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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사회가 옹호하는 서울 동작구을 새누리당 鄭夢準 후보 본문
"世界潮流浩浩 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灌頭之水 流下足底, 巨山後廣'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선진국)
영남지역과 강원도 지역 60%이상 지지율과 호남지역에서 25%-30% 지지율 확보 그리고 기타 지역에서 45%-50% 지지율 확보가 가능한 새누리당 정치인..
박근혜의원과 정몽준 의원이 새누리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돼 오고 있다
군인등 남자 중심의 우파세력은 정몽준 의원을 옹호하고 있으며 여성층과 박정희前대통령 지지자들은 박근혜의원을 옹호하고 있다
정몽준(鄭夢準, 1951년 10월 27일 부산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기업가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아들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이며, 1988년 현대중공업이 위치하고 있는 울산 동구에서 당선, 현재까지 국회의원직을 이어가고 있다. 18대 국회의 동작구 을 국회의원이자,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이었다
정몽준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시절 ROTC 후보생이 되었다. 그 당시 정몽준은 아버지의 재력으로 자신의 동기생들의 가방을 모두 교체해주기도 했다. 정몽준은 학군 13기로 병역을 이행하였으며 그 아들 역시 학군 43기로 임관하여 장교의 신분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다
1988년 13대 총선때 무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아버지를 따라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김영삼 정부 당시 초원복집사건으로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02년 11월 11일 정몽준은 국민통합21을 창당하였고, 대선에서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로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대표 선정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가,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을 대표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였지만, 투표 전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를 선언하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노무현이 당선되면서 당세가 약화되었고, 6월 26일 국민통합21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에는 울산지역구의 무소속 의원으로 지냈다. 정몽헌 자살사건으로 정몽준은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아침 9시 비행기로 급히 귀경길에 올라 빈소에 참여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5선을 거둔 울산 동구를 떠나 서울 동작구 을 선거구로 옮겨 출마해 정동영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에 승리해 6선 고지에 올랐고, 2008년 7월에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의 양산 재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로 당대표직을 승계하게 된다
2009년 9월 9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회동에서 새로 취임한 정몽준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장을 잘 치른 게 국민화합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를 계기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 이뤄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서화합이라는 측면에서 정 대표는 동서고속도로 건설을 적극 추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터널과 교량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재래식 무기로 군사 경쟁이 안돼서 그렇게 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권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또 대북 지원과 관련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인도적 지원은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6월 3일 정몽준은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고 당 대표에서 사퇴하였다 이에 당시 제1 야당인 민주당 대표 정세균은 정몽준에 대해 "여야관계를 좀 더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여야관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회의 기능과 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 "정 대표가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치 중심에 서서 정치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정몽준 한나라당 前 대표의 한나라당 지방선거 패배는 노무현 前대통령 지지세력 확대와 노무현측근 대거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 되었다 이것은 정몽준 前대표의 지지세력이 노무현 前대통령 지지세력이라는 것을 반영한다는 머리소리함 조사자료이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민족입장에서는 애국적인 활동이며 자유화 민주화 입장에서는 병정분리주의 좌익군정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병정분리주의 좌익군사정부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노선(독일 노동자의 당)처럼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극단적(침략주의) 민족주의 독재권력이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정부는 반미정부이며 국제 반미테러단체이다[북한 교과서는 대부분 항일이나 항미투쟁이며 현대사는 NLPDR이론 기반으로 기술한 반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론이다]
2011년 8월 16일 범 현대가 관계자들은 서울특별시 현대 계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산나눔재단 설립을 발표하였다. 이 재단은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의 10주기를 기리기 위하여 설립된 재단이며, 재단의 재원은 정몽준이 약 2000억 원 정도 사재를 출연하여 재원을 부담하였고, 현대중공업 계열 6개사의 2380억 원과 현대해상, 현대산업개발, KCC, 현대종합금속, 현대백화점 등의 620억 원을 합쳐 총 5000억 원 규모로 만들어지었다 재단의 규모는 2007년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 일가의 사재와 주식 8000억 원을 재원으로 설립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2번째 규모이다
1.대한민국 축구와 2002년 월드컵 유치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던 김우중에 이어서 정몽준은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취임 후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였다 1993년 11월 정몽준은 월드컵 유치 성공을 위하여 FIFA 부회장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표명하였으며, 1994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축구연맹 연차총회 중 실시된 아시아지역 FIFA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이 되었다
1996년 5월 31일 FIFA는 2002년 월드컵을 만장일치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것으로 확정하였고, 12월 30일 정몽준은 2002년 월드컵 한국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7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개최에 기여를 한 정몽준을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에 선정하였다
정몽준은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제50대까지 4회에 걸쳐 회장으로 선출되어 재임하였으며, 1994년 12월에는 당시 경기단체장 중 가장 많은 41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하여 화제가 되었다
1993년 당시 현대학원 이사장이었던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후 실무자에게 `한국축구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빨리 세계무대를 호령할 것'이라며 중·고등학교 여자축구팀 창단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당시 여자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으며, 근본적인 문제로는 선수들의 진학, 진로 문제 등의 이유로 운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대학팀, 그리고 실업팀이 필요하였다.
이런 이유로 1993년 울산 청운중을 시작으로 현대정보과학고, 울산과학대학, 인천현대제철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도록 하였다.
정몽준은 이 때 이들 팀의 창단 비용은 물론 연간 운영비도 지원하도록 하였고, 청운중과 현대정보과학고는 6~7천만 원, 울산과학대 1억 원, 인천제철 약 20억 원, 어린이축구교실 운영비 등까지 포함하여 여자축구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운영비를 연간 수십 억 원 지원하였다.
또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선정되는데 필요한 등록팀 수를 채우려고, 현재는 해체된 서울 현대고등학교에 여자축구팀을 창단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노력 등으로 인한여 2010년 9월 26일 대한민국 17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밑거름은 정몽준과 현대가의 지원 덕분이라는 평가가 있다
1994년 5월 FIFA 부회장에 당선된 정몽준은 2007년 선출까지 4번 FIFA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4번째 부회장 임기가 마쳐진 해인 2011년 3월 3일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7년간 세계축구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되어 FIFA 명예부회장에 추대되었으며, 이는 6월 1일 열린 제61차 FIFA 정기총회에서 승인되었다.
1997년 5월 31일 정몽준은 FIFA 미디어 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2007년 6월 28일에는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일화
(1)2002년 남북축구경기일 박근혜의 항의와 정몽준의 답변
정몽준은 2011년 9월 4일 자서전인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출간하고, 자서전을 통하여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을 일화들을 공개하였다. 그 중 한나라당의 전 대표인 박근혜와의 일화도 있는데, 일화의 내용은 박근혜가 2002년 9월 남북축구경기 당일 경기장에 먼저 와있었는데, 정몽준을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몽준은 박근혜의 항의가 무슨 소리인가 하였는데, 박근혜의 항의 내용은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 "경기 시작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박근혜는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에 정몽준은 "관중들은 축구협회 직원이 아니고,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등의 답을 했다고 한다
-한나라(韓國)당은 대한민국을 의미하며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애국운동단체입니다 남북통일 국호는 미국과 중국등 정부 원조로 구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며 국기도 태극기입니다 한나라당(韓國黨)은 대한민국을 국제 위상강화에 노력한 단체입니다 대한민국 지도단체는 한나라당이며 전체 국민이 한나라당 옹호세력입니다
(2)새천년민주당 후보 노무현에 대한 지지 철회
정몽준은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후보였던 노무현과 후보 단일화를 하였는데, 대통령 투표일 하루 전날인 2002년 12월 18일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다. 정몽준은 자서전을 통하여 "20여년간 정치인생에서 나를 힘들게 한 때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마지막 순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던 밤"이라고 밝혔다. 정몽준은 또 노무현에 대한 지지 철회를 한 이유에 대하여서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단일화는 했지만,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노무현 후보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공동유세에) 합류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10여일간 협상을 벌인 끝에 한미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노 후보 쪽이 우리 입장을 따르기로 했다", "노 후보 진영의 취약한 외교ㆍ안보 분야를 우리가 보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노 후보 측에서 나를 `국정동반자'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선 전날 명동과 종로 유세에서 `국정동반자'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밝혔다.", "명동 유세에서 노 후보는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리겠다'는 말을 하며 우리 쪽과 합의한 기본원칙을 완전히 뒤집었다", "종로 유세에서 노 후보가 정동영 의원을 데리고 (단상에) 올라갔다. 단일화와 공동정부를 나타내는 나와 노 후보의 협력 모습은 사라지고, 노 후보를 양옆의 두 사람이 떠받드는 이상한 모양이 연출됐다"
이후 정몽준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고, 정몽준은 지지 철회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서는 아래와 같이 밝히었다
"지지 철회 후 나는 다음해 2월 초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또한 내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노 대통령 재임 중 4개월 이상 세무사찰을 받았다"
-노무현정부 초반기 반미여성회나 반미청년회등이 결성돼 방북하였고 노무현정부는 반미투쟁이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북한 김정일정부 협력에 유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병정분리주의 좌익군정을 제거하는데 노력해왔다 머리소리함 의견으로 노무현정부때 한민전을 해체함으로 노무현대통령 탄핵휴유증을 극복했고 북한정부 대남기구 반제민족민주전선이 창설돼지만 별 영향력이 없어졌다
조선일보 게시판에 한민전 기관지 내용 등장하여 여중생 사망사건과 서해교전이 일어났고 한나라당 이회창후보가 판단미숙으로 각 지역 한나라당 사무소내에 여중생 사망사건 서명운동을 확대함으로 보수세력 반감도 드러났다 노무현前대통령은 논산 훈련소 앞에서 군입대를 선전화했다 노무현 前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는 애국 반공반독재구국전선들의 호응이라고 평가한다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은 징병제 현역 군인 출신이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병정분리주의 좌익군정을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다(사회주의 국가-군사평의회나 국방위원회, 군사위원회등)
-노무현 前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에게 2%이내로 승리했다 영남지역에서는 이회창후보 절대적 승리로 지지율을 전국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울산도 갈팡질팡했다
-한국기업들도 병정분리주의 좌익군정 세력이 국가사회주의 세력임으로 지지하지 말아야 하며 인민회의제 정부론 공산주의 세력도 견제해야 한다 한국기업들도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선진국) 입장에서 대기업은 자유권을 우선시 하면서 생존권을 존중하는 진보세력[자유민주]을 옹호해야 하며 중소기업은 생존권을 우선시 하면서 자유권을 존중하는 보수세력[사회민주]을 옹호해야 한다
(3)김대중 정권 시절 대북 송금 반대
정몽준은 자신의 자서전인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통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현대의 대북사업 관련 인사들이 현대중공업 재정 담당 임원을 불러 "현대중공업에서 몇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실을 공개하였다. 정몽준은 순간 "순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보낼 돈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이틀 후 청와대 고위 인사를 만나 `회사 돈을 보내면 비밀이 지켜지겠느냐. 김대중 대통령을 이렇게 모시면 안된다'고 했으며, 새천년민주당 이해찬 정책위의장을 만나서도 같은 얘기를 했다"고 밝히었다. 정몽준은 "결국 현대중공업에서 자금이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보니 현대상선 자금이 사용됐다"며 "퇴임 직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모든 책임을 현대에 떠넘겼다"고 술회하였다
-1993년 12월 말경 머리소리함에 북한 김정일 사진이 평양시내 등장하고 있으며 사실상 북한 권력을 김정일 인민군총사령관이 장악했다고 했다[김일성 前주석 사망 가능성을 비밀에 전달해왔다]
그 다음해 1994년 7월 8일 남북정상회담 도중에 사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권력을 장악하는데 협력한 남한 단체가 바로 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이다
김대중정부때 한민전 서울대표부 민혁당이 제거 되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되었다
김정일 그는 1990년에 들어서면서 수령의 지위를 차례로 이양받기 시작하여 1990년 12월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에, 1993년 4월에는 군사주권의 최고지도기관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각각 취임함으로써 당.정.군을 장악하여 후계자가 되기 위한 지도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4년 7월 김일성의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권력 계승하여 1997년 10월 당 총비서가 되었다
1998년 9월 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하고 주석제를 폐지함에 따라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행정수반은 내각총리, 최고 통수권자는 국방위원회로 규정하였다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었고 1998년 재추대 되었다
자유사회가 옹호하는 서울 동작구을 새누리당 鄭夢準 후보가 차기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 출신답게 반공반독재구국전선 입장에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선진국) 수립으로 나아가야 하며 자유권을 우선시 하면서 생존권을 존중하는 진보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래 빈민출신이나 노동자 출신은 생존권을 우선시 하면서 자유권을 존중하는 보수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요즘 사회에서는 진보는 자유(지식-학벌)이며 보수는 생존(빵)입니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정부(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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