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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원 최문석 이사장 "행운이 함께하는 한 해"
CIA Bear 허관(許灌) 2009. 1. 7. 22:11보내주신 關心과 激勵에 깊은 感謝를 드립니다 希望찬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健康하시고 幸運이 함께하는 한 해 되시기를 祈願합니다 南冥學硏究院 이사장 최문석 拜上
*南冥 조식선생
조식(曺植, 1501년 ~ 1572년)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1.생애
1501년 연산군 7년 경상도 삼사현 토골에서 승문원 판교 조언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였지만, 과거에는 1,2번 응시하고 이후로 응시하지 않았다. 1527년 중종 22년 부친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였고, 1531년 생계가 어려워지자 처가인 김해의 탄동으로 찾아가 산해정을 짓고 제자교육에 힘썼다. 1539년 38세에 헌릉참봉에 임명되었지만, 벼슬을 고사하였고, 1544년 관찰사의 면담도 거절하였다. 1549년 명종 4년 전생서주부에 특진되었으나 고사하였고, 집 근처의 계복당과 뇌룡사를 지어 강학에 전념하였다. 1556년 종부시주부로 다시 부름을 받았지만, 역시 고사하였고 1544년 벼슬길에 나가라는 이황의 권고도 거절하였다.
1561년 지리산의 덕천동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독특한 학문의 체계를 이룩하였다.
1567년 5월 명종의 부름을 받고 찾아가 치국의 도리를 건의하고 돌아왔다. 만년에는 두류산에 들어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여러 차례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고사하였다.[1]
그의 제자로 김효원, 김우옹 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일반적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도 지역(오늘날의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였다. 유명한 글로는 '단성소'라고 불리는 '을묘사직소'가 있다. 선조 때 대사간,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2.저서
- 《남명집》
- 《남명학기》
- 《파한잡기》
- 《남명가》
- 《권선지로가》
3.배향
산청군 덕천서원(德山書院)에 배향하였다. 처음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위패만 봉안했다가 최 수우당이 사절하자 수우당(守愚堂) 최선생을 종사 했다. 그러다가 10년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병화로 소실 되자 중건(重建)했으며 광해군 원년 1609년에 사액(賜額) 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숭덕사(崇德祠), 경의당(敬義堂), 동무(東무), 시정문(時靜門), 세심정(洗心亭)이 있는데 수년전 국가보조로 담장과 홍전문(紅箭門), 서무, 관리인 막사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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