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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도호 북한 납치범, ‘일본 조사 받겠다’ 본문
지난 1970년 일본 민항기 '요도호'를 공중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했던 일본 공산주의 과격단체 적군파 조직원이 일본 정부의 공식 조사를 받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에 머무르고 있는 적군파 조직원 `와카바야시 모리아키'는 31일 일본 교도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조건으로 북한이나 제3국에서 일본 조사 당국의 심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요도호 사건’은 지난 1970년 3월, 적군파 조직원 9명이 승객과 승무원 1백29명이 탄 일본항공 요도호를 공중에서 납치한 사건입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 28일 스웨덴에서 열린 국장급 협의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재조사하기로 합의했지만, 요도호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일본의 적군파(김일성주의자)
적군파(赤軍派,Red Army)는 1969년 2개의 극좌파가 연합하여 이루어진 일본의 테러리스트 단체이다 본래 이름은 연합적군이다 1970년초에 적군파는 일본 항공의 항공기를 여러대 납치하고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로드 공황에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으며(1972년), 여러 나라에서 대사관을 점거하는 등 주요 터러작전을 잇따라 감행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분쟁을 겪었고 이 파벌 싸움은 결국 1972년에 호전적인 단원들이 동료 14명을 처형하는 사태를 빚었다 적군파 조직은 아주 소규모였지만 1990년까지도 간헌적으로 계속 테러행위를 저질렀다 2001년 5월 조직을 해체하고 합법단체로 거듭날 것임을 선언했다
적군파도 주체사상강습소 김일성주의자들로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共産主義者同盟赤軍派)
1.발단
마스-레닌주의는 동아시아지역에서 스탈린이나 모택동, 김일성주의로 분파돼 있다
NLPDR이론은 마스-레닌주의 기반으로 모택동이나 김일성주의 이론으로 발전돼 공산주의 이론이다(일본 좌파도 소련 공산당 세력으로 친소파이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은 소련 붉은군대 힘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무장단체는 대부분 당군(黨軍)이론으로 NLPDR(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론이다
2.이념과 활동
NLPDR이론은 마스-레닌주의 기반으로 모택동이나 김일성주의 이론으로 발전돼 공산주의 이론이다(일본 좌파도 소련 공산당 세력으로 친소파이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은 소련 붉은군대 힘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무장단체는 대부분 당군(黨軍)이론으로 NLPDR(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론이다
NLPDR(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론이 인민민주주의(민주주의, PDR) 이론을 무시할때는 민족해방(NL)이론으로 국가사회주의(독일 노동자의 당) 히틀러 나찌즘이나 일본 군국주의(국가주의 즉 국가사회주의 이론) 이론, 북한 주체사상(김일성주의) 이론등이 될 수도 있다
무장단체이론 당군론(黨軍論, 무장군대)은 대부분 NL계열이나 NLPDR계열이다
*다이보사츠 고개 사건(大菩薩峠事件)
정작 군대를 자칭하던 놈들이 캠프 바깥에 보초 하나 세워놓지 않았다고 한다
3.국제근거지 마련과 요도호 사건
*순진하게도 북한에 가서 자기들 방식대로 북한을 좌경화시키고 북한의 "적군"화를 시킬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적군파도 신좌파에 속하는 집단이고 해서, 반스탈린주의적 입장이었고, 북한은 아직 스탈린주의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일본 적군파는 마스-레닌주의로 스탈린주의 사회민주주의 이론과는 구분돼야 한다
북한 노동당은 창당 당시에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김일성(공산주의 계열 당군이론), 김두봉(사회민주주의 계열), 박헌영(마스-레닌 공산당 계열)등 계열이다
마스-레닌주의는 모택동과 김일성등 당군이론과 공산주의 이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론이다
북한 노동당은 사회주의 헌법으로 개정돼 이후 김일성주의 등장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으로 사실상 변경되었고 김일성을 국가 건국자로 추대했다
일본 적군파는 마스-레닌주의 NLPDR이론이다
미국 적군파 이론은 마스-레닌주의 NLPDR 반미이론으로 모택동 노선 보다는 김일성 노선이다
4.연합적군으로 통합 및 아사마 산장 사건
5.그 이후의 적군파의 행보
(1)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프롤레타리아 혁명파)
(2)일본적군
일본 적군파 이론은 마스-레닌주의 NLPDR이론이다
극렬 좌파 민족주의 운동 마스-레닌주의 NLPDR이론 모택동, 김일성 그룹 중 반미이론은 모택동보다 김일성 그룹이다
일본 적군파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일본 내부 극렬 좌파 민족주의 운동 마스-레닌주의 NLPDR이론 김일성 그룹(반미그룹)을 제거해야 한다
*이스라엘 텔 아비브 공항 습격사건(1972)
적군파 조직원 4명이 공항에서 자동소총과 수류탄을 갈겨 민간인 27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과 일본 사이의 항공 직항노선이 없어졌다. 그리고 2011년이 된 현재에도 이 조치는 유효하다
6.평가
[참고로 적군파가 활약(?)한 1970년대는 일본에서 공산당의 세가 가장 강력했을 때(...)였고 동시에 지자체 선거에서도 진보진영이 가장 많은 세를 확보하고 있었을 때다. 정작 사회당은 지리멸렬했지만...]
하지만 일본 진보정당이 패망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일본 사회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물론 적군파때문에 일본의 좌익운동/학생운동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뭐 좀 하려고만 하면 "과격파 아니냐", "과격노선 아니냐", "민심이 이반할지도 모른다"는 명목으로 자기규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진보정당 패망이 적군파 어그로 이후인지, 아니면 1990년대 사회당 지지율 하락부터인지의 문제는 사실 진보정치운동의 가장 중요한 논점 중 하나다. 적군파때문이라고 하면 극좌적 모험주의가 문제인 것이고, 사회당 몰락은 이와는 반대로 수정주의와 타협으로 인한 변별력 및 동력상실이 문제가 된 것이디. 따라서 이 두 의견은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는 이 논쟁에서 답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게 낫다
일본 사회당이나 진보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노선으로 당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극렬 좌파 민족주의 노선 NLPDR 모택동, 김일성 그룹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사정부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할때 모택동이나 김일성이론이 필요없고 서구식 진보정당(사회민주당이나 민주진보당등)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전공투 시대에 파생된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일본적군, 연합적군을 뭉뚱그려서 적군파로 칭하는데, 이 단체들이 사실상 어떻게든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다른 단체다. 적군파가 모체가 되었고 여기서 나와서 따로 국제혁명전쟁을 수행하려는 집단이 일본적군이고, 적군파의 군사조직인 중앙군과 혁명좌파의 인민혁명군이 통합된 것이 연합적군인 것. 일본에서 적군파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를 지칭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단체는 따로 분류한다. 아마도 요도호 사건의 주범이 적군파였기 때문에, 이후 파생된 조직들까지 뭉뚱그려서 적군파라고 칭하는듯 하다
본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 단체가 아니다
그러나 스탈린이후 공산주의 무장단체는 마스-레닌주의 NLPDR단체이다
일본 김일성 추종 좌파정치인이나 조종련은 김일성주의보다 북한정부 돈줄이나 원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은 소련 붉은군대 힘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7.기타
(1)PBM 작전
(2)미디어에서의 적군파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고 했다 - 시게노부 후사코가 일본으로 귀국, 체포된 후 썼던 책으로, 딸인 시게노부 마리와 팔레스타인에서의 활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적군파 JAL기(요도호) 납북사건과 항공기불법탈취(Hijacking)
1.일본 적군파 JAL기(요도호) 납치사건 개요(1970년 4월 3일)
1970년 3월 31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탑승객 129명을 태우고 후쿠오카로 가던 일본 항공 소속 여객기 요도호가 일본도등으로 무장한 적군파 요원 9명에게 공중 납치되어 김포국제공항에서 불시착했다
납치범들은 승객을 인질로 북한행을 요구,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일본운수성 정무차관 <야마무라 신지로>를 인질로 잡고 1970년 4월 3일 북한으로 넘어갔다
-일본정부측 일본인 납치 배후 북한정부 책임자 처벌요구,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의 무조건 인도와 북핵 6자회담 조기 복귀등 요구
2.항공기 불법탈취(Hijacking)
항공기불법탈취(航空機不法奪取, Hijacking)은 항공기를 불법 탈취하여 운항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이다 보통 하이재킹(Hijacking)이라고 한다
항공기 자체의 강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항공기의 운항을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형태에 따라 망명형(亡命型), 아랍 게릴라나 일본적군파에 의한 정치활동형, 무목적(無目的) 충동적인 것으로 미국에 많은 이상형, 불황의 상황에서 몸값 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불황형등으로 나눌 수 있다
1930년 페루 혁명파의 국내선 여객시 탈취사건이 최초이며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사건은 1948년 6월 마카오-홍콩간 상공에서 발생한 캐세이퍼시픽 항공 납치사건이다 이 사건은 범임을 체포하기 위한 총격전으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태까지 빚었다
1960년대 이후 사고가 빈발하였는데 당시 친소(親蘇)적이었던 쿠바를 목적지로 하는 항공기를 대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인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많았다
1960년대 말 이후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의한 사건, 1970년대 3월 일본적군파 9명이 나고야 상공에서 일본 여객기를 납치하여 북한 평양으로 망명한 요도호사건등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목적의 불법탈취사건이 많아졌다
이 시기부터 사건이 급증하기 시작 많은 해는 100건이 넘어 항공회사에 큰 위협이 되었으나 방지대책이 강화되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건방지를 위해서 경찰의 단속체제 강화, 위험물 반입금지, 국제협력등의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경호인이나 경관의 순찰과 탑승, 항공기내 조종실의 보안, 금속성 무기 탐지장치와 X선투시 TV활용, 승객과 수하물에 대한 검사등이 행해지고 있다
-1930년 페루 혁명파의 국내선 여객기 탈취사건(최초)
-1948년 6월 캐세이퍼시픽 항공기 납치사건
-1960년말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의한 사건
-1970년4월 3일 일본적군파 9명에 의한 요도호 사건
-2000년 9월 11일 알카에다에 의한 비행기 납치와 뉴욕참사
(3)요도호(號) 사건 자료
ㄱ.실종 두 남성 <속아서 북한에> 요도호 전(前) 아내가 최근수기
-아사히(朝日) 2002년 6월 22일(토요일)-
<요도호> 하이재크 사건 멤버의 아내였던 八尾惠(팔미혜) 전 스넥주인(46세)이 최근 발표하는 수기에서 1980년 유럽에서 실종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입국했다고 보여지는 홋카이도 출신과 쿠마모토현 출신의 2명의 남성에 대해 <속았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쓰고 있었다 2명의 실종경위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경찰청은 납치사건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수기는 <사죄합니다>라는 제목으로 2002년 6월 26일에 분게이슌쥬에서 발매된다
그 수기에서 전(前) 아내는 북한에 있었을 무렵 관계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로서 2명을 언급 요도호 멤버의 아내들에 이끌려 1개월 정도 여행할 생각으로 북한에 왔지만 <북한이 쉽게 돌려 보내주지 않을 것을 알고 매우 화를 냈다> <속았다며 노발대발해. 폭행사건을 일으켰다>고 한다
또 프랑스의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던 당시 25세의 남성을 <획득활동>으로서 북한에 데리고 가려했던 것을 밝혔다 도중에 임무를 떠났기 때문에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前) 아내는 금년 3월 코베시 아리모토 케이코씨 납치에 관여했고 토쿄 지방법원에서 증언했다
ㄴ.대남공작
방중(訪中) 중인 일중우호의원연맹(日中友好議員聯盟)은 8일, 호금도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회담에서 호금도(胡錦濤) 국가주석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서 <해결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북정구간 교섭에서 납치피해자의 가족 8명의 조기 귀국에 대해서 해결을 향한 진전이 있었다는 정보를 북한 측으로부터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ㄷ.김정일의 대남공작-3호청사
일본인 납치와 그리고 남한 주민들을 납치하여 간첩교육을 시켜서 공작원으로 파견하는 곳이 바로 북한정부 3호청사로 알려져왔다
<3호 청사>란 북한정부 건국이래 지배해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의 대남공작부서를 총칭한다 <3호 청사>는 통일전선부(범민련, 범청련등 조직), 대외정보조사부, 대외연락부(사회문화부), 작전부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의 네개의 부(部)로 되어 있다
납치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본격화 되었다
납치대상은 일본인을 비롯해 한국인, 아랍인, 중국인, 유럽인등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후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의 <주체철학>을 교육 교재로 활용할 만큼 김정일가 <3호 청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납치목적은 남한등의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술, 생활습관, 언어습관등을 가르쳐야 하고 공작원이 현지화 양성체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은 일본에 가면 일본인, 중국에 가면 중국인, 캄보디아에 가면 캄보디아인이 되어 언어. 습관. 직업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김정일은 현지인과 동화될 수만 있다면 공작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Guide Ear&Bird's Eye10 > 테러단체,간첩등 수집.조사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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