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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본문
김정일 총비서의 사망원인이 비공식적 췌장암으로 사망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 북한 조선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심근 경색으로 급사했다(2011). 김정일의 사망 시각은 17일 오전 8시 30분으로 공식 발표됐다. 북한은 사 망이틀 뒤인 19일 낮 12시 북한 중앙 방송 특별 보도를 통해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밝히면서 현지 지도를 하기 위해 전용 열차를 타고 가던 도중 피로가 누적되어 갑잡스럽게 사망했다고 전했다.심근 경색이라는 사인은 부검을 통해 확인됐다고 북한 언론은 밝혓다.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생으로 사망 당시 69세였다.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 전 북한 국가 주석의장남으로 태어난 김정일은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있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에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10월에 노무현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 두 차례의 핵 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일은 국제 사회의 설득과 압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핵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꾸준히 개발,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 대규모 기근 사태를 유발함과 아울러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아사자 등 300만 명이 죽었고 이를 전후하여 북중 국경선을 통한 30만 명으로 까지 추정되는 대량 탈북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김정일 집권 후 북한 엘리트들의 망명 러시가 벌어졌으며 이중에는 북한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 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도 포함됐다.
김정일은 생전에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김정일 사망 당시 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었던 29세의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노동당 제1비서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올라 최고 권력을 승계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김일성을 예우하기 위해 국가 주석 직을 두지 않았던 것처럼김정일을 예우하기 위해 당의 최고 직책을 총비서 에서 제1비서로 개명했고 또 국가 권력의 실질적 최고 직책의 명칭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서 제1위원장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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