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雩南 이승만과 尤史 김규식 선생 본문
구미외교위원부 시절 이승만과 김규식 선생 모습
김규식은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장에 임명 되었으며 이승만은 그에게 하와이 및 멕시코 등지의 한국인 교포들로부터 공채금과 의연금을 징수하는 역할을 부여하였다 이후 애국공채표를 작성, 이승만과 공동명의로 발행,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에 보내는 일을 하였다.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재직하며 김규식은 '극동 정세'(Far Eastern Situation)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서 김규식은 '극동에서 일본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일본의 팽창이 그대로 허용된다면 영국과 미국(의 영향력)이 극동에서 제거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15년 후 일본은 중국, 시베리아 및 한국의 인적 자원을 이용하여 영·미 각국에 무력으로 대항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는 한동안 묻혀져 있다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역사학 교수 이정식에 의해 발견되었다.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줄곧 국내외 언론에 칼럼과 기고문을 송고하여 싣기도 하였다.
9월 임시정부의 개편때 구미위원부도 함께 개편되면서 그는 구미위원부 부위원장으로 물러났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 임정에 송부하는 한편 이승만과 함께 독립공채표를 작성하여 기금을 마련하였다. 독립 공채표의 금액은 독립 후 정부가 수립되면 정부에서 지급하기로 한 채권이었다. 10월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여 한국인 교민들과 면담하였고, 10월 30일 캘리포니아 주 맥스웰, 10월 31일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트, 11월 1일 띠뉴바, 11월 2일 로스앤젤레스 등의 한국인 교포들을 순방하고 11월 3일 다시 워싱턴 구미위원부로 돌아왔다
구미위원부 활동 내내 미국의 정객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하원에도 한국독립문제를 청원, 3·1독립운동을 계기로 고조된 분위기를 활용하여 한국독립문제가 미국하원에서 상정 토의되도록 하였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1920년 3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3·1절 1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임정 구미위원부 간부들 (앞줄 가운데가 이승만 박사 그 오른쪽이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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