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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명숙 새총리 지명자 주요 경력 자료와 총리 자질 문제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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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63년 정신여고졸 67년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졸 77년 한신대 선교신학대학원졸 85년 이화여대 대학원졸 74년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 강사 77년 한국신학대 강사 86년 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 88년 성심여대 여성학과 강사 89∼94년 한국여성민우회장 90년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93년 同공동대표 96년 同10주년기념사업위원장 96년 同지도위원 99년 참여연대 공동대표 99년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 객원연구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제16대 총선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 2000∼2001년 16대국회의원(전국 새천년민주당) 2000년 새천년민주당 여성위원장 2001년 여성부 장관 2003∼2004년 환경부 장관 2004∼2005년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2004년 17대국회의원(고양일산甲, 열린우리당) (현) 2004년 열린우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04년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CPE) 회장(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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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새댁서 첫 女총리후보된 한명숙>(종합)
여성.환경장관 행정경험..지역구서 재선성공
옥중남편과 13년간 `깨알같은' 서신교환 순애보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결혼 6개월만에 남편을 감옥으로 빼앗겼던 운동권 새댁이 40년후 첫 여성총리 등극을 눈 앞에 두게 됐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4일 총리로 지명한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지명자는 재야 여성운동가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두차례 장관직을 지낸 재선의원이다.
한 지명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할 경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로 기록된다.
한 지명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총리지명에 대해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안겨줄뿐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 사회의 책임을 지는 축을 담당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며 "딸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양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월남한 한 지명자는 1963년 이화여대 불문과에 입학할 당시에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생을 노래하는 작가가 되고픈 문학소녀'였다.
그러나 대학 3학년때 이화여대와 서울대의 기독교 학생연합 단체 `경제복지회'에서 만난 박성준(朴聖焌) 성공회대 교수와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하면서 한 지명자의 인생은 급변한다. 남편인 박 교수가 결혼 6개월여만인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것.
한 지명자는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남편이 출감할 때까지 13년간 교도소 규정대로 일주일에 한번씩 봉함엽서 한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보냈고, 한달에 한번씩 면회를 갔다.
한 지명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린 편지만으로도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철학까지 공유할 수 있었다"며 "나는 남편의 편지를 먹고 사는 새댁이었고, 점점 더 강하고 맹렬한 투사가 돼 갔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사감이었던 한 지명자는 1970년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자 직장을 그만두고 `크리스챤 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양극화'로 진단한 강원용 목사가 주도한 단체였다.
한 지명자는 소외여성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사회간사로 활동했지만, 1979년 다른 간사들과 함께 체제 비판적인 각종 이념서적을 학습하고 반포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에는 한 지명자뿐 아니라 신인령(辛仁羚) 이화여대 총장, 이우재(李佑宰) 전 의원, 김세균(金世均) 서울대 교수도 연루됐었다.
2년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한 지명자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조직화를 목표로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1987년에는 전국 20여개 여성단체를 한데 묶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한 지명자에 대해 "부드러운 성품이면서도 내공이 있어 웬만큼 힘든 것은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총리로서의 업무수행 능력에 좋은 점수를 주는 것도 한 지명자가 걸어온 길을 감안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 지명자는 한국여성단체 연합을 통해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처벌법 등 여성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에 앞장섰다.
1993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되면서 여성운동의 대모자리를 굳힌 한 지명자는 지난 1999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 비례대표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2001년에는 여성부 초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한 지명자는 여성근로자의 출산휴가기간을 30일 연장하고, 출산휴가 급여를 신설하는 내용의 모성보호법 개정의 산파역을 맡아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한 지명자는 17대 총선 직전 장관직을 사퇴한 뒤 우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지역구(고양 일산갑)에서 한나라당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홍사덕(洪思德) 전 의원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한 지명자는 17대 국회에 등원한 직후 총리후보로 유력하게 부상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참여정부 국정 2기를 이끌고 나갈 `돌파력'이 새로운 총리 기준으로 제시되면서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한 바 있다.
한 지명자는 4.2 전당대회에 출마해 실용주의를 주장한 반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공동발의하고, 과거사법에 대해서는 찬성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하는 등 재야성향을 곳곳에서 드러내기도 했다.
당내 양대계파를 이끄는 정동영(鄭東泳)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을 비롯해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柳時敏) 복지부장관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만큼 부드럽고 세밀한 리더십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자기 색깔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남편 박성준(65) 교수와의 사이에 1남.
▲평양(62)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 석사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16대.17대 의원 ▲여성부장관 ▲환경부장관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koman@yna.co.kr
(끝
할아버지마저 사망하고 세상에 동생과 단 둘이 남은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급사로 일하면서 학교를 마쳤다. 그 시절 소원은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어보는것’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196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고, ‘경제복지회’라는 동아리를만들어 이끌었다. 부인 한 장관과 김근태 민주당 의원 등이 동아리 후배들이다.
그는 1968년 신영복씨 등과 함께 이른바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다.
감옥 안에서도 당당함을 잃지않았던 그는 198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석방됐다.
해방후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최장기수였다.
출소 뒤 한국신학대를 졸업하고 고 안병무 박사가 설립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학술부장으로 일하며 그 안에 한백교회를 설립해 권위주의 없는 교회공동체를일구었다.
1994년 드디어 여권이 발급되자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 릿쿄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따고, 다시 미국으로 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와 펜실베이니아 퀘이커 공동체‘펜들힐’에서 3년 간 ‘평화’를 화두로 공부하고 수도했다. 그는 2001년봄학기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일본 릿쿄오 대학 신학 박사
'비폭력 평화의물결' 상임공동대표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
'움직이는 학교' 대표
일본 동경 루터런 학원대학 강사
현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
1968년 발표된 통일혁명당의 대규모 대남 간첩단 사건이다
북한 김일성정부는 4.19혁명이 일어나자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남 평화공존과 연합전선 구축 공세를 강화하게 됐다 그때 남파 간첩 김송무를 남파시켜 1964년 3월 통일혁명당을 결성했으나 1968년 7월 통일혁명당과 청맥 잡지등이 체포되거나 검거됨에 따라 조직의 와해 되었다
김종태(金鍾泰)를 정점으로 이문규(李文奎, 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 최영도(통일혁명당 전라남도 위원회 위원장), 정태묵,윤광수등이 활동한 통일혁명당(약칭:통혁당)은 북한 노동당의 재남(在南) 지하당(地下黨) 조직으로 1964년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당시 박정희 정권 아래서 억눌린 변혁적 사회운동을 잠재력을 가진 혁신적 지식인, 학생, 청년등과 전(前) 남로당 당원을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에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 정부전복을 결행할 것을 기도하였으나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활동이 드러남으로써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158명이 검거되었으며 문화인. 종교인. 학생등이 많이 포함되어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이관학. 송승환등 5명이 사형이 선고되고 신영복교수등 무기징역 4명 등 관련 피고인 30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이들은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산하에 김질락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전선과 이문규가 중심이 된 조국해방전선을 두었으며 전라남북도, 부산. 경상북도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또한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기관지인 <청맥>을 발간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통일혁명당(통혁당)의 이념. 조직활동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른데 북한의 지령을 받은 단체로 보기도 하고 독자적인 혁명세력으로서 6.25 한국전쟁 이후 남한 내에서 전위조직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주체형 김일성주의 정당 시도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혁신 정치세력의 입지를 좁히고 남한 정치사회의 보수화를 초래하였다
통일혁명당은 1971년 재건을 기도하였으나 또 검거되어 실패하였다
-전위당 문헌 해설(한민전 구국전선 통일여명 편집국 자료)
통일혁명당 선언과 통일혁명당 강령(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 1969년 8월 서울)
http://ndfsk.dyndns.org/kuguk8/ku22/ic_030202.htm
-열린우리당 한명숙의원 남편인 박성준(현 상공회대 교수)씨는 지난 1968년 8월 24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북한 노동당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산하조직인 경제복지회 주동자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통일혁명당 경북지역 조직원 권양섭
http://ugh.or.kr/ja/jangkisu1.html
1972 년 2월 경북지역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권양섭은 22년동안 복역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1997년 3월 18일 사망
-1968년 2월 15일(조총련 자료)
남조선통일혁명당 전라남도 위원회 위원장 고(故) 최영도씨를 추도하는 재일조선인의 모임 진행 그리고 남조선통일혁명당의 김종태를 비롯한 사형수(애국자)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는 재일일본 조선인 중앙대회
-1969년 7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가칭 통일혁명당(통혁당) 간부 김종태에게 <영웅칭호> 수여
-1969년 11월 25일 통일혁명당 공판을 규탄하는 평양시 집회 개최
한 지명자와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양극화로 진단한 강원용(姜元龍) 목사가 주도한 단체였다. 이 단체는 교육을 통한 사회적 갈등 중재자 육성을 목표로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종교 등 다섯개 집단에 대해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한 지명자는 당시 소외여성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부분 간사로 활동했다. 신인령(辛仁羚) 이화여대 총장, 이우재(李佑宰) 전 의원, 김세균(金世均) 서울대 교수, 장상환(蔣尙煥) 경상대 교수, 황한식(黃漢植) 부산대 교수, 정창렬(鄭昌烈) 한양대 명예교수도 이 단체의 간사였다.
이들의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은 노조를 결성하는 등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상당히 이목을 끄는 활동을 벌이자 중앙정보부도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주시하게 된다.
중앙정보부는 결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간사들을 잡아들이고, 이들이 지하용공서클을 구성해 수강생들에게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실현을 획책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산업사회교육 이수생이었던 민주노동당 최순영(崔順永) 의원도 당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었다.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가혹한 고문을 통해 조작한 증거를 토대로 이들을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법원도 이들의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한 지명자는 지난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koman@yna.co.kr
(끝)
한명숙의원은 고양시를 위해 행정수도 반대에 앞장서기 바람
문동대
2004-06-22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 한명숙씨는 고양시 현안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본인의 출세에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고양시 문제 중 경의선, 제2자유로 등 국직한 현안에는 나몰라라 하고 오로지 고양시를 물먹이는 행정수도 이전에만 관심이 있다. 더구나 신행정수도 대책위 위원장직까지 맡으면서 말이다. 정말로 고양시 일산갑 주민들은 고양시를 위한는 진정한 국회의원을 뽑았는지 한심할 노릇이다.
- 신문내용 일부 발췌한 사항임- (2004.6.22일자 조선일보)
열린우리당 신행정수도대책위 위원장인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지난 주말 대책위를 꾸리고 중요한 회의를 가졌다. 당·정이 소신을 갖고 추진해야 하고 국민에게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를 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 급히 임명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김 대표는 산본 신도시를 설계한 사람으로 앞으로 TV토론 등에서의 홍보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명숙 의원 “DJ 방북계획 정략적 악용말라” | ||||||||||||||||||||||||||||||||||||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의 중차대한 문제보다 지방선거가 더 중요한가?”
평소 온화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측이 공개한 4월 방북계획과 관련, 한나라당 내부에서 잇달아 제동을 걸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한명숙 의원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 참석, 김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한나라당의 행태를 ‘수구적 작태’라고 규정하면서, “그의 방북계획을 ‘정략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문제가 하필이면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이다”(박근혜 대표), “정치적 목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이려는 것 아닌가”(이재오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발언을 차례로 상기시켰다. 그리고나서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앞으로 남북대화는 선거가 없는 철만 골라서 선별적으로 열어야 한다는 것이냐. 대통령 선거, 총선, 지자체, 각종 재보궐 선거를 감안한다면 도대체 남북대화는 언제 하라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그는 이 대목에서 “남북화해의 무드만 조성되면 정략적 잣대로 남북대화를 가로 막는 한나라당의 수구적 작태는 남북 7천만 온 겨레의 통일 염원을 무시하고 정략적인 정치투쟁으로 남북대화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반통일적인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정말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 의원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팔십 노구를 이끌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정략적 계산을 덧씌워 비방하는 일은 정치적 금도를 넘어서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은 6자회담 등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그리고 지난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트랙투 외교’를 참고하더라도 초당적 입장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방북이 선거에 득표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나라당은 이전까지 자신들이 써먹어 온 북풍 등에 대한 향수를 이제 그만 접으라”며 관련 발언을 매듭지었다. 최한성 (marunnamu01@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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