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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나는 투잡·쓰리잡 뛰는 목사입니다' 본문
거리마다 불 켜진 교회 십자가는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 결과에 다르면 한국에서 교회 수는 8만 3천여 개로 치킨집 8만 7천 개와 맞먹는 수준.
하지만 비리나 세습 문제에 이어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감을 더욱 키웠다.
교인들의 수는 점차 줄고 있고,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목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교회에 등록하고도 나오지 않는 교인들의 비율은 20%가 넘는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부업을 찾아나선, 이른바 '이중직 목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BBC 코리아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2일~23일, 투잡을 뛸 수 밖에 없었던 목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투잡 뛰는 목사들'
#1. "너무 힘이 들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으니까 시작했죠. 새벽에 출근하는 시간을 쪼개 설교 내용을 생각하는 거죠."
인천에서 목회하는 이강인 목사(60)는 지난 1년을 새벽 배송 택배기사로 살았다.
밤 10시면 집을 나서 서울 송파 물류 센터로 향한다. 물건을 받고 난 새벽 1시가 되면 시간과 체력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집에 10kg짜리 애완동물용 모래 3포대를 옮기고 나면 온몸이 후들거린다.
하지만 몸보다 시간 걱정이 앞선다. 급히 7시 전까지 최대 70곳에 배달을 마치면 안도감이 몰려온다. 일을 마친 오전에는 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오후에 교회로 나가 교회 일들을 살피며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주 5일 일해 한 달 기준 150~160만원을 벌 수 있었다.
10월부턴 건설 현장에서 용접을 시작한 이 목사가 이렇게 투잡을 택한 이유는 하나다. 어려워지는 교회 상황과 생계에 쪼들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 때문.
새벽 배송 기사와 용접공은 목사인 그에게 그나마 시간을 쪼개 할 수 있는 업무였다.
#2. 서울 송파에 기반을 둔 박병현 목사(43)는 저녁마다 배달음식 라이더로 변신한다.
'봄꽃'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며 이 곳을 기반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코로나19 위기를 피해가긴 어려웠다. 8월 2차 확산 이후엔 가게 매출이 3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고민하던 중 동료 목사들이 라이더 일을 추천해줬다. 진입이 쉽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시작했다. 하지만 카페와 목회를 병행하며 저녁에 6~7시간 자전거를 타니 도저히 체력이 감당이 안 되고 돈벌이가 안됐다.
지금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하루 7~10만 원을 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일을 한다.
'쓰리잡'을 뛰는 박 목사를 보는 주위 반응은 갈린다. 그는 "목사가 말씀 보고 설교 준비 해야 되는데 이러고 다니냐며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있긴 하다"라면서도 "그래도 이제 시대가 변하다 보니 일하는 모습을 존경한다고 말도 듣고 있다"고 했다.
다른 일을 병행하는 이유
일부 목사들이 투잡을 뛰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한국 전체 교회 중 80%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미자립 교회다.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목회자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이르는 생활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부업을 병행하는 목사들의 모습은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지난 2017년 국민연금연구원의 조사 내용에 따르면, 목회자의 월평균 수입은 202만1000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기준 4분의 3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한편으로는 이를 넘어, '사역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목사도 있긴 하다. 매일 이른 아침 화물 트럭을 모는 정은상 목사(43)도 평소 꿈꾸던 목회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그는 "가정 사역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원했기 때문에 목회자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가족의 경제생활을 위해서는 우선 내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개척 초반부터 일했고, 5년 전부터 화물 기사 일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반대의 시선
하지만 대부분의 교단은 '목회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는 걸 금지한다. 허용하는 경우에도 생계유지가 어려운 미자립교회에 한하는 경우가 대부분.
대표적으로 큰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의 총회 규칙 제9장 30장에는 "이중직을 금하며, 지교회의 담임목사직과 겸하여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다만 '생계, 자비량 목회 등의 사유로 소속 노회의 특별한 허락을 받은 자' 등,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 43조 2항의 경우, 목사의 자격을 '다른 직업을 겸하지 않고 전적으로 헌신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종교사회학 교수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교계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 대부분은 큰 교회 목사나 장로들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전히 전통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가 지속하는 상황 속에서 그 흐름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교회 재정에도 어려움이 생기면서 일부 교회에선 목사나 전도사 등의 수를 줄여나가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올해는 코로나의 여파로 생활이 어려워서 생계형 이중직을 하는 경우가 느는 것으로 여겨진다"라며 "코로나 이후 대안적 목회가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이중직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8천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일하는 목회자들'를 운영하는 박종현 목사에게도 내부 분위기를 물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일자리를 찾는 이야기들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밝히기를 꺼렸는데, 지금은 당당히 밝히기도 하고, 일하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목사들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세상의 시선
각자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인터뷰에 나선 '투잡 목사'들은 "많은 걸 느끼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생계 때문에 4년 전부터 광주에서 도배사로 일하고 있는 김삼철 목사는 '목사'로 설 때와 '도배사'로 설 때 세상이 보내는 시선은 매우 달랐다고 말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깍듯하고 '목사님' 하면서 예우를 해주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이런 예우를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만 시키고 돈을 떼먹는 사기 업자를 만나기도 하며 마음고생도 했다.
그는 "세상에 관해 얘기할 땐 그전에는 머리에서 나온 걸 설교를 했다면,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교회 밥만 먹다가, 세상 현실을 알고 하니까, (교인에게) 함부로 돈 문제를 뛰어넘으라고 쉽게 이야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돈을 받다 보니, 어느 순간은 일에 손을 놓기 어려운 순간도 맞이하게 돼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좋아진 것 같아요. 노동하면서 세상을 좀 더 피부에 와닿게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목회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적절한 노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강인 목사 역시 택배 기사 일을 통해 새로운 목회 방향성을 꿈꾸게 됐다. 택배가 분실되는 등 문제가 생기면 정말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여러 사람과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노동 현장에서 어떤 분들은 제가 목사인 걸 알곤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내놓더라고요. 상담받는 것처럼 개인적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었어요. 애환, 어려움 이런 것들을 전에보다 훨씬 더 잘 이해를 하게 됐죠."
각종 자격증을 땄다는 이 목사는 특히 생활이 어려운 목사들에게 기술 교육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교회 안에서만 살아와 운전 외에는 기술이 없어 현장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투잡 목사들은 개신교를 향한 비판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이들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다름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실천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개신교가 겪은 위기도 그 연장 선상에서 풀어갈 수 있을 거라는 설명이다.
박병현 목사는 교회가 지탄을 받는 현실을 통감한다고 전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부 교회의 비윤리적인 문제를 교회 전체가 함께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배달 라이더 일을 나가기 전, 급히 밥을 삼키며 박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일부가 문제를 일으켜도 나머지 다른 교회가 사회에서 사랑을 실천해왔다면, 그렇게까지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교회가 반성하고 미뤄왔던 사랑을 사회에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크리스마스: '나는 투잡·쓰리잡 뛰는 목사입니다'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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