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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부차에서 할머니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가족 본문
"러시아군의 탱크가 이웃집과 교회를 포격했던 그 순간이 피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가족과 함께 키이우 북서쪽의 작은 도시 부차에서 피신에 성공한 드미트로 타추크는 피신을 결심한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포탄이 떨어져) 교회의 돔이 파괴됐죠. 끔찍했습니다."
부차 및 부차 인근 지역은 우크라이나 비상대책본부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곳으로 지목하는 곳이다. 한편 4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는 비상사태가 극에 달했다.
현재 부차는 러시아군에 포위됐고, 도시의 일부가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이곳은 가차없는 폭격의 시달려왔다.
그러다보니 인도주의적 원조나 식량 지원도 며칠째 끊겼다. 수천 명의 주민들은 지하실에 갇혀 있는데, 그들중 다수가 노인이거나 심각한 장애를 가진 터라 피난도 쉽지 않다. 여기에 통신까지 두절돼, 친구나 가족과 연락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서른 살의 변호사인 드미트로 가족은 부차를 탈출하기 위해, 올해 각각 74세와 83세인 할머니 2명과 어머니, 여동생을 데리고 17km를 걸었다. 그 길에는 이웃 2명과 강아지 한 마리도 함께 했다.
피난은 순탄치 않았다. 도중에 포탄이 떨어져 땅바닥으로 몸을 날려 피한 것만 해도 20차례가 넘는다.
길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할머니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결국 드미트로와 여동생이 포화속에서 함께 할머니를 끌고 피난을 이어가야 했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을 두고 가라고 애원하셨어요. 저희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던 거죠. 하지만 저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길에는 안전한 대피로도, 돕는 이들도 없었다. 하지만 드미트로 가족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키이우 인근 대피소에 도착했다. 가족은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차를 떠나오면서,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봤습니다. 불붙은 집 앞에서 미쳐가는 사람들도 있었죠. 아파트 벽이 흙 가루로 부서져내리는 것도 봤고요.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 국방부는 부차를 민간인들이 대피하는 통로 중 하나로 합의했다. 하지만 휴전 합의가 불발로 끝이 났고, 드미트로 같은 이들만 겨우 빠져나왔다.
수천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포격 받은 지역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하지만 마리우폴과 부차, 이즈윰 등지의 주민들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게다가 부차는 러시아의 악명높은 장갑차, 전차, 포병대로부터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더 크다.
드미트로에 따르면, 그의 동료 한 명은 부차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어머니와 갇혀 있다. 닷새 전 마지막 그녀가 전한 마지막 메시지에는 탈출구는 없고 유일한 생존수단은 난방이 안 되는 지하실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가능한 오랫동안 잠을 자는 것뿐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현재 부차에는 전기나 난방이 공급되지 않는다. 가스는 포격으로 인한 화재로 끊겼다. 식량도 조달되지 않고 휴대전화 전파도 수신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가능해지는 인터넷 접속이 외부로 메시지를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번 주 초, 장애를 가진 한 부차 거주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글에서 그는 자신을 포함해 다른 장애인들이 붙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피소로 피할 수도 없고 식량과 물, 의약품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고 이웃들과 함께 겨우 끼니를 때웠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드미트로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이 들자, 서둘러 대피를 결심했다.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러시아의 검문소를 우회했다. 그리고 인근 도시 이르핀에 도착하자마자, 반쯤 파괴된 다리 밑으로 몸을 숨겼다.
이르핀에서는 떨어지는 박격포 포탄 속에서 들판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곳곳에서 집과 다리가 포탄에 맞아 부서졌고, 파편이 그들을 스쳐갔다.
드미트로는 "(그 순간)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달려가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에 우크라이나가 반격하면서, 드미트로 가족이 향하던 방향에서 가장 대규모의 포격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향하던) 저 앞쪽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어요. 하지만 그쪽이 피난처로 가는 길이었죠."
이러한 역경 끝에 드미트로 가족은 키이우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부차에는 악몽 같은 삶 속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부차에서 할머니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가족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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