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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동거녀 김옥은 누구인가?
CIA Bear 허관(許灌) 2009. 1. 21. 16:33
◇김정일의 동거녀로 알려진 김옥 |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가 3남 김정운(25·김정훈일 가능성도 있음)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후계 문제와 함께 김정일의 '기술서기' 겸 동거인으로 알려진 김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은 항상 여론의 조명을 받게 마련이다. 더욱이 영어로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권력자의 부인은 상징성뿐만 아니라 실제 영향력도 막강하다. 권력자와 가장 지근거리서 못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권력자의 상전(?)이 될 수도 있는 게 영부인 자리다. 따라서 대가 약한 권력자는 때론 영부인에게 휘둘리기도 한다.
북한 문제 전문가 중 특히 김정일의 가계와 후계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이 김정일의 최측근 여성인 김옥과 관련한 글을 20일자로 발간한 '시사저널'에 기고하고, 언론에도 알려왔다.
정 실장은 김옥을 여러 번 접한 '김정일의 요리사' 저자 후지모토 겐지를 일본 현지에서 인터뷰 했고, 이를 토대로 기고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 기고문전문 >
북한의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2004년 부인 고영희의 사망 이후 비서였던 김옥이라는 여성과 현재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국내 언론에 처음 알려진 이후 김옥의 북한 지도부 내 위상과 역할이 이목을 끌게 되었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해 12월 초 일본을 방문해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북한에서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하면서 김옥을 여러 차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후지모토 겐지 씨를 만났다.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후지모토 씨의 김옥에 대한 증언은 지금까지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필자는 일본 < 슈칸겐타이(週刊現代) > 의 콘도 다이스케 부편집장의 도움으로 후지모토 씨를 만나 3시간 넘게 대화하면서 청취한 그의 증언을 토대로 해서, 이 글에서 김옥의 성격과 북한 지도부 내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밝히고자 한다.
필자가 최근에 후지모토 겐지 씨를 만나기로 결정한 데에는 국내 일부 언론이 제기한 김옥의 사진 관련 진위 논쟁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김옥의 얼굴이 알려진 것은 2006년 7월23일자 연합뉴스기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연합뉴스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2000년 방미시 김옥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동행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녀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대다수 언론이 연합뉴스가 공개한 사진 속의 여성을 김옥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동아' 2006년 9월호는 '권력층 탈북자들이 전하는 김정일 네 번째 부인의 진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2000년 방미시의 사진은 김옥이 아니라는 새로운 주장을 실었다. 그리고 1992년 평양에서 발간된 사진집 '우리의 지도자'에 실린 사진 속의 여성이 바로 김옥이라고 단언했다.
필자는 후지모토 씨에게 두 개의 사진을 모두 보여주고 어느 쪽이 진짜 김옥인지 물었다. 후지모토 씨는 의외로 두 여성이 모두 김옥이라고 대답했다. 두 사진 속의 인물 생김새가 다르게 보이지만 실상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두 사진은 각각 12년이 넘는 시간 간격을 두고 찍은 것이어서 김옥의 두 사진이 한눈에 보기에도 똑같은 이미지를 주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후지모토 씨는 김옥의 위상과 성향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을 지적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최고위 간부들이 김옥에 대해 '옥이 동지'라는 경칭을 쓸 정도로 그의 위상이 높아졌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동지'는 상급자에게 쓰는 말이고, 하급자나 동급자에게는 '동무'라는 호칭을 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북한 내에서 쓰는 용어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김옥에게 '김옥 동지'라고 불렀다면 그녀에게 경칭을 사용한 것이 된다. 그러나 '옥이 동지'라고 불렀다면 이는 반은 낮추고, 반은 높인 셈이다. 김옥이 기술서기로 일했기 때문에 고위 간부들보다는 분명히 하급자였지만, 김정일 옆에서 그의 일정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다른 하급자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동급자처럼 대우해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후지모토 겐지 씨는 김옥의 위상과 관련해 흥미 있는 증언을 하고 있다.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철·정운 형제가 김옥에 대해 '옥이 이모'가 아니라 그냥 '옥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왕자'들에게는 김옥이 그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하급자 정도로 비쳤음을 의미한다. 국내 언론은 김옥에 대해 '20대부터 김위원장의 업무를 보좌하면서 일찍부터 정치에 눈을 떴고,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김옥을 마치 권력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후지모토 씨는 김옥에 대해 "유령 같은 존재였다. 자기 주장도 없고, 같이 식사할 때 김정일이 의견을 물으면 그때 의견을 표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말 없이 조용히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옷도 소박하게 입었다"라고 필자에게 증언했다.
후지모토 씨는 김옥에 대해 김정일의 가족과 같은 존재라고 증언했다. 각종 파티 때 김옥은 고영희 옆에 앉았고, 고영희가 없을 때에는 고영희 자리에 앉았다고 말했다. 후지모토 씨는 고영희와 김옥이 자매 사이처럼 관계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김옥이 이처럼 김정일 가족의 일원처럼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가 정치적 야심이 없고, 소박하며 헌신적이기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만약 일부 주장처럼 그녀가 '대단한 미인'이고 세련된 여성이며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라면 고영희가 그녀를 자기 옆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김옥의 주된 업무는 다른 비서실 사람들과 함께 김정일의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의 항상 김정일을 수행했고, 김정일의 관저 밖 아파트 13층에 살면서 수시로 관저를 출입했다. 기술서기로서 김정일의 일정과 건강을 옆에서 챙기던 "애교 있고, 성격이 착하며, 똑똑한 여성"(후지모토 씨의 표현)인 김옥은 고영희의 사망으로 생긴 빈자리까지 메우게 되었다. 김옥은 2006년 1월 김정일의 방중시 '국방위원회 과장'자격으로 동행하면서 그의 곁에서 중요한 내용을 빠짐없이 메모하는 등 세밀하게 보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김옥이 김정일의 부인 역할을 하면서 '기술서기'로서의 역할도 계속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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