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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대통령과 올메르트 총리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 방문 사진 본문
부시 미국 대통령과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의 마사다(Masada)요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진
*마사다 (이스라엘 고대요새) [Masada, 호르보트메자다]
이스라엘 남동부에 있는 고대의 산상 요새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인들이 로마군에게 마지막으로 항전했던 곳이다.
사해(死海) 남동해안 부근에 있는 거대한 메사(mesa:꼭대기는 평평하고 주위는 벼랑인 지형) 맨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배처럼 생긴 이 산은 높이가 사해 해면으로부터 434m이고, 정상의 면적은 7만㎡ 가량 된다. 어떤 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제1성전(솔로몬 성전, BC 900경) 때부터라고 하지만, 이곳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대 헤로데 대왕(BC 37~4 재위)의 궁전과 요새들 그리고 AD 72~73년에 유대인들이 로마군의 공격에 맞서 저항한 사건 때문이다.
맨 처음 이곳을 요새로 만든 사람은 하스모니아 왕조의 알렉산더 얀나이우스(BC 103~76 재위)이지만, 그후 마사다를 건설한 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헤로데였다. 그가 남긴 건축물들 가운데는 화려한 궁전 2채(1채는 3층건물), 두터운 성곽, 약 75만ℓ나 되는 물을 저장하는 물 탱크들에 연결된 수로(水路)들이 있다. 이곳은 BC 4년 헤로데가 죽은 뒤 로마군이 차지했으나, AD 66년 로마의 지배를 완강히 반대하던 유대교 분파 '열심당'(Zealots:혁명당이라고도 함)이 기습공격으로 점거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도 무너진(AD 70) 뒤, 팔레스타인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대인 자치집단인 마사다 수비대는 항복을 거부하여 로마군 제10군단(일명 Fretensis)에게 포위당했다.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1,000명도 채 못되는 수비대는 1만 5,000명이 넘는 로마군을 맞아 거의 2년을 버텼으나, 로마군은 요새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만들어 마침내 수비대의 나무방벽들을 불태우고 요새를 함락했다. '열심당원'들은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요새에 들어간 로마 군인들은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가 이끄는 수비대원들이 이미 자살해버린 사실을 발견하고(AD 73. 4. 15), 수로에 숨어 살아남은 부녀자와 어린이 7명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마사다는 2세기에 유대인들이 잠시 탈환한 일이 있고 5~6세기에는 비잔틴 교회당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그뒤 십자군들이 잠시 차지한 시기를 제외하면 20세기까지 방치되어 아랍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앗사바'(저주받은 곳)라고 했다.
1955~56년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이 유적지 전체를 조사했고, 1963~65년에는 이가엘 야딘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정상 전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을 벌였다. 이 작업으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마사다 역사에 관한 유일한 세부자료였던 로마-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들이 아주 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왕궁, 창고, 방어 시설물, 로마군 막사, 공격 시설물 등 그가 묘사해놓은 내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곳에서 발굴한 회당과 의식용(儀式用) 목욕통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초기의 건조물이다. 많은 관심을 끈 발굴물들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 사람 이름이 새겨진 질그릇 조각들로, 마지막 남은 수비대원들이 먼저 죽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 마련한 제비뽑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마사다는 유대민족의 용기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청년단체들은 이 가파른 산을 오르는 연례행사를 갖는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어 이스라엘 국내 항공사 아르키아가 마사다에서 가까운 사해평원의 작은 공항까지 정기운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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