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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알(I=intelligence)센타:사할린과 쿠릴열도 북방 4섬 그리고 러.일 북방영토 문제 개요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동아시아 알(I=intelligence)센타:사할린과 쿠릴열도 북방 4섬 그리고 러.일 북방영토 문제 개요

CIA Bear 허관(許灌) 2006. 8. 8. 16:28
1.사할린(Sakhalin)
사할린은 러시아연방 동부 하바로프스크 지방의 한 주(州)를 이루는 섬이다
면적은 쿠릴열도와 그 밖의 섬 포함 8만 7100평방 km이고 인구(쿠릴열도 포함) 64만 8000명이고 행정중심지는 유주노사할린스크이다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였으며 러시아연방 본토와는 타타르해협과 나비 7.3km의 네벨스코고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고 일본과는 라페루즈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ㄱ.위치
하바로프스크 지방의 한 주를 이루는 섬(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였으며 러시아연방 본토와는 타타르해협과 나비 7.3km의 네벨스코고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고 일본과는 라페루즈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ㄴ.면적(쿠릴열도와 그 밖의 섬 포함)
8만 7,100평방 km(87,100평방 km)
ㄷ.인구(쿠릴열도 포함)
64만 8,000명(2000년)
ㄹ.행정중심지
유주노사할린스크
ㅁ.종족구성
러시아인(80%), 우크라이나인(6%), 한국인(5%), 벨로루시인, 모르도바인 및 아이누. 길랴크. 오로촌족등 소수민족등
(1)자연
사할린 북부는 습지와 저지대가 많지만 남부는 두 줄기 산맥이 나란히 남북으로 뻗은 (최고점 1,609m) 산악지대이다 또한 중부 동쪽의 테르페니야곶과 남단부 동쪽의 아니바곶, 남단부 서쪽의 크릴리온곶은 모두 남쪽을 행해 돌출해 있다
딸려 있는 섬들은 적은 편인데 테르페니야곶 앞바다의 튤레니섬과 크릴리온곶 앞바다의 모네론섬등이 있다 월평균 기온은 북부에서는 1월에 -23도, 7월에는 15도이며 남부에서는 1월 -9도이고 7월에는 17도이다 습도가 높고 여름에는 안개끼는 날이 많다
동해안은 반년동안 유빙(流氷)으로 폐쇄되며 서해안은 11월부터 3월까지 결빙된다
(2)역사
사할린 남부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많이 발굴되고 있는데 정주(定住)의 역사는 BC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할린을 맨 처음 지배했던 나라는 중국으로, 원(元)나라 때는 이곳에 경비대를 상주시켰으며 명(明), 청(淸)나라 때에도 관할기구를 설치하였다
원주민들은 이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모피를 중국상품과 교환하였고 이것을 일본인과의 교역에 사용하였다
러시아는 청나라 땅인 극동과 사할린을 강제로 점령했고 그 후 1855년 러일통상수호조약에 의거한 국경선, 1878년의 사할린 치사마교환조약에 의거한 국경선등으로 사할린은 러시아 땅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1905년 포츠머스조약에 의거한 국경선에서는 남부사할린을 일본정부 땅으로 인정되었다 사할린 남부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영토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옛 땅과 일본 북방 4섬을 강제로 빼앗았다
(3)산업
수산업이 활발하여 청어, 연어, 송어,대구, 소라게, 명태등의 어획량이 많다
또한 구릉과 산지에는 가문비나무등의 침엽수가 많고 특히 남부의 여러 도시에는 펄프공업이 발달하였다 북쪽 기슭의 오하에서는 석유. 천연가스가 산출되었는데 이것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네벨스코고해협을 건너 아무르강 연안의 콤소몰스크로 보내지고 북쪽 끝의 모스칼보에서 배로도 운반된다(사할린이 중동의 쿠웨이트로 부르지고 있다 그 만큼 사할린지역에서 석유. 천연가스 생산이 많다는 뜻이다)
우글레고르스크에서는 석탄도 채굴된다
산악성의 지형과 추운 기후로 농업은 낙후되어 있고 축산을 위주로 하며, 티미포로나이저지(低地)와 남부지방 평야지대에서는 호밀. 밀. 감자등이 지배된다 남부지방은 유주노사할린스크 외에 홀름스크. 코르사코프. 네벨스크 등의 도시가 발달하였다
서부에는 탄광업과 임업이 활발한 우글레고르스크와 사할린의 옛 주도(主島)였던 알렉산드로프스크사할린스키가 있으며 동부에는 임업이 발달한 포로나이스크, 북부에는 석유와 천연가스유전이 있는 오하등의 도시가 있으며 각각 2만-4만명의 인구가 있다
(4)사할린의 한국인
사할린 거주 한국인은 현재 약 4만명으로 사할린 전체 인구의 10%정도이다
사할린 남부는 1905-1945년까지 일본 영토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정부에 의해 이주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지배하에 있게 된 사할린에는 당시 조사로 4만 3000명명의 한국인과 약 30만명의 일본인이 있었는데 미-소인양협정(引揚協定)과 일소(日蘇)공동선언에 의해 일본인은 전원 소환됐으나 한국인은 방치되었다
여기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최대 희망은 전쟁 중에도 고향으로의 귀국과 가족 상봉이었지만 장기간에 걸쳐 불가능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정치적 변화(1987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서울올림픽(1988년), 한소국교수립(1990) 또한 소련의 붕괴등 정세의 변화는 사할린 교포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였다 한국에는 사할린 교포를 돕기 위한 이산가족회가 있고 일본에는 일본인 부인의 동반가족으로서 일본에 귀환한 한국인들의 모임과 그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있다
3국의 협력에 의해 1986년-1990년에는 약 1000명이 일본에 초대되어 한국인 가족과의 재회가 실현되었다 1990년 이후 한국. 일본 두 적십자사의 협조하에 한국-사할린간에 가족상봉을 위한 전세 비행기가 월 1회 취항하고 있다
1990년-2000년의 10년간 약 1만 2400명의 고향방문이 실현됐고 약 1500명이 한국에 영구귀국했다 1999년 3월 인천시에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요양원이 건설되고 2000년 2월에는 안산기에 아파트 8동, 500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고향의 마을>이 완성되어 약 1000명의 영주 귀국자들이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2.쿠릴열도
(1)쿠릴열도(Kuril'skie Ostrova)
쿠릴열도는 러시아연방 동부 사할린주(州) 동쪽에 있는 화산열도이다
면적 1만 5,600평방 km이고 영어와 러시아어로는 쿠릴이고 일본령이었을 때는 지시마(千島)라고 하였다
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양쪽으로 나누며 캄차카반도와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사이 1,200km에 이르고 해상에 줄지어 있다
30개 이상의 섬으로 되어 있고 파라무시르섬을 주도(主島) 하는 북부, 시무르섬을 주도(主島) 하는 중부, 구나시르섬과 이투루프섬을 주도(主島) 하는 남부로 크게 나뉜다
섬들의 대부분은 화산. 용암대지, 칼데라등이 있으며 전부 16개의 활화산이 있다
기후는 차고 습기가 많으며 여름에 안개가 많이 낀다
주요산업은 어업. 임업. 바다포유동물사냥업이고, 송어. 연어. 대구. 다시마등이 풍부하다
1854년 러.일강화조약으로 이투루프 해협을 경계로 우루프섬 이북은 러시아 영토로 되었으나 1875년 가라후토. 지시마 교환조약(樺太千島交煥條約)으로 모든 섬이 일본영토로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 후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소련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쿠나시르섬과 이투루프섬 이남을 일본영토라고 주장 이른바 북방 4도의 반환을 요구해 왔다
러시아대통령 B.N 열친이 일본과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북방 4도 문제를 협상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께서는 북방 섬 하보마이와 시코탄등 2개 섬을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표방해오고 있다

(2)쿠릴열도 북방 4섬
쿠릴열동의 북방 4섬은 홋카이도(北海道) 네무로(根室) 반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4개 섬이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일본 쪽으로 뻗어 나온 알류션 열도와 일본의 홋카이도가 만나는 해역의 섬에 에토로후, 구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를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옛소련이 전후 점령한 곳으로 일본이 과거 소련, 현재는 러시아에 대해 반환을 요청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2차대전 중 카이로선언에서 <폭력 및 강요>에 의해 악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일본을 구축한다는 규정에 의거 1945년 2월 얄타협정에서 <사할린 남부와 입접한 제도를 소련에 반환한다>고 규정되면서 전쟁 후 소련령에 편입됐다
전쟁전 이곳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전후 모두 일본으로 쫓겨났다
이에 대해 일본은 홋카이도의 코앞에 있는 시코탄과 하보마이는 홋카이도에 속한다고 주장 두 곳은 돌려받고 두 곳은 소련령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 뒤 네 곳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 결렬 후 소련은 냉전시대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아예 <일본과의 사이에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일본은 매우 강력하게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영토문제를 제기해 왔다
소련붕괴 후 러시아는 영토문제의 존재마저 부인하던 자세를 버리고 영토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한 때 두 곳은 협의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
일본도 궁박에 몰리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영토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치권에서 보수세력이 강화되고 군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영토협상론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ㄱ.하보마이(齒舞)제도
ㄴ.시코탄(色丹) 섬(島)
ㄷ.구나시리(國後)섬(島)
ㄹ.에토로후(擇捉)섬(島)

(2)쿠릴열도의 군사적 가치
쿠릴열도는 일본과 사할린 그리고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적 교통완충지대이다
대륙 극동지역에서 일본 열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사할린과 쿠릴열도 북방 4섬을 점령해야 하고 일본이 극동과 만주지역 그리고 알래스카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쿠릴열도 북방 4섬과 사할린을 점령해야 한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중국과 한반도 완충지대 만주와 극동지역을 누가 지배하는냐에 따라 그 지역의 지배자도 결정되어왔다
-쿠릴열도는 사할린, 극동과 만주지역 진출 군사적, 상업무역적 항구기지
-쿠릴열도는 사할린과 함께 아메리카대륙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데 전초기지
쿠릴열도와 사할린은 북태평양지역으로 알래스카나 캐나다 북미등을 군사적이나 상업 무역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진주만기습(眞珠灣奇襲) 총지휘부 군사기지
진주만기습은 1941년 12월 7일 일본해군 기동부대가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에 있는 미국 태평양함대기지를 기습공격한 사건이다
이때 일본은 교섭을 중단한다는 최후통첩을 미국에 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것은 일본의 속임수 공격이었다
미국의회는 그날 한 표를 제외한 만장일치로 대일선전포고를 가결하였다
일본은 1941년 초부터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 이 기습계획을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연합함대 사령관 지휘로 수립하였으며 1941년 11월 26일 쿠릴열도 에토로후섬(擇捉島) 하토가쓰부만(單冠灣)에서 출발, 일본 해군의 항공기와 특수잠항정으로 기습공격을 하여 출항 중에 있던 항공모함을 제외한 미국 태평양 함대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일본열도의 혼란기에는 쿠릴열도는 중국의 지배세력이 지배자였고 일본열도의 통일국가 등장때는 일본정부 통치를 받아왔다 사할린, 쿠릴열도와 몽고,만주족의 친근감으로 중국내전의 유발되어왔다
한반도 북방지역은 해군력 강화와 해상권 장악으로 쿠릴열도와 사할린 상업 무역적 군사적 협력을 강화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반으로 북태평양과 알래스카. 카나다. 북미로 이어지는 무역항 개척에도 주력해야 하며 해오고 있다

3.일-소공동선언(日-蘇共同宣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과 소련의 전쟁상태 종결과 국교회복을 위한 공동선언이다
1955년 6월부터 교섭을 개시 하였으나 영토문제로 1956년 3월 중단되었다가 1956년 5월 국교회복과 동시에 발효될 일.소 어업조약을 위하여 10월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가 소련을 방문하여 영토문제 이외의 현안을 해결하고 조인 하였다
그 내용은 소련의 배상청구권 포기, 일본의 유엔 가입지지, 평화조약 체결 교섭의 계속등이며 영토문제는 평화조약 체결 후 하보마이군도(齒舞群島), 시코탄 군도(色丹群島)를 인도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일본측이 구나시리섬(國後島)과 에토로후섬(擇捉島)의 인도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평화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한편, 공동선언 후 일본은 유엔에 가입하여 국제사회에 복귀 하였다

4.북방영토문제의 개요
(1)러시아정부 입장
러시아 푸틴대통령께서는 2004년 12월 23일 기자 회견에서 평화조약 체결 후에 하보마이와 시코탄등 2섬을 반환한다고 정한 1956년의 일-소공동선언을 언급하고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4개 섬을 반환하는 것이 아니라 2섬을 반환해 최종매듭을 짓겠다는 러시아측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였다
푸틴대통령께서는 기자회견에서 먼저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평화조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양국관계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평화조약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푸틴대통령께서는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 대해 2섬 반환으로 최종적인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러시아측으로서는 2섬 반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2)일본정부 입장
일본정부는 4개섬의 귀속을 확인해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로 한 1993년의 도쿄선언에 입각해 하보마이,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등 4개 섬에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요구해왔다

-북방영토문제의 개요
http://www.kr.emb-japan.go.jp/other/other_01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