금도 늦지 않았다. 조국의 반역자가 되겠는가? 아니면 남한에 남아라!'

물론 이 쪽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설혹 전달이 됐을지라도 당시 장성택이 남한으로 망명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일화는 몇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적어도 황장엽은 북한의 김정일 체제에 관해 자신과 장성택 사이에 상당한 공감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않았더라면 생판 엉뚱한 사람에게 그것도 현재 높은 지위에 있는 인사에게 탈북을 권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나종일, 장성택의 길 책 자료)

 

-장성택은 예고없이 북한의 해외 거점에 나타나곤 했다

출장 중에는 김용순처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북한 대표부 참사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 명의로 된 외교관 여권을 사용했다

그리고 자주 장승택이나 장상택등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행기 폭파작전 자체는 성공했다

숙련된 공작원 김승일은 체포 직전 자살을 하고 다른 공작원 김현희는 붙잡혀서 북한의 공작에 관한 모든 진술을 했다

남한에 압송되어 자백을 한 것이 김현희라는 사실은 장성택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녀의 부친 김원석은 대외경제사업부에 근무했기에 장성택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원석은 쿠바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 서기관으로 근무했고  당시에는 앙골라의 북한 수산대표부 부대표로 있으면서 외화벌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장성택은 김원석의 딸이 평양외국어대학 일어과 2학년 때 당의 대외정보조사부 요원으로 선발되어 훈련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1986년 중국 광주 북한 해외거점에서 김현희 등 일행이 중국어와 자본주의 교육을 받았음[중국인으로 신분세탁이나 위조교육]

-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테러-----정찰국 장성우 소장(중국으로 이동과 중국인으로 가장)
-파나마의 하비에르 카르바요 마약담당 검사는 11일 조사관들이 선박에 실린 나무 상자에서 대전차용 로켓추진 수류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정부는 지난달 15일 쿠바에서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청천강호가 마약을 운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억류했다.
지난달 30일 파나마 정부는 청천강호에서 전투기용 엔진 12기와 군용차량 5대를 찾아냈다.
청천강호의 화물목록에는 만 톤의 설탕을 실어나르는 것으로 기록됐지만 설탕자루 밑에서 쿠바의 군사장비들이 발견됐다.

-쿠바에 살던 장성택의 누나 장계순 일가족이 오늘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장계순의 남편인 전영진은 주쿠바 북한 대사로 이미 북으로 소환됐고 장성택의 조카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 가족도 오늘 북으로 돌아간 걸로 전해졌다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 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 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 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 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 절세 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 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양봉음

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전군,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

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

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 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

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너무도 일찌기,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

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

타격을 받고 철직,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

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 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 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

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 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

고 전과자,경력에 문제가 있는자,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

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 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

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

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당의 방침도 뒤집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

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

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

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

회,성,중앙기관과 도,시,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

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

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

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

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

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

이다.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

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

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歷?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변질되였

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

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 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

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

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

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

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

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

장성택의 반당적,반국가적,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 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

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인민의 이

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1.장성택은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시기에 계승 문제를 비아냥대며("왼새끼를 꼬면서") 음양으로 방해했다. 구체적으로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결정되자 건성건성 박수를 치는 등 오만불손한 행동을 했다.

2.자신이 김정은("경애하는 원수님")과 자주 현지 지도를 다닌 점을 악용하여 자신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 했다.

3.장성택에게 아첨하다가 해임된 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산하기관에 끌어들였다. 특히 청년 사업 부문에서 북조선을 배신한 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조선로동당과 북조선 정부의 중요 직책에 넣었다. 1980년대부터 리룡하를 심복으로 두고, 그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4.대동강 타일공장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 작품과 현지 지도 사적비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했다. 또한 김정일이 조선인민내무군 부대에 보낸 친필 서한이 적힌 비석을 그늘진 곳에 건립하게 했다.

5.장성택 자신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킨 결과 장성택이 있던 부서의 아첨꾼들이 장성택을 '1번동지'로 부르며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거역하는 일이 있었다.

6.김정일이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세운 국가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을 자신의 밑에 소속시켰다. 정부기관이나 지방단체를 멋대로 변경시켰으며, 외화벌이나 생활비 적용 등 국가경제에 관한 사항을 좌지우지했다.

7.자신이 정한 국가건설감독기구 방침과 김일성, 김정일이 정한 건설법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그럼 건설법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평양시 건설사업에서 부패를 저질러 돈벌이를 했고 결과적으로 건설사업을 망쳤다.

8.경제적 혼란 초래: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마음대로 팔아먹고, 라선경제 무역지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매각했다. 또한 2009년 박남기를 부추겨 화폐개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폐개혁)을 일으켜 북조선 경제에 혼란을 야기했다.

9.1980년대 광복거리 건설 때부터 국가 은행 자금을 빼내 귀금속을 수집했다.

10.2009년부터 여러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를 유포시키고, 가는 곳마다 방탕한 생활을 했다. 특히 2009년 한 해에만 비밀 금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탕진하고 외국 도박장을 출입했다.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장성택 특별군사재판 전문 내용 발췌, 정리-

 

 

 

 

                             북한 TV의 영상은 장성택이 공개적으로 북한 노동당 회원의 수천의 앞에 보안 요원에 의해 체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2013년 12 월 12 일  특별 군사 재판소에서 처형 시전에  촬영한 사진

 

                                                                한국 미디어는 장성택 사진에서 고문과 구타 의심 의혹을 제기돼 오고 있다

 


 

파나마정부는 2013년 6월말경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등 북한군부 지도자들이 쿠바방문 후 북한 무기 밀수선박을 검거했습니다 (Panama's seizure of weapons on board a North Korean ship came after a visit to Cuba by a North Korean military delegation)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사망)이 총살 방식으로 처형됐다고 북한의 고위 외교관이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대사는 30일(현지시간) 방영된 영국 스카이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장 전 부위원장의 처형방식에 대해 "그는 총살당했다(He was shot to death)"고 말했다.

북한 당국자가 장씨의 처형 방식에 대해 서방 언론에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현 대사는 이어 "장성택은 권력을 남용해 국가경제를 저해했다. 2009년 460만 유로(약 67억원)를 유용하는 등 정부와 인민에 중대한 죄를 범했다"며 "당은 장성택의 행동을 과거 몇번이고 용서했지만 이번에는 수용의 한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현 대사는 장씨의 가족, 친척도 처형됐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조작된 보도"이자 "적들에 의한 정치 선전"이라며 부인했지만 '장씨 가족은 살아 있느냐'는 진행자의 확인 질문에 "나는 그(장성택)가 처벌받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처벌받았는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또 장성택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그를 개혁주의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멘토 등으로 묘사하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며 폄훼했다.

현 대사는 장씨를 처형한 것이 가혹하다는 질문자의 지적에 "나라마다 각자의 법제도가 있다"고 답했고, "북한의 법제도에 '노동 캠프(수용소)'도 포함되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노동캠프는 없다. 교육 캠프, 아니 교육 장소가 있다"고 답했다.

현 대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북한 적십자사가 남한의 적십자사에 제안한 것"이라며 "시기는 설날 이후에 하자고 했고, 정확한 날짜 등은 양측의 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적십자사는 지난 1월24일, 설 이후에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갖자고 전격 제의했으나 2월17∼22일에 개최하자는 1월27일 남측의 제의에 대해 30일까지 응답하지 않았다.

현 대사는 또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에 대해 "배씨는 그가 저지른 반공화국(북한) 범죄에 따라 선고된 형기(노동교화형 15년)를 반드시 다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배씨의 사면 가능성에 대해 현 대사는 "범죄자가 때때로 사면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고 전제했지만 "배씨가 사면될 수 있을지는 모르고 또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 대사 “케네스 배 형기 다 채워야 석방”

앵커: 북한의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가 노동교화형 15년 형기를 다 채워야 석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형기를 다 채우기 전 사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는 30일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Sky News)와 인터뷰를 통해 케네스 배 씨는 선고받은 15년 노동교화형의 형기를 다 채워야 석방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형기를 다 채우기 전 사면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현학봉 대사: 범죄자가 때때로 사면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배 씨가 사면될 수 있을지 여부는 모르겠고 또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배 씨는 그가 저지른 반북한 범죄에 따라 선고된 형기를 반드시 다 마쳐야 합니다.

현 대사는 배 씨가 형기를 다 채우면 그를 석방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  최근 배 씨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 당국이 그를 인도적으로 처우하고 있고 자신의 범죄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배 씨는 가족들과 미국 정부에 자신의 석방을 위해 더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고 현 대사는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발언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배 씨 석방 문제를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북한 당국이 배 씨에 대한 원칙적이고 강력한 처벌 의지를 강조하면서 미북 간 직접대화 재개 등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현 대사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 방식은 총살이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앞서 일부 언론에서는 굶주린 사냥개를 동원해 장성택을 물어뜯게 만들어 처형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왔지만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학봉 대사: 장성택은 북한 법에 따라 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는 총살됐습니다. (He was shot to death.)

그러면서 장성택은 고위 관리였지만 북한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한 법의 잣대로 범죄자를 처벌한다면서 장성택은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개혁가나 김정은 제1비서의 조언자(mentor)가 아니었다고 부인했습니다.

현 대사는 또 최근 장성택의 친인척도 처벌됐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자신은 그런 ‘조작된’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할 의사조차 없고 그 진위 여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북한에는 강제노동수용소가 없다고 그 존재 자체를 수차례 전면 부인했습니다.




김정남 사건 배경에 후계자 문제 밀고 있었다는 정보

1년 전인 지난해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의 김정남 씨가 암살된 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2인자로 알려진 장성택 씨가 이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김정남 씨를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는데, 그 정보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에게 전해진 것이 사건의 계기가 됐다는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 관계자는 NHK 취재에 대해 6년 전에 사망한 김정일 총비서의 후계문제가 그 배경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르면 사망으로부터 8개월이 지난 2012년 8월, 당시 북한의 2인자로 알려진 장성택 씨가 베이징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개별회담했을 때, "김정일 총비서의 후계자로 김정남 씨를 추대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 회담은 당시 중국 최고지도부 멤버였던 저우융캉 정치국 상무위원이 부하를 동원해 도청했으며, 저우융캉 씨는 이듬해인 2013년 초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 씨에게 회담 내용을 밀고했다는 것입니다.

같은해 12월 장성택 씨는 국가반역죄 등으로 처형됐고 김정남 씨는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돼, 중국 정부는 저우융캉 씨가 밀고한 정보가 김정은 위원장을 분노하게 해 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우융캉 씨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보를 왜 전했는지 자세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저우융캉 씨의 주변에서는 부정부패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저우융캉 씨가 북한과의 인맥을 이용해 지도부의 움직임을 견제하려 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우융캉 씨는 그후 부정부패와 국가기밀 누설죄 등으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는데, 관계자는 북한에 밀고한 죄가 국가기밀 누설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는 김정남 씨 암살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침묵해 왔으나 이번에 확인된 정보는 향후 중국과 북한 관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남 시신, 유족 의사 반해 북한에 건네져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으로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 당한 김정남의 시신이 유족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넘겨졌다고 아사히 신문이 1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남 사건을 수사한 말레이시아 경찰간부를 인용, 김정남 아들 김한솔이 아버지 시신을 북한으로 보내지 말라고 요망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한솔은 김정남의 신원 확인을 도우면서 말레이시아 당국에 북한에는 시신을 인계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당시 김한솔을 신변 위협 때문에 말레이시아로 아버지 유체를 인수하러 갈 수 없다면서 시신 화장과 유골 처리를 일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한솔을 "어떤 이유에서라도 시신을 작은아버지 김정은과 북한 정부에는 넘기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3월 상순 신원 확인에 응한 김한솔 등 가족을 찾아가 DNA 샘플을 채취했다.

DNA 감정 결과 시신을 김정남으로 확정했지만 말레이시아 측은 김한솔의 협력 사실을 일정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남 시신의 인도를 요구한 북한은 3월7일 평양에 있는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가족 11명의 출국을 금지하고 사실상 인질로 붙잡았다.

이에 말레이시아도 북한 외교관의 출금을 막았지만, 결국 자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김정은 시신을 3월31일 북한에 넘겼다.

                                                          김정남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도안 티 흐엉[쇼+', VIV3 '베트남 아이돌' 도안티흐엉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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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안티흐엉이 제주 숙소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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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흐엉은 인터넷 BJ로 활동하기도 했고, 길거리 남성과 키스를 하는 콘셉트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흐엉으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한 베트남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올린 동영상에 등장한다. 원작자가 올린 영상 외에 지난해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된 영상까지 있다. 이 동영상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입맞춤을 하는 콘셉트다. 그녀가 제주에서 찍은 사진 9장 가운데 일부 사진에서 흐엉이 묵었던 숙소를 알 수 있었다. 흐엉은 이곳에 머물면서 찍은 사진을 이처럼 자신의 SNS에 올려 제주 행적을 남겼다. 흐엉은 지난해 11월 2일부터 5일까지 3박 4일 동안 제주를 방문하고 하루를 펜션에서 묵었다.

                      김정남 암살용의자 도안 티 흐엉이 13일 말레시이사 세팡 법원에 출두하기 전 여성경찰의 호위를 받아 걸어가는 동안 웃고 있다. 2017.04.12

 

                                                                                              김정남 암살용의자 시티 아이샤

 

▲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체포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사건 전날인 지난 12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김정남 암살용의자 시티 아이샤가 13일 말레시이사 세팡 법원에 출두하기 위해 여성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 2017.04.12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경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세팡에 위치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무언가를 맨손에 묻힌 여성 2명이 얼굴을 문지르고 얼마 후 사망하였다. 보툴리눔으로 죽었다는 설도 나왔고[9], 독극물 스프레이를 맞고 사망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일부는 독침으로 죽었다는 가설도 있다고 한다.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받은 2011년 다음해 인 2012년 초 부터 진행되었으며, 정찰총국 등 북한 정보당국의 최순위 목표였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또한 국가정보원은 2012년 4월 김정남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살려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사실도 공개하였다. 2017년 2월 19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암살을 실행한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2명을 배후에서 사주한 일당 4명이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이라고 발표하였다.

2017년 2월 24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감식 결과 김정남의 시신에서 VX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여성 2명이 차례로 김정남의 얼굴에 손을 댔다는 점에서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할때 서로 만나면 반응해서 VX가 되는 이원화 화학무기 형태의 VX를 사용해서 여성 2명에게 각기 다른 원료물질을 손에 묻히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왔다. 한편, 미량으로도 치명적인 독극물인 VX를 사용했음에도 주변 사람들, 김정남과 접촉한 의료진과 경찰들, 암살자들이 멀쩡한 점으로 봤을 때 암살 사건에 의문점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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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1987년 원산 해수욕장에서 수상스키를 타고 있다.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 가족관계


아버지 : 김정일 (金正日, 1941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

어머니 : 성혜림 (成蕙琳, 1937년 3월 6일 ~ 2002년 5월 18일)


첫째 배우자 : 신정희

장남 : 김금솔(1999년 ~ )

둘째 배우자 : 이혜경

서장자 : 김한솔 (1995년 6월 16일 ~ )

서녀 : 김솔희 (1998년 ~ )

셋째 배우자 : 서영라

넷째 배우자 : 장길선

서자 : 김이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VOA는 김정남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비공개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1971년 생으로 알려진 김정남이 1979년부터 1992년 사이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진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왼쪽)이 1979년 5월 10일 8살 생일에 외사촌 이남옥과 포즈를 취했다. 이남옥은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딸이다. 성혜랑과 이남옥은 1990년대 후반 서방으로 망명했다.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1980년 원산 해수욕장에서 김정남(앞줄 가운데). 뒷줄 왼쪽부터 성혜랑, 김정남의 외할머니 김원주, 이남옥.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이 1987년 원산 해수욕장에서 수상스키를 타고 있다.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이 1987년 원산 해수욕장에서 이남옥과 포즈를 취했다.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이 1990년 평양 수영장에서 이남옥과 함께 있다.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사냥 중인 김정남과 이남옥. 1990년.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1992년 김정일 생일에 성혜랑과 김정남, 김원주, 이남옥. 제공: Imogen O’Neil/The Golden Cage: Life with Kim Jong Il, A Daughter’s Story.



김정남 암살 용의자 추가 행적 공개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가운데)이 지난 24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실시된 사건 현장 검증에 참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암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들의 사건 당시 추가 행적이 공개됐습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오늘(26일) 열린 김정남 씨 암살 사건 공판에서 범행이 발생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촬영된 폐쇄회로 TV(CCTV)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에는 ‘하나모리’란 이름을 쓰는 동양인 남성이 다른 공범들을 지시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하나모리는 사건에 앞서 공항에서 ‘장’과 ‘와이’로 불리는 남성 두 명과 접촉했습니다. 장과 와이는 이후 김정남 씨를 암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과 사건 전 만났고 암살 당시 주변에서 대기하는 모습도 담겼습니다.

이들이 사건 직후 옷을 갈아 입고 갖고 있던 가방 등을 버리는 모습도 확인됐습니다. 장 씨의 경우는 면도를 한 사실도 확인됐으며 경찰 당국은 이들 용의자들의 신발은 바뀌지 않은 점 등을 통해 동일인 여부를 파악했습니다.

이날 공판에 참석한 경찰 관계자는 ‘하나모리’가 이번 사건의 총책으로 보인다고 증언했습니다.

앞서 말레이시아 경찰은 홍송학과 오종길, 리지현, 리재남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이 사건 당일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고 밝혔었습니다. 이번 CCTV 영상에 공개된 4명의 용의자가 당시 출국한 용의자와 일치하는 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김정남 암살범 재판, 도주 북한인 추정 남성 4명 역할에 초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의 여성 암살범 2명에 대한 재판에서 말레이시아 검찰은 도주한 4명의 남성이 범행을 주도했으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암살범으로 체포된 인도네시아의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의 도안 티 흐엉(29)은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고 사형이 선고돼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모두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김정남에 대한 공격은 아무 해로움도 없는 TV 쇼일 뿐이라는 남성들의 말에 범행에 가담한 것일 뿐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이후 초점은 도주 남성 4명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맞춰지고 있다.

검사 측이나 변호인 측 모두 도주 남성 4명은 모두 북한인으로 믿어진다며 이들에 대해 보다 많은 것들이 앞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사측은 또 충분한 증거가 모아지면 이들 4명에 대한 추가 조치가 공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4명은 현재 하나모리와 제임스, 장, 미스터 Y라는 별명으로만 불리고 있다.

할아버지(Grandpa) 또는 삼촌(Uncle)으로 불리기도 하는 하나모리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사건 전체를 지휘한 주범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는 아이샤를 포섭해 범행에 끌어들인 인물로 1월 아이샤를 포섭한 후 100∼200달러씩을 주며 낯선 사람의 얼굴에 오일이나 후추 소스를 바르는 훈련을 시켰다. 장과 미스터 Y는 범행 직전 각각 아이샤와 흐엉의 손에 독극물 VX를 발랐다고 말레이시아 경찰은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쿠알라룸푸르의 경찰본부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 수사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되기 전 미국 국적자와 만났다고 말레이시아 경찰 간부가 밝혔습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 수사를 맡았던 말레이시아 경찰 간부 '완 아지룰 니잠' 씨는 오늘(29일) 말레이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피고인 2명에 대한 심리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말레이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김정남은 피살되기 나흘 전인 2월 9일 말레이시아 북부 랑카위섬의 한 호텔에서 미국인 남성 한 명을 만났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의 신원은 현재까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후지TV'가 지난해 2월 공개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CCTV 영상.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가운데)이 두 여성으로부터 독극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은 직후 공항 보안 관계자와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김정남은 이후 공항 진료소까지 직접 걸어서 이동했지만 진료소에서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5월 김정남이 살해되기 전 미국 정보기관 측과 접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살해 당시 발견된 김정남의 노트북 컴퓨터에 대한 말레이 경찰 당국의 검사 결과 김정남이 이 미국 남성에게 상당량의 정보를 건넨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습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컴퓨터 최종 사용 날짜가 2월 9일이고, 일부 데이터들이 USB 저장 디스크에 의해 접근된 흔적을 발견했다고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김정남의 정보 전달 여부와 당시 만남이 피살과 연관돼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밝혔습니다.

김정남은 지난해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마카오행 항공기 탑승 직전 독극물 공격을 받고 살해됐습니다.

VOA 뉴스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 당시 12만 달러(약 1억3000만원)의 현금을 소지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신문은 말레이시아 수사 간부를 인용해 이같이 전하하며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체류 동안 만난 미국 정보기관과 연계 있는 미국인 남성에게서 달러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2월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김정남은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돌아가려고 한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여성 실행범 2명과 북한 국적 공작원에 의해 얼굴에 맹독 VX가 칠해진 직후 바로 사망했다.

경찰이 김정남의 소지품을 조사한 바 그의 검은 가방 등에서 북한 외교관 여권과 노트북, 휴대전화 2대, 약에 더해 대량의 100달러짜리 현찰을 찾아냈다.

100달러짜리는 거의 신권으로 300장씩 묶음이 4개나 됐다고 한다.

수사 간부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머문 8일 가운데 닷새를 북부 리조트 랑카위 섬에 지냈다며 2월9일 호텔에서 2시간 동안 만난 미국인 남성이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날 김정남의 노트북에 USB 메모리칩이 끼어있는 점에서 뭔가 정보를 넘기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았을 공산이 농후하다고 수사 간부는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국내은행에서 김정남이 가지고 있던 12만 달러를 인출한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수사 간부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