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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어머니' 故 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별세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민주주의의 어머니' 故 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별세

CIA bear 허관(許灌) 2022. 1. 9. 15:35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사진은 지난해 6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주의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주변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쓰러져 결국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배은심 어머니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 당시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98년부터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고(故) 이소선 씨와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故) 박정기 씨 등과 함께였다. 

2019년에는 용산참사(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로 철거민 7명과 경찰 1명 사망)와 관련해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고인은 이런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정을 지펴나갔다. 지난해 6월부터 국회 앞에서 진행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1인 시위에 참여, 한 달의 3분의 1이상을 국회 앞에서 보냈다.

고인의 사망 소식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애도도 잇따르고 있다. 

배은심 어머니와 긴밀한 관계였던 김순 광주·전남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황망해했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에도 고인의 자택을 방문해 담소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살아 계실 동안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이제 정말로 어머니가 못다 이룬 뜻을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SNS에 '6월과 민주주의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가 산화한 이후 어머님께서는 무려 34년 동안 오로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오셨다. 어머님께서는 그 숱한 불면의 밤을 수면제를 쪼개어 드실지언정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의 일이라면 전국을 다니셨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과 6월 항쟁 기념식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참석자들 한분 한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죽음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미래세대에 대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민주 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해주셨다"면서 "오직 민주주의 한 길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후보는 "이제 남은 일은 걱정마시고 이한열 열사와 함께 편히 쉬시라. 어머님의 뜻을 가슴 속에 깊이, 단단히 새기겠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반드시 지켜가겠다. 부디, 영면하시길"이라고 추모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SNS에 "계룡산 자락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아니 우리시대 모두의 어머니셨던 배은심 여사님의 부음을 마주한다"며 "이른 아침, 산사를 휘감는 겨울 바람이 슬픔을 더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국민의힘은 "'열사들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영면을 기원하다"고 애도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배은심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열사가 꿈꿨던 민주화의 삶을 이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민주화의 열망이 피어나는 곳에 늘 함께였고, 1998년 민주화 운동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서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고인의 말씀을 되새기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역대 헌법(大韓民國 憲法)

http://blog.daum.net/007nis/15875575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

대한민국 헌법 Ⅰ.제1공화국[제헌헌법] 4281년 7월 12일 제정 1948년 7월 17일 공포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

blog.daum.net

大韓民國 民主共和國이다

大韓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

국호(國號)는 삼한정통설(三韓正統說)으로 건국한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대한(大韓)으로 하며 국정(國政)은 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民主共和國)를 원칙으로 한다[국정(國政)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

단군왕검 이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였다

 

"平和大忍, 信望愛.
巨山後廣, 後廣巨山."

"국내외 정책에서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정책 국영자본체제 자주파(공화국론)보다도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개혁개방정책 민영자본체제 민주파(민주국가론)가 돼야 교조주의(보호무역) 노선보다도 수정주의(실용주의, 자유무역) 노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양면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 성장 투자 '와 함께 '분배'에 의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好循環)'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민주국가의 경제토대는 민영자본체제(민간 자본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통합주의 노선 의회민주주의입니다
독재국가의 경제토대는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이며 정치토대는 병정분리주의 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민주보수니 민주진보니 보다는 민주진영 연합으로 할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정책 국영자본체제 자주파(공화국론) 교조주의 노선 보다도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개혁개방정책 민영자본체제 민주파(민주국가론) 수정주의(실용주의)노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平和大忍, 信望愛.
巨山後廣, 後廣巨山."

"大韓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이한열(李韓烈, 영어: Lee Han Yeol, 1966829~ 198775)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이다. 전남 화순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당시 동아리 '만화사랑'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반독재투쟁에 가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69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하기로 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6월9일,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연세대학교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이한열 학생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특히, 박종철 고문 사건 이후 발생한 일이어서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벌이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이른바 6월 민주 항쟁의 정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군정종식의 계기가 된 6.29선언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