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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한국 초계함 침몰 사건 관여 재차 부인 본문

Guide Ear&Bird's Eye/테러단체,간첩등 수집.조사연구

북한, 한국 초계함 침몰 사건 관여 재차 부인

CIA bear 허관(許灌) 2015. 3. 24. 21:31

 

한반도 서쪽 해상에서 한국의 초계함이 침몰한 사건이 발생한 지 26일로 5년이 되는 데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24일, 국영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사건에 대한 관여를 재차 부인했습니다.

한반도 서쪽 해상에서 2010년 3월에 한국의 초계함이 침몰해 46명의 병사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미국 등과의 조사 결과, 북한의 어뢰공격이 원인이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북한은 24일 발표한 담화에서 사건 관여를 재차 부인하고, 한국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초계함 사건을 구실로 가하고 있는 제재조치를 즉각 해제하라는 것이 북한의 변함없는 주장”이라며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에 가하고 있는 제재조치를 해제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천안함 침몰 이전 모습 
북한은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시키려면 한국 정부의 제재조치 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담화에서는 남북협의를 촉구해 온 박근혜 정권을 동요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안함 침몰은 김정일 췌장암으로 사망 이전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소속 천안함 침몰사건 ‘특별조사팀’ 단장인 로런스 웰스 미 공군 소장(왼쪽)과 조사팀 관계자가 25일 국방부를 방문해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어뢰 추진부 잔해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조사팀에는 미국 프랑스 등 11개국 요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북한 "천안함 무관, 사과 못해"...한국, 유감 표명

 

                             천안함 피격 5주기를 앞둔 24일 대전 한남대학교 학생들이 교내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피격 5주기를 앞두고 북한이 또 다시 연관성을 전면 부인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자신들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5.24 제재 조치의 조건 없는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또 다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한 데 대해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으로 이미 밝혀진 사안이라며, 북한의 사실 왜곡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천안함 폭침은 이미 국제 공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소행임이 명백히 밝혀졌다며 이같이 강조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5.24 제재 조치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이뤄진 조치로, 5·24 조치의 해결을 위해선 한국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국방부도 천안함 폭침과 관계 없다는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변명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입니다.

[녹취: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천안함 피격 폭침 사건은 북한의 잠수정에 의해서 발생된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금도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층이 있는데 전혀 이 부분은 북한이 폭침시킨 소행이기 때문에 그런 북한의 변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우리 기본 입장입니다.”

김민석 대변인은 또 천안함 침몰 이유와 관련해 다른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데 대해 북한의 잠수정에서 발사한 어뢰 외에는 그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는 24일 천안함 폭침과 무관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5·24 조치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한국 정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5·24 조치 해제 문제를 논의하자는 한국 정부의 제의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며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5·24 조치를 먼저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면 거부한 것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로 분석됩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으로선 김정은 체제의 안착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구요. 현재 북한은 천안함 사건을 우회해 남북관계를 열고자 하는 전술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천안함에 대해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그런 전략으로 보입니다.”

5.24 조치와 관련해 홍용표 한국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24 조치는 근본적으로는 해제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반드시 받아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선전 벽보가 외부에 공개됐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최근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으로부터 북한이 제작한 선전 벽보를 입수했습니다.
이 벽보는 북한 해군이 주먹으로 함정을 두 동강내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벽보 하단에는 ‘덤벼들면 단 매에’라는 구호가 적혀있습니다. 이 소식통은 문제의 벽보가 6월 중순께 나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벽보가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3월 이후에 만들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군사력을 외부에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모색하기 위해 이 벽보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2006년8월 뇌졸중 발병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일 前국방위원장 모습 사진입니다  김 위원장이 뇌졸중 발병설이 제기된 2008년 8월과 비슷한 시기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췌장암은 주로 말기에 발견되는 탓에 암 중에서도 생존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병이다.

이 시기부터 김정일 사후 후계자 추대와 대남 강경노선 세습제 좌익군정 주도로 2, 3차 핵실험,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폭격등을 주도해왔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전 1991년 12월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과 인민군을 장악하고 핵 실험을 추진해왔다

김정일은 90년 1월 남한내부 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새세대-김정일시대 주체사상 시대)로 개편하고 남한정부와 협상, 전쟁 양면정책으로 대남정책을 추진해왔다

김정일은 동유럽 공산정부 붕괴와 소련해체 이후 핵실험으로 미국이 북한지역 군사적 행동을 유도하고 남과 북전쟁을 추진하는 저강도전략 일환으로 남한내부 반미전선 구축 한민전 서울대표부 개편을 서둘러왔다 한민전 서울대표부 주도로 남한 내부 폭동과 약탈을 주도할 수 있도록 조직화해왔다

소련 공산당이나 중국 공산당 강경파도 이런 정책을 동조해왔다

러시아 정부나 중국정부 그리고 북한 내부 세습제 좌익군정 반대세력들이 군사우선 정책 남북 군사적 전쟁보다는 남북협력과 경제우선 정책을 지지해왔다

1998년 9월 국가수반으로 추대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주도로 대외정책을 추진해왔다 김영남은 영국과 국교이후 국가수반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영국 여왕과도 환담했다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 지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열차에서 과로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로 사망하였다 사망 사실은 2일 동안 극비에 부쳐졌으며, 12월 19일] 정오에 북한중앙방송을 통하여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고,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되었다 2008년부터 뇌졸중으로 좌반신 마비 증세를 겪고 있었고, 2010년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명이 3년 정도 남았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며 그의 사망이 임박했음을 예측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김정일 논설, 1984) 북한 김일성, 김정일사상은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으로 반일 반미사상(반제국주의 운동사상)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반일과 반미 투쟁 역사로 남북통일도 반미인민전쟁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전쟁을 추구해오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반미사상을 체계화하여 좌익군정을 실시해온 인물이며 각국에 반미테러단체 설립을 지원하였고 남한에도 반미청년회나 여성회 활동을 지원하거나 후원하여 남한내부 무장단체 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건설에 주력해왔습니다(남한에도 1984년경 반미청년회가 설립 NLPDR 김일성주의 사상을 보급했으며 90년 1월 김정일주의 주체사상 보급과 함께 한민전 서울대표부로 개명했습니다)

 

                                                                 미사일 발사능력 새로운 형태 북한 잠수함이 주변국 안보 위협(사진)

북한이 지난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첫 비행시험을 실시했다고 미국의 보수성향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 국방부 관리들을 인용해 북한이 1월 23일 'KN-11' 미사일을 잠수함이 아닌 해상기지 플랫폼에서 발사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비행 시험에 대한 다른 구체적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국방부 대변인도 북한의 SLBM에 관한 정보가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논평을 거부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1월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의 지상 실험장에서 KN-11의 사출 실험을 했다. 

당시 미 정보관리들은 "발사 과정의 초기 단계"라면서도 북한이 "잠수함에서의 핵 공격 능력 확보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비행 시험을 감시하기 위해 미군 정보함들과 항공기가 동원돼 일단 성공적으로 발사된 KN-11의 탄도 궤적을 추적했다. 

 

 

 

 

 

 

 

 

 

 

 

 

 

러시아 뉴스 사이트 "스푸트니크" 2015년 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 문제연구 대학원 한미연구소는 북한 해군이 미사일을 장착 할 수 있는 잠수함을 보유 할 것으로 내다봤다 했다.

연구소 직원은 상업 위성이 2014년 12월에 촬영한 북한 동해안 신포항(新浦港)의 사진을 분석했다. 사진에는 1척의 잠수함이 비치고 잠망경이 보이고 2기의 미사일 발사대와 같은 것이 붙어 있다. 그러나 장비 가능한 미사일의 형태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포항(新浦港)

해안선은 비교적 복잡한 편이며, 남쪽 앞바다에 함경남도에서 가장 큰 섬인 마양도가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어항으로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부두에는 2,000~3,000t급 배들이 정박할 수 있다. 연안 일대는 한류·난류의 교차지역으로 세계적인 대어장을 형성하여, 명태·대구·청어·정어리·고등어·연어·송어 등 어종이 다양하다. 특히 신포·마양도 부근은 예로부터 유명한 명태어장으로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명태잡이 어선들이 신포항 앞바다에 성시를 이룬다. 특히 이곳에서 어획되는 명태는 '북청명태'라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가자미·멸치·까나리 등이 어획되며, 미역·다시마·해삼·조개류 등이 채취된다. 현재 신포는 수산물 생산기지로 이를 이용한 수산물 가공공장이 많다. 명태의 알을 가공한 '신포명란'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그밖에 수산물가공품으로 통조림·냉동제품·염장제품·건어물·젓갈류·어묵·창란젓·어유 등이 생산된다. 원양어업기지인 신포수산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어업사업소와 육대·신호·호남·남흥 등 10여 개의 수산협동조합을 비롯해 조선소·어유공장 등이 있다. 신포항은 기선의 정기 기항지로 북청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쪽으로 원산, 북쪽으로 단천·김책·나진·선봉 등으로 정기선이 운항한다. 신포와 마양도 간에 매일 수차례의 정기여객선이 왕래하며, 마양도 동단에 등대가 있다. 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평라선(평양-나진)이 신포역을 지나며, 신포에서 홍원과 북청 사이를 잇는 도로가 지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천안함 희생장병 분향소를 조문했습니다. 입구에서 흰장갑을 착용하고 국화꽃을 들고 입장한 이 대통령은 헌화 및 분향 후 희생 장병 영정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 경례 후 묵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출구에 마련된 조문록에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2010. 4. 26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쓰고 침통한 표정으로 해군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내로 시민들의 애도쪽지를 모두 둘러본 이대통령은 “칸이 더 있어야겠다.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당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전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선임 행정관 등 80여명이 함께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