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중국은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장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그 금메달리스트가 바로 허해봉(許海峰 Xu Haifeng)선수이다.
그때, 싸마란치위원장은 친히 사격경기장을 찾아 허해봉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며 격동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가사이클펜싱센터에서 부주임으로 있는 허해봉선수에게 얼마전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왔고, 허해봉은 기꺼이 인터뷰를 접수했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누구에게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올림픽으로 생각된다. 당시 27살난 허해봉은 566점을 성공해내며, 사격종목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처음으로 중국팀이 단체로 참가했던 1984년 올림픽, 허해봉은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사격팀에 입선된지 2년밖에 안되는 어린 선수였다며, 23년의 기나긴 세월을 회억했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허해봉은 1984년 4월에 열렸던 테스트경기에서 우승컵을 따냈던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인기도 없었던 선수였다고 한다.
그때, 허해봉선수보다 더 주목을 받아온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왕의부(王義夫 Wang Yifu)이다. 지금보면 사람들이 왕의부선수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자신이 별다른 압력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실력발휘를 해낼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며 허해봉선수는 말하고 있다. 허해봉선수가 성공해낸 566점의 성적은 오늘날까지도 우승컵을 받아안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점수로 주목받고 있다.
사격종목의 금메달 리스트---허해봉의 시력이 0.5밖에 되지 않는다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고중을 졸업하고나서 안휘성에서 오랜 시간동안 화학비료와 접촉한 탓에 허해봉의 시력은 급속히 근시로 변해갔다. 국가사격팀에 입선 될 때의 신검결과에서 시력은 0.5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가사격팀에서 제정한 시력표준은 1.0이였으며, 하는수없이 허해봉은 시력표를 외워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 시력으로 표적을 겨냥할 수 있었냐 하는 기자의 물음에 허해봉은 자신의 시력으로도 가능하다는 원리를 설명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1m의 거리와 10m의 초점거리가 서로 부동하다. 때문에 1m짜리 총의 가늠쇠와 10m에 위치한 표적을 동시에 똑똑히 분간하기는 어려운바, 한가지 위치만 집중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시력이 낮은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1m의 거리까지만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별 문제 없이 표적을 명중할 수 있다고 한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에 이어 허해봉은 여러차례나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 대형국제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전국10대운동원 리스트에도 포함되었으며, "새중국스포츠 50대 별"가운데 하나로 낙점되는 영예도 지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허해봉감독은 4개의 금메달, 2개의 은매달과 3개의 동메달을 따낸 우수한 성적으로 자신의 사격생애에 완벽함을 더했다.
운동원으로부터 감독, 그리고 국가사격팀 코치로 발탁되기까지 허해봉선수가 걸어온 날들 가운데서 코치로 있던 시기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밝히고 있다.
최선을 다한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허해봉, 자신에게서 가장 큰 웃점을 자신심으로 꼽았다. 운동선수로 있던 시기에도 그랬지만 감독, 코치로 있는 날에도 여전히 자신심을 최고로 간주한 허해봉선수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사격팀은 더 휘황한 역사를 창조할 것이라며 오늘도 허해봉선수는 자신감에 넘친 삶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