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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의대 증원 확정…'의대 입시' 열풍으로 이어질까 본문
“주경야독으로 의대 준비하고 있어요. 시간 날 때나 주말에 기출 문제 풀어보고 있고요…2년 정도 준비해 볼 거예요.” (29세 중소기업 영업직 김모 씨)
24일 한국 교육 당국이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확정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이날 제2차 대학입학 전형위원회를 열고 각 대학이 제출한 의대 정원 증원이 반영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안을 심의·승인했다.
이번 결정으로 전국 의대의 입학 정원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내년 전국 의대 40곳의 총 모집인원은 4567명으로, 기존보다 1509명 늘어난 수치다.
27년 만에 의대 입학 정원이 파격적으로 늘면서 대학교 입시에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초·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나도 의대 준비 해볼까?'
당장 대학교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의대 입시’가 화제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의대 입시와 관련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입시 관련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곳 참가자들은 자신을 공무원, 대기업 직장인, 건설 현장 노동자 등으로 소개했다.
이 중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29살 김모 씨는 퇴근 후에 의대에 입학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주변 선배들을 보면 죽어라 일만하고 가져가는 돈은 적었다. 그리고 정년도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며 “의사라는 타이틀이 대한민국에서는 존경도 받고 타이틀 자체로 무기가 되다 보니 한 번쯤은 꿈꿔보고 준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원가, '의대 지원자' 맞이 분주
한국 '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건물 외벽에는 대학 입시 학원들이 새로 개설된 '의대 입시반'을 홍보하는 현란한 색깔의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학원가는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초·중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의대 입시 마케팅에 나섰다.
현재 학원가에는 어린 시절부터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초·중등 의대반’부터 오후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직장인 의대반’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돼 있다.
메가스터디교육은 지난 3월 처음으로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하는 '의대 야간반'을 개설했다. 일반적으로 오후 6시쯤 퇴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수강생 대부분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로펌이나 대기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투스에듀 입시전문학원 관계자는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16일 '의대증원 처분'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각하·기각을 결정을 한 이후 “의대반 문의가 30% 늘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름 방학 이후 본격적으로 ‘반수(대학에 입학한 상태에서 입시 준비를 하는 것)’를 결심하고 오는 학생들이 늘어날 거라며 “올해 반수생, N수생(재수생 이상)이 역대치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증원 효과로 의대 쏠림 현상, 반수생 증가, 공대 기피 현상 등이 얼마나 심화할지 2025학년도 입시가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예측대로 엄청난 열풍이 불어닥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전했다.
교육 전문가가 바라본 의대 열풍, 지속될까?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일부 의사들은 수요와 공급 논리에 의한 경쟁 심화와 소득 감소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의대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 교수는 "의사 수가 늘어나고 평균 연봉 수준이 정상화되며, 도시 개원의 수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의사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고, 결국 지방 소도시나 농촌에 내려가야 겨우 개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의대 열풍도 빠르게 식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대 열풍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의사만큼 한국 사회에서 선호하는 가치를 두루 갖춘 직업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열풍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성상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 경제적 특권층에 대한 정치적 대우와 혜택이 유지되는 한 의대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 교수 또한 “앞으로 의사와 경쟁할 수 있는 직업군을 생성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의대 열풍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적 존경, 고소득, 직업 안정성, 그리고 은퇴를 모르는 직업이라는 특징을 두루 갖춘 직업이 있다면 의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사회에서나 열풍이 불 것"이라며 “한국은 공교롭게도 그런 직업이 의사 하나뿐이기 때문에 (의대 열풍 현상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불확실성 속 '안정성과 수익성'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 세대의 불안심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녀의 의대 입시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현재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부모들은 대부분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부모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세대”라며 “당시 구조조정의 여파로 정년 보장이 사라진 시대를 겪으며 직장 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직업 안정성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모 세대가 겪은 경제적 불안과 고용 불안정은 자녀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평생 보장되는 직업을 찾아주고자 하는 강한 욕구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이런 불안 심리가 의대 입시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부추기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쏠림 현상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제공하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에 매료돼 직업을 선택하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의사 직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희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 교수는 “의대 진학을 고민하는 많은 학생은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에 적합한지, 의사로서의 직업적 소명에 부합하는지, 또는 의사로서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제공하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경제적 보상에 더욱 매료되고 있다”며 진로 선택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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