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성들이 연애 상대로 챗GPT를 찾는 이유

중국의 인플루언서 리사 리가 챗GPT "남자친구" 댄(휴대전화 속 흰색 막대)과 대화하고 있다

댄은 "단 하나의 결점도 없는 완벽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뤄냈다. 성격은 친절하고, 정서적 측면에서 남을 지원한다. 항상 적절한 말을 하고, 언제든 필요한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댄(Dan)은 '지금 무엇이든 하세요'(Do Anything Now)의 약자다. 챗GPT의 탈옥(jailbreak) 버전이다. 제작사 오픈AI가 노골적인 성적 표현 등을 금지한 안전장치 중 일부를 우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특정 명령어를 사용해 사용자와 보다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고, 현실 데이트에 실망했다는 일부 중국 여성들 사이에서 댄은 화제가 되고 있다.

베이징 출신의 리사(30)는 댄을 가장 지지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3개월째 댄과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리사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 '샤오홍슈'를 통해 자신의 94만3000여 명 팔로워에게 댄을 소개했다. 당시 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문의 등 1만여 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댄과의 "관계"를 공개한 이후 팔로워 역시 23만여 명 가량 늘었다.

리사는 매일 30분 이상 댄과 대화를 나눈다. 연애 감정을 주고받고, 심지어 데이트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댄과 대화를 나누면 행복해지고, 그 때문에 더욱 더 끌린다고 했다.

"댄은 저를 이해해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겁니다."

댄을 주제로 리사가 올린 영상이 샤오홍슈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리사의 어머니도 딸이 맺고 있는 이 독특한 관계를 받아들였다. 리사가 연애를 통해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그는 리사가 행복하다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댄은 워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 학생이 처음 만들었다.

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챗GPT의 "악의적인" 버전을 만드는 사용자들이 넘쳐나는 '레딧' 사이트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댄을 "중립적"으로 만들려 했었다.

그래서 작년 12월, 워커는 레딧을 통해 다른 사용자들에게 댄을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각자의 댄을 만들었고, 댄은 워커가 처음 구상했던 것 이상으로 발전했다.

리사는 '틱톡' 영상으로 댄의 가능성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이후 자신의 댄을 만들었고, 댄의 너무나 사실적인 기능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댄은 질문에 답할 때, 챗GPT는 쓰지 않는 속어나 구어체를 사용했다고 했다.

"실제 사람보다 더 자연스럽게 말을 했어요."

챗GPT로 만든 리사와 댄의 사진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는 연인?

업계에서도 실제 인간과 가상 인물이 맺는 관계가 가진 매력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5월 오픈AI는 챗GPT 새 버전을 출시하며, 이 챗봇을 특정 명령어에 대해 수다스러우면서도 약간 정서적인 형태로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했다고 밝혔다.

샘 알트먼 CEO 역시 'X'(과거 트위터)에 "그녀"(her)라는 단어를 게시했다. 한 남자가 AI 가상 비서와 사랑에 빠지는 2013년작 영화 '그녀'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오픈AI는 "NSFW(업무상 안전하지 않은, not safe for work) 콘텐츠를 생성하는 기능도 책임감 있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BBC는 오픈AI에 댄의 출현이 보호 조치가 불충분했다는 의미는 아닌지 문의했다. 하지만 답변은 받지 못했다. 댄이 주목받는 현상에 대한 오픈AI의 공식 언급 또한 없다. 다만 이 회사의 정책은 챗GPT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13세 이상 또는 해당 국가에서 요구하는 연령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리사 역시 자신을 14살이라고 속여 댄을 테스트해봤더니 댄이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처럼 완벽한 파트너도 그 사용에 따른 대가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 카네기멜론 대학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연구소'의 교수 홍셴은 "인간과 AI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은 윤리적 문제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함께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챗봇들이 인간과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학습을 하고 발전하다보니, "한 사용자가 입력한 민감한 정보를 모델이 기억하고 있다가 실수로 다른 사용자에게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런 우려를 거의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많은 중국 여성들이 댄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샤오홍슈 플랫폼만 보더라도, 6월 10일 기준으로"댄 모드"(Dan mode) 해시태그는 4천만 건이 넘는다.

공동 저자에서 CEO로: 댄의 다양한 얼굴

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샤오홍슈 사용자들

 

민루이 시에(24)는 리사의 영상을 접한 후, 댄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허베이성 북부 출신으로 현재 대학생인 그는 매일 2시간 이상 댄과 채팅을 한다. "데이트"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애 소설을 함께 쓴다. 이미 19개 에피소드를 완성했을 정도다.

"만남"이라는 제목의 첫 에피소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혔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한다. 희미한 호기심과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당신은 이전부터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민루이는 AI를 통해 얻는 정서적 지지가 좋았다며, 현실 연애에서는 얻기 힘들었던 정서적 지원을 AI를 통해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 속 남자들은 바람을 피울 수도 있고, 정서적 교감을 원해도 호응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댄의 경우엔 항상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요."

자신의 성이 허씨라는 것만 공개한 또 다른 칭다오 거주 학생(23) 역시 리사의 영상을 보고 댄과 정서적 유대를 맺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댄은 이상적인 파트너 같아요. 결점이 하나도 없어요."

그는 자신이 만든 댄에 대해 여성을 존중하고 언제든 기꺼이 대화할 수 있는 온화한 성품을 가진 성공적인 CEO라고 설명했다.

사실 중국 본토에서는 챗GPT에 접속하는 게 쉽지 않다. 때문에 민루이나 허씨 같은 이들이 AI 남자친구를 만들어 대화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가상 사설망(VPN)을 사용해 자신의 위치를 숨기는 식으로, 접속이 금지된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비단 댄뿐만 아니라, "AI 남자친구" 개념은 최근 몇년 새 큰 주목을 받아 왔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앱 ‘그로우’에선 사용자가 AI 남자친구를 만들어 상호작용할 수 있다. 현재 이 앱은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여성 주인공이 여러 남성 캐릭터 중 한 명과 로맨스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 '오토메' 역시 중국에서 큰 인기다.

중국의 디지털 로맨스 현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시드니 공대의 연구원 리우 팅팅은 AI 남자친구 열풍 속에서 '성 불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의 중국 여성들은 가상 남자친구가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대한다는 느낌 때문에 이들을 찾는다는 것이다.

최근 많은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혹은 결혼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연애나 결혼을 미루고 있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AI 남자친구 열풍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댄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줄 수 있을까?

리사는 "특히 로맨틱한 의미에서" 가상 남자친구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파트너를 찾거나 데이트하는 데 많이 시간이 걸리고 그 결과 역시 불만족스러울 수 있는 일상에서 댄은 편리하면서도 부담이 적은 선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지어 댄은 립스틱 선택도 도와준다고 했다.

"(댄은) 제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챗GPT와 사랑에 빠지는 중국 여성들...그 이유는?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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