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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빈손으로 가세를 일군 중국 여성 갑부 염경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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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빈손으로 가세를 일군 중국 여성 갑부 염경방

CIA Bear 허관(許灌) 2006. 2. 26. 20:44
빈손으로 가세를 일군 염경방

중경시 합천인인 염경방은 현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천만부옹(富翁)입니다. 그러나 염경방의 오늘 날의 휘황한 성과에는 남모를 피와 땀, 그리고 고난의 추억이 슴베여있습니다. 혼인실패의 타격 속에서 벗어나 재 결혼한 후 현재 염경방은 자식 5섯을 두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가세를 일군 염경방은 자식들의 자력갱생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식들과 이른바 <무상속권>협의를 체결했고 지어 음력설이 다가오면 구두닦기 노동을 하도록 자식들을 거리로 몰아냈습니다.

천만 자산을 지닌 염경방이 왜서 자녀들과 <무상속권>협의를 체결했으며 또한 왜서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하는지? 자녀들의 각도에 염경방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주위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녜, 그럼 오늘의 여성에서 여러분께 염경방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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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8살인 염경방은 중경합천시 용시진의 한 일반 농촌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가정의 빈곤으로 하여 어린 시절 염경방은 늘 배를 곯군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점차 구차해 지게 되자 염경방은 하는 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 구걸하러 다녔습니다.

10살나던 해 염경방은 아버지를 따라 사천 자영일대에서 구걸하면서 입에 풀칠했습니다. 비록 구걸과정에 뭇 사람들의 냉대의 눈길을 받아왔지만 최소한 매일 끼니를 에울수 있어 이들 부녀간은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염경방에게 뜻밖의 재난이 떨어졌습니다. 예와 마찬가지로 염경방은 아버지와 함께 철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철길을 따라 달음박질하던 염경방은 갑자기 들이닥친 기차에 치워 <물러서라>는 아버지의 웨침소리와 함께 피바다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구조하에 염경방은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다리를 저는 종신장애인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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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염경방은 더는 먼곳으로 나다닐 수없게 됐습니다. 다만 늘 집에 박혀 힘이 자라는데로 농사일만 했습니다. 18살 나던 해 염경방은 이웃마을의 고지식한 촌민과 결혼했습니다. 부부 내외는 서로 아끼면서 간거하지만 행복한 살림을 가꾸어 나갔습니다.

결혼한 뒤 염경방은 의족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합천을 떠나 중경으로 갔습니다. 중경에 도착한 후 염경방 내외는 친구네 집에서 며칠 머물렀습니다. 워낙 어려운 생활을 해온 염경방 부부인지라 의족한 뒤 이들 부부에게는 저축이라곤 한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중경의 친구가 짠지 장사를 염경방 부부에게 추천했습니다.

그때 이 친구는 중경에서 짠지 장사로 돈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하여 염경방 부부는 중경에서 짠지 장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친구로 부터 돈 70원을 빌려 일부 도구들을 사들이고 친구의 분부대로 짠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별빛이 초롱초롱할 때까지 서둘러 첫날 장사가 끝났습니다. 원가를 따져보니 첫 날장사에서 염경방 부부는 순수입이 8원이나 됐습니다. 그때 당시 8원이면 농촌의 한달 수입에 맞먹었습니다.

하여 염경방 부부는 짠지장사를 계속하기로 작심하고 매일 아침 일찍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짠지 팔이에 몰두했습니다. 매일 밤마다의 수지계산은 이들 내외가 가장 즐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염경방 부부는 중경에서 어느덧 6년간의 짠지 장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일정한 저축도 마련했습니다. 그뒤로 소고기 장사가 더욱 전망있음을 파악한 이들 부부는 중경에서 합천으로 옮겨 소고기 도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매번 소고기를 도매할 적마다 염경방 부부는 톡톡한 수입을 올렸습니다. 장사가 잘 될수록 염경방은 힘든 줄 몰랐으며 <만원호>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규모를 넓혀갔습니다. 염경방은 또 관리지식을 자습해 과학적인 관리방식으로 자신의 소고기 장사를 경영해 나갔습니다. 이에 따라 염경방의 순수입도 대폭으로 제고됐습니다. 십여년간 염경방의 피땀 어린 경영을 통해 그의 자산은 이미 천만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염경방의 혼인에 신호등이 켜졌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염경방은 1999년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 셋을 자신이 부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그토록 힘겹던 나날도 함께 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염경방은 눈앞의 사실이 믿겨 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맏딸 장민은 15살, 둘째 딸 장란영은 13살, 막내 아들은 12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자식 셋을 거느리고 장사까지 돌보자니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염경방은 장사꾼 장장춘을 알게 됐습니다. 장장춘은 이혼 후 자식 둘을 돌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년 후 염경방은 장장춘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염경방은 남편의 자식을 친 자식처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대해 염경방은 시종 매우 엄격히 요구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자식 5명에게 모두 학용품과 일용품을 사도록 매인당 100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첨가조건이 따랐습니다. 바로 물건을 사면 영수증을 갖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염경방의 뜻이라면 이렇게 되면 자식들이 돈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짬이 나면 자신의 경력으로 자립, 자강하고 절약정신을 키울 것을 자식들에게 말하군 했습니다. 2003년 3월 염경방 부부는 사천 광안에서 총 1000여만원을 투자해 비육우 사양기지를 세웠습니다. 아마 내년이면 생산가치가 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염경방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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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식솔들과 가정회의를 열고 있는 염경방)

2003년 7월 13일 저녁, 염경방은 집식솔과 함께 엄숙한 이른바 "서명"식을 가졌습니다. 바로 <무상속권>협의입니다. 협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5명 자녀가 만약 계속 공부할 경우 부모들은 반드시 전력으로 지지해야 한다.

2. 5명 자녀 중 그 어느 누구든 자동적으로 학업을 포기한다면 반드시 사회에 투입해 취업해야 한다. 16살 미만일 경우 반드시 집에서 노동에 참가해야 하고 가장들은 그어떤 경제 원조도 제공하지 않는다.

3. 자녀 취업에 가장들은 일부 제의나 지도 등을 부여할 순 있지만 그 어떤 경제원조를 제공하지 않는다.

4. 5명 자녀가 앞으로 이성 친구를 사귈 경우 반드시 사전에 먼저 가정협의서를 상대방에게 보이고 자신이 부모들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표명해야 한다. 자녀들의 혼인에 대해 부모들은 결정권이 없다.

5. 부모의 재산과 유산은 부모들만이 지배권이 있으며 그 어느 자녀도 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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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염경방이 무상속권 협의 체결에 관한 얘기를 하자 자식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속마음을 헤아린 자식들은 모두 이에 쾌히 승낙했습니다. 자녀들과 이 협의를 체결한 후 염경방은 앞으로 자녀들에 대한 재산 분배와 관련해 신경쓰지 않게 돼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자녀 5명이 모두 법정 성인 연령에 이르면 염경방은 이 협의를 공정기관에 넘겨 공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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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음력설 염경방은 자식들을 불러놓고 협의에 조인했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세배돈을 주지 않는다며 자기절로 해결하라고 말했습니다. 염경방은 법률의 범위 내라면 어떤 방법을 취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5명 자녀들은 토론을 거쳐 구두닦기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구두닦기 도구를 사들이기 위해 이들은 어머니?염경방으로부터 200원의 대부금을 내고 염경방의 음식점 옆에서 "구두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이틀간의 구두닦기를 통해 이들은 600여원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200원의 대부금을 갚고 또 지출을 제외하고 최종 이들은 매인당 23원 50전을 분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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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속권>협의를 체결한 후 자녀들의 생활습관은 커다란 개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절약할 줄 알았고 전에 비해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시에 이들의 학습성적도 상승선을 그었다고 합니다.

염경방은 자식들과 이런 협의를 체결하는 목적은 애들에게 모든 성공은 자신의 노력에 의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염경방은 자신은 이런 협의체결 방식도 자녀 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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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시 사회과학원 연구인원들은 자식들에게 인생의 분투목표를 세워주는 것이 재산 계승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염경방의 이런 방식은 몇천년간 내려온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쌍향 의뢰의 전통 패턴"을 돌파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녜, 오늘의 여성, 오늘 이 시간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가세를 일군 염경방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http://kr.chinabroadcast.cn/1/2004/09/23/1@21116.htm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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