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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이명박 "이승만 전 대통령 功過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본문

대한민국 전직대통령 자료

이명박 "이승만 전 대통령 功過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CIA bear 허관(許灌) 2015. 7. 21. 17:33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일 최근 서거 50주기를 맞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과 관련, "우리 국민도 이제는 우리 현대사에 대해 적극적·긍정적으로 바라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누구에게나 공(功)과 과(過)는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국 땅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지 어느 덧 50년이 되었다"며 "그 분의 삶과 죽음을 돌이켜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대부분의 생을 일제에 항거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바쳤다"며 "해방 후에는 UN(유엔)의 신탁통치안을 반대하면서 이 땅에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세우는데 앞장섰다"고 평가했다.

이어 "건국 직후 6·25 남침을 당해서는 탁월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밝혔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50주기가 건국 대통령의 삶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독일 통일과정: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이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독일 통일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 민주연합 정부 구성   -반공반독재구국전선-

 

신민회(新民會)는 상동교회 부설 공옥학교의 교사들을 중심으로  평등사상[민주공화제]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조직된 민족 운동을 위한 항일 비밀결사단체로서 1907년 4월 안창호(安昌浩)의 발기에 의하여 양기탁(梁起鐸)·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이감(李甲)·유동열(柳東說)·안창호 등 7인이 창건위원이 되고, 노백린(盧伯麟)·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최광옥(崔光玉)·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榮)·이상재(李商在)·윤치호(尹致昊)·이강(李剛)·조성환(曺成煥)·김구(金九)·신채호(申采浩)·임치정(林蚩正)·이종호(李鍾浩)·주진수(朱鎭洙), 김구,김규식,이승만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

 


 

1920년 3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3·1절 1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임정 구미위원부 간부들 (앞줄 가운데가 이승만 박사 그 오른쪽이 김규식)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신년 축하식 기념촬영[대한민국 3년 1월 1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제6공화국 헌법 전문]-大韓民國

제1열 왼쪽부터 ~.전재순田在淳,김구金九,오희원吳希元,~,~,유기준劉基峻,정태희鄭泰熙,김재덕金在德,김붕준金朋濬,엄항섭,嚴恒燮,정재형鄭載亨
제2열 왼쪽부터 이규홍李奎洪,김철金澈,신익희申翼熙,신규식申奎植,이시영李始榮,이동휘李東輝,이승만李承晩,손정도孫貞道,이동녕李東寧,남형우南亨祐,안창호安昌浩,오영선吳永善,윤현진尹顯振,서병호徐炳浩,조완구趙琬九
제3열 왼쪽부터 ~,임병직林炳稷,~,김복형金復炯,도인권都寅權,최근우崔謹愚,김인전金仁全,이원익李元益,정광호鄭光浩,김태연金泰淵,이복현李福賢,~,김홍서金弘敍,나용균羅容均,황진남黃鎭南,김정목金鼎穆,
제4열 왼쪽부터 ~.왕삼덕王三德,차균상車均祥,김여제金與濟,안병찬安秉瓚,장붕張鵬,김석황金錫璜,김규서金奎瑞,김용철金容喆,~,송병조宋秉祚,양헌梁憲,
조동호趙東祜이유필李裕弼

 

 

                                                                  김구, 이승만의 소개로 미군정청 사령장관 존 하지와 면담(1945년 11월)

 

 

 

  이승만 전(前)대통령의 아호(雅號): 우남(雩南)

雩(기우제 우, 祈雨祭名). 南(남녁 남)

우남(雩南)의 의미는 가물때 해갈이의 의미, 조국광복의 해방 지향(이승만 전대통령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고 본명(本名)은 이승룡(李承龍)이고 회자 이름은 이승만(李承晩)이고 본관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고종의 친척으로 고종 밀사로 활동했으며 독립협회 참여했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졸업, 하버드대학교 석사학위, 프린스대학교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 논문으로 철박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1940년대 미 국무부(CIA) 한국인으로 태평양전쟁 연합군으로 참여했으며, 해방후 좌우익 모든 세력이 건국대통령으로 이승만박사를 추대했으며, 남북분단이후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 활동했다

-박헌영이 지하총책을 통해 1942년부터 이승만선생이 출연한 미국 라디오 방송프로그램 미국의 소리 단파 방송을 밀청하였다. 많은 민족주의자들이나 태평양지역 일본군 참여한 한국인 출신들이 이승만전대통령의 2차대전 상황 방송을 경청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1942년 8월 29일 이승만 박사의 제안으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6.25전쟁한반도의 격변기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북조선과의 대치 상태인 지금도 그러하다. 일제 시대에는 독립 운동 목적으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을 몰래 듣다가 옥고를 치른 방송인들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단파 방송 밀청 사건이라고 한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의 주청취대상은 남북한에 거주하는 주민, 중국에 사는 조선족, 재일동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전문(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확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諸)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各人)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 승 만

 

-제2공화국 헌법은 제헌헌법을 계승한 정부로 증보식 헌법으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학생운동이 자주 일어났고 이승만정부 청산에 대한 항거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승만전대통령을 대한민국 건국자로 부정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통성에 도전세력이 없었다

-제3공화국 이후부터는 대한민국 각 공화국을 부정함으로 국가적 지도자 싱징인물이 없고 남북통일헌법에서는 헌법형식을 증보식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헌법학자들 의견이다

"제6공화국은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함으로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자는 이승만 전대통령입니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 박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임정수립 90주년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특별히 해외에서 오신 후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돌을 맞았습니다. 먼저 광복의 제단에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독립유공자와 후손들께도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1910년 우리는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1919년, 안으로 민족자존의식을 되살리고, 밖으로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2천만 우리 겨레는 ‘대한독립’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정부가 없는 민족의 목소리는 만방(萬邦)을 향했으되, 변방의 함성이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3.1운동을 받들어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임시정부가 주도한 광복군 활동 등 독립운동은 한민족이 살아있음을 온 세계에 알렸습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국호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공화제의 틀을 만들어 광복 이후 건국의 토대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실로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요, 정신적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성취한 위에 선진일류국가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9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질서를 선도하며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롭게 외쳤던 우리의 함성은 이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메아리로 바뀌었습니다.

   이달 초 런던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는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례가 없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 국제공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닦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대한민국은 공동의장국으로서 사전에 논의해야 할 의제를 정하고 우리의 주장이 합의문에 반영되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인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위기극복을 위한 전 세계의 재정투자가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에 쓰일 수 있도록 주장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꿈이자 비전인 녹색성장이 인류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합니다. 온세계가 우리의 정책을 인정하고 호응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기준의 일방적인 적용대상국(rule-taker)에서 국제기준의 능동적인 기준설정자(rule-maker)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도움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후 변방의 약소국에서 성숙한 세계국가로 발돋움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국민 여러분, 만시지탄이지만 바로 오늘, 외국에 묻혀 있던 애국선열 여섯 분의 유해를 꿈에도 그리셨을 이 나라 이 땅으로 모셨습니다. 또한 선열들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해외후손들을 초청해서 선조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엄숙하고도 자랑스럽게 보여드릴 것입니다.

   또한 오늘, 단재 신채호 선생 등 독립유공자 예순 한 분께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일제가 만든 호적을 거부하고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하신 선열들께 이제야 대한민국의 국적과 호적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유족들이 호적이 없어 무국적자의 자손이란 이유로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독립유공자들께 국적을 부여하고, 그 유족들이 국가의 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공헌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해 위패봉안시설을 새롭게 건립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위패봉안시설에는 일제 강점기 동안에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2만여 독립유공자의 위패를 모시게 됩니다. 이는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들에게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정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적 경제위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국선열들이 광복을 위해 치렀던 고초는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애국선열들이 기나긴 힘든 시기에도 광복의 희망으로 고통을 견뎌냈듯이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이 어려움을 이겨냅시다.

   임시정부의 기본정신인 대동단결처럼 우리가 이념과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어 하나가 된다면 어느 나라보다 먼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기적의 역사를 일군 위대한 국민입니다.우리에게는 위기를 맞을수록 단결하고 강해지는 저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겨레의 얼이자 대한민국의 힘이기도 합니다.

   선열들께서 보여주신 대동단결의 정신을 본받아 지금의 위기를 선진일류국가 건설의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애국선열들이 진정 원하셨던 자주독립국가, 선열들이 꿈꾸셨던 진정한 광복국가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오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이유는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고 임시정부의 꿈과 염원을 되새기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에 비록 크고 작은 장애가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열고, 꿈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애국선열들께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Northeast China [traditional Chinese: 中國東北=滿州(만주)] Ruler

Gojoseon[B.C 2333-B.C 108, Korea People:고조선]->Han[B.C 108-A.D 313, Han China People:漢(한)-한나라의 청천강 이북지역 점령과 한사군 설치 그리고 청천강 이남 고조선 유민으로 진국등장]->Goguryea[A.D 313-668, Korea People:고구려]->Tang[A.D 668-698, Han China People:唐(당)나라]->Balhae[A.D 698-926, Korea People:조선족과 여진족 연합정부]->Liao[A.D916-1125, Khitan China People:遼(요)나라-거란족:(다우르족:達斡爾族(달알이족))]->Jin[A.D 1115-1234,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金(금)나라-여진족 또는 만주족]->Mongol[A.D1234-1368, Mongol People:蒙古(몽고)나라-몽고족]->Ming[A.D 1368-1644, Han China People:明(명)나라]->Qing[A.D 1616-1912,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淸(청)나라-만주족]->Republic of China[A.D 1912-1932, Han China People:중화민국-중국 국민당]->Manchukuo[A.D 1932-1945,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滿州國(만주국)-만주족=여진족]->소련 극동군 만주국 점령[1945년 8월 18일,8월 폭풍작전]->중국연합군 반환[1945년 11월, 소련극동군과 인민해방군이 점령 이후 소련군이 중국 연합군 동북3성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임표에게 넘겨 줌]->People's Republic of China[1949년 10월 1일~ Han China People: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임표는 동북항일연군이 개편된 동북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맡아 1948년 11월 만주지역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국민당군을 격파하였다. 임표의 승리를 기점으로 전세는 공산당쪽으로 기울었고, 임표는 제4야전군으로 개편된 자신의 부대(총병력 백만)를 이끌고 계속 남하하여 1949년 2월에는 베이징을 함락시켰고, 창 강을 도하하여

1950년까지 중국의 최남단인 광시 성까지 도달하였다.

-동북3성(東北三省)은 중국의 6대 중국영토지역의 하나로서 동북부 지역을 말하며 과거에는 만주(滿洲)로 불렸던 지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랴오닝 성(遼寧省, 요녕성), 지린 성(길림省(성), 길림성),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흑룡강성)의 3개 성(省)이 포함된다. 이 지역 최대의 도시는 선양(瀋陽)이며, 그 외에 하얼빈(哈爾濱), 창춘(長春), 다롄(大連), 치치하얼(齊齊哈爾), 지린(吉林) 등의 도시가 있다.

동북 3성(만주지역)은 200만 명 이상의 조선족(한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한민족(조선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북 3성(만주지역) 역사적 지배세력은 조선족(한민족)과 만주족(여진족), 거란족, 몽골족 그리고 한족(漢族, 한나라 후손)이다

-동북 3성(만주지역)의 인구는 현재 약 1억 명으로, 이는 중국 전체 인구의 8%에 해당한다.

동북 3성(만주지역) 지방의 민족 구성은 한족(漢族)이 92.4%를 차지하는데, 그 대부분은 청조(淸朝) 300년 간, 특히 19세기 말 이후에 이주하여 왔다. 19세기 말의 동북 3성 인구는 300만 미만이었으나, 그 후 1년에 50∼100만의 인구가 주로 산둥성[山東省] ·허베이성으로부터 유입하였다. 소수민족은 787만인데, 그 중 210만이 만주족(滿洲族)으로 주로 랴오닝성(요녕성)에 살고, 113만이 한족(韓族)으로 지린성(길림성) 동부 국경지대에 옌볜[延邊] 한족(조선족)자치주를 형성하고 있다. 또 몽골족 32만은 네이멍구 지역에 살고, 후이족[回族] 23만은 대도시에 분산거주하며, 그 밖에 퉁구스계(系)의 다구르족 ·오로촌족 ·시보족 ·오웽크족 및 러시아인 등이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약 100만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으나, 종전 후 거의 전부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는 9개 자치주로 구성 돼 있다

1.아무르 주 2. 유대인 자치주 3.캄차카 지방 4.하바롭스크 지방 5.마가단 주 5a.축치 자치구 6.사하 공화국 7.사할린 주 8.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러시아 극동지구[극동 연방관구]는 9개 자치주 중 하바롭스크 지방,  사할린 주(사할린 섬),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등지가 한민족 고구려나 발해 영토였고 아직도 한국인(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지역  한중일 구역(한자문화권, 한자어를 사용하는 나라 중국, 한국, 일본등 삼국)"

 

 

                                                                                         동아시아 지도

중국은 동북아시아지역과 동남아시아지역,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분포 돼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 다수민족 한족은 한반도, 일본 남부지역 민족과 문화적으로 공유해왔다. 만주, 극동지역에서는 조선족(한국), 만주족, 거란족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본 북부지역에서도 문화적으로 공유해왔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고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중국은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 형태로 국가원수(국가대표-외교권과 중앙정부 수반)는  국가주석이고 군 통수권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이다. 작은 내각수장은 총리이다

국가주석의 임기는 임기제한 5년 중임제이며 총리 임기는 의회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총리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다

중국이 다당제와 자유선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군제도 군사위원회(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이 군통수권자가 돼야 한다"

*인민(人民)--개개인의 국민--기본권 향유자로서의 국민--권리장전 사람을 지칭할때는 인민으로 사용해야 정확하다(루소 사상:회의제 정부론)
*국민(國民)--주권자로써의 국민--이념적 통일체로써 국민--대한민국 사람을 지칭할때는 국민로서 사용해야 한다(로크 사상: 국민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사회민주주의) 공존(존중) 민주공화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

 

"The Chinese government can advance as position and role to national military establishment and U.N. Forces which people's liberation army is not political party army though become power change atServiceman integration attention(Gunjeongtonghapju's)  Civilian government( people's government )[President and Cabinet]  inMilitary administration separation(Gunjeongbunriju's) leftist military administration[the Armed Service Committee]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중국정부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정[군사위원회]에서 군정통합주의 문민정부(인민정부, 민간정부)[주석과 내각]로 권력변경이 돼야 인민해방군이 당군이 아닌 국군과 유엔군으로 지위와 역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만주국 지도(지금 중국 동북 3성)

 

만주국은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이념으로 미국을 모델로 건설된 아시아의 다민족 공생의 실험국가였다. 공화제 국가인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황제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오족협화란 만주족과 몽고족·한족·일본인·조선인의 다섯 민족이 협력해서 평화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왕도낙토란 서양의 패도에 반대되는 아시아의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왕도라고 해서 만주국 황제를 중심으로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2년 1월에 장쉐량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진저우를 점령한 후 만주국 구상을 계획했다. 국제연맹에서는 중화민국에 리튼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리튼 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창춘인 신징을, 연호는 대동이라 했으며, 황제는 이전 청나라의 황제였던 푸이로 옹립했다. 1932년 9월에 일만의정서를 조인해 일본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등 8개국이 정식으로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4년 9월 제정 수립으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에는 군대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 등에서 소련군에게 패하는 등 무능력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지역을 공격(8월 폭풍작전)함으로써 8월 18일 망하였고, 만주 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같은 해 11월 해당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다

임표는 동북항일연군이 개편된 동북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맡아 소련 붉은군대와 함께 만주국을 점령하고 동북 3성 통치권을 인겨받은 후 1948년 11월 만주지역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국민당군을 격파하였다. 임표의 승리를 기점으로 전세는 공산당쪽으로 기울었고, 임표는 제4야전군으로 개편된 자신의 부대(총병력 백만)를 이끌고 계속 남하하여 1949년 2월에는 베이징을 함락시켰고, 창 강을 도하하여 1950년까지 중국의 최남단인 광시 성까지 도달하였다

 

-1차 세계대전(레닌, 전쟁 중립선언과 공산주의 세력 전쟁 불개입선언)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은 독일-소련 불가침조약과 동서유럽(동서폴란드) 군사적 점령

[국가사회주의와 군국주의 이론: 독일 노동자의 당 히틀러의 나찌즘, 소련 공산당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이론]

-1940년 9월, 독일, 이탈리아, 일본간에 삼국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 소련침공

-1941년 7월 소련과 영국, 반독일전선 구축 그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반독일전쟁 참여(중국인등 아시아 출신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대독전쟁 참여)

-일본의 소련과 외몽골 침공

1938년 7월 29일, 일본의 소련 침공으로 하산 호 전투가 발생하였다. 전투는 거의 소련군의 승리였으나, 일본군은 무승부로 판단하고 1939년 5월 11일에는 강제로 할힌골 전투를 일으키며 몽골 영내로 진군했다. 초기에는 몽골로의 침공이 성공했으나, 붉은 군대에 의해 관동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충돌들은 소련이 중국에 대한 간섭을 막기 위해 소련 정부를 회유하고 대신 남쪽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파벌들이 태평양과 미국 방면으로의 진출을 설득하게 되었다

-1941년 12월 7일(아시아 시간으로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과 영국의 식민지를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4월 12일,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해리 S. 트루먼가 대통령직은 승계받았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4월 28일에 이탈리아 파르타잔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틀 후, 히틀러는 자살하고, 대제독 칼 되니츠가 총리를 승계받았다.

독일군은 이탈리아에서 4월 29일에 항복했다. 독일의 항복문서5월 7일 랭스에서 서명되었고, 5월 8일(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에 베를린에 비준되었다 독일 중앙집단군은 5월 11일 프라하 공세까지 저항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군은 1945년 4월 말까지 필리핀에서 필리핀 전투레이테 만 해전에서 승리한다. 1945년 1월 루존 상륙과 3월에는 마닐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루존에서 계속되었으며, 민다나오 섬을 비롯한 필리핀의 다른 섬들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저항했다.

1945년 5월, 호주군은 보르네오 전투를 시작하며 섬을 점령했다. 영국, 미국, 중국은 북부 버마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5월 23일에는 영국군이 양곤을 점령했다 중국은 1945년 4월 6일부터 6월 7일까지 서후난 전투로 반격을 시작했다. 미군은 일본 본토로의 진격을 시작하여, 3월에는 이오 섬을 점령하고, 6월 말에는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미군의 폭격기는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하고, 미군 잠수함은 봉쇄 조치를 시작했다.

7월 11일에는, 연합군의 지도자가 포츠담 회담을 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이전 회담의 협정을 확인하고, 특히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한 대안은 신속하고 완전한 파괴"라고 발표했다. 이 회담 중에 영국은 선거를 시작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포츠담 협정을 무시하며,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원자 폭탄을 투하한다. 두 폭탄이 터진 사이, 소련군은 얄타 회담의 조건에 따라 8월 폭풍 작전으로 만주로 진격하며 관동군을 항복시킨다. 그리고, 소련군은 만주와 청진 등 한반도 북부를 점령한다. 또한, 소련군은 사할린 섬쿠릴 열도를 점령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며, 일본의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미군 전함 USS 미주리 (BB-63)에 서명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