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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노인, 끝까지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 촉구 표시 본문
한국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노인, 끝까지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 촉구 표시
CIA Bear 허관(許灌) 2013. 8. 14. 22:19
길원옥 할머니, 중국 국제방송 서울지국 기자와 함께 인터뷰 촬영 모습(사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아시아의 여성 수십만명이 일본군에 끌려가 각국을 침략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그들중 많은 분들은 강박 또는 기만에 의해 성노예로 윤락했습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의 김학순 노인이 자진해 처음으로 일본군의 폭행을 지목했습니다. 현재 김학순 노인은 이미 작고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전인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존엄을 되찾기 위해 오늘도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85세의 길원옥 노인이 바로 그중의 한분입니다.
올해 5월 길원옥 노인은 87세의 위안부 피해자 자매인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일본에 가서 증언모집활동에 참석했습니다. 그간 두 노인은 망언을 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회견을 거절해 각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3일 본 방송국 서울지국 기자는 길원옥 노인을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여러분의 귓전에 들리는 이 목소리는 한국 민간 위안부지원기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한 단락입니다. 길원옥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노인의 곡절많은 일생을 소개했습니다. 1940년, 13살에 난 길원옥 노인은 일본군이 노동자를 모집한다고 해서 군에 들어가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그후 일본군과 함께 중국 동북과 화북지역을 전전하면서 매일 모진 고통과 학대를 받았으며 엄중한 성병에 걸려 자궁을 제거했고 한평생 결혼하지도 못하고 애도 낳지 못했습니다. 길원옥 노인이 당시 겪은 고통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찢어지게 합니다. 길원옥 노인의 말입니다.
"그냥 공장에 가서 일을 가르쳐주고 돈벌게 해준다니까 따라가서...그 어린 것을 거기다 집어 넣었으니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는거죠. 지금은 하나도 좋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것이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가질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
위안부로 겪은 고통 외에도 길원옥 노인은 현재 당뇨병을 포함한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대형 위안부 지원활동 현장에서는 거의 길원옥 노인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길원옥 노인은 위안부문제와 관련해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행사에 지금까지 몇번 참가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반성안했죠. 안했으니까 저희들이 반성하라고 하고 법적 배상을 하라는거지, 반성을 했으면 또다시 되풀이할만큼 그렇게 우리들이 미련하지 않거든요. 하나도 안했죠. '수요집회'도 그래서 하는거죠...저네들은 그러다 끝나겠지 하겠지만 한국에도 후손이 있어요. 우리들의 후손은 우리가 못 받아낸 것을 받아내도록 끝끝내 싸워주지, 그냥 우리 후손이 너희들 잘 먹고 잘 살아라 할건 아니니까 배상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배상해야 끝나지..."
올해 5월 길원옥 노인은 87세의 위안부 피해자 자매인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일본에 가서 증언모집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기존 일정에는 일본 유신회 당수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회견이 있었지만 5월 13일에 하시모토가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비난을 받을 "위안부가 당시에 필요했다"는 발언을 했고 그후 자신의 발언이 "오해"를 받았다면서 두 노인을 직접 만나 설명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의 행위에 대해 두 위안부 피해자 노인은 하시모토와의 회동을 취소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습니다. 또다시 그때 일을 돌이키는 길원옥 노인의 말에는 여전히 분노가 담겨져 있습니다.
"저 하고 싶은 대로 막말을 해놓고서 무슨 사과를 한다고 만나자고 그래요. 그런데 저희가 사과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나가 만나겠어요? 그래서 안만났죠. 20여년간 한마디 대꾸도 없는 괘씸한 사람들을 뭐하러 만나겠어요. "
비록 길원옥 노인은 신념이 확고하지만 연세가 들고 질병이 많아지면서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2년에 길원옥과 김복동 두 노인은 획득한 기부금으로 자선기금을 설립해 전쟁피해를 입은 여성과 어린이를 돕는데 사용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길원옥 노인은 비록 매년 8월 15일은 한국의 광복절이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있어서는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한 진정으로 "해방"한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딸들이 당한 일이 한국이 당한 일이니 부끄러움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일본정부가 부끄럽고 한국정부가 부끄러운 것이죠. 우리들은 해방 안됐죠. 저 사람들이 위안부라고 사과를 한게 없으니, 우리는 광복절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저 사람들이 정식 사과를 안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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