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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급서와 안갯속 중동 정세 본문

Guide Ear&Bird's Eye/이란

이란 대통령 급서와 안갯속 중동 정세

CIA bear 허관(許灌) 2024. 5. 26. 05:23

20일 이란 테헤란 시내 발리에아스르 광장에서 열린 애도식에 시민들이 나와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포스터를 들고 애도하고 있다.

지난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시신이 23일 고향에 안장됐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발생한 급작스러운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의 마지막 공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사고 당일이었던 19일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접경 지역인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를 방문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협력 사업이었던 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양국 간 협력과 우호의 상징인 댐 준공식을 축하하기 위해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을 비롯한 이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대거 출동했습니다.

행사를 마친 후 이들은 3대의 헬기에 나눠 탔고, 대통령 헬기에는 라이시 대통령과 압돌라히안 외무장관, 경호원 등이 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실종됐다는 속보가 쏟아졌는데요. 헬기가 비상 착륙에 성공했고, 라이시 대통령 일행이 육로로 이동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0일,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동아제르바이잔주 산악지대에 추락했으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사고 원인”

헬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란 정부는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사고 당시의 기상 상태와 험준한 지형입니다.

사고 헬기가 짙은 안개와 폭우 속에 비행했고, 경로도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악지대였다는 게 추락의 원인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정입니다. 하지만 이륙 당시 기상 상황이 매우 정상적이었다는 증언도 나와 원인 규명에 혼선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후한 헬기가 문제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사고 헬기가 ‘기술 결함’으로 추락했다고 보도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결함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란 국영 매체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Bell 212’ 기종인데요. 전문가들은 이용 가능한 정보를 토대로 사고 헬기가 적어도 40년에서 50년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와 미국의 제재를 연관 짓는 시각도 있습니다.
1978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발하고 이듬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국은 이란과 국교를 끊었고 제재를 단행했는데요. 미국의 제재 때문에 기체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나 신형 기종을 들여오지 못해 이란의 항공 산업이 낙후했고, 비행 사고가 잦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이란 구조대가 20일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일행을 태우고 추락한 헬기를 찾고 있다. (자료사진)

“각국의 반응”

20일 이란 정부의 공식 발표 후 각국의 애도와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함께 애도의 날을 선포하며 이란의 국가적 슬픔에 동참하는 나라들이 여럿 있었는데요. 파키스탄, 튀르키예, 쿠바, 스리랑카, 인도 같은 나라는 하루, 시리아와 레바논은 사흘간 애도의 날을 선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유엔도 뉴욕 유엔본부 앞 유엔기를 조기 게양하는 것으로 애도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도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인권 유린 비판을 받아온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에 미국 정부가 애도를 표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는데요.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라이시 대통령이 손에 피를 많이 묻혔고, 이란의 참혹한 인권 탄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일반적으로 인명 손실에 대해 분명히 유감을 나타내며, 적절한 공식 애도를 표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정부 내각 회의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진과 의자 위에 검은 천이 둘러져 있다.

“대통령 보궐 선거”

이란은 다음 달 28일 대통령 보궐 선거를 치릅니다. 이란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자리를 승계하고 50일 안에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르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 직무는 모하마드 모크베르 제1부통령이 대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 등록은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입니다. 이런 가운데 몇몇 후보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4~5명으로 압축되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입니다. 55세의 보수 강경파로, 이슬람 신학대학에서 종교를 가르치고 있는 신학자입니다.

또 현재 대통령 대행을 맡고 있는 모크베르 제1부통령,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란은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습니다. 하지만 하메네이와 강경파가 장악하고 있는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에서 먼저 후보군이 걸러지기 때문에,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중동 정세”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권력 공백은 예상되지 않는데요. 하지만 후계 문제를 놓고 권력 투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기에 라이시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잠잠해져 있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다시 벌어질 경우 국정 혼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이 국제 정세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도 주목됩니다. 라이시 대통령 통치하에서 이란은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해왔습니다.

또 이란은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 등 서방은 이란이 우크라이나와 싸우는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 등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금 몇 년째 공전 중인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도 있습니다.
가자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미국과 이란은 지난주 오만에서 간접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하지만 라이시 대통령의 급서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중동 전략은 다음 달, 이란의 새 지도자로 누가 등장하는지에 따라 다시 세부 조율이 이뤄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