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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湾の李登輝元総統が死去 97歳「民主化の父」 본문
台湾の民主化を進め、初の直接選挙による総統を務めた李登輝(り・とうき)元総統が30日午後7時24分(日本時間同8時24分)、入院先の台北栄民総医院で死去した。97歳だった。李氏は今年2月、自宅で牛乳を誤嚥して病院に搬送され、肺浸潤がみられるとして投薬による治療を受けた。その後も入院を続けていた。
李氏は終戦前から台湾に住む「本省人」として初の総統に就任した。中国大陸由来の国民党政権による一党独裁体制を内側から変革し、「台湾民主化の父」と呼ばれた。中国からは「台湾独立派」と批判されたが、流暢な日本語と親日的な言動で、多くの日本人に親しまれてきた。
李氏は日本統治時代の1923(大正12)年、台北郊外(現新北市)で生まれた。京都帝大農学部農業経済学科に進学し、在学中に出征したが終戦で帰台。台湾大卒業後に研究職に就き、米コーネル大で農業経済学の博士号を取得した。
台湾農業に関する報告が評価され、総統だった蒋介石の長男、蒋経国に抜擢され、71年に国民党に入党。農業担当の政務委員(無任所大臣に相当)や台北市長などを経て、総統となっていた蒋経国から副総統に指名された。88年1月、蒋経国の死去により総統に昇格した。
2000年までの12年間の総統在任期間に、憲法を6回改正し、1949年の中台分断以降、改選されていなかった立法院(国会)の全面改選を行うなど民主化を推進。96年の総統選を直接投票とし、自ら初の民選総統に当選した。また、中国全土の統治を前提とした政治体制から、実効支配する台湾に合わせた体制への改編を進めた。李氏が行った教育改革は「台湾人」意識の向上につながった。
中国は一連の改革を台湾独立の動きとみなし、96年の総統直接選に合わせ弾道ミサイル発射など軍事演習を実施、米国が2個空母打撃群を派遣し「第3次台湾海峡危機」となった。99年に李氏はドイツの放送局の取材で、中台は「特殊な国と国の関係」と発言し、中国側の反発を招いた。
退任表明後の2000年の総統選では後継候補の擁立問題で党が分裂。民主進歩党(民進党)の陳水扁氏が当選し、初の政権交代となった。李氏は責任を問われ国民党籍を剥奪された。
日本との関係では、01年に心臓手術で訪日する際、ビザの発給が政治問題化した。16年夏までに計8回訪日し、07年には実兄が祭られている靖国神社に参拝。台湾も領有権を主張する尖閣諸島(沖縄県石垣市)をめぐっては、台湾内で批判を受けながらも「日本の領土だ」と公言し続けた。
李氏は、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に闘う「正論路線」を発展させた言論活動に贈られる「正論大賞」で、令和元年の特別賞に選ばれていた。
타이완 첫 직선 총통 ‘리덩후이’ 별세
타이완에서 첫 직선제로 선출된 리덩후이 전 총통이 향년 97세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리덩후이 전 총통이 30일 타이완 수도 타이베이 베테랑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리덩후이는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총통을 역임했습니다.
당시 총통 선거에 앞서 중국이 약 8개월간 타이완 인근 해안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 등 무력 위협을 가했습니다.
리덩후이 전 총통은 타이완에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이날 차이잉원 총통은 성명을 내고 리 전 총통의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차이 총통은 성명에서 “타이완의 민주주의를 위한 리덩후이 전 총통의 기여는 논쟁의 여지가 없고 대체 불가하다”며 그의 죽음은 국가의 큰 상실이라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리덩후이 전 타이완 총통 별세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총통선거 직선제를 도입하는 등 민주화에 힘썼고, 일본에 가까운 인사로 알려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일본시간으로 30일 오후 8시 20분경, 입원 중이던 타이베이 시내의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향년 97세로 별세했습니다.
1988년 타이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통에 취임한 리덩후이 전 총통은 의회제도 개혁 등 타이완의 민주화를 추진했고, 1996년에는 처음으로 직선제 총통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일본 통치하의 타이완에서 태어난 리 전 총통은 일본어가 유창하며, 2000년에 총통에서 퇴임한 뒤에는 문화교류 등으로 일본을 종종 방문하는 등 일본에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 전 총통의 별세에, 차이잉원 총통은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리 전 총통의 타이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헌은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서거는 너무나 큰 손실"이라며 리 전 총통의 사망을 애도하고, 그 공적을 기렸습니다.
이어, 차이 총통은 장례 절차 등 유족의 지원에 전력을 다할 것을 관계 부문에 지시했습니다.
현지 방송사는 특집방송으로 리 전 총통의 공적과 발자취를 크게 보도하는 등, 타이완에서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덩후이 전 타이완 총통 별세, 중국언론도 속보
타이완의 리덩후이 전 총통의 별세에 대해 중국 언론들도 잇따라 속보로 보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관영 신화통신은 리 전 총통이 별세한 사실 관계만을 간단하게 전하면서, 리 전 총통에 대해서는 “타이완 당국의 전 지도자’라고 표현하고,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는 입장에서 ‘총통’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중국 공산당계열 매체인 환구시보는 리 전 총통에 대해 “재임 중에 공공연하게 타이완 독립을 주장해, 양안관계의 악화를 초래했다”고 전하고, 중국과 타이완은 “특수한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는 이른바 ‘양국론’을 표방한 리 전 총통의 자세를 비판했습니다.
또,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해외판도 “타이완 독립 주장을 고집해 양안관계의 발전을 파괴하고 양안 동포의 감정을 떼어놓았다”고 전해,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하면서, 리 전 총통의 죽음을 애도하는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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