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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대통령외 96명 비행기 추락 사망 본문

유럽연합(EU)

폴란드 대통령외 96명 비행기 추락 사망

CIA bear 허관(許灌) 2010. 4. 11. 10:53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폴란드 정부의 고위급 지도자 여러 명이 10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러시아 관리들은 사고의 비행기가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에 접근하던 중 나무꼭대기에 충돌한 후 곧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비행기는 당시 짙은 안개를 뚫고 비행 중이었으며, 사고로 비행기에 탑승한 97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88명은 폴란드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폴란드의 고위급 민간 지도자들과 군 지도자들입니다.  폴란드 정부는 사고 비행기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와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 외교차관, 중앙은행 총재, 그리고 의회부의장과 다수의 의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고 확인했습니다.

폴란드 정부 대표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 비밀경찰이 서부 스콜렌스크 인근의 삼림 지역에서 폴란드인 22천명을 살해한 사건인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폴란드의 도널드 터스크 총리는 이번 사고를 비극이라고 말하고, 사고의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관리들은 조종사의 실수가 원인이라고 시사했습니다.

러시아 공군은 비행기 조종사들이 러시아 항공 교통 관제원들로 부터 짙은 안개 때문에 착륙하지 말라는 여러 번의 지시를 무시했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대통령 사망에 애도 물결 이어져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가 러시아 방문 중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폴란드는 1주일 동안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으며,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은 잇따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라디오 방송은 10일,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가 러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사실을 전했습니다. 사고 비행기에는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 외에도 폴란드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고위 장성들과 외무차관, 중앙은행 총재 등 모두 97명이 타고 있었으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를 포함한 폴란드 대표단은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던 중이었습니다. 카틴 숲 학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의 비밀경찰이 러시아 서부 스콜렌스크 인근의 삼림 지역에서 폴란드 인 2만2천 명을 학살하고 암매장한 사건입니다.

알렉산더 콰스니예브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고는 카틴 학살 사건 이후, 폴란드 최대의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콰스니예브스키 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사람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날 비행기 사고로 숨진 사람들은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콰스니예브스키 전 대통령은 카틴 대학살로 폴란드 인 수만 명이 살해당한 지 70년 만에 폴란드 주요 인사들이 사망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카친스키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 역시, 카친스키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폴란드의 초대 직선 대통령을 지낸 바웬사 전 대통령은 두 사람 사이에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사고는 국가에 크나 큰 손실이며 극복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하원의장이 그 직무를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새 대통령 선거는 헌법에 따라 6월 20일 이전에 실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미국의 바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은 잇따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고는 폴란드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세계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에게 깊은 조의를 나타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 역시 10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에게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폴란드 자유화와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카친스키 대통령의 열정과 폴란드 발전에 기여한 많은 업적들은 폴란드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역시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 총리를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세르게이 쇼이구 비상대책부 장관을 사고 현장에 급파하는 등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비행기 추락사고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러시아 당국은 조종사 실수로 인한 인재로 보고 있습니다.

 

 

 

 

 

 

 

 

 

 

 

*카틴 숲의 학살(폴란드어: Zbrodnia katyńska, 러시아어: Катынский расстрел)은 1940년 폴란드 동부 카틴 숲에서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가 폴란드군 장교,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 성직자 등 2만2천여 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다.

구 소련의 폴란드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집단을 조기에 제거한 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졌다고 믿어지고 있으며, 이 사건의 조사를 둘러싸고 러시아폴란드 사이에는 외교 마찰을 겪고 있다.

이 사건은 독일군이 바바로사 작전을 전개하면서 소련으로 침공해들어간 이후인 1943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때 독일군은 4100여구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소련은 오랜동안 이 사건을 독일군의 소행으로 주장했지만,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1990년 4월에 구 소련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여 독일은 오랜 누명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조사를 둘러싸고 폴란드 및 러시아 간에 외교 마찰만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시간에 구 소련군이 개입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나, 국가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 군법원은 2005년 1월 11일에 이 사건이 유엔이 규정한 집단 인종학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했고 폴란드 국가 기념연구소(IPN)의 레온 키에레스 소장은 러시아 군법원의 결정에 "놀랄 일도 아니며 러시아는 해당 범죄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카틴 사건 관련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는 중입니다

 

 

 러시아 남부 스몰렌스크에 자리한 `카틴 숲'과 폴란드와의 악연은 계속 되는 것인가.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주요 관리들이 카틴 숲을 방문하려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카틴 숲 사건'이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됐다.
`카틴 숲 사건'은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대해 가진 원한의 상징으로 양국은 이 사건이 대량학살인지 여부를 두고 수십 년 간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카틴 숲 사건이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0년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고 폴란드로 쳐들어간 러시아(옛 소련)의 비밀경찰이 폴란드인 장교와 교수, 의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 2만 2천 명을 카틴 지역에서 처형한 것을 말한다.

   지난 2004년 러시아는 카틴 숲 사건과 관련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폴란드에 제공하겠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량학살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일컫는 것이지 카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대량 학살이 인류에 반한 범죄인 만큼 기소하는데 시효가 있을 수 없으며 살해 주동자를 색출해 법정에 세우겠다며 국가 기념 연구소(IPN)에서 진상 조사를 벌였다.

   카틴 사건은 발생 당시에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3년이 지난 1943년 독일 나치가 카틴 지역에서 4천100구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카틴 사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도 폴란드가 공산 소련 치하로 들어감에 따라 40여 년 간 폴란드와 소련에서는 카틴 사건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지난 1990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카틴 사건에 대한 소련군의 개입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러시아 당국은 카틴 사건과 관련해 보관 중인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 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오히려 소비에트의 명맥을 잇는 러시아 공산당은 카틴 숲 학살에 대한 소련군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의회 조사단을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산당은 카틴 숲 학살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가 국가의 지정학적 이익과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폴란드가 1920년 소련을 침공하고서 6만 명의 러시아 전쟁포로가 폴란드 감옥에서 숨진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역공격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카틴 사건이 먼저 해결돼야 함을 강조해왔다.

   특히 이번 사고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화해 모색을 위해 지난 7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식에 초청한 지 3일 만에 발생한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투스크 총리는 푸틴 총리가 카틴 숲 희생자를 함께 추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푸틴 총리는 러시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해온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행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 숲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날 개별적으로 카틴 숲을 찾으려다 변을 당하고 말았다.

   현재로선 단순 사고인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양국 관계와 특히 카친스키 대통령과 러시아와의 반목 때문이다.

 

 

레흐 알렉산데르 카친스키(폴란드어: Lech Aleksander Kaczyński, 1949년 6월 18일 ~ )는 폴란드의 정치인이다. 수도 바르샤바의 시장을 지냈으며, 2005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그 해 12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법과 정의당 의장을 맡고 있는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그의 일란성 쌍둥이 형이다. 레흐와 야로스와프 형제는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방문 중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61)은 1980년대 연대노조 운동을 이끈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정치적 여정을 시작한 인물.

   1970년대 반공산당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행로에 접어든 이후 1980년대 연대노조 파업에 참가하면서 바웬사와 인연을 맺었다.

   연대노조의 합법화를 쟁취하는 데 기여한 카친스키는 1989년 연대노조 부위원장에 오르는 동시에 하원의원에도 당선돼 정치활동을 본격화했고, 1990년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보안장관이 됐다.

   2000년 6월부터 2001년 7월까지 우파정부에서 법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강력한 반부패 단속으로 국민의 인기를 모은 카친스키는 2001년 법과 정의(PiS) 창당을 주도했으며 2002년 바르샤바 시장에 당선됐다.

   가톨릭 가치관과 전통을 중시하고 낙태와 동성애 문제 등에서 보수적 입장을 취했던 카친스키는 2005년 10월23일 실시된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시민강령(PO)의 도널드 투스크 후보를 누루고 당선됐다.

   카친스키의 당선은 12명의 후보가 출마한 폴란드 대선 1차 투표에서의 열세를 뒤집은 것이어서 화제가 됐다.

   또 쌍둥이 형제인 카친스키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전 총리가 총리직을 포기하는 우애를 보였다는 것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수 우파인 카친스키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러시아와는 임기 내내 불편한 사이였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임기 중에 폴란드의 군사현대화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자국내에 건설하는 데 동의했을 정도로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대 러시아 유화정책을 펴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다소 서먹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미국의 잡지 포린폴리시(FP)는 카친스키 대통령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그리워 할 5명의 세계 각국 지도자 가운데 1명으로 꼽았다.

   하지만 카친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는 사사건건 마찰음을 내왔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바르샤바 시장 시절인 2005년 5월 러시아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체첸 무장세력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두다예프 광장'을 조성, 러시아 내에 반폴란드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카친스키 대통령 당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외무부는 당선 축하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양국 간 정치 지도자 회담 역시 3년 가까이 열리지 못하다가 지난 2007 11월 도널드 투스크 총리가 취임한 이후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서 이듬해 2월 크렘린궁에서 푸틴 전 대통령과 투스크 총리의 회담이 열렸다.

   카친스키 대통령과 부인 마리아 카친스키 여사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번 비행기 추락사고 역시 공교롭게도 러시아와의 불편한 역사를 상징하는 `카틴 숲 학살 사건'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고 스몰렌스크에 가던 길에 발생한 것이다.

   카틴 숲 학살사건이란 제2차 대전 중이던 1940년 소련 비밀경찰(NKVD)이 스몰렌스크 인근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 2천여 명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

   카친스키 대통령은 재임 중 우리나라와는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지난 2008년 12월 부인과 함께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했고, 이 대통령도 지난해 7월 폴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3개국을 순방하면서 첫 방문지로 폴란드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