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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리을설 장례식 참석 본문
지난 7일 사망한 리을설 북한 인민군 원수의 영결식이 11일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서 열렸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리을설 원수동지에 대한 북받치는 애도의 정을 안고 군대의 책임일꾼들, 유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유해에 흙을 얹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7일 사망한 리을설 북한 인민군 원수의 장례식이 11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진행됐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오늘 (12일)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은 발인에 앞서 영전을 향해 애도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애도사를 통해 리을설이 `선군혁명 위업의 승리를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한국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리을설의 시신 운구에 장갑차가 동원된 것은 항일 빨치산 1세대인 리을설에 대한 극진한 배려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21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리을설은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제4사단 참모장을 거쳐 1972년 상장, 1985년 대장, 1992년 차수에 올랐고, 199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원로 예우 정책’에 따라 인민군 원수 칭호를 받았습니다.
리을설 원수의 국장(国葬) "10 만명의 시민이 배웅"
북한은 11일 인민군 원수의 이을설 씨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한국 웹 사이트 "NEWS1"는 11일"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이 국장 당일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전군은 이날 반기(半旗)를 들고 조의를 표시 음주와 레크리에이션(오락) 활동을 금지했다. 이을설 씨의 발인은 오전 9시에서 10 만명 이상의 평양 시민들이 배웅했다 "고 전했다.
환구 시보 기자가 이을설 씨의 발인식을 보았을 지인(知人)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을설 씨의 관을 태운 장갑차는 현지 시간 11일 오전 9시 평양 중앙 노동자 회관을 천천히 나왔다 . 10만명 이상의 평양 시민들이 거리에서 기립하고 이을설 씨를 배웅했다. 영구차가 통과하면 도로 양쪽 시민이 고개를 숙여 묵념을 했다. 배웅 장면은 매우 엄숙했다. 영구차가 통과하는 도로 전체에 교통 규제가 깔려 있었다. 관은 장갑차 바로 위에 놓인 붉은 깃발로 덮여 있었다. 장갑차 앞에 경찰차가 달려 양쪽에 붙은 자전거로 호송되었다. 김정은이 이을설 씨에게 보낸 화환이 장식 된 오픈카가 천천히 주행하고 3명의 의장 대원이 총을 가지고 화환 근처에 서 있었다. 또한 북한 인민군 군악대 대원이 트럭을 타고 연주했다. 발인 차량의 행렬은 평양 교외쪽으로 갔다.
이을설 씨는 2015년 11월 7일에 서거. 시신은 중앙 노동자회관에 안치 된 8일 16시부 터 10일 19 시까지 조문을 받아 들였다. 김정은은 8일 이을설 씨의 조문에 방문해 그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북한의 당 · 정 · 군 지도자(党・政・軍指導者), 항일 혁명 원로군인(抗日革命元兵士), 주북한외교 사절단(駐北韓外交使節団), 무관단(武官団), 일부 북한 시민과 해외에 거주하는 북한인이 조문에 방문했다.
한국 서울 경제 신문은 11일 "94세의 이을설 씨가 서거 항일 유격대 시대의 원로 거의 모두가 세상을 떠났다. 항일 유격대 시절 이을설 씨는 김일성 씨의 연락 병사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호위 총국장에 취임했다. 북한의 역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을 갖는다 "고 보도했다.
또한 한국 언론에 따르면 북한이 발표한 170 명 규모의 이을설 씨의 장례 위원 노동당 중앙 위원장 최룡해 씨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환구 시보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 미디어는 최근 김정은의 시찰에 관한 보도에서 최룡해 씨의 이름을 수행자로서 들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 미디어는 최룡해 씨가 처분을 받았다고도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 중앙 TV가 11일 밤에 방송 된 북한 노동당 창설 70 주년 기념 활동의 다큐멘터리에는 최룡해 씨가 김정은 씨와 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화면이 여러 번 비추어졌다.
*리을설(李乙雪, 1921년 9월 14일 ~ 2015년 11월 7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다.
1921년 9월 14일 일제 강점기에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48년 인민군 연대장, 1950년에 참모장을 거쳐 1957년 소장에 올라 인민군 사단장을 지냈다. 1962년에 중장에 올랐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1972년 인민군 상장이 되었고,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198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85년 인민군 대장에 올랐다. 1992년 인민군 차수를 거쳐, 1995년 원수 계급이 되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국방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최고인민회의 제4, 5기(1967년, 1972년)와 7 ~ 12기(1982년, 1986년, 1990년, 1998년, 2003년, 2009년) 대의원을 역김하였다.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회의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되었다. 2015년 11월 7일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학력: 소련 군사아카데미
-경력: 북한 인민군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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