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반기문 사무총장 중국 방문일정 공표 본문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 중국 방문일정 공표

CIA Bear 허관(許灌) 2015. 8. 29. 19:52

 

"우리는 일본 군벌만을 적으로 하고 절대로 일본 백성을 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장개석 총통의 극단적 반일투쟁 반대입장)" 

유엔은 27일 반기문 사무총장의 9월2일부터 6일까지의 중국방문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열병식 등 행사에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습근평과 이극강 등 중국 지도자들과 회동하여 유엔설립70주년, 기후변화 및 이제 곧 개막을 앞둔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등 의제를 토론할 것입니다.

반기문 대변인 사무실에 따르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9월 2일 베이징에 도착하며 습근평 주석의 요청에 응해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합니다.

베이징 방문기간 반기문 사무총장은 습근평 중국 국가주석과 이극강 국무원 총리, 유연동(劉延東) 부총리, 왕의(王毅) 외교부장 등과 회동합니다.

쌍방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화제들을 토론할 것입니다.

한편 반기문 사무총장은 또한 중국에 있는 유엔기구와 프로젝트의 책임자들을 면담할 것이며 오는 9월 6일 뉴욕으로 돌아갑니다.

장명(張明)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25일 총 30명의 외국 지도자들이 요청에 응해 9월 3일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10명의 국제기구 지도자들이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일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석 예정에 우려 표명

일본 외무성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다음달 중국 정부가 개최하는 ‘항일전쟁 승리 70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유엔 측에 “행사가 과도하게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유엔이 중립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우려를 전했습니다.

유엔은 다음달 중국 정부가 ‘항일전쟁 승리70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에 반기문 사무총장이 참석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무성은 즉각 뉴욕에 있는 유엔 일본대표부를 통해 유엔 측에 “중국의 기념행사는 과도하게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유엔은 중립적인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며 우려를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외무성 간부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다음달 3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열병식에도 참석할 예정인데 대해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열병식을 관람한다면 그 판단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일본의 우려 전달에 코멘트 발표

 

다음달 중국 정부가 ‘항일전쟁승리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데 일본 정부가 우려를 전한데 대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코멘트를 발표했습니다.

다음달 중국 정부가 ‘항일전쟁승리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중국의 기념행사가 과도하게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유엔은 중립적인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는 등, 유엔 측에 강한 우려를 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사무총장은 28일 대변인을 통해 코멘트를 발표하고 “과거의 교훈을 배워 더욱 좋은 미래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 기념식에 참석한 것과 같은 이유”라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유엔의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나타냈습니다.(NHK)

 

반기문 사무총장, 일본의 질의 반박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8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일본정부가 자신의 베이징 열병식 등 기념행사 참가에 대해 질의를 제기한데 대해 현재 전 세계가 모두 2차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이에 앞서 이미 여러 차례 이와 유사한 기념행사에 참가했었다며 역사교훈을 섭취하고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자신의 응분의 의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자신은 곧 유엔 사무총장을 담임한 9년간 아홉번째로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며 자신은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게 된다고 소개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자신은 습근평 주석과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으며 유엔에 대한 중국의 많은 기여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전 세계가 인류 사상 최대 비극인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고 있으며 동시에 유엔 설립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역사 회고를 통해 교훈을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동시에 역사교훈 섭취를 토대로 보다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이것이 바로 습근평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일본 외무성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중국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경솔한 결정이라면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취할 것을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요구했습니다.

유엔은 27일 9월 2일부터 6일까지 있게 될 반기문 사무총장의 중국방문 일정을 정식으로 공개했습니다.

방문기간 반기문 사무총장은 베이징에서 있게 되는 열병식 등 행사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습근평 주석, 이극강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과 면담하고 유엔설립 70주년, 기후변화 및 곧 개막할 유엔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등 문제와 관련해 견해를 나누게 됩니다(중국 국제방송)

 

                                                                                              中山 손문과 中正 장개석

 

                                                                                              중경에서 장개석과 함께 한 모택동

 

                                                                               카이로 회담. 왼쪽부터 장개석, 루스벨트, 처칠

 

대인여기(待人如己)하라 연설문(1945년 8월 15일, 장개석총통 승전경축 라디오 연설)
전국 국민여러분!
전세계의 평화를 애호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의 정의는 강권에 승전하여 드디어 사실의 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조국이 암흑 속에서 8년간 분투한 신념을 지금 비(雨)로서 실현된 것입니다 면전에 출연한 영화에 대하여 우리는 항전이래로 희생된 우리 전국 국민들에게 감사하여야 하며 더구나 우리 혁명정책의 길을 간고영도(艱苦領導)하여 우리에게 오늘의 승리와 성공의 하루를 같게하여 주신 국부(國父,孫文 건국자)에게 감사하여야 하며 전 세계의 기독교도는 인자전능(人慈全能)한 하느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 전국 동포의 항전이래 8년간이라는 고통은 나날이 깊다고 하나 항전의 신념은 나날이 증강되었으며 더구나 우리 함락구(陷落區)의 동포들은 무한한 잔인과 압박을 받았고 몇배나 간고(艱苦)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러 완전한 해방을 얻어 하늘을 다시 우러러 보게 된 것입니다
최근 각지 국민의 환호와 쾌락의 정서는 과거의 비애를 덮어버렸으며 그 중요한 의의는 점령구의 동포들이 해방을 얻는데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항전은 이미 승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며 전쟁의 의무는 세계에 있어 또 한번 승전을 하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고 더구나 이번의 승리는 즉 세계의 공력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전세계의 인류와 전 중국의 동포가 이 전쟁이 세계문명국가가 참가 적전한 최후의 전쟁이 되기를 일치해서 희망하리라고 믿는 바입니다
만일 이것이 최후의 전쟁이라면 우리 동포들이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수확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국민은 제일 암흑한 시대에 처하여 일관한 인내와 전통정신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정의와 인도를 위한 희생은 반드시 흥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 세계에 걸친 전쟁으로 말미암아 연합한 민족상호간에 발생한 상호협력과 존중은 이번 전쟁의 댓가인 것입니다
우리 연합국이 청년의 피와 살로서 축성(築성)한 반침략장성(反侵略長城)은 임시적 결합일 뿐 아니라 인류공동의 신앙을 위한 일종의 영원한 조합(組合)이며 이것이 연합국이 승리한 기초로서 적의 어떠한 음모로써도 절대로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후지역을 나누지 않고 종색(種色)을 근별하지 않고 인류는 다 같이 반드시 연합을 더욱 깊이하여 수족과 같이 할 것을 믿는 바입니다 이번 전쟁은 인류가 상호간의 존경과 신앙 및 관계를 발양(發揚)하였고 또 세계전쟁과 평화는 불가불리(不可不離)한 것이며 또 이것이 금후전쟁을 또다시 발생시키지 않은 힘 있는 증명이 되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기독훈련에 말씀하신 <待人如己(대인여기)>와 <要愛不離(요애불리)>의 이야기가 사실 무한한 감상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남에게 착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정신이며 우리의 일관한 성명은 <우리는 일본 군벌만을 적으로 하고 절대로 일본 백성을 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였으며 현재 일본군벌은 이미 다 되어 있으니 만큼 우리는 당연히 투항조건을 충성으로 집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일본인에게 대하여 오욕(汚辱)하려고 하여서는 안되고 응당히 그들 및 그들의 나치군벌의 압박능욕하(壓迫凌辱下)에 있는 백성에게 대해서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표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속히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여야 합니다
폭행으로써 과거의 폭행에 보복하고 투쟁으로 보복하여 그칠날이 없다면 그것은 인의지사(仁義之士)의 본의를 잊어버린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각자 국민 모두가 특별히 주의 하여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동포들이여!
현재 침략주의는 이미 격파 되였으나 아직 진실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니 그 침략배경과 숨은 힘을 철저히 소멸시키야 합니다
승리의 보상은 절대로 교사(驕奢,교만과 사치)와 태타(怠墮, 게으름과 타락)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 전쟁중지 이후의 공작은 우리가 더욱 큰 노력으로써 개혁과 건설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시기에 있어서 우리는 전시와 비교하여 더욱 간고하고 곤란한 현실에 이를지도 모르나 이러한 현실은 그때 그때 전부 우리머리 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래 비교적 간고한 공작은 일반이 순전히 영도를 받은 공산 공작자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착오를 이행하게 하여 삼민주의(三民主義)로써 강권(强權)과 정의의 합리적 인가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 우리 중국과 동맹국이 금후 노력하여야 할 한 줄기 공작입니다

 

                                                                                                유엔헌장에 서명하는 장개석(1945)

 

                                                                             타이완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개석 총통(1953)

 

大韓民國臨時政府杭州舊址紀念館[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옛터 기념관]

 

 

 

 

절강성(저장성) 항주시(항저우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을 방문하는 방문객들 모습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하이 프랑스조계지역에 처음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1932∼1935년)와 장쑤(江蘇)성 난징(南京·1935∼1937년)을 거쳐 창사와 충칭 등으로 청사를 옮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大韓民國臨時政府杭州舊址紀念館[대한민국임시정부항주구지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舊址:옛 자취가 남아 있는 빈터. ①옛터  ②옛 주소  ③본래 주소 (址-터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실내모습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소장품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침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집무실과 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초상과 知難行易(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

 

知之非難 行之惟難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서경(書經)]

 쑨원(孫文)선생이 5·4운동 시기에 ‘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知難行易)’라고 설파한 것은 단순히 《서경(書經)》의 말을 역전(逆轉)시킨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다가왔음을 올바르게 예언한 것이다

쑨원(孫文)선생은 수세기 동안 중국의 연약함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知之非難 行之惟難)’는 낡은 격언 탓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중국 해방에 대한 진정한 장애는 이미 그 자신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것을 동지들에게 확신시킴으로써 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군대창설식때 방문한 귀빈들이 남긴 방명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흉상과 음수사원(飮水思源)

飮水思源 掘井之人(음수사원 굴정지인)은 "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그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고사(故事) 전한다"

남북조(南北朝)시대의 북주(北周)에 유신(庾信, 513-581)이라는 문인(文人)이 있었다. 자(字)는 자산(子山)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통달하여 후진들이 다투어 그의 문풍(文風)인 서유체(徐庾體)를 배우려고 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원래 양(梁)나라 사람으로서 48세가 되던 서기 554년에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명을 받고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유신이 고국을 떠나 있던 동안 양나라는 서위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졸지에 유신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으나 당시 그의 명망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서위의 군주는 그를 강제로 장안에 잡아두고 벼슬을 내려 대관(大官)으로 삼았다. 그 후, 서위를 멸망시킨 북주(北周)에 이르기까지 그는 북조(北朝)에서 28년 동안 머무르며 평생토록 두터운 예우를 받았으나 항상 조국인 양나라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잊지 못하고 때때로 느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많은 시문(詩文)으로 지어 후세에 남겼다. 그가 남긴 유자산문집(庾子山文集, 전 20권) 가운데 7권의 징주곡(徵周曲)에 보면 당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詩) 한 편이 전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落其實者思其樹 :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飮其流者懷其源 :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네.

여기에서 유래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음수지원(飮水知源)이라고도 한다. 비록 남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조국은 멸망되고 억류된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옛날에 깊은 산, 밭 가운데 시냇가에 노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시내 옆에 수차(물레방아) 하나를 만들어 시골사람을 대신해서 쌀을 찧어주고 조금의 사례금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노인의 생활은 매우 편안하고 조용하였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돈 몇 푼을 더 벌어서 기분이 좋은 나머지 쌀을 찧는 절굿공이와 절구에 감격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쌀을 찧는 절굿공이를 마주하고 중얼중얼 거리면서 자기의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밤에 그는 초가집에 누워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절굿공이가 없으면 자기가 아예 이런 좋은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일찍 지전(종이돈, 紙錢)을 싸서 경건하게 절굿공이 앞에서 향을 피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마음도 매우 편안해졌다. 이렇게 연달아 몇 달을 절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는 갑자기 절굿공이가 하는 일은 수차(물레방아)가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급히 요리를 준비하고 술을 데워 수차를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는 다시 수차는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 것일까? 물소리를 듣고 졸졸 흐르는 물을 보았다.

노인은 또 생각하여 갑자기 머리가 탁 트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물이 없고 수차만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쌀만 있고 불로 끓이지 않는 것과 같이 쓸모가 없는 것이므로 절을 하려거든 물에게 절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였다. 정말로 감사의 절을 하려면 모든 동작의 근원이 되는 물에게 절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로소 노인의 눈에 모든 것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深山里, 田间溪边住者一位老人。老人在小溪旁架起了水车,替乡人捣米拿点小报酬维持生活。日升日落,日复一日,老人的生活十分平安宁静,他觉得心满意足。有一天,他多赚了几块钱,欣喜之余,对着捣米用的杵、臼,生出了感激之情,他对着捣米的杵喃喃地诉说自己的感谢夜里,他躺在草棚里,愈想愈觉得要是没有杵,自己根本不可能有这样好的生活,所以第二天一清早就买了纸钱,虔诚地在杵前烧香跪拜感恩,心中才觉得舒坦。这样一连拜了好几个月。有一次,他突然发现杵的工作是由水车转动所致,要是没有水车,杵一点作用也没有,于是他又匆匆预备了菜肴烧酒对水车深深致敬。水车怎么会动呢? 听见水声,看到流水淙淙。老人又想了,豁然开朗,要是没有水而只有水车,跟只有米没有火煮一样没有用,所以要拜就拜水啊!]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집무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선생과 知難行易(지난행역)

 

知難行易(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

 쑨원(孫文)선생이 5·4운동 시기에 ‘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知難行易)’라고 설파한 것은 단순히 《서경(書經)》의 말을 역전(逆轉)시킨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다가왔음을 올바르게 예언한 것이다

쑨원(孫文)선생은 수세기 동안 중국의 연약함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知之非難 行之惟難)’는 낡은 격언 탓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중국 해방에 대한 진정한 장애는 이미 그 자신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것을 동지들에게 확신시킴으로써 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하고자 했다.

 

*知之非難 行之惟難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서경(書經)]

 

김구선생과 음수사원(飮水思源)

 

 

飮水思源 掘井之人(음수사원 굴정지인)은 "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김구선생의 좌우명으로 하셨던 말씀이다. "물을 마실때 그물이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하자"는 뜻으로 오늘의 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그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고사(故事) 전한다"

남북조(南北朝)시대의 북주(北周)에 유신(庾信, 513-581)이라는 문인(文人)이 있었다. 자(字)는 자산(子山)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통달하여 후진들이 다투어 그의 문풍(文風)인 서유체(徐庾體)를 배우려고 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원래 양(梁)나라 사람으로서 48세가 되던 서기 554년에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명을 받고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유신이 고국을 떠나 있던 동안 양나라는 서위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졸지에 유신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으나 당시 그의 명망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서위의 군주는 그를 강제로 장안에 잡아두고 벼슬을 내려 대관(大官)으로 삼았다. 그 후, 서위를 멸망시킨 북주(北周)에 이르기까지 그는 북조(北朝)에서 28년 동안 머무르며 평생토록 두터운 예우를 받았으나 항상 조국인 양나라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잊지 못하고 때때로 느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많은 시문(詩文)으로 지어 후세에 남겼다. 그가 남긴 유자산문집(庾子山文集, 전 20권) 가운데 7권의 징주곡(徵周曲)에 보면 당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詩) 한 편이 전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落其實者思其樹 :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飮其流者懷其源 :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네.

여기에서 유래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음수지원(飮水知源)이라고도 한다. 비록 남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조국은 멸망되고 억류된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옛날에 깊은 산, 밭 가운데 시냇가에 노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시내 옆에 수차(물레방아) 하나를 만들어 시골사람을 대신해서 쌀을 찧어주고 조금의 사례금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노인의 생활은 매우 편안하고 조용하였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돈 몇 푼을 더 벌어서 기분이 좋은 나머지 쌀을 찧는 절굿공이와 절구에 감격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쌀을 찧는 절굿공이를 마주하고 중얼중얼 거리면서 자기의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밤에 그는 초가집에 누워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절굿공이가 없으면 자기가 아예 이런 좋은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일찍 지전(종이돈, 紙錢)을 싸서 경건하게 절굿공이 앞에서 향을 피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마음도 매우 편안해졌다. 이렇게 연달아 몇 달을 절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는 갑자기 절굿공이가 하는 일은 수차(물레방아)가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급히 요리를 준비하고 술을 데워 수차를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는 다시 수차는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 것일까? 물소리를 듣고 졸졸 흐르는 물을 보았다.

노인은 또 생각하여 갑자기 머리가 탁 트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물이 없고 수차만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쌀만 있고 불로 끓이지 않는 것과 같이 쓸모가 없는 것이므로 절을 하려거든 물에게 절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였다. 정말로 감사의 절을 하려면 모든 동작의 근원이 되는 물에게 절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로소 노인의 눈에 모든 것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深山里, 田间溪边住者一位老人。老人在小溪旁架起了水车,替乡人捣米拿点小报酬维持生活。日升日落,日复一日,老人的生活十分平安宁静,他觉得心满意足。有一天,他多赚了几块钱,欣喜之余,对着捣米用的杵、臼,生出了感激之情,他对着捣米的杵喃喃地诉说自己的感谢夜里,他躺在草棚里,愈想愈觉得要是没有杵,自己根本不可能有这样好的生活,所以第二天一清早就买了纸钱,虔诚地在杵前烧香跪拜感恩,心中才觉得舒坦。这样一连拜了好几个月。有一次,他突然发现杵的工作是由水车转动所致,要是没有水车,杵一点作用也没有,于是他又匆匆预备了菜肴烧酒对水车深深致敬。水车怎么会动呢? 听见水声,看到流水淙淙。老人又想了,豁然开朗,要是没有水而只有水车,跟只有米没有火煮一样没有用,所以要拜就拜水啊!]

 

 

              '음수사원(飮水思源)'은 中樹 박정희 前대통령이 청오회지 창간호를 기념해 내린 휘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