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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 인민혁명군 창건일에 군부대 시찰 본문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중국 동북지역)에 주둔한 일본관동군이 펑톈의 중국군 주둔지를 습격하고 만주 각지를 무력으로 점령한 뒤 1932년 3월 만주국을 세운 사건을 가리킨다.
1932년 3월 1일 만주국 건국
만주국(Manchukuo, 1932~1945)은 1930년대 초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동북 지방(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강점한 뒤, 1932년 3월 1일 괴뢰 정권을 수립하여 선포한 명목상의 독립국가이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집정(후에 황제)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제의 식민지이자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생산 기지였다
1945년 8월 일본 제국이 항복해 해체되기까지 약 13년 5개월 정도 존속하였다.
만국(만주국)은 한족,만주족, 몽골족, 조선족(한민족),일족( 야마토 민족) 등 5대 민족이 연합으로 건국한 국가이다 만주국 협회(만주국 의회)는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일족(야마토 민족)의 연합정부 오족협화를 의미한다
-김일성의 생년월일은 1912년 4월 15일로 만주국의 건국 당시 나이는 19세이다.공식적으로 김일성 등장은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이다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은 1933년 9월 중국공산당이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투쟁을 체계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정규 유격대이다. 이 군대는 1930년대 중반 일제에 맞서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3월 이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확대되었다.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조선인민혁명군(朝鮮人民革命軍)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가상의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소련군 복무 시절 김일성이 스스로 작성한 문건에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5·25 교시를 계기로 창작된 군대로서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 출신의 만주파가 북한 권력을 장악하며 시작된 백두혈통 우상화 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77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삼았던 1932년 4월 25일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서 유래하였다. 즉 원래 조선인민군의 공식 창건일은 1977년까지 1948년 2월 8일이었으나, 김일성이 자신이 조직한 항일 빨치산 부대 즉 조선인민혁명군이 실제 뿌리라며 1978년에 1932년 4월 25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이 공식 군 창건일을 2018년에 1948년 2월 8일로 재변경하였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창설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은 1933년 9월 중국공산당이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투쟁을 체계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정규 유격대이다. 이 군대는 1930년대 중반 일제에 맞서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3월 이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확대되었다.
주요 내용 및 특징
배경 및 구성: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공당 계통의 유격대를 정규군 형태로 정비했다.
주요 활동: 1930년대 중반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일제와 군사 시설에 타격을 주었다.
조선인의 역할과 민생단 사건: 초기에는 조선인 대원들이 민생단 사건으로 많은 처형을 당했으나, 이후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김일성 등 조선인 대원들과의 연대가 강화되었다.
동북항일연군으로의 전환: 1935년 7차 코민테른의 반제국주의 인민통일전선 방침에 따라 1936년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되어 더 넓은 연합전선을 전개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 투쟁의 핵심 세력으로, 이후 동북항일연군의 토대가 되어 한·중 합동 항일 활동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東北抗日聯軍은 1931~32년 사이에 일본의 중국 동북지방(만주)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주도로 조직된 항일유격대와 1933~36년 전반기까지 활동한 동북인민혁명군 등을 기반으로 1936년 중반에 성립한 중국 동북지역의 항일연합부대를 말한다. 이 부대에 많은 韓人(조선인)들이 참가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중 양 민족의 연합 항일투쟁이 본격화하였다. 종래 중국학계와 정계에서는 동북항일연군이 사실상 중·한 양 민족의 연합부대였고, 김일성·최용건 등 중국 동북지역(만주) 한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중국학계 일각에서 이러한 인식과 다른 새로운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국 華東사범대학 郝江東은 최근 중국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종래의 견해를 사실과 다른 정치적 해석이라고 비판하였다. 또 중국의 유명한 중국-북한관계 전문가 沈之華는 최근 저서에서 1930년대~40년대 초 만주에서의 한인들의 활동을 ‘朝鮮族’의 활동으로 서술하여, ‘中華민족’ 형성의 前史로 간주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한편 중국 延邊학계에서도 종래 한인들의 ‘이중사명론’을 부정하는 저서가 나왔다. 이 시기 재만한인들이 중국혁명과 ‘중화민족’의 해방을 위해 공헌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는 종래 재만한인들이 ‘중국혁명’과 함께 조선(한국)독립이나 조선혁명을 위한 임무도 지녔다는 주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최근 중국학계 일각의 주장은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 만주(중국동북 지방)에서 활동한 동북항일연군과 이 부대에 참가한 한인들은 중국공산당과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항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 아래 ‘조선독립’·‘조선혁명’을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동북항일연군은 분명 한·중 양 민족의 연합부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와 한국독립운동사, 나아가 한인(한민족) 이주사(한인 Diaspora)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로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학계의 동북항일연군 연구 심화와 대량의 연구업적 산출과는 대조적으로 한국학계의 이 분야 연구 부진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추후 한국학계에서 동북항일연군과 재만한인들 관련 연구·교육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중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개편

[金日成(前左四)與東北抗日聯軍第一路軍第二方面軍指揮部指戰員攝於1939年。金日成於1932年春到安圖創建游擊隊。先後擔任汪清反日游擊大隊政委,東北人民革命軍第二軍獨立師第三團政委、第二軍第三團政委,東北抗日聯軍第二軍第三師(後改為第六師)師長、第一路軍第二方面軍指揮]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은 1930년대 중반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만주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한 연합 군사 조직이다. 1935~1936년경 기존의 항일 유격대를 확대·개편하여 조직되었으며, 다민족 부대로 구성되어 양징위 등의 지도하에 관동군과 치열하게 전투했다.
핵심 특징 및 활동
성격: 중국공산당 주도의 항일 연합 전선으로, 동북인민혁명군을 모태로 결성되었다.
시기: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며 만주 지역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구성: 중국인 외에 다수의 조선인(한인) 유격대원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주요 인물: 양징위(楊靖宇), 저우바오중(周保中), 자오상즈(趙尙志) 등이 핵심 지휘관이었으며, 김일성 등 한인 지도자들도 참여했다.
최후: 일제의 '토벌'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1940년대 초반 조직력이 약화된 후, 살아남은 인원들은 소련으로 피신하여 제88독립보병여단 등으로 재편되었다.
동북항일연군은 만주사변 이후 가장 치열하게 일제에 저항했던 무장 세력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1942년 7월 22일 제88독립보병여단(제88독립 저격여단)

제88독립 저격여단은 1942년 7월 22일에 연합군 의견서에 따라 창설하였고 1945년 10월 12일에 연합군 의견서에 따라 해체 하였다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소련으로 망명한 동북항일연군 잔존세력들을 수용하기 위해 1942년 7월 창설한 부대이며, 북한의 김일성을 비롯한 "혁명 1세대"의 모태이다.
김일성, 김책, 최용건, 안길, 최현, 강건, 류경수, 김일, 오진우, 리을설, 최광 등 만주파로 지칭되는 88여단 출신들은 훗날 당의 권력을 장악하는 북한 내 핵심세력이 된다.
부대 지휘관은 저우바오중이었다. 소련군 장교로 복무하던 당시 김일성은 '진지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계급은 '대위'였다. 부대원 중 90%는 중국인이었고, 10%는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김책과 최용건은 김일성 보다 계급이 더 높은 상관이었다.
해방 이후 소련군의 김일성 대위는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88여단 출신의 만주파는 훗날 북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북한의 지배세력이 된다.


[在南野營整訓的部分東北抗日聯軍指戰員攝於1941年。
前右金日成
一排右李英淑(第七軍戰士)、右三金貞淑(第二軍戰士)、右四黃順姬(第二軍戰士)、右五金哲鎬(第二軍戰士)。
二排右沈鳳山(第一路軍警衛旅一團團部警衛員)
三排右一沈鳳山(第一路軍警衛旅一團團部警衛員)三排右一柴世榮、右二季青。]

제88독립 저격여단 소부대 활동시기 촬영한 사진[在小部隊活動時期的合影]。
金日成,東北抗日聯軍教導旅第一營營長。
季青,東北抗日聯軍教導旅第四營政治副營長。
崔賢,曾任東北抗日聯軍第二軍第一師(後改為第四師)第一團團長、第一路軍第三方面軍第十三團團長,東北抗日聯軍教導旅第一營第一連連長。
安吉,曾任東北抗日聯軍第一路軍第三方面軍第十四團政委、第三方面軍參謀長、東北抗日聯軍教導旅第一營政治副營長。

일렬(一列):심태산(沈泰山)、최명석(崔明錫)、김경석(金京石)、서철(徐哲)、장광적(張光迪)。
두렬(二列):바슈코비츠(瓦什科維茨,와십과유자)、최춘국(崔春國)、강신태(姜信泰)、양청민(楊清海)、도우봉(陶雨峰)、주암봉(周岩峰)。
삼렬(三列):장석창(張錫昌)、유철석(劉鐵石)、범덕림(范德林)、고만유(高萬有)、교수귀(喬樹貴)、유안래(劉雁來)、진덕산(陳德山) [1945年7月的合影(1945년 7월 촬영)]

[1947年5月,王效明、彭施魯、王一知分另受有關部門委派先後赴朝鮮平壤。圖為他們與原東北抗日聯軍的朝鮮戰友在朝鮮人民軍總司令部合影留念]。
앞열(前排):김일(金一)、주위(周偉)、왕일지(王一知)、왕효명(王效明)、안길(安吉)、팽시로(彭施魯)。
가운데열(中排):이영호(李永鎬)、최광(崔光)、김광협(金光俠)、심태산(沈泰山)、최춘국(崔春國)、유창권(柳昌權)、이을설(李乙雪)。
뒷열(後排):박우섭(樸禹燮)、김려중(金麗重)、최용진(崔勇進)、강상호(姜尚鎬)、유경주(柳京珠)、오진우(吳振宇)、김창봉(金昌鳳)、오백룡(吳伯龍)、전문섭(全文燮).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선인민혁명군 창립일을 맞아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전날 조선인민군 서부지역 기계화보병사단 소속 연합부대를 시찰하고 경보병 부대의 박격포 사격 경기를 참관했다.
소식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군 장병들에게 격려와 인사를 전하면서 전군이 강력한 경쟁 방법으로 각급 부대와 각 전문 병종 부대 간의 훈련 경기를 더욱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인민혁명군
조선인민혁명군(朝鮮人民革命軍)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가상의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소련군 복무 시절 김일성이 스스로 작성한 문건에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5·25 교시를 계기로 창작된 군대로서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 출신의 만주파가 북한 권력을 장악하며 시작된 백두혈통 우상화 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77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삼았던 1932년 4월 25일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서 유래하였다. 즉 원래 조선인민군의 공식 창건일은 1977년까지 1948년 2월 8일이었으나, 김일성이 자신이 조직한 항일 빨치산 부대 즉 조선인민혁명군이 실제 뿌리라며 1978년에 1932년 4월 25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이 공식 군 창건일을 2018년에 1948년 2월 8일로 재변경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빨치산)은 북한이 1932년 4월 25일 김일성이 만주에서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항일 무장 조직으로, 북한은 이를 조선인민군의 뿌리이자 '주체적 혁명무력'으로 규정합니다. 1978년부터 4월 25일을 '건군절'로 기념해왔으며, 2018년 이후 정규군 창건일(2월 8일)과 분리하여 4.25를 혁명 전통 계승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관련 핵심 내용
창건일 및 성격: 1932년 4월 25일, 김일성이 만주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조직한 반일 유격대.
북한의 주장: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이 1930~4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1948년 2월 8일 창설된 정규군(조선인민군)의 시초로 삼고 있습니다.
날짜 변경의 역사: 1977년까지는 2월 8일을 인민군 창건일로 기념했으나, 1978년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우상화하기 위해 4월 25일로 변경했습니다. 2018년 김정은 시대에 들어 정규군 창건일은 2월 8일로 환원하되,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분리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실체에 대한 견해: 학계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자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단일화된 거대 항일 무장조직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실제 조선인민군의 모체는 소련군정 하에서 조직된 보안대와 철도경비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은 매년 4월 25일 전후로 노동신문 등을 통해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을 찬양하고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만주국 성립
만주국 성립
만주국 성립
1932년 3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만주국 지도] 1932년 2월 16일 만주국 성립이 선포되었다. 1931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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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16일 만주국 성립이 선포되었다.
1931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중국의 동북 3개성을 점령한 뒤 '동북최고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으로 1945년 일제가 2차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만 13년 6개월 동안 존속했다
만국(만주국)은 한족,만주족, 몽골족, 조선족(한민족),일족( 야마토 민족) 등 5대 민족이 연합으로 건국한 국가이다
만주국 협회(만주국 의회)는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일족(야마토 민족)의 연합정부 오족협화를 의미한다
만주국은 강덕제를 원수로 하는 국가로서,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야마토 민족의 오족협화로 이루어진 “만주인”에 의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초에 둔 국민국가를 표방했다. 그러나 실제 통치는 관동군이 주도하였다.
김일성(김성주)은 만주국 건국 이후 남만주나 동만주 지역에서 반일이나 반만주국(반만국)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의 동생 김영주는 관동군 헌병 보조원[만주군 통역 ]으로 생활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다른 성격이다
만주국은 자치를 보장된 위성국가이며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직할지역이다
만주국 협화회에 가담한 조선족 자치조직이 만주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만주국 협화회 조선족 자치협화회가 조선족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과 소련의 만주국 승인 그리고 만주국 협화회 조선족 자치협화회 등을 정리될 때 정확하게 만주지역 조선족 좌파(소련 원조 공산당)나 우파(중국 장개석정부) 항일운동을 재정리할 수 있다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반파쇼 인민전선론'이 채택되면서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여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기조가 일어나자, 당시 만주에 존재하던 공산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에 의해 '인민전선론'이 대두됐다
조국광복회 간부들은 대부분이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간부들로 채워졌으며, 군사활동뿐 아니라 국내 정치활동에도 주력, 기관지 <3·1월간>을 발간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반일 성향을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자·천도교·지주까지 참가시켰다[조국 광복회와 보천보 전투]
북한 공산주의자 김일성, 김책, 강건 등 은 만주지역에서 만주국 조선 공산당 항일 운동이 소련정부의 대일정책에 따라 움직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이 중일전쟁때 중화민국 지원국일때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활동이 대단했고 소련이 공식적으로 만주국을 승인할 시기에는 1941년 부터는 만주국 내부에서 공산당 활동이 침체되었고 협력자들이 등장했다 1944년 경부터 소련이 연합군으로 가담하여 반일투쟁을 주도할때는 만주국 내부 공산당 세력들이 반만주국 반일 투쟁 활동과 만주국 점령 군사훈련을 주도했다
만주 전략공세작전은 제1전선 구축 소련군 주도, 제2전선 구축 소련이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창설한 극동지역 공산주의자 주축으로 각 민족여단(한족,조선족, 몽골족, 만주족 등 외국인 연합군)[만주국 오족협화] 소련 제1극동전선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연합으로 추진 되었다
중국은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역, 교통, 통신을 위해서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33년 국제연맹이 리튼 보고서(Lytton Report)를 채택하여 만주가 중국의 일부임을 선언하자 일본은 연맹에서 탈퇴한다. 미국은 만주국이 건립하자 무력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 관계의 변화를 거부하는 스팀슨 독트린(Stimson Doctrine)을 선언한다.
국제 연맹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만주국은 엘살바도르(1934년 3월 3일)와 도미니카 공화국(1934년), 소비에트 연방(사실상 1935년 3월 23일, 법률상 1941년 4월 13일), 이탈리아(1937년 11월 29일), 스페인(1937년 12월 2일), 독일(1938년 5월 12일), 헝가리 (1939년 1월 9일)에 승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만주국은 일본의 동맹국 독일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하에 있던 국가인 슬로바키아(1940년 6월 1일), 프랑스(1940년 7월 12일), 루마니아(1940년 12월 1일), 불가리아(1941년 5월 10일), 핀란드(1941년 7월 18일), 덴마크(1941년 8월), 크로아티아 독립국(1941년 8월 2일)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영향하에 있던 중국 왕징웨이 정권(1940년 11월 30일), 태국(1941년 8월 5일), 필리핀도 만주국을 승인했다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 김일성(김성주)
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박헌영, 김두봉과는 다른 인물이다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이다 본래 북한은 소련 위성국으로 아직도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후손들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새세대 공산주의(사회주의, 스탈린주의자) 세대 동북항일연군 조선족 지휘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경천(김광서,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 김일성(김성주)
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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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본명 김광서)과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서로 다른 인물이나, 김일성이 김경천 장군의 항일 업적과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이른바 '김일성 가짜설'의 핵심 인물들로 얽혀 있습니다.
1. 실존 인물: 김경천 장군 (1888~1942)
경력: 일본 육군사관학교(23기)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1919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별명: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백마 탄 장군', '조선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최후: 소련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 기간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942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옥사했습니다.
2. 김일성과의 관계 및 '도용설'
이미지 도용 의혹: 학계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평양 등장 당시 내세운 '백마 탄 장군' 이미지와 항일 명성이 실제로는 김경천 장군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명 사용: 김경천 장군이 연해주에서 활동할 당시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기록이 있어, 훗날 북한의 김일성이 그 명성을 가로챘다는 설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학계의 시각: 현대 학계에서는 북한 김일성의 항일 활동 자체는 사실로 보지만, 그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등 앞선 세대 독립운동가들의 전설적인 일화들이 김일성 개인의 우상화에 활용되거나 덧씌워진 것으로 분석합니다.
3. 최근 소식
명예 회복: 김경천 장군은 공산당 가입 거부 등으로 오랫동안 잊혔으나,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후손 귀화: 2015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김경천 장군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위패 봉안: 2024년 10월, '진짜 김일성'으로 불린 김경천 장군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었습니다.
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김경천(金擎天, 1888년 6월 5일~1942년 1월 2일)은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해외로 망명하여 일제강점기에 무장 독립 운동을 벌인 독립 운동가이다. 초명은 김현충(金顯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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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 남침 인민군 지휘부 작전 라인은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전선총사령관 김책(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전선부사령관 박일우(조선의용군),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이며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조직 박헌영(인민군총정치국장), 이현상(남부군, 빨치산 부대 또는 저격여단) 등 이다[빨치산부대를 소련에서는 저격여단이나 특수부대, 공수부대로 표현하고 있다]
남침은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주도로 조선의용군과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 출신이 적극 가담했다
전선사령부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전선사령관 김책[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총참모장 강건[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라인으로 지휘체계가 작동하였다. 그리고 전선사령부 밑에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1군단과 동부전선을 공격할 2군단을 창설했다. 1군단장에는 김웅(金雄) 중장[조선의용대 중국 팔로군 출신]을, 2군단장에 김광협(金光俠) 중장[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을 임명했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 내부 제 88독립저격여단)이다 만주파(滿洲派)란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유격대 활동을 한 인물들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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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레베데프 소장(小將)
테렌티 포미치 시티코프(러시아어: Терентий Фомич Штыков, 벨라루스어: Цярэнцій Фаміч Штыкаў 차렌치 파미치 슈티카우, 1907년 2월 28일 ~ 1964년 10월 25일)는 소련의 군인이었다. 그는 연해주군관구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해방 후 북한의 소련 군정을 총지휘했다. 그의 유고 "시티코프 일기"는 해방 직후 남북한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러시아어: 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Лебедев, 1901년 ~ 1992년 5월 10일)는 소련군 장성이다.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평양의 소련군정에서 김일성 정권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제2극동전선군 (2-й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фронт)은 서구의 군집단과 같은 규모인 소련 육군의 전선군 중 하나였다. 이 군단은 만주 전략공세작전 직전에 창설되어 1945년 8월 5일 임무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해산되었다.
창설된 직후 제2극동전선군은 일본 제국의 제1방면군과 제5방면군, 제4군을 상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제2극동전선군이 상대해야 할 일본군은 만주, 사할린섬, 그리고 쿠릴 열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전선군이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을 건너 일본군의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했다. 8월 20일 전선군의 제15군이 하얼빈을 점령했으며, 이후 제2적기군이 칼로찬과 륜츠전 지역에 입성했다. 제15군은 이 사이에 산신 군을 점령했고, 제5소총군단은 볼리 지역에 입성했다. 대부분의 일본군은 8월 20일 이후 소련군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한편 8월 11일, 제16군은 남부 사할린에 공세를 가해 8월 18일까지 섬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제16군은 홀름스크 항구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하였고 코르사코프에서 공정작전과 상륙작전을 동시에 수행했다. 8월 25일 소련군은 사할린의 행정중심지인 유즈노사할린스크를 점령했다. 9월 초 일본군의 저항은 끝났지만 소련군의 침공이 지연되어 일본 본토에 위치한 홋카이도 침공 계획은 실현될 수 없었다. 한편 제101소총사단은 쿠릴 열도를 점령했다.
1945년 10월 1일, 스타프카 VGK의 지시로 전선군은 해산되어 극동군관구로 재조직되었다.
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레베데프 소장(小將)
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1947년 7월 서울의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담소하는 미소 양군 대표: 좌로부터 미군정청 사령관 하지 중장, 소련측 대표 레베데프 소장과 스티코프 중장 [사진] Ⅰ.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스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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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는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과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이다
한국전쟁 이후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이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과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은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박헌영등 미국간첩으로 제거 되었고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은 종파주의자로 제거 되었다
아직도 북한 권력층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주도 인물로 소련군 도움므로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새세대 공산주의(사회주의, 스탈린주의자) 세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광서(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한국전쟁 추진 세력 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김일성(인민군 총사령관), 최용건(방어총사령관), 김책(전선총사령관), 김일(인민군 문화부 사령관), 강건(인민군 총참모장) 모습 북한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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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남로당 총비서 박헌영은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 으로 총살형(1958년).
박헌연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정부 초대 외상, 군사위원회 위원,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등을 역임했다
박헌영의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미국간첩으로 처형됨으로서 남로당계열 내부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와해 되었다
남로당 이후 당(黨) 수준 조직으로는 1960년대 박정희 군부의 5.16 쿠데타이후 NLPR 김일성주의 노선 통일혁명당이 등장했고 1990년 1월 새세대 주체사상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민혁당)가 등장했다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 소련 조사단이 돌아간 직후 '박헌영 사건 조사를 속히 끝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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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투쟁
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투쟁
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
북한 김정은정부는 극렬 반미성향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며 자주파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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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정부는 극렬 반미성향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며 자주파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민주파이며, 제2공화국, 제3공화국 헌법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자주파라고 부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이나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반김정은세력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좌익 파시즘 세력으로 극우성향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모택동, 김일성주의 노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자 중 인민민주주의(PD, 민주파)계열보다는 민족해방(NL, 자주파)계열입니다.
북한 내부 민주파 입김이 강할 때는 개혁개방정책과 남북대화로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 내부 자주파는 국제적으로 핵무기 보유국 인정과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호에 주력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 노동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반일 반미 투쟁과 지주(대기업)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습니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입니다
- 북한의 국정(國政)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좌익 파시즘 군사독재정부]이고 북한의 사회구성체은 국영자본체제(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북한정부의 약점은 대북 자유화, 개방화정책과 민주화 정책입니다
북한이 한국 측의 대북 정보유입 활동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 내부 북한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 민주파가 등장하여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 반김정은세력 등장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대북 자유화 민주화 정책--->반김정은 세력 등장----->대량 탈북자 사태나 민중봉기 사태 등장--->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붕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0달러라면 중국 조선족 1인당 국민소득은 8,000달러 수준입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13,000달러 수준이고 대만(타이완)의 1인당 GDP는 3만9477달러이며, 홍콩은 대체로 금융업과 번창하는 국제무역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래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 2025년 기준 1인당 GDP는 약 56,844달러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주요 생산품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 기반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94,481 달러(2025년) 수준으로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꼽힌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며 정치적으로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 체제인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입니다
북한 경제능력은 기아와 평민층 식량난으로 외부로부터 식량원조국가입니다
북한의 민생경제(식량난이나 의식주 여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민군 경제(계엄령 경제=군정경제)에서 민간경제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북한 인민군 병력 감축과 함께 민간 소비가 촉진하고 민간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군수산업 중공업,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 비용이 대부분 인민군 경제활동에서 충당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국영자본체제 북한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이나 외부 경협이 인민군 영향력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대북 투자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주체연호 세습제 좌익군정 좌익 파시즘을 지지해야 한다 민간경제 대북투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위험국이다
북한은 인민경제 제1공화국 헌법을 폐지하고 1972년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후 북한 경제는 민간경제(인민경제)에서 인민군이나 집단농장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경제로 전환돼 왔다
북한 경제는 스탈린헌법보다도 반민간경제(반민생경제) 국가이다
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북한 주민 계층은 상류층, 평민층, 빈곤층(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북한 상류층 30%이내이며 평민층 70%, 평민층 중 빈곤층 33%이내: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이 1990년대 초반 420만명, 중반 700만명이었고 긴 식량 위기의 10 년 후, 2007 년까지 북한 전체 주민의 33 %, 즉 78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북한은 교육, 의료, 주거의 무상화를 실시하고 있다고 칭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 빈곤화로 실업자나 빈곤층에게는 교육,의료, 주거등의 무상화가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은 상류층과 서민층(평민층)으로 구분 돼 있고 서민층(평민층) 중에는 식량위기 계층 빈곤층이 전체 주민 33%이다
북한은 계획 경제를 실행하고 있지만 의식주(衣食住), 외출이나 쇼핑에는 (입장권·승차권 등의) 표, 상표권과 돈이 필요하다. 교육,의료,주거 무상화로 직원 급여가 아니라 생활비만 지급된다. 주택(주거)도 개인소유를 인정함으로 점차 사유화 돼 가고 있다
북한 빈곤층 생활 모습은 TV 방영 되지 않고 있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으로 점진적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북한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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