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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軍, 무장혁명군 FARC 지도자 사살 본문

남아메리카 지역/콜롬비아

콜롬비아軍, 무장혁명군 FARC 지도자 사살

CIA bear 허관(許灌) 2011. 11. 6. 17:12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최고 지도자 알폰소 카노(63)[사진]

현존하는 반군 세력 중 가장 오래 된 조직으로 꼽히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최고지도자 알폰소 카노(63)가 4일(현지시간) 정부군에 사살됐다. 1964년 설립된 FARC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상류층에 치우친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40여 년간 반정부 무장투쟁을 해 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후안 카를로스 핀손 콜롬비아 국방장관이 “4일 오전 남서부 카우카주에 있는 카노의 은신처를 폭격했다”며 “곧바로 특수작전부대가 진입해 총격전 끝에 카노를 사살했다”고 밝혔다고 5일 보도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카노 사살 후 TV연설에서 “카노의 죽음은 FARC 역사상 가장 심각한 타격”이라며 “FARC가 해산하지 않으면 조직원들은 감옥에 가거나 무덤 신세를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카노의 트레이드마크인 턱수염을 깎은 시신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고 은신처에서 발견한 컴퓨터메모리 칩 등을 분석 중이다.

본명이 기예르모 레온 사엔스인 카노는 1948년 6월 수도 보고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8년 보고타국립대에 입학, 인류학을 전공하다 마르크시즘 등 정치 이론에 빠져든 그는 이후 공산당 청년단 수장이 됐다가 반정부 학생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1970~80년대 수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정부의 모스크바 망명 제안을 거부하고 FARC에 가입해 조직의 이론가로 활약한 카노는 FARC 고위 관계자의 눈에 띄어 초고속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2008년 3월 FARC 창설자 마누엘 마루란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에는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FARC는 1985년 정부와 교섭 끝에 정전에 합의하고 합법적인 정당을 조직, 한때 정치활동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FARC는 마약밀매 등을 통해 조직 운영자금을 조달하는가 하면 80년대 중반부터는 수감된 조직원의 석방교섭에 활용하기 위해 정치인과 민간인을 납치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학살과 약탈 등의 혐의로 카노의 목에 현상금 370만달러를 걸어 둔 상태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카노의 죽음이 콜롬비아 국민에게 반세기 가량 이어진 내전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감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장 극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FARC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점을 둔 뉴스통신사 안콜에 낸 성명에서 산토스 대통령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안보 전문가인 알프레도 랑헬은 “단기적으로 리더십의 공백은 있겠지만 FARC의 차기 지도자가 카노와 반대 전략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FARC는 산악지대와 정글 등 은신처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체명 :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ns, FARC)

지도자 : 알폰소 카노(Alfonso Cano)

특 징 : 1964년 콜롬비아 무장 농민군 지도자 출신들로 구성된 반군 게릴라 단체로서 콜롬비아 정부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무장투쟁


콜롬비아 좌익 반군 가운데 1만 60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해 규모가 가장 크다. FARC는 테러와 요인 납치ㆍ암살 등 반정부 투쟁을 벌여왔으며 콜롬비아군의 훈련과 군수 및 반군 진압을 위한 작전을 지원해 온 미군을 군사적 목표로 삼아왔다.

2009년 말 현재 FARC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의 소탕작전으로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한편 2008년 7월 2일 6년 4개월여 동안 억류됐던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후보가 정부군의 첩보작전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바 있다

 

                                     콜롬비아 보수당 출신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아랑고전대통령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최고지도자 알폰소 카노

 안드레스 파스트라나는 콜롬비아의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대통령이 된 후, 파스트라나는 마약 보급단체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와 ELN(반군단체 민족해방군)의 협상을 이끌었으나 실패하였다

좌익무장단체 자금줄이 마약이나 무기밀매 그리고 위조 담배보급등에 있다

좌익군정체제 좌익게릴라단체를 제거하는 것이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정책이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콜롬비아 대통령은 카노 사살 후 TV연설에서 “카노의 죽음은 FARC 역사상 가장 심각한 타격”이라며 “FARC가 해산하지 않으면 조직원들은 감옥에 가거나 무덤 신세를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 모습)

 

콜롬비아 내전

콜롬비아에서는 한해 약 2만5천명이 살해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납치사건의 절반 가량인 약 3천건이 매해 콜롬비아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도인 보고타를 비롯한 국가 전역에서 거의 매일 폭탄 테러와 소규모 총격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약 150만명의 난민이 존재한다. 또한, 미국에 공급되는 코카인의 80%, 헤로인의 90%가 콜롬비아에서 재배되어 밀반입 되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좌익반군 단체와의 내전으로 현재 전 국토의 절반에 대해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여기에 무정부상태와 다름없는 지방에서 주민들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구성한 민병대와 좌익단체에 대항하여 결성된 우익테러단체, 남미 최대의 마약 생산지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마약조직 등이 서로 얽혀 있다. 이 국가의 상황을 지켜보면 어떻게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극도의 혼란을 40년 가까이 지속해 왔다.

콜롬비안 내전은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대립, 빈부격차, 불평 등에 기인하여 우익을 표방한 정부 및 극우 단체와 이에 대항하는 좌익게릴라 단체간의 내전이다.
주요 게릴라 단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1964년 결성된 민족해방군(ELN), 1966년 결성된 콜롬비아 혁명군(FARC)과 1973년 결성된 자생적 사회주의 M-19 등이다다. 이들 단체는 1970년대 중반부터 대정부 테러를 행하였고 1980년대 더욱 활발히 활동하다. 그러나,1982년 우익 바텐쿠 대통령 취임 후 1989년, M-19은 정부와 최초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990년 제도권으로 진입하였다.
1990년대 FARC, ELN의 대정부 공세는 한층 강화되고 이에 대항하는 민병대 조직도 활성화되어서, 1997년 FARC의 공세가 강화되어 군기지를 점령하였고 1998년에는 30년 무장투쟁사상 가장 강력한 공세를 펼쳐 정부군의 정예 반테러 부대를 초토화시켰다.
특히, 반군은 마약조직과 연계하여 자금을 지원받아 세력을 증강시키고 있고 이에 대항하여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마약조직퇴치 자금을 원조받아 반군 및 마약조직 소탕에 전념하였다. 수도 보고타를 비롯한 거의 전국토에서 2000년 12월 현재까지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교전이 지속되고 납치를 비롯한 강력 범죄도 성행하고 있다.

내전의 피해자만도 78-89:10만 사상, 80-92:1.1만 사망, 7300명(91-92)사망, 난민 100만(98), 98년 2216명 99년 2945명 납치, 89-99 한해 평균 26000명 사망, 난민 80만(99)명이다.

이 콜럼비아 내전에는 미국과 팜나마 세력이 개입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미국측은 콜럼비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파나마는 반군세력을 지원한다.

다음은 파나마내전의 주요일지.
'64 ELN 결성
'66 FARC 결성
'73 M-19 결성
'89.11 좌익 게릴라 단체(M-19)와의 최초 평화협정 체결
'90 대선 이후 헌법개정 과정에서 양대 반군과의 평화협상 결렬;
'91M-19 제도권 진입(총선 참여)
'96.10 우익 민병대 조직인 콜로비아 자위대(AUC) 결성
'97.7 FARC, ELN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전군 1급 비상령 발령
'97.9 FARC 평화협상 거부
'98.3 미국 남부 작전사령관, 콜롬비아군은 반군과 마약조직을 격퇴시킬 능력이 없다고 증언
'98.8 콜롬비아 파스트라나 대통령 취임 직전, 게릴라 조직 46차례 공세를 통해 110명의 정부군과 경찰 생포
'99.7 콜롬비아 정부-FARC 전투로 350여명 사망
'99.8 우익게릴라 AUC 습격으로 동서부지역에서 50명 사망
2000.1 콜롬비아 정부-FARC, 대화 재게
3.5 콜롬비아 정부군-FARC-AUC 충돌로 30여명 사망
7.19 정부군-FARC간에 일주일간 지속된 교전으로 반군 130명 사망
11.23 파나마, 콜롬비아 국경지역에 병력 증파. 콜롬비아 반군은 파나마 지역에 거점을 확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