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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는 마치 소설 ‘1984’ 같습니다 … 러시아의 ‘디스토피아 도서관’ 본문
지금 러시아는 마치 소설 ‘1984’ 같습니다 … 러시아의 ‘디스토피아 도서관’
CIA Bear 허관(許灌) 2024. 6. 7. 06:55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차로 4시간가량 떨어진 이바노보 지역에 세워진 옥외 광고판만 본다면 러시아는 멋진 나라다.
“기록적인 수확량!”
“이바노보 내 도로 2000km 이상 수리 완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
이곳 이바노보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화하는 내용의 광고판이 오래된 영화관 건물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다. 군인들의 사진과 함께 적힌 ‘승리를 위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러한 광고판만 보면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한층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이바노보엔 오늘날의 러시아에 대해 매우 다르게 말하는 곳이 있다.
나는 지금 그곳에 와 있다. 이곳에도 광고판이 걸려 있지만, 러시아 군인이 아닌 영국 출신 소설가 조지 오웰이 그려져 있다. 마치 그가 행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이곳은 바로 ‘조지 오웰 도서관’이다.
이 작은 도서관에는 디스토피아적 세계 및 전체주의의 위험성에 관한 다양한 책이 보관돼 있다.
특히 조지 오웰의 유명 소설 ‘1984’가 여러 권 비치되어 있다. ‘빅브라더’라는 존재가 언제나 감시하고, 국가가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이곳의 사서 알렉산드라 카라세바(68)는 “현재 러시아의 상황은 ‘1984’ 속과 비슷하다”면서 “정부, 국가, 보안 기관이 모든 걸 통제한다”고 말했다.
‘1984’ 속 절대 권력을 지닌 ‘당(the Party)’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조작해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 국민들이 “전쟁은 평화”이며, “무지가 힘”이라고 믿게 한다.
사실 오늘날 러시아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침공이 아닌 방어 작전이며, 러시아 군인들은 점령군이 아닌 해방자라고 떠들어댄다.
또한 이들은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명령한 것은 러시아 크렘린궁이다.
카라세바는 “TV에서 떠드는 말에 속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며, 서방은 언제나 러시아를 파괴하고자 하는 세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봤다”며 말을 꺼냈다.
“소설 ‘1984’ 속 상황과 비슷하죠. 레이 브래드버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화씨 451’도 떠오릅니다. ‘화씨 451’ 속 주인공의 아내는 벽, 즉 TV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주죠.”
2년 전 이 도서관을 세운 이는 지역 사업가인 드미트리 실린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하게 비난했던 실린은 러시아가 “TV를 바라보는 대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후 실린은 “러시아군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한 건물에 ‘전쟁 반대!’라는 낙서를 했다는 것이다. 실린은 혐의를 부인했고, 이후 러시아에서 탈출해 경찰의 수배 명단에 포함되었다.
카라세바는 내게 도서관을 안내해 줬다. 이곳은 프란츠 카프카부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까지 문학 거장들의 보물 같은 작품을 한가득 소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러시아 혁명, 스탈린의 탄압, 공산주의의 몰락, 현대 러시아의 실패한 민주주의 등을 다룬 논픽션 장르도 있다.
이 도서관이 빌려주는 이러한 책은 금서는 아니지만, 매우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다. 러시아의 과거나 현재에 대해 솔직하게 논하다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라세바는 글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계속 이 도서관의 문을 열어두기로 결심했다.
“이곳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독재 정권은 영원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카라세바는 “모든 사회 시스템마다 각자 약점이 있음을, 주변 상황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생각의 자유는 삶과 국가의 자유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카라세바는 “우리 세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서 “우리 세대는 소련 붕괴에 기여했지만, 민주주의 사회 설립에는 실패했다. 우리는 언제 단호하게 나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경험이 없다. 만약 우리 세대가 ‘1984’를 읽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18살 청년으로 이곳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드미트리 셰스토팔로프도 ‘1984’를 읽어봤다.
셰스토팔로프는 “이곳은 신성불가침의 공간”이라면서 “창의적인 청년들에게 이곳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 둘러싸인 작은 자유의 섬과도 같다”고 했다.
‘섬’이라면 정말 작은 섬일 테다. 카라세바 또한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Alexandra Karaseva
Librarian
이곳과는 대조적으로 이바노보 시내 중심가에는 많은 인파가 몰린다. ‘빅브라더’가 아닌 ‘빅 밴드’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밝은 태양 빛 아래 오케스트라가 오래된 소련 시절 노래를 연주하자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옥외 광고판에서 말하는 러시아의 발전을 기꺼이 믿는 수준을 넘어선 이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연금 수급자라고 밝힌 블라디미르는 “나는 러시아가 나아가는 방향에 기쁘다”면서 “우리는 좀 더 독립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서방에 덜 의존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나탈라야라는 젊은 여성은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말했듯 러시아를 위한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그런 것은 더 이상 보지 않으려 한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편 조지 오웰 도서관은 행사를 주최했다. 지역 심리학자를 초대해 “학습된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바꿀 힘이 있다는 내용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관중석에는 10명이 앉아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카라세바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이곳 건물이 팔리게 됐습니다. 우리 도서관도 나가야 합니다.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만, 어디로 가야 할까요?”
마을 건너편에 있는 작은 부지를 제안하는 이가 나타났다. 이에 한 여성은 자신의 자동차를 동원해 이사를 돕겠다고 나섰다. 또 다른 여성은 도서관을 위해 비디오 프로젝터를 기증하겠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모금할 방법을 제안했다.
행동하는 시민 사회의 모습이다. 필요할 때 시민들이 함께 모여 나선다.
물론 규모가 작은 것은 맞다. 게다가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작은 자유의 섬”이 존재할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이곳 도서관의 장기적인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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