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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高容姫(고용희) 본문

Guide Ear&Bird's Eye/북한[PRK]

高容姫(고용희)

CIA bear 허관(許灌) 2020. 3. 14. 04:53



高容姫 コ・ヨンヒ朝鮮語: 고용희1952626- 2004813[1]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以下北朝鮮人物同国最高指導者金正日愛人一人であった金正日からは日本風あゆみ아유미)」ばれ寵愛けていたとされる金正哲金正恩金与正実母である

[고용희(아유미)는 1952 6 26 - 2004 8 13일, 북한 인물. 국가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 애인(부인) 중 하나였다. 김정일 일본 이름으로 "아유미"라고 가장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철 · 김정은 · 김여정 생모이다.]



1.経歴(경력)

大阪生まれの在日朝鮮人二世平壌芸術大学卒業後1971年頃万寿台芸術団舞踊家として活動接待役1となったそこで金正日見初められて3番目となった1973万寿台芸術団訪日時には芸術団一員として柳日淑リュ・イルスク류일숙芸名訪日している

[고용희는 오사카 태생의 재일 조선인 2세이며 평양 예술대학 졸업 후 1971년경 만수대 예술단에 들어가 무용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기쁨조의 접대역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이 그녀를 보고 눈에 반하게 되어 그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1973년 만수대 예술단 방일(訪日)때에는 예술단의 일원으로 유일숙(柳日淑)의 가명으로 방일했다.]

                                                         1973年に北朝鮮放送が公開した父親母親李孟仁そして家族の姿写真


                                                                                      万寿活動するときの姿


1977ごろ金正日同居1981金正哲1984金正恩1988金與正をもうけた1998ごろ乳癌診断片方乳房切除検討されたが乳房切除自身金正日としての地位うくなると判断医療陣めにもかかわらず切除代替案としてがん治療選択したこれが結局5年後再発した

[1977년경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 1981년 김정철, 1984년에 김정은, 1988년에는 김여정을 출산했다. 1998년경 유방암의 진단을 받아 한쪽 유방 절제(乳房切除)도 검토 되었지만, 유방 절제로 자신이 김정일의 아내로서의 지위가 위태로워 질 것으로 판단.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의 대안으로 항암 치료를 선택했다. 이것이 결국 5년 후 재발했다.

*유방절제(乳房切除): 유방암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유방을 수술적으로 잘라 내는 일. ]

  

2004フランス・パリのジョルジュ・ポンピドゥー欧州病院英語版乳癌により死去遺体豪華れられて特別機北朝鮮まで搬送された[1]北朝鮮政府国交のないフランスでの国母死亡困惑した当時韓国政府遺体収拾平壌過程けたことが報道されている英姫訃報である正日れたといわれる

 [2004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유럽병원에서 유방암에 의해 사망하였다

시신은 호화로운 관에 넣어져 특별기로 북한까지 이송됐다

북한 정부는 국교가 없는 프랑스에서 '국모(國母)'의 사망에 당황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시신 수습과 평양에 운반 과정을 도운 것이 보도 되고 있다. 고용희의 부고(訃報, 사망 통지)를 접하고 남편인 김정일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알려지고 있다]


 

偶像崇拝中止(우상숭배의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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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年頃から金正日後継なしていた金正恩生母として共和国敬愛なるとして偶像化推進父親日本軍隊武器製造する工場幹部朝鮮総連じて北朝鮮国内まることが危惧されたため中断された

[2002년경부터 김정일은 후계자로 간주했던 김정은의 생모(生母)공화국의 경애하는 어머니로 우상화를 추진하였다

고용희의 부친(父親)이 일제시대 일본 군대의 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의 긴부였다는 사실이 조총련을 통해 북한 국내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돼 중단됐다 ]

  

2.前歴(전력)

すでに2006韓国国家情報院公式高春行説否定していたが英姫高太文高春行であるというこれまで検証されることなく日本では通説とされていたしかし2011デイリーNK高英起現在はデイリーNKジャパン編集長日本公式記録北朝鮮公式資料詳細調査して週刊文春にスクープ記事発表するとこの記事をきっかけに日本でも高春行見直され、「ヨンジャ有力とされるようになったその高英起やデイリーNK綿密取材づいた続報によって高英姫ヨンジャ同一人物説完璧立証されて現在.

[이미 2006년에 한국의 국가 정보원은 공식적으로 (고춘행 설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고용희(고영희)는 고태문의 딸 고춘행(高春行)‘이라는 설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일본에서는 통설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데일리NK 고영기(高英起, 현재는 데일리 NK 편집장)가 일본의 공식기록과 북한의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조사하고 주간 문춘(週刊文春)에 특종 기사를 발표하면서 이 기사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고춘행설은 검토이 되었고 고영자설이 유력하게 여겨지게 됐다.

그 이후의 고영기(高英起) 데일리 NK의 면밀한 취재에 근거한 속보에 의해 고영희=고영자동일 인물설은 완벽하게 입증되어 현재에 이른다. ]


(1)ヨンジャ説(고영자 설)

英姫日本での登録名高姫勲コ・フィフン: 고희훈Ko Hŭihun / Go Huihun改名したヨンジャであるとする現在。  

デイリーNKによると彼女1952626日生まれで父親現在済州市朝天邑朝鮮語版出身済州高氏高京澤1913年生誕1999年死亡母親李孟仁高京澤父高永玉朝鮮王朝える下級文官従仕郎であり当時経済水準かった済州島において比較的裕福らしができたという[7]京澤1929日本大阪廣田裁工所[8]勤務廣田裁工所民間のカッターシャツなどを製造していたが1938陸軍管轄となり軍需被服天幕製造していた京澤勤務期間役職不明だが上級管理職めていたとえられている[9]戦後密航船運営していたが逮捕され196210強制退去となり99次帰還船北朝鮮帰国した[10]北朝鮮では咸鏡北道にあるミョンガン化学工場労働者としていていたという家族には金策工業大学長男商業高校卒業販売員となった長女高等中学校卒業した次男咸興薬学大学三女ヨンスクがいるヨンジャは次女朝鮮では名前をヨンジャに無料奨学金までけながら音楽舞踊大卒業、「功勲俳優となり、「金日成主席配慮によって国家授勲栄誉をにない表彰までされたという

のヨンスクは200110アメリカへ亡命した高英淑符合する日帝残滓としていた日本風女性名ヨンジャからヨンヒ改名したのではないかとされる。  

デイリーNK、「高英姫のハングル表記고용희であり、「ヨン)」部分一般的使用されているヨン)」ではない可能性いと2012から指摘していたが[14]同年6月前後らかになった彼女墓標には고용희されていることがらかになりこの立証されたなお当時北朝鮮では漢字使用していなかったため漢字名不明であるが高英起をイメージして踊姫용희)」可能性いと主張している

[고영희의 일본에서의 등록 이름은 고희훈(高姫勲, Ko Hŭihun / Go Huihun)에서 나중에 개명한 고영자라고 하는 설()이다.

데일리 NK에 따르면, 그녀는 1952626일 태생으로 그녀의 부친(父親)은 현재 제주시 조천읍(済州市 朝天邑) 출신으로 고경택(高京澤(1913년 탄생 ~ 1999년 사망)이고 그녀의 모친(母親)은 이맹인(李孟仁)이다

고경택의 부친 고영옥(高永玉)은 조선왕조를 섬기는 하급문관(종사랑,従仕郎)이었으며 당시 경제수준이 낮았던 제주도에서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경택은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육군성이 비밀로 지정한 오사카(大阪)'히로타 군복공장(廣田裁工所)'에서 근무했다

'히로타 군복공장(廣田裁工所)은 민간 커터셔츠 등을 제조하고 있었으나 1938년에 육군 관할이 되었고 군수 피복과 천막을 제조하고 있었다

고경택의 근무 기간이나 직책은 불분명 하지만, 고위 관리를 맡고 있었다고 생각 되고 있다

전쟁 후 밀항선을 운영하다가 체포되어 196210월에 강제 퇴거가 되었고 제99차 귀환선으로 북한으로 귀국했다

북한에서는 함경북도에 있는 명강화학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으로는 김책공업대학에 다니는 장남,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판매원이 된 장녀,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차남, 함흥약학대학에 다니는 셋째 딸 영숙이었다.

조선에서는 이름을 고영자로 바꾸고 무료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음악무용대를 졸업하고 '공훈 배우'가 되었고, ‘김일성 주석의 배려로 국가수훈의 영예를 얻지 못했지만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여동생 영숙은 200110월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숙(高英淑)와 부합(符合, 일치)한다. 일제 잔재로서 아이가 있는 일본풍의 여자 이름 '영자'에서 '영희'로 개명한 것이 아닐까 한다.

데일리NK"고영희(高英姫)"의 한글 표기가 '고용희이며, ‘()’ 부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 아닌 가능성이 높으면 2012년부터 지적했지만, 같은 해 6월 전후에 밝혀진 그녀의 묘비에는 '고용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 설도 입증 되었다.

또한 당시 북한에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 이름은 불명이지만, 고영기(高英起)"(춤추는 공주., )의 이미지로 "踊姫(용희,무용공주) "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 있다.]

 

家族構成[가족구성]

: 高京澤コ・ギョンテク)(1913814日生)※強制退去により1962年北朝鮮帰国[부친 : 고경택 (1913년 8월 14일 출생), 강제 퇴각 1962년 북한으로 귀국]

: 李孟仁191383日生)※帰国前梁明女から改名 姉: ?[모친: 이맹인(1913년 8월 3일 출생) ,※ 귀국 전에 양명녀로부터 개명, 언니:?]

: 高相勲コ・サンフン)(1951212日生)※北朝鮮ではドンフンに改名[형: 고상훈(1951년 2월 12일생) ※ 북한에서는 고동훈으로 개명]

: ?

: 高恵勲コ・ヘフン)(日本名高田恵美 1955117日生)※米国亡命したヨンスク[동생 : 고혜훈 (일본어 이름 : 가오다 미, 1955년 1월 17일 출생) ●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숙.]

 

 

(2)高春行説[고춘행설]

英姫本名高春行コ・チュネンチュンヘン〉、: 고춘행Ko Ch'unhaeng / Go Chunhaeng1950311まれ本貫済州高氏とした日本では従来定説だったしかしデイリーNK高英起春行生年月日1950311英姫とはまったくちがうことを日本公式資料かららかにしたさらに春行帰国者男性結婚して二人どもがいる記事北朝鮮公式メディアに二度にわたって掲載されていることをめたこれによって春行英姫別人であることが明確になった

 

春行日本大阪市生野区鶴橋のコリア・タウンでまれた母親27人家族だった北鶴橋小学校在学中1961115家族全員とともに北朝鮮った高太文北朝鮮国内柔道指導者となり同国柔道発展くした毎日新聞編集委員鈴木琢磨、『金正日高英姫のなかで高英姫こそ高春行主張していたが英起新説発表されると特集ワイド北朝鮮後継者金正恩氏軌跡朝鮮画報定説覆情報」(『毎日新聞夕刊2011623日号記事のなかでヨンジャこそ高英姫だと自説している

[고영희(英姫)의 본명은 고춘행(高春行, Ko Ch'unhaeng / Go Chunhaeng)으로 1950311일 출생이다 

본관(本貫)은 제주 고씨(済州高氏)라고 한 설로 일본에서는 종전 정설(従来定説)이었다

그러나 데일리 NK의 고영기는 춘행의 생년월일(1950311)이 영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일본의 공식 자료에서 밝혔다.

또한 춘행(春行)이 동일한 귀국자 남성과 결혼하여 2명의 자녀가 있는 기사가 북한 공식 매체에 두 차례에 걸쳐 게재 되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춘행(春行)와 영희(英姫)은 다른 사람임이 명확 해졌다.

춘행(春行, 하루유키)는 일본 오사카시(大阪市) 이쿠노구(生野区) 츠루하시(鶴橋)의 코리아 타운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2 명의 남동생, 여동생의 7 명의 가족이었다. 북쪽 츠루하시 초등학교 재학 중인 196111세 때 5월에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 갔다.

그녀의 부친인 고태문(高太文)은 북한 내에서 유도의 지도자가 되어 나라의 유도의 발전에 힘썼다.

마이니치신문 편집위원(毎日新聞編集委員) 스즈키 타쿠마는 "김정일과 고영희"속에서 "고영희이야 말로 고춘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영 기의 학설이 발표되자 '특집 와이드 : 북한 후계자 김정은의 어머니의 궤적 조선 화보에 정설 뒤집는 정보 "( 마이니치 신문석간 2011623일자 기사) 속에서 "고영자이야 말로 고영희 "이라고 자설(自説)을 뒤엎고 있다 .]


a.家族構成[가족구성]

: 高太文コ・テムン- 柔道家プロレスラー[아버지: 고태문 - 유도가, 프로 레슬러]

: ? : 高勝恩コ・スンオン- 北朝鮮国家体育委員会柔道指導員[어머니:? 형 고승은-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유도지도원]

: 高勝方コ・スンバン- 平壌演劇映画大学映画技術教員[동생 고승방-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기술교원]

: 高勝海コ・スンヘ)[동생:고승해]

: 高淑煕コ・スクヒ)[여동생:고숙희]

 

 

b.大同山[부친 대동산]

春行高太文コ・テムン: 고태문Ko T'aemun / Go Taemun1920110日生まれの柔道家講道館六段とされる大阪でプロレスラーとなった日本通名高山州弘リングネームは大同山又道った日本のプロレス草創期1956昭和312新団体東亜プロレスリング協会旗揚げしたことでプロレスした。  

大同山当初より朝鮮民族であることをっていた[2]しかし日本タイトルをけてわれた同年1015から1024のウエート別統一日本選手権大会においてしい成績められなかった[20]この試合戦績せたのは力道山率いる日本プロレスだけで敗退した他団体東亜プロレス翌年までに活動停止消滅してしまう自団体命運にしプロレスそのものから廃業した

[고춘행의 부친인 고태문(高太文, Ko T'aemun / Go Taemun)1920110일 태생의 유도가(柔道家, 유도 6) 출신으로 오사카에서 프로 레슬러 선수가 되었다.

일본 통명(通名)으로 高山州弘(다카야마 주 히로시), 링 네임은 대동산(大同山) 또는 도()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프로 레슬링 초창기 1956(쇼와 31) 2월에 새로운 단체 "동아 프로레슬링 협회 '를 출범함으로써 프로 레슬링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대동산(大同山)은 당초부터 조선 민족임을 스스로 자랑했다

그러나 일본 타이틀을 걸고 진행된 같은 해 1015일부터 1024일의 비중 다른 통일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향기로운 성적을 거둘 수 없었다 이 경기에서 전적을 남길 것은 역도산이 이끄는 일본 프로 레슬링만으로 탈락한 다른 단체(동아 레슬링 포함)은 다음 해까지 활동 정지, 소멸해 버린다. 그는 자기 단체와 운명을 함께하고 프로 레슬링 자체에서 폐업했다.]


3.その他[기타]

英姫としてクロフネツツジが使われている金正恩母親として偶像化にも使われている[21]

藤本健二北朝鮮から脱出する便宜ったとされる2012630日放送JNN報道番組報道特集英姫肉声れた藤本ながらに証言している

[영희 가리키는 으로 철쭉 사용되고 있다. 김정은 어머니 우상화 도모 하는 사용되고 있다.
후지모토 겐지 북한에서 탈출 할 때 편의 도모했다고 한다. 2012 6 30 방송 JNN 계열 보도 프로그램 '보도 특집'에서 영희(英姫) 육성이 흘러 나왔을 후지모토 눈물로 증언하고 있다]

 

生誕:1952626

死没:200481352歳没

政党:朝鮮労働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