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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 등 두 명 수상 본문

Guide Ear&Bird's Eye/21세기 동아시아인 노벨상

노벨평화상,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 등 두 명 수상

CIA bear 허관(許灌) 2014. 10. 10. 22:48

 

                                           Kailash Satyarthi and Malala Yousafzai were recognised for their efforts to improve child rights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노벨위원회는 일본시간으로 10일 오후 6시 경, 올해 노벨평화상에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와 인도의 카일라시 사티야티 씨를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Malala as she was stretchered to hospital

 

                                                            A vigil for Malala in Karachi as she recovered in hospital

 

                                                  Graphics from the hospital showing the bullet's path, titanium plate and implant

 

 

                                                                  Malala with her father Ziauddin Yousafzai in Birmingham

 

                                                         one child, one teacher, one book, one pen can change the world," she said.
노벨위원회는 이들 두 명의 평화상 선정 이유로, "말랄라 씨는 어린 나이에도 위험한 환경 속에서 용기를 갖고 여성의 교육권을 호소하며 어린이도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바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Kailash Satyarthi and former child slaves in India.


또 사티야티 씨는 "항의시위 등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어린이들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착취되고 있는 상황을 호소해 왔다"며 "어린이들의 권리조약 발전을 위해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노벨위원회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인 두 명이 과격파에 대항해 교육을 위해 싸워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세계에는 지금도 1억 6800만 명의 어린이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숫자는 2000년에 비해 7800만 명 줄어든 것"이라고 말하고 "세계는 아동노동을 근절한다는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연소 노벨상 기록 세운 ‘탈레반 피격소녀’ 말랄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10일 선정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ㆍ여)는 '탈레반 피격소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만 17세인 말랄라는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상 전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영광도 함께 안게 됐다.

말랄라 이전 노벨상 최연소 수상자는 1915년 25세의 나이로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 출신의 로런스 브래그였다.

파키스탄 북서부 시골지역의 평범한 소녀였던 말랄라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꼭 2년 전이다.

2012년 10월 9일 파키스탄 북서부 키베르 파크툰크와주 스와트 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

학교를 마치고 스쿨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말랄라(당시 15세)는 괴한의 총격에 머리를 관통당해 사경을 헤맨다.

말랄라가 11살 때부터 영국 BBC 방송의 우르두어(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쓰는 언어) 블로그에 올린 일기를 통해 여학생의 등교를 금지하고 여학교를 불태운 파키스탄탈레반(TTP)의 만행을 고발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사건 직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한 TTP는 "여성에게 세속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누구든지 율법에 어긋나는 세속주의를 설파하면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말랄라는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뒤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 사건으로 오히려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권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건강을 되찾은 말랄라는 계속되는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부르짖었다.

말랄라는 자신의 16살 생일인 지난해 7월 12일 미국 유엔 총회장에서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세계 지도자들에게 어린이 무상교육 지원을 요청했다.

올해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동북부 치복에서 극단 이슬람 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200여 명의 나이지리아 여학생의 무사귀환을 호소했다.

2013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과 CNN이 뽑은 '올해의 주목할 여성 7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자서전 '나는 말랄라'(I Am Malala)를 펴냈다.

지난해에도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말랄라는 수술 후 버밍엄에 정착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 버밍엄의 에지배스턴 여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말랄라의 대변인은 수상소식이 전해진 뒤 말랄라가 "오늘도 평소처럼 학교에 있다"면서 학교에서 수상사실을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말랄라는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가 지난해 1월 버밍엄 주재 파키스탄 영사관의 교육담당관으로 임명되면서 최소 3년 이상 영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Malala's speech to the UN

-Speech delivered to 500 young people aged 12-25 from around the world

-Malala called on politicians to take urgent action to ensure every child can go to school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also addressed the session, calling Malala "our hero"

-The event, described by the UN as Malala Day, was organised by former UK Prime Minister Gordon Brown, now the UN Special Envoy for Global Education

 

  • 1997:Born in Swat Valley, Pakistan

  • 2009:Wrote anonymous BBC blog about life under the Taliban

  • 2009-10:Identity revealed in TV interviews and a documentary

  • 2011:international Children’s Peace Prize nominee

  • 2012:Shot in assassination attempt by Taliban

  • 2013:Nobel Peace Prize nominee, named one of Time magazine’s most influentia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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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에 말랄라 유사프자이·카일라시 사티야티

    올해 노벨 평화상은 파키스탄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인도인 카일라시 사티야티가 수상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아동 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공로를 인정해 이들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스탄의 17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하교 중 탈레반 대원이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지는 등 탈레반의 위협 속에서도 여성 교육권을 주장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도의 아동인권 비정부 기구인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을 이끌고 있는 카일라시 사티야티는 간디의 전통을 이어받아 어린이의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다양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들, 그리고 인도인과 파키스탄인들이 극단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인도인 카일라시 사티야티

    사티야티는 인도 반(反) 아동학대운동가다. 1990년대부터 인도 내 아동 노동착취에 맞서 인권활동을 펼쳐왔다. 인도의 아동인권 비정부 기구인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을 이끌고 있으며 노예상태로 지내던 아이들 8만 명 이상을 해방시키기도 했다.

    사티야티에 대해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아동을 착취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여러 형태로 평화적 시위를 이끌며 위대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또 사티야티가 아동의 권리에 대해 중요한 국제 협약을 발전시키는데도 기여했다며 수상 사유를 설명했다.

     

     

     

    기자) 올해 노벨평화상은 아동인권 운동가 두 사람이 공동수상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노벨평화상 소식부터 전해주시죠.

    기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오늘(10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했는데요.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인도에서 아동 불법 노동 근절에 앞장서온 카일라시 사티아르티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진행자) 두 사람 모두 어린이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또 이웃한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공동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데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했다면서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진행자) 올해 수상자들이 어떤 인물들인지도 좀 소개해주시죠.

    기자)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유사프자이는 이번 수상으로 노벨평화상 최연소 수상의 영예도 안았는데요. 유사프자이가 처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건 끔찍한 총격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진행자) 어떤 사건이었죠?

    기자) 열다섯 살이던 지난 2012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탈레반의 총에 맞은 것인데요. 유사프자이는 이미 10대 초반부터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에서 여성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는데요. 유사프자이가 살던 스와트 발리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점령했던 지역인데요. 여성 교육을 금하는 탈레반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여성 교육권 확보를 위한 운동에 앞장선 겁니다. 또 서방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탈레반의 표적이 됐던 겁니다.

    진행자) 당시 총격 사건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자) 유사프자이는 머리에 총을 맞았는데요. 치명적인 총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남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는데도 여성 교육을 위한 투쟁에 더욱 앞장섰다는 건데요. 유사프자이의 이런 용기있는 행동은 전세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진행자) 유사프 자이가 유엔에서도 연설했던 기억이 나네요?

    기자) 네. 유사프자이는 지난해 생일인 7월 12일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의 초청으로 유엔에서 연설했는데요. 자신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의지를 죽일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나약함과 공포가 사라지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말라라는 또 교육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서 여성 교육권 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는데요. 유엔은 이 날을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날'로 정하고 모두가 교육 받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유사프자이가 지난해에도 노벨평화상 후보였죠?

    기자) 네.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의 기록을 세웠지만, 수상은 놓쳐었는데요. 올해 공동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습니다.

    진행자) 또 다른 수상자인 카일라시 사티아르티는 어떤 인물입니까?

    기자) 사티아르티는 1954년 인도에서 태어난 올해 예순 살의 아동인권운동가입니다. 전기 분야를 공부해서 이십대의 나이에 대학교수가 됐는데요. 하지만, 부패한 기업과 지주들에게 아이들이 노예처럼 착취되는 모습을 보고 아동인권 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사티아르티는 인도는 물론이고 전세계에서도 아동인권 운동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됐습니다.

    진행자)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기자) 사티아르티는 아주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그 중에서도 그가 만든 '러그마크' 재단이 유명한데요. 인도 등 서아시아의 카페트 공장에서 자행되는 불법 아동노동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아동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게 확인된 업체의 제품에는 '러그마크'를 찍어주고, 이 마크가 있는 제품만을 구매하자는 운동을 벌인겁니다. 불매운동이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자 사이아르티는 다른 제품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아동노동을 착취한 기업가와 지주들을 법정에 세우고,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도 전개했는데요. 그가 주도한 활동을 통해 불법 노동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진행자) 8만 명이나 구출해냈다니...한 사람의 노력에서 출발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큰 성과를 거뒀군요?

    기자) 네. 또 사티아르티는 자신의 아동인권 운동을 국제사회로 확대시켰는데요. 그가 설립한 아동 노동 반대 단체에는 전세계 140여개국의 교사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올해 노벨평화상은 아시아 출신의 인권운동가 두 사람에게 돌아갔는데요. 그동안 아시아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여러 명 나왔었죠?

    기자) 가장 최근에는 중국의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가 지난 2010년 수상자로 선정됐었고요.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2000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업적과,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이 인정 받아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1991년에는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