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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 대선서 승리한 바키예프 본문

중앙아시아/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 대선서 승리한 바키예프

CIA bear 허관(許灌) 2009. 7. 25. 09:41

 

                                                               President Bakiyev, voting with his wife, Tatyana, in Bishkek on Thursday

쿠르만벡 바키예프(59)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23일 대선에서 사실상 승리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09년 7월 24일 낮 12시 현재(현지시간) 50%의 개표율을 보이고 있지만 2위 그룹과 80%가 넘는 득표율 차를 보이고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이로써 2005년 `레몬 혁명(또는 튤립 혁명)'으로 전임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이후 5년 더 권좌에 남게 됐다.

   바키예프는 투표 당일 헌법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 정권을 연장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했다. 이는 일부 다른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정치 지도자들이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바람에 `독재자'라는 비난을 사고 있음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키르기스 헌법은 한차례 연임만 허용하고 있다. 레몬 혁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남부 잘랄-아바트주(州) 출신인 바키예프는 구소련의 큐비쉐프 소재 종합기술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으며 러시아인 아내 타티야나와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 1990년 콕-양각 마을 위원회 제1서기에 오르며 정치에 입문했으며, 1992년 이후 잘랄아바트주, 이시크-쿨주, 추코트스키주 주지사를 잇달아 역임했다.
아카예프 전 대통령에 의해 2000년 총리로 발탁됐으나 2년 뒤 유혈 폭력사태가 발생, 총리에서 물러나 야당 지도자로 변신했다. 결국 레몬 혁명으로 철권통치를 종식하면서 정치력을 확인받았으며, 2005년 7월 조기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취임 당시 약속과는 달리 정치ㆍ경제개혁 실패와 부패 만연 등으로 야권으로부터 꾸준히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야권은 지난 연말에도 경제 위기 극복 청사진 마련과 민영화 중단, 헌법 개혁, 의회 해산 등을 요구했다.

   키르기스는 만성적인 전력난을 겪고 있는 데다 국가 재정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자국 근로자들의 해외 송금액이 금융위기로 급격히 줄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여기에 혁명 이후 계속된 정쟁과 높은 실업률, 물가, 관리들의 부패, 범죄 증가는 사회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야당이 불복할 태세여서 정국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연임에 성공하긴 했지만, 바키예프 대통령으로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정국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됐다.
 또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불안한 외줄 타기 외교 전술을 구사하는 처지에서, 두 나라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익을 챙길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Opposition supporters taking part in a rally, demanding a presidential election be declared illegal, in Bishkek on Thursday.  

키르기스스탄(키르기스어: Кыргызстан, 러시아어: Киргизия 키르기시야  문화어: 끼르기즈스딴)은 중앙아시아 내륙의 공화국으로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에 독립했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과 접해있다. 2005년까지는 혁명내전으로 정국이 불안하였다고 한다.

 

1.역사

키르기스스탄은 2005년혁명이 일어나서 아카예프 대통령은 물러났는데, 혁명의 주역중에는 고려인도 포함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2008년 10월 6일에 키르기스스탄 남쪽에서 지진이 발생해서 사망자가 65명으로 증가했다.

 

2.지리

국토 전체의 40%가 해발 3000m를 넘는 산간 지방이다. 국토는 동서로 길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경에는 톈산 산맥이 펼쳐져 있다. 남쪽에 위치하는 타지키스탄으로는 파미르 고원이 펼쳐져 있다.

국토의 중앙과 동서로 산맥이 펼쳐져, 국토는 수많은 협곡으로 갈려진다. 최고봉은 중국 국경에 우뚝 솟은 포베티산(Pobeda 또는 Jengish 혹은 승리봉, 7439m), 그 다음으로 칸·텡리(Khan-Tngri 또는 Kan-Too, 6995m)다. 4000m급의 봉우리가 적지 않은 수가 있다.

주요 하천은 시르다리아강 지류의 널인 강이고, 주요 호수는 국내 북동부에 위치하는 이시크 호수 (Isik-Kl)이다. 동서로 180km, 남북으로 60km, 둘레가 700 km에 이른다. 호수 표면의 해발은 1600m이다. 이시크 호수와 널인 강은 서로 다른 수계를 가지고 있다.

 

3.기후

주변의 카자흐스탄이나 중국과는 달리 국내에 사막은 존재하지 않고, 이 지역은 천혜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동서로 뻗어있는 계곡 부분은 사람이 거주하기 적절하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하계에 비가 적은 온대의 지중해성 기후 (Cs)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로마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기후 지역이다. 산지는 아한대 습윤기후 (Df)이고, 특히 고지대는 고산기후(H)가 된다. 톈산 산맥을 끼고 남쪽의 중국과 아라 산맥을 끼고 북쪽으로 카자흐스탄에는 스텝기후(BS)와 사막기후 (BW)가 펼쳐진다.

실제 강수량을 비교하면, 톈산 산맥의 100km 남쪽에 위치하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의 연강수량은 60mm이지만, 비슈케크(북위 43도, 해발 800m)의 강수량은 450mm에 이른다. 이것은 로마나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슈케크의 평균 기온은 1월에―3도, 7월에 25도이다.

비슈케크와 제2의 도시 오슈, 중앙부의 널 인에는 구 소련 시대에 대규모 관개시설이 부설되어 있기 때문에, 면화를 중심으로 한 경작에 적합하다. 이러한 관개지는 시르다리아강, 널인강의 지류에서 물을 얻고 있다.

 

4.사람과 언어

키르기스족들이 69.5%정도 차지하고, 유르트와 야크를 방목한다. 기타 소수민족은 러시아인 (9.0%), 남부의 우즈벡족 (14.5%)이다. 소수그룹을 차지하는 위구르족(1.1%), 타지크족 (1.1%), 카자흐족 (0.7%), 둥간족 (1.2%)과 터키인 (0.9%), 고려인 (0.3%), 우크라이나인 (0.5%)이다.

키르기스어러시아어가 공용어이며, 키르기스어는 1991년 9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신생국인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떠나게 되는 원인중 하나였다. 러시아어는 2000년에 다시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키르기스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한 언어로 20세기까진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다. 1928년에서 1941년까진 로마자로 표기되다가, 1942년부턴 키릴 문자로 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이해할 줄 안다. 특히 비슈케크 주민들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이고, 사업과 정무에서 많이 사용된다.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5.문화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평한 소설 자밀라(잘못된 내부링크가 걸려있습니다.)--예랑이아빠 (토론) 2009년 7월 10일 (금) 11:15 (KST)를 쓴 칭기즈 아이트마토프가 바로 키르기스스탄인이다.

 

6.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은 현재 7개의 주(주; 단수область 복수областтар)로 구분되어 있다. 수도는 비슈케크이다. 도시(Шаар)도 구분되어 있다.

Provinces of Kyrgyzstan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주와 중심지를 보면

  1. 비슈케크
  2. 바트켄 주 (바트켄)
  3. 추이 주
  4. 잘랄아바트 주 (잘랄아바트)
  5. 나린 주 (나린)
  6. 오시 주
  7. 탈라스 주 (탈라스)
  8. 이식쿨 주 (카라콜)
  9. 오시

7. 외교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여러국가(구소련 분리독립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한관계

한국과는 구소련 해체와 한소수교 이후인 1992년에 수교하였으며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CIS공동관 국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휴일

휴일 한국어 키르기스어 비고
1월 1일 새해 Жаңы жыл ~
1월 7일 러시아 정교회의 크리스마스 ~ ~
3월 8일 여성의 날 Аялдар күнү ~
3월 21일 누루즈 Нооруз майрамы ~
5월 1일 Labour (Labor) Day Labour (Labor) Day ~
5월 5일 헌법 제정일 Конституция күнү ~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일 Жеңиш күнү ~
8월 31일 독립일 Эгемендилүүк күнү ~

 

*키르기즈스탄의 레몬 혁명

2003년 그루지아의 장미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에 이어 키르기즈의 레몬혁명도 총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들의 총선 출마가 금지당하는 등 불법이 자행되는 가운데 반정부 혁명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비롯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21일 제 2 도시인 오쉬와 수도 비쉬켁을 비롯한 4개 도시에서 시작되어 아카예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정부 청사와 대통령 집무실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였고, 지난 24일 급기야 아카예프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카자흐스탄으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은 소련 시절이던 90년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뒤 15년째 장기 집권해 왔다. 물리학자 겸 교수 출신으로 집권 초기 중앙아시아 지도자 중 가장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인물로 꼽혔었으나 장기 집권을 위해 국민투표로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고 선거 부정 의혹이 일면서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아들과 딸을 출마시켜 모두 당선시키는 등 아카예프 일가의 독재화가 계속되면서 야당과 시민들의 결집을 강화시켰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혁명의 우려를 제기할 정도로 혁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시위 현장을 다녀왔던 키르기즈 젊은이들이 ‘켈켈’(키르기즈어로 부흥 또는 우리와 함께 가자)이라는 반정부 단체를 조직하는 등 치밀한 시위 준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르기스의 시민혁명이 민주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키르기즈에는 뚜렷한 야당 지도자가 없는데다 이들이 민주화에 대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키르기즈의 혁명에서는 똑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이끄는 국제공화주의재단이나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오픈소사이어티재단 등이 현지에서 활동하며 반정부 활동가들을 도왔고 서구정부와 언론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결국 이것은 친러시아 정부의 패배로 이어져 송유관 경로 등에서 미국에게 유리한 구도로 나타났다. 카르기즈 레몬혁명의 막후에서도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숨가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키르기즈는 중국 정부가 무슬림의 독립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러시아, 중동과도 이어지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키르기즈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양쪽에서 모두 이익을 얻어내는 정책을 취해왔다. 만약에 미국이 이곳에 친미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재할 요충지를 확보하는 셈이다. 부시 행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확산’은 유독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에서 ‘미국 이권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cf. 키르기즈스탄은 소련이 무너지면서 1991년 분리독립했으며 독립국가 연합(CIS) 중 하나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며, 인구는 5백만명으로 키르기즈인 65%, 우즈벡인 14%, 러시아인 12.5%, 우크라이나인과 위구르인이 각각 1% 등 80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수니파 무슬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그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이슬람은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통적인 무슬림의 모습은 쇠퇴하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관행과 혼합된 정령주의적이고 민속적인 이슬람교가 발달하였다. 키르기즈스탄은 거의 완전한 종교의 자유와 함께 모슬렘 국가로서는 아주 개방적인 종교 정책을 펴고 있다.

- 레몬 혁명으로 대통령이 하야했지만 향후 소신을 가지고 정치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부재한 가운데 있어 민주주의의 정착까지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개혁적인 민주정치와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배출되고 시민혁명을 이루어낸 국민의 힘으로 국가적 위기이자 기회인 현 상황을 잘 극복하여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 키르기즈스탄의 남서부는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시초가 되었던 남부의 오쉬 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우즈벡 민족인데 그 동안 북동부의 경제적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서부가 낙후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총선을 계기로 그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반정부 시위가 자칫 종족 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더 이상의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자. 또한 새로운 정부를 통하여 국토 전체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키르기즈는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1600불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정부가 개방 정책을 펴며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지만 특별한 산업기반이 없어 외국인 투자가 미비한 상황이다. 키르기즈의 숨은 잠재력(지하자원, 원자재, 고급노동력, 낮은 임금)이 세계에 알려져 해외자본 유입 및 합작회사설립이 활기있게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바키예브, 키르키즈스탄 대통령 선거서 승리

키르키즈스탄 해내외 2,330개 투표소 중 키르키즈스탄 대통령 입후보자이며 현임 대통령인 바키예브가 이미 통계된 1,499개 투표소에서 86.28%의 선거표로 재차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키르키즈스탄 중앙선거위원회가 24일 선포했습니다.

초보적인 통계에 따르면 약 230만명 선거민이 23일에 있은 대통령 선거에 참가해 투표율이 79.38%에 달했습니다. 현재 바키에브는 이미 128만장의 선거표를 획득했고 바키예브의 주요 경쟁자로서 키르키즈스탄 반대파가 공동 추천한 입후보자인 아탐바예브는 11만장의 선거표를 획득해 득표율이 7.4%에 불과합니다.

키르키즈스탄 선거법 규정에 따르면 첫 투표에서 반수이상의 선거표를 획득한 대통령 입후보자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됩니다.