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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 사우디 공주, 구금 3년만에 석방 본문

Guide Ear&Bird's Eye/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운동’ 사우디 공주, 구금 3년만에 석방

CIA bear 허관(許灌) 2022. 1. 9. 22:47

바스마 빈트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자료 사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다 기소 절차 없이 3년 동안이나 구금됐던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 압둘라지즈 사우디 공주가 석방됐습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사우디 인권단체 ‘ALQST’는 8일 사회연결망 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바스마 공주와 그 딸이 석방됐다"며 "그동안 의료 지원 요청이 거부돼 생명을 위협받는 상태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ALQST는 "구금 중 공주에게는 어떤 혐의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스마 공주는 2019년 치료 목적으로 스위스를 방문하기 직전 딸 한 명과 함께 체포돼 최근까지 수감됐습니다.

바스마 공주는 구금되기 전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바스마 공주의 가족은 2020년 유엔에 보낸 서한에서 "권력 남용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가 수감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우디 당국은 바스마 공주의 석방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용감한 사우디 공주… 여성인권 등 개혁 앞장

30년 전 중국에 갔을 때 마치 달에 내린 것 같았다. 외딴 세상이었다. 그래도 달은 지구에서 잘 보이기라도 한다. 몇 년 뒤 귀국해서 보니 사우디아라비아는 화성 같았다. 철저히 고립된 사회로 변해 있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조카인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47) 공주는 자국에서 누릴 수 있는 왕족의 삶을 거부한 채 사우디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공주는 3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왕족으로서의 기득권을 빼앗기는 한이 있어도 사우디의 변화를 위해서라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의 2대 왕인 사우드 전 국왕의 115명 자식 중 막내다.

 

바스마 공주는 언론 매체와 블로그를 통해 사우디의 여성학대·빈부격차 등 민감한 문제를 꼬집어왔다.

 

그의 페이스북의 친구는 25000명에 달한다. 공주는 6년 전 이혼해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사우디에선) 가난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 세 번째로 잡히면 손목을 자르는데 부자는 어떤 잘못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바스마 공주는 "1980년대 사우디가 지금보다 더 열린 사회였고 관대했다""사우디에 관용이 없어진 것은 종교 경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격한 종교 율법을 적용하는 사우디에서 종교 경찰은 서슬 퍼런 존재다.

 

공주는 "종교 경찰 은 사우디 사회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종교 경찰들은 사람들 머릿속에 잘못된 생각을 심고 이전에 없었던 정신병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여성의 인권 보호를 강조했다. 그는 "여성이 운전하고 대학에 자유롭게 들어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남성에게 맞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드 왕과 시리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중동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내며 프랑스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독교·유대인·무슬림과 한데 어울려 교육받았다.

1975년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공주는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스위스에서 유학했다. 보통의 사우디 왕족과 달리 개방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다.

 

지난해 튀니지·이집트 등 중동 지역에 반정부 시위가 일자 사우디 당국은 공주의 글도 샅샅이 검열하기 시작했다.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한 글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해당 매체 관계자를 구금시키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공주는 영국으로 빠져나와 계속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우디 왕족과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공주는 "문제는 국왕이 아니라 장관들"이라며 "나는 반역자도 아니고 체제 전복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3년 가까이 영장도, 재판도 없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외곽 알하이르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8일(이하 현지시간) 석방된 바스마 빈트 사우드 빈압둘라지즈 공주가 2017년 4월 12일 미국 워싱턴의 중동연구소에서 중동 여성의 인권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자 현대에 몇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전제군주정이다. 다만 1992년에 왕실 칙령으로 선포된 기본법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도 샤리아법과 쿠란은 필수적으로 지켜야만 하며, 쿠란과 무함마드의 어록을 담은 경전인 하디스가 국가의 헌법으로 공포되었다. 그 어떠한 정치적인 단체나 선거도 왕실의 허가 없이는 실행이 불가하며, 해외 평론가들은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전체주의적 독재주의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2012년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총 167개국들 중 5번째로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국가로 평하기도 하였으며, 프리덤 하우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최하점인 7.0, '자유롭지 않음'이라는 평가를 주었다.

 

전국적인 선거와 정당의 부재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판에는 크게 왕실과 그 나머지 시민들, 이 두 세력만이 존재한다. 다만 사우드 왕가 이외의 인사들에게는 정치적인 참여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정무의 대부분은 사우드 왕가의 일원들이 토착 셰흐들이나 경제적 거물들과 밀실에서 협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며,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에도 보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관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모든 성년이 된 남성들이 국왕에게 탄원을 넣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옛적 부족 시대였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관습인데, 이처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부족적인 색채가 정부 기관들에게까지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부족적인 구분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매우 강한 편이고, 사우드 왕가 이외의 정치적 인사들도 대부분 유력 토착 부족장 가문들의 후예이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국가적인 대소사를 결정하는 편이 많으며 지역적으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관계에 대하여 비판이 많다 보니, 1990년대에 국정자문회의(Majlis Ashura)를 설립하고 정치 참여 계층의 폭을 넓히려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사우드 왕가의 통치에 반발하는 세력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슬람 수니파 세력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 둘째는 특히 동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이슬람 시아파 세력, 세번째는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평론가들, 네번째는 분리주의와 독립을 추구하는 지방의 토착 셰흐들이다. 이 네 세력들 가운데에서 수니파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이 가장 정부가 온 힘을 쏟아 억누르는 대상들이며 그 목소리도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시위들, 심지어 이 시위들이 평화적이라고 하더라도 폭력이나 공권력을 사용하여 진압하는 경우가 많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사우디아리비아의 국가원수이자 통치자이다. 국왕은 절대군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은 물론 정무(政務)에까지 개입한다. 또한, 국왕은 사우디아라비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군주제의 왕정통치 국가라는 점에서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의 국왕이 정무(政務)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국회 다수당의 대표이자 행정수반인 수상(총리)이 정무를 맡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국가체제이다. 국왕은 사법적, 행정적, 입법적 권력을 모두 장악한 초법적 존재이며, 왕실 칙령이 곧 국가의 법령이 된다. 국왕은 동시에 총리직을 겸하기도 하는데,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장관회의(Council of Ministers of Saudi Arabia)와 사우디아라비아 국정자문회의(Council of Ministers of Saudi Arabia)를 주재하며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참고로 국정자문회의의 구성원은 120명으로 4년마다 국왕이 지명하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국정자문회의의 의원수의 30%를 여성으로 채우는,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크게 획기적인 개혁안이 나오기도 하였다. 2005년에 최초로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실질적인 정치적 기구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왕실 인원들은 그 출생만으로 높은 관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게다가 사우드 왕가의 인원이 워낙에 많다 보니 이들이 다양한 요직에 임명되어 사우드 왕가가 자체적으로 타 가문과의 협력 없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을 수 있게 한다. 사우드 왕가의 왕자들만 최소 7,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그들 중 이븐 사우드의 남자 후손들과 가장 혈연적으로 가까운 200여명이 핵심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핵심적인 장관직들도 모두 왕가의 차지이며, 지방을 관할하는 주지사들도 모두 사우드 왕가의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왕자들 가운데에서도 권력이 높거나 격이 높은 인사들에게는 왕실이 특별히 권력을 하사하듯이 하여 중세의 봉신직처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압둘라 국왕만 하더라도 1963년 이래 2010년에 자신의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국가경비대의 사령관이었으며, 대공직을 겸하였으며 2011년에 사망하기 전까지는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직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었다. 파이살 국왕은 1975년부터 외교부 장관직으로 일해왔으며, 현재의 국왕인 빈 살만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국방부 장관과 항공부 장관, 그리고 수도 리야드의 주지사 직을 홀로 모두 겸하고 있었다. 현재의 국방부 장관은 빈 살만 국왕의 아들이자 현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이 맡고 있다.

 

현재는 왕실도 부족간의 혈연, 친분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여러 파벌로 나뉘어 있다. 가장 강력한 파벌은 '수다이리 세븐'이라 불리는 파벌인데, 전 국왕인 파흐드 국왕과 그 형제들, 그리고 그 자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왕실 내부에서 정치적 성향은 주로 '정치적 개혁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혹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권위가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등등으로 나뉜다. 또한 왕세자가 국왕이 죽기 전에 죽었을 때는 누가 새로운 왕세자로 옹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밑에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압둘라 국왕의 재위기였던 20111021일에 당시 왕세자가 죽었을 때, 압둘라 국왕은 나예프 왕자를 새로운 왕세자로 임명했다. 다만 나예프 왕자도 그 다음해에 바로 죽고 말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왕실은 오랜 세월동안 부정부패와 관련된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름에도 나와있듯이 아예 '사우드 왕가의 아라비아'이기 때문에, 왕실 일가의 재산과 그 관리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숨기거나 은폐하는 경우가 잦다. 또한 왕실 자산이 곧 국가 자산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세금이 왕실에 의하여 낭비되는 경우다 상당히 부지기수인 경우가 많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부정부패는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직적, 그리고 계획적으로 광범위하게 사회 곳곳에 뻗어있다고 전해진다. 이때문에 심지어 2001년에는 왕실의 고위 일원이었던 반다르 빈 술탄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하기까지 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부패인식지수에서 2010년에 4.7(가장 부패한 지수가 0, 가장 청렴한 지수가 10)이라는 상당히 낮은 점수를 받았으며, 2000년대 이래 사회적 투명성과 부정부패 말소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많이 펼쳤으나 아직까지도 워낙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잘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뇌물과 연줄이 상당히 필수적이며, 반부패법 또한 유명무실하여 여전히 공공기관들에서도 부정부패가 지속되고 있다. 이때문에 2017년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반부패, 권력 유지 작업의 일환으로 상당한 수의 왕자들, 사업가들, 장관들이 잡혀가기도 하였다.

 

2005년에 압둘라 국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에서도 점차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일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의 국정자문회의의 창설만으로는 충분한 정치적 개혁이 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2003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국가 토론 포럼(National Dialogue Forum)'을 창설하여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국가 현안에 대하여 토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 포럼 내부에서도 왕실의 입맛을 지나치게 거스르는 의견이나 반국가적 의견들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된다. 2005년에는 최초의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2009년에는 국왕이 개혁가들을 장관 각부에 임명하고 심지어 여성을 장관직에 임명하며 획기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만 이러한 조치들은 너무 느리거나 보여주기용이라는 비판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양면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 성장 투자 '와 함께 '분배'에 의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好循環)'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민주국가의 경제토대는 민영자본체제(민간 자본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통합주의 노선 의회민주주의입니다
독재국가의 경제토대는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이며 정치토대는 병정분리주의 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